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간 성소수자 인권이 향상 혹은 후퇴한 국가는?

무지개색 깃발과 철조망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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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 오누르 에렘
    • 기자, BBC 월드 서비스

지난 2004년부터 100여 개국의 성소수자 커뮤니티는 매년 5월 17일을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로 정하고 기념하고 있다.

전 세계 성소수자들이 겪는 폭력과 차별에 대해 정책 입안자, 대중, 언론의 관심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과거 1990년 5월 17일 세계보건기구(WHO)가 동성애를 정신 장애 범주에서 제외하기로 한 날을 기념해 정해진 날짜다.

1948년부터 그전까지 동성애는 WHO는 ‘국제 질병 분류’에 속해 있었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전 세계 보건 기관들이 나서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기 시작했으며, 1973년 ‘미국 정신의학협회’가 마침내 정신 질환 목록에서 동성애를 삭제했다.

1977년 ‘게이 프라이드’에서 행진 중인 인권운동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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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동성애의 정신 질환 목록에서의 동성애 제외를 위해 성소수자 운동가들이 보여주는 “지칠 줄 모르는 활동”에 감사를 표한 바 있다

정신의학과 전문의의자 젠더 및 섹슈얼리티 분야 관련 연구로 여러 차례 수상한 바 있는 잭 드레셔 박사는 이에 대해 “의학이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낙인찍기에 공식적으로 참여하던 시기의 끝을 알리는 시작점”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그 이후로도 WHO가 동성애를 정신 질환으로 분류하지 않기까지는 거의 20년이 더 걸렸다.

전 세계적인 현황은?

WHO에 따르면 질환이나 질병을 분류하는 방식은 국가별 보건 체계와 지역사회의 이해 및 대응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아울러 과거 성전환 및 젠더 다양성 등이 질병으로 분류되면서 사회적 낙인이 됐으며, 잠재적으로 이들에 대한 관심을 막는 걸림돌이 됐다는 설명이다.

"예를 들어 개인이 의료 보험이 적용되는 성 정체성 확증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선 우선 정신질환자로 진단받아야 했습니다."

이후 여러 지역의 보건 당국이 동성애에 대한 입장을 바꿨으나, 여전히 동성애자, 양성애자, 성전환자 등을 향한 혐오가 반영된 성문화된 법률 및 공식적인 정책을 유지하는 국가들이 많다.

동성애가 불법인 곳을 표시한 지도

성소수자들의 인권 신장을 외치는 단체들로 구성된 국제 연합체인 ‘국제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 인터섹스 협회(ILGA)’는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나이지리아 등 여러 국가에서 여전히 동성애를 최대 사형에 처할 수 있는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ILGA에 따르면 동성애를 범죄 또는 사실상의 범죄로 간주하는 국가는 62개국에 이른다.

합의에 따른 동성 간 성행위를 범죄로 처벌하는 UN 회원국 수. . .

반면 동성 결혼을 인정하는 국가는 36개국에 불과하다는 게 ‘휴먼라이츠캠페인재단’의 설명이다. ‘휴먼라이츠캠페인재단’은 전 세계의 동성 결혼 현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BBC는 전 세계의 성소수자 인권 개선 현황을 모니터링하는 두 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HRW)’와 ILGA 지난 12개월간 성소수자 인권과 관련한 기록이 눈에 띄게 개선 혹은 악화한 국가가 있는지 물었다.

성소수자 인권이 후퇴한 지역

아프리카의 우간다 의회는 지난해 ‘반동성애 법’을 제정하며 동성애자를 범죄자로 규정했다. 해당 법에 따라 합의한 동성 간 성행위에 대해선 최대 사형까지 선고 가능하다. 게다가 성소수자 이슈를 둘러싼 언론의 자유와 시민운동 활동도 대폭 제한됐다.

동성애 반대 문구가 적힌 가운을 입은 우간다의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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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우간다의 한 국회의원이 의회 토론장에서 반동성애 구호가 적힌 가운을 입고 있다

ILGA는 우간다 내에서 해당 법규가 지속해서 적용돼 체포, 기소, 퇴거 등이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상당하다고 지적했다.

로이터 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우간다 출신 인권운동가인 클레어 비아루가바는 해당 법이 통과된 날에 대해 성소수자들과 모든 우간다 국민들에게 “매우 암울하고 슬픈 날”이라고 묘사했다고 한다.

비아루가바는 “오늘 우간다 대통령은 국가가 지지하는 동성애 혐오 및 성소수자 혐오를 합법화했다”고 비난했다.

해당 법 제정 이후 ‘세계은행(WB)’은 우간다에 대한 신규 대출을 중단했다.

우간다의 한 성소수자는 BBC 뉴스비트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조국을 떠나야만 했다고 호소했다.

20대 여성인 다이앤(가명)은 여자친구와 자신은 구타당했으며, 이후 위험에 처한 전 세계 성소수자인들의 탈출을 돕는 단체인 ‘트랜스 레스큐’의 도움을 받아 케냐로 도망쳤다고 털어놨다.

다이앤은 “내가 아는 모든 것을 뒤로한 채 빈손으로 도망쳐 다시 시작한다는 건 두려운 일”이라면서도 “우간다 사회에 무언가 악한 게 들어왔다. 우리는 공격당했고 안전하지 않았다. 우간다는 안전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쿠알라룸푸르에서 행진 중인 동성애 옹호 운동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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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지난해 ‘여성의 날’을 맞아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행진에서 성소수자들의 인권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시민 운동가들

ILGA에 따르면 말레이시아는 동성애가 불법으로, 동성애자들이 채찍질이나 최대 3년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는 국가다. 게다가 국가에서 나서 성소수자들을 “전환”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동남아시아의 성소수자 단체들은 지난해 3월 공동 성명을 통해 이러한 점을 비난하는 한편,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ASEAN)’회원국에 성소수자 전환 치료 및 관련 관행을 중지 및 금지하라고 촉구했다.

ILGA는 “[말레이시아에선] 연방 법 차원으로 동성애를 범죄로 규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주 차원에서도 샤리아법을 통해 합의한 동성 간 성행위 및 다양한 젠더 표현을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면서 “이와 관련해 체포, 기소 등이 이뤄지고 있다는 문서 증거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말레이시아 정부는 영국의 가수 매티 힐리가 자국의 반동성애 정책을 비난하자 음악 페스티벌 일정을 전격 취소한 바 있다.

러시아 대법원의 올레그 네페도프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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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러시아 대법원의 올레그 네페도프 판사가 “국제적인 성소수자 운동”을 극단주의로 규정하고, 관련 활동을 금지하라는 법무부의 요청에 대한 결정문을 낭독하고 있다

한편 ILGA에 따르면 러시아는 합의한 동성 간 성행위를 명시적으로 범죄로 규정하고 있진 않지만, 정부가 성 소수자들을 대상으로 세계에서 손꼽을 정도로 억압적인 법적 체계를 마련한 국가다.

지난해 11월 러시아 대법원은 소위 “국제적인 성 소수자 대중 운동”을 극단주의 활동으로 규정하는 한편, 이를 전국적으로 금지했다. 무지개색 깃발도 금지됐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의 동성애자 정치인인 세르게이 트로신은 BBC 러시아어 뉴스의 스티브 로젠버그 에디터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 성소수자들은 패닉에 휩싸였다. 사람들은 긴급히 외국으로 이주하고 있다. 우리끼리는 ‘대피’라는 용어를 사용한다”면서 “우리는 우리 나라에서 대피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끔찍하다”고 토로했다.

HRW에 따르면 러시아에선 이미 해당 법령을 근거로 극단주의 혐의에 대한 유죄판결이 내려진 사례가 존재한다고 한다.

성소수자 인권이 향상된 지역

이렇듯 성소수자 인권이 크게 후퇴한 지역도 있지만, 크게 향상된 국가도 있다.

ILGA는 동성 연인이 더욱 보호받을 수 있게 된 국가 중 하나로 일본을 꼽았다.

2022년 일본의 법원 앞에 모인 시민운동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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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2022년 법원 앞에서 동성 결혼 합법화를 외치는 일본 운동가들

일본엔 동성 간 결합에 대한 국가적인 법률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방 행정기관 수백 곳에선 이미 ‘파트너십 증명서’를 통해 동성 커플의 등록을 인정하는 제도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올해 일본 지방법원에서 내린 판결 2건은 동성 결혼 합법화 추진에 더욱 힘을 실어줬다.

아울러 성전환자의 권리와 관련해선 일본 대법원이 법적 성별 전환의 요건으로 불임수술을 요구하는 법률은 위헌이라는 판단을 내놓았다.

아울러 HRW는 카리브해의 이웃국인 앤티가 바부다, 세인트키츠 네비스, 바베이도스에 이어 올해 4월 합의한 동성 간 관계를 비범죄화한 도미니카에 주목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카리브해 5개국에선 ‘동성 간 성행위’ 혹은 ‘외설’과 관련된 법이 있다고 지적했다.

상원의원과 대화 중인 태국의 성소수자 운동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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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동성 결혼 합법화 의회 투표를 앞두고 태국의 성소수자 운동가들은 상원의원을 만났다

한편 올해 태국은 하원에서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는 법안이 통과되면서 큰 성과를 이뤘다.

아직 상원 및 왕실의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올해 말까진 법제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될 경우 태국은 동남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동성 간 결합을 인정하는 국가가 된다.

야당인 ‘무브 포워드’ 당 소속의 동성애자 의원인 툰야와즈 카몰웡왓은 “나는 오늘 평등이 실현됐다고 느낀다. 태국 의회가 성소수자들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역사적인 날”이라고 평가했다.

‘게이 게임’(성소수자를 위한 국제 종합 경기 대회)에서 한 남성이 홍콩기를 들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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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지난해 홍콩은 아시아 최초로 성소수자들을 위한 국제 스포츠 행사인 ‘게이 게임’ 개최지로 선정됐다

중국 홍콩 특별행정구에서도 동성 간 결합과 관련해 법적 진전을 이뤘다.

홍콩 최고법원이 지난해 9월, 홍콩 행정부에 2년의 기한을 주며 동성 결합을 인정할 법적 틀을 마련하라고 명령한 것이다.

이에 따라 남편과의 결혼을 공식적으로 인정해 달라며 소송을 제기한 홍콩의 민주화 운동가 지미 샴의 상고는 부분적인 승리로 평가된다.

상고인의 요청은 기각하면서도 행정부가 이에 대한 적극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한편 그리스는 올해 2월 기독교 정교회가 다수인 국가 중 최초로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고 동성 커플의 입양도 합법화했다.

지난해 6월 에스토니아 의회 또한 동성 결혼 합법화를 통과시켰으며, 해당 법은 올해 1월 1일부터 법이 시행 중이다. 이로써 에스토니아는 구소련 국가로는 처음으로 동성 결혼을 합법화한 국가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