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전쟁: 러시아 점령지에 사는 우크라 주민들

사진 출처, Reuters
- 기자, 올레샤 게라시멘코, 아나스타샤 소로카
- 기자, BBC News 러시아
많은 우크라이나 남부 지역이 현재 러시아의 손에 들어갔다. 러시아 점령지 중에서도 멜리토폴과 헤르손이 대표적인 지역이다. 러시아군이 점령한 지 몇 주가 지냈음에도 여전히 지역 주민들은 저항을 이어 나가고 있다.
BBC는 이 두 지역 주민들에게 러시아 점령지에서의 삶은 어떤지 물었다.
멜리토폴은 인구 약 15만의 비교적 작은 도시다. 멜리토폴 주민들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군이 제대로 싸우지 않고 떠났으며, 합병된 크림반도에서 러시아군이 밀고 들어왔다고 말했다. 크림반도는 멜리토폴에서 남서쪽으로 250km 떨어져 있다.
한 여성은 마리우폴과 체르니히우에서 벌어지는 일을 생각한다면 "아마 (우크라이나 군이 멜리토폴에서 물러난 것은) 옳은 일이었을지도 모른다"라고 말했다. 마리우폴과 체르니히우는 지난 몇 주간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며 엄청난 포격이 가해진 곳으로, 수많은 민간인이 사망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면서도 씁쓸한 목소리로 "하지만 그러면서 우리 멜리토폴 주민들은 괴물에 의해 갈기갈기 찢기도록 버려진 것 같았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헤르손은 멜리토폴의 거의 2배 크기로 인구는 약 29만 명이다. 이 지역 기자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개전 초기 몇 시간 만에 헤르손이 러시아군 손에 넘어갔다고 말했다.
당시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군의 별다른 저항 없이 헤르손으로 진격했다. 칼라시니코프 소총과 화염병이 전부인 소수의 지역 방위군만이 반격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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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자는 "러시아군은 탱크와 장갑차를 타고 밀고 들어왔다. 지역 방위군에게 항복을 요구하는 대신 이들을 향해 기관총을 발사했다"라면서 "러시아군은 시신을 수습하지 못하게 했다. 모두들 시신을 보고 겁에 질리길 바랐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BBC가 인터뷰한 다른 헤르손 주민 5명 또한 해당 증언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러시아 국방부는 헤르손 점령 당시 방위군을 향해 발포한 사실이 없다며 부인했다.
헤르손 주민들은 러시아군 당도 첫 24시간 동안 총격이 계속 이어졌다고 전했다. "집에 머물렀지만 집, 나무, 자동차 등에 무차별적으로 가해지는 총격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라는 증언도 있었다.
다음 날에는 러시아 군인들이 헤르손 지역 TV 방송국에 나타나 관계자들에게 러시아 채널을 방영할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러시아군이 몇 가지 기본 규칙을 도입했다고 말한 주민도 있었다. 그러면서 이 주민은 "저들은 주민들에게 우크라이나 국기가 내려가는 일은 없을 것이며 '이러한 규칙을 지키는 한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라고 설명했다.
"우리는 러시아군의 검문에 협조해야만 했습니다. 우리의 SNS 포스팅과 개인 문자 메시지 등 휴대전화를 검사했어요."
그리고 만약 군인들이 수색 중 '마음에 들지 않는' 내용을 발견하면 휴대전화를 압수해갔다고 한다.
이후 헤르손 주민들은 반러 운동을 개시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저항에 처음엔 러시아 군인들이 놀랐으며, 심지어 무서워하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한 여성은 "군인과 장갑차가 중앙 광장으로 밀고 들어가더니 시위대를 뒤로 밀치려고 했다. 그러나 시민들은 두려워하지 않았고, 러시아 군인들은 이에 혼란스러워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멜리토폴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이곳 러시아군은 저항 운동이 일어나자마자 시위대를 구타하고 가뒀다고 한다.
멜리토폴의 한 주민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시위를 조직해 러시아군의 표적이 된 인물들이 서서히 실종됐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매일 시위했습니다. 그러나 점차 러시아군은 더 많은 사람을 잡아 가두며 이들을 심하게 구타했습니다."
이반 페도로프 멜리토폴 시장이 러시아군에 납치되면서 지난 11일 멜리토폴에서는 가장 큰 규모의 시위가 열렸다.
이후 14일에 벌어진 시위도 규모가 꽤 컸지만 11일 자 시위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고 한다. 이날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에 따르면 러시아 군인들이 중앙광장에 장갑차를 들여왔으며 백 명이 넘는 군인들이 광장을 포위했다고 전했다.
또한 소총을 든 저격수 또한 현장에 있었다고 했다.
시위에 참여했다는 한 여성은 러시아군이 시위대를 괴롭혔으며 시위대의 신분증을 빼앗아 갔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러시아군이 "너희 여권은 이제 쓸모없는 종잇조각"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헤르손에서도 결국 러시아군이 대응을 시작했다.
헤르손의 어떤 주민은 "시위대 옆을 차로 지나가면서 시위대가 부르는 우크라이나 노랫소리가 묻히도록 더 시끄러운 음악을 틀었다. 혹은 우리를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모욕하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지난 21일 열린 반러시아 시위에서는 긴장이 고조됐다. 러시아군은 시위대를 향해 발포했고 민간인 1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한다. 그 후 인터넷 연결 상태가 나빠졌다는 것이 주민들의 주장이다.
BBC는 해당 헤르손 총격 사건에 대해 러시아 국방부에 문의했으나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 러시아 당국 또한 관련하여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멜리토폴 주민들은 훨씬 더 가혹한 폭력 사태가 있었다고 말했다.
멜리토폴의 한 여성은 청색과 노란색으로 된 우크라이나 깃발로 러시아군을 감싸려던 10대 연인을 러시아군이 데려가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한다.
"17살도 채 돼 보이지 않는 어린 연인이었어요. 저는 러시아 군인에게 '여기서 뭐 하는 거냐. 어린애들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젊은 남성이 '우크라이나에 영광을!'이라고 외치자 러시아군은 '여기는 러시아다'라고 소리치며 그 청년을 구타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 청년이 들고 있던 국기를 주워 제 몸에 둘렀습니다.
이 여성은 러시아 군인들이 위협했지만, 국기를 내놓지 않았다고 말했다.
"러시아군은 저를 겁주려고 했습니다.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할 줄 아냐고 말했어요. 그러나 저는 '신경 쓰지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3월 16일, 멜리토폴 시장은 우크라이나에 포로로 잡힌 러시아 군인 9명과 교환되면서 풀려났다.
이후 반러 시위는 더욱 불가능에 가까워졌다고 한다.
멜리토폴의 또 다른 한 여성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 모스크바에서의 삶이 바로 이렇지 않을까 싶다"라면서 "어디든 모이려고만 하면 군인들이 대거 몰려와 해산시킨다"라고 말했다.
멜리토폴 주민들은 공동체 의식을 유지하기 위해 화상 회의 플랫폼 줌에 모여 시위를 조직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진 출처, Reuters
한편 헤르손에서는 러시아 군이 우크라이나 경찰, 지역 방위 대원, 언론인, 시민운동가들의 집을 상대로 기습 수색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문을 부수고 강제로 침입하는 등 수색은 때론 폭력적이었다고 한다. 러시아군의 수색으로 화장실 세면대와 변기가 깨졌다는 주장도 있었다.
한 지역 주민은 러시아어 사용자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러시아군은 헤르손을 쉽게 점령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헤르손 주민들이 러시아를 지지한다고 선전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다릅니다."
러시아군은 식량 포대를 나눠주며 지역 민심을 얻으려고 했다고 한다. 지역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노숙자나 최저소득층 등 일부는 식량을 받았다고 한다.
"사람들이 식량을 받는 모습을 러시아 군인들이 촬영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들에게 카메라 앞에서 감사하다는 식으로 말하길 요구했습니다."
헤르손에서 우크라이나가 내 다른 지역으로 넘어가는 것은 현재 불가능하다. 그러나 러시아군은 러시아가 합병한 크림반도로는 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헤르손 지역 주민들은 러시아의 점령은 그리 길게 가지 않을 것이며 우크라이나군이 곧 헤르손을 탈환할 것이라고 자신감 있는 모습을 내비쳤다.
한 주민은 "주민들은 전투가 매우 치열하진 않을지, 러시아군이 헤르손으로 들어오는 모든 도로에 지뢰를 설치하진 않을지 우려하고 있다. 남부 도시 미콜라이우 주변에서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는 현재 숨어있고 이 괴상한 점령을 끝내기 위해 뭐든지 견딜 용의가 있다"라고 말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내 민간인 거주 지역에 광범위하게 지뢰를 설치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멜리토폴에서도 비슷한 저항의 움직임을 포착할 수 있었다.
멜리토폴의 한 여성은 증조할머니가 1920년대 볼셰비키당에 의해 부농 계층을 의미하는 '쿨라크'로 몰려 추방될 뻔했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방앗간과 집을 불태우고 헛간에 살았습니다. 단순히 고향 땅에 머물기 위해서 말이죠. 저도 똑같이 할 수 있습니다. 아무 데도 가지 않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