히티드 라이벌리: 동성애 스포츠 로맨스 드라마 원작자, 'TV 방영되기에는 너무 선정적이라 생각해'

레이첼 리드

사진 출처, Caleb Latreille

사진 설명, 지금은 입소문으로 화제가 된 드라마 '히티드 라이벌리'로 탄생하긴 했으나, 작가 레이첼 리드는 자신의 소설은 "TV 드라마 등으로 각색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 기자, 마이아 데이비스

"저는 하키 선수들을 소재로 한 노골적인 성소수자 로맨스 소설을 씁니다. 여러분도 아마 아시겠지만, 공개적으로 말하기에는 조금은 불편한 일이라 이렇게 전합니다."

캐나다 노바스코샤 출신 작가 레이첼 리드(본명 '레이첼 고구엔')는 4개월 전 자신의 블로그에 이 같은 글을 남겼다.

그리고 현재, 작가 본인이 '외설물'이라 표현했던 그 소설은 TV 드라마로 각색돼 뜨겁게 입소문을 타고 있다. 바로 스포츠 로맨스 드라마 '히티드 라이벌리('뜨거운 경쟁 관계'라는 뜻)'다.

주연 배우들은 골든글로브 시상식은 물론 주요 심야 토크쇼와 팟캐스트 등에 출연하고 있으며, SNS에서는 팬들이 이들을 소재로 한 콘텐츠를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있다. 이제 리드에게는 숨을 곳이 없어진 셈이다.

하지만 리드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더 이상 부끄러워할 것이 없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당당하게 이 드라마를 사랑한다고 말한다"는 그는 "이 드라마를 싫어하는 게 오히려 부끄러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라이벌 관계에 있는 두 아이스하키 스타의 로맨스를 그린 드라마 '히티드 라이벌리'에는 여러 성적인 장면이 담겨 있다. 이 작품은 리드의 소설 시리즈인 '게임 체인저스'의 2번째 책을 원작으로 제작됐다.

리드는 자신의 책에 대해 "처음에는 (TV 드라마 등으로) 각색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며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그는 이 소설을 처음에는 팬픽션(특정 작품 등의 팬이 만든 2차 창작물)인 척 온라인에 익명으로 게시했다.

각각 파란색, 흰색 유니폼을 입은 하키 선수들이 머리를 맞대고 경쟁하는 장면

사진 출처, Sabrina Lantos/HBO Max

사진 설명, 총 6부작으로 구성된 이 드라마는 두 스포츠 스타 사이의 비밀스러운 연애를 다룬다

그러나 TV 드라마용으로 각색되는 과정에서도 이야기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리드 또한 "이렇게 원작에 충실한 각색도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성소수자들의 인간관계 및 스포츠계 내 이들의 삶을 진솔하게 담아낸 작품이지만, 일각에서는 그저 '게이 하키 쇼'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하지만 리드는 개의치 않는다고 했다.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각종 행사와 시청 파티(단체 시청), 팬들의 열광적인 반응 등 이 작품을 둘러싼 여러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드라마가 사람들의 기분과 분위기 등을 가늠하는 좋은 기준이기 때문이죠."

"만약 이 드라마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여러 사안에서 올바른 편에 서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드라마 속 두 주인공이 정장 차림으로 서로 머리를 맞댄 장면

사진 출처, PA Media

사진 설명, '히티드 라이벌리'는 라이벌 관계의 아이스하키 스타인 셰인 홀랜더와 일리야 로자노프의 이야기를 그린다

해당 드라마의 영국 공개일이었던 올해 1월 초 저녁, 술집을 가득 메운 시청 파티 참가자들은 첫 회 시작을 기다리며 숨을 죽였다.

캐나다 출신 신예 선수 셰인 홀랜더(허드슨 윌리엄스 분)가 상의를 벗은 채 화면에 처음 등장하자 "쉿!" 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대부분 청년들로 구성된 팬들은 귀를 기울였다.

곧이어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셰인 옆, 텅 빈 탈의실 샤워실에 러시아 출신 선수 일리아 로자노프(코너 스토리 분)가 등장한 순간이었다. 카메라가 몸의 일부분을 훑는 이 두 남성은 알몸 상태였다.

그럼에도 시청자들은 8년간 공개적으로는 스포츠 선수로서 경쟁하면서도, 비밀리에 만남을 이어가고 은밀한 문자메시지도 주고받으며 서서히 타오르게 된 두 주인공의 관계를 보여주는 장치는 바로 섹스라고 강조했다.

펍 내부의 알라나 찰튼, 케이티 커런, 매디슨 골런, 베단 스미스

사진 출처, Jonathan Phang

사진 설명, 시청 파티에 참가한 베단 스미스(오른쪽 아래)는 두 남성의 로맨스 서사가 여성 팬들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다는 점은 절대 새삼스럽지 않다고 말한다

이 '웨스트 런던 퀴어 프로젝트' 행사 주최자 중 한 명인 조 레너드는 "처음에는 영화 '50가지 그림자' 같은 작품일 거라고 예상하고 시작했다"며 말을 꺼냈다.

이어 "초반 몇 화는 경외감을 느끼게 된다"면서 "하지만 마지막에는 눈물을 닦게 된다 … 정말 사랑스러운 이야기"라고 고백했다.

또 다른 팬인 알라나(21)는 "사람들은 드라마 '브리저튼'처럼 이성애자 간 성행위 장면이 다수 등장하는 작품에 대해서는 성적인 요소만을 부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이 드라마만 그저 성적인 이야기로 폄훼하냐. 무엇이 다르냐"고 지적했다.

남녀 비율이 거의 반반이었던 시청 파티 참가자 중 일부는 여성 시청자들이 이 드라마에 열광하는 현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

이 드라마의 제작자이자 연출가인 제이콥 티어니가 '와인 맘'이라 부르는 여성들의 이 같은 열정적인 반응을 두고, 레딧부터 틱톡에 이르기까지 온라인에서는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베단 스미스(26)는 "이성애자 여성을 포함해 여성들이 남성 동성애 소설에 관심을 두는 일이 새로운 현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말을 꺼냈다.

"이제 너무나도 주류가 되다 보니 일부 사람들이 '왜 여자들이 이걸 좋아하지?'라고 묻고 있는데, 그동안 도대체 어디 있었던 거냐고 묻고 싶습니다."

이러한 질문에 작가 리드는 의외로 간단한 답을 제시했다.

"분명히 이 책들은 탄탄한 여성 팬층을 갖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이야말로 로맨스 장르의, 전반적인 소설 시장의 핵심 소비층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드라마로도 제작되면서 훨씬 더 넓고 다양한 팬층을 얻게 됐습니다. 네, 이제는 남성 팬들도 많아진 거죠. 정말 짜릿한 일입니다."

펍에서 어깨동무를 한 케일렙과 알라나

사진 출처, Jonathan Phang

사진 설명, 케일럽과 알라나는 사람들이 이 드라마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긍정적인 사랑 이야기를 너무 쉽게 무시한다고 지적했다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특이해 보일 수 있지만, 로맨스와 스포츠의 결합은 이 자리에 모인 팬들에게는 완벽한 조합이다.

카일럽(23)은 '히티르 라이벌리'를 포함해 여러 '스포츠 로맨스' 소설을 읽었다면서 "F1 관련 로맨스 작품도 몇 권 읽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스포츠 로맨스'란 축구부터 복싱, 야구까지 스포츠 세계를 배경으로 한 로맨스 소설의 하위 장르를 말한다. 작가 대리인으로 일하는 사스키아 리치는 현재 이 장르는 "지난 4~5년간 눈덩이처럼 큰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리치는 "2020년대를 대표하는 로맨스 하위 장르로 꼽을 만하다"면서 '히티드 라이벌리'의 성공 또한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영국 웨일스 카디프에서 '러브 스토리 서점'을 운영하는 에이미 커밍스 역시 "틈새시장 속의 틈새시장"이지만, 관련 장르의 책들에 대한 "수요가 굉장히 높다"며 동의했다.

"첫 주문 도서는 클로이 월시의 럭비 로맨스 소설인 '바인딩 13'이었다"는 커밍스는 "첫날부터 고객들이 '히티드 라이벌리'를 꾸준히 찾는다"고 덧붙였다.

펍 안에서 다함께 화면을 바라보는 청년들의 모습

사진 출처, Jonathan Phang

사진 설명, 드라마 시청 파티에는 온라인 티켓 판매가 시작된 지 12시간 만에 약 100명이 몰렸다

하지만 리드의 소설에서 아이스하키는 단순한 배경 장치에 그치지 않는다. 평생 아이스하키 팬인 그는 스포츠계의 "만연한 여성혐오, 동성애 혐오, 폭력에 대한 내 감정을 풀어내고자" 소설을 쓰게 됐다고 말한다.

캐나다 방송사 CBC에 따르면 북아메리카의 내셔널하키리그(NHL) 현역 선수 가운데 공개적으로 동성애자임을 밝힌 사례는 아직 없다. 그리고 이 드라마를 통해 스포츠계 내 동성애자 대표성을 둘러싼 논의에도 다시 한번 불이 붙었다.

리드는 지난해 11월 말 미국과 캐나다에서 이 드라마가 처음 방영된 이후 NHL 측에서 연락은 없었으나, "여러 하키계 인사들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이다. 내게는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드라마 속 두 주인공이 함께 샤워하는 장면

사진 출처, Sabrina Lantos/HBO Max

사진 설명, 배우 코너 스토리(왼쪽)와 허드슨 윌리엄스가 출연한 이 드라마에는 수위 높은 장면이 다수 등장한다

캐나다 스트리밍 플랫폼 '크레이브'가 제작한 이 드라마를 통해 자연스럽게 작가의 소설 판매량도 증가했다. 2019년 처음 출간된 '히티드 라이벌리'를 포함해 리드의 여러 소설은 지난해 12월 초 뉴욕타임스 선정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그리고 지난주, 리드는 '홀라노프(셰인 홀랜더와 일리아 로자노프의 이름을 합침)' 이야기를 다룬 시리즈의 신작 소설인 '언라이벌드('경쟁자가 없는'이라는 뜻)'를 출간했다.

그의 다른 소설들은 오는 20일부터 영국에서는 처음 종이책으로 출간된다. 그동안 리드의 작품은 영국에서 전자책으로만 판매됐으며, 최근 아마존 베스트셀러 차트에도 진입했다.

영국의 최대 서점 체인인 '워터스톤스'는 새해 들어 이 시리즈 인쇄본의 일일 사전 주문량이 "일주일 새 약 700%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히티드 라이벌리'에 대한 주문이 대부분을 차지했다고 한다.

출판사 '하퍼콜린스'는 수요를 맞추고자 원래 계획에 없던 여러 차례 추가 인쇄도 했다고 전했다.

한편 리드는 자신의 소설을 통해 더 많은 긍정적인 성소수자 사랑 이야기가 탄생하길 바란다.

"행복한 결말로 끝나는, 성소수자들의 기쁨을 담은 작품이 거의 없습니다."

리드는 "굳이 주인공 중 하나를 죽이지 않고 결말을 내는 작품도 좋지 않겠냐"고 농담하며 "이는 멋진 변화일 것"이라고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