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환율 관찰 대상국'에 한국 재지정…그 의미는?

한국의 오만원권과 만원권 지폐 위로 미국의 백달러 지폐 뭉치가 올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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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 김효정
    • 기자, BBC 코리아

미국이 한국을 다시 환율 관찰 대상국으로 지정했다. 미국 정부가 공식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환율 정책과 외환시장 상황을 점검 대상에 두고 있음을 재확인한 조치로 풀이된다.

29일(현지시간) 미국 재무부는 연방 의회에 제출한 '주요 교역 상대국의 거시경제 및 환율 정책' 반기 보고서에서 통화 관행과 거시 정책에서 신중한 주의가 필요하다며 한국을 비롯해 중국, 일본, 대만, 태국, 싱가포르, 베트남, 독일, 아일랜드, 스위스 등 10개국을 환율 관찰 대상국 명단에 올렸다고 밝혔다.

태국은 이번 보고서에서 새롭게 관찰 대상국으로 지정됐고, 나머지 9개국은 기존 지위가 유지됐다.

'환율 관찰 대상국'이란

'환율 관찰 대상국'은 미국이 자국과 교역 규모가 큰 국가 가운데 환율 정책과 외환시장 상황을 정기적으로 점검하겠다고 분류한 국가다. 특정 국가가 통화를 조작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은 아니지만, 환율과 무역 구조의 불균형을 지속적으로 살펴보겠다는 뜻이다.

미국은 2015년 제정된 무역 촉진법에 따라 자국과 교역 규모가 큰 상위 20개국의 환율과 거시경제 정책을 반기마다 평가한다.

평가 기준은 대미 무역흑자 150억달러(약 21조6150억원) 이상, 경상수지 흑자 국내총생산(GDP) 대비 3% 이상, 최근 12개월 중 최소 8개월 이상 달러를 순매수하고 그 규모가 GDP의 2% 이상 등 세 가지다. 이 가운데 두 가지 이상에 해당하면 '환율 관찰 대상국'으로 분류되며, 세 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할 경우 보다 강한 단계인 '환율 심층 분석국'으로 지정된다.

한국은 2016년 4월 이후 환율 관찰 대상국에 포함돼 있다가, 약 7년 만인 2023년 11월 한 차례 명단에서 제외된 바 있다. 당시에는 글로벌 경기 둔화와 반도체 업황 부진 등의 영향으로 수출이 위축되면서 경상수지 흑자와 대미 무역흑자 규모가 모두 줄어들었고, 이로 인해 미국의 관찰 대상국 지정 요건에서 벗어났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2024년 들어 반도체 수출 회복 등을 계기로 경상수지와 대미 무역흑자가 다시 확대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이에 따라 한국은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전인 2024년 11월 환율 관찰 대상국에 재포함됐으며, 이후 2025년 6월과 이번 보고서까지 포함돼 세 번째로 환율 관찰 대상국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은 왜 다시 포함됐나

이번 평가에서 한국은 대미 무역흑자와 경상수지 흑자 두 가지 기준에 해당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는 2025년 6월까지 4개 분기 동안 GDP 대비 5.9%로 전년 동기(4.3%)보다 크게 늘었다. 이는 코로나19 이전 5년 평균 5.2%도 웃도는 수준이다. 미 재무부는 이러한 경상수지 흑자가 반도체를 포함한 기술 관련 제품 중심의 상품 무역에 의해 대부분 설명된다고 밝혔다.

한국의 대미 상품·서비스 무역흑자 규모는 520억달러(약 74조9268억원)로 집계됐다. 이는 팬데믹 이전 최고치였던 2016년 기록 180억달러(25조9452억원)의 두 배를 넘는 수치다. 다만 외환시장 개입 여부와 관련한 달러 순매수 기준에는 해당하지 않았다고 미 재무부는 설명했다.

이번 보고서에서는 한국 외에도 중국과 일본, 대만 등 아시아 주요 국가들이 함께 환율 관찰 대상국으로 지정됐다. 이들 국가는 미국과의 교역 규모가 크고, 경상수지 흑자가 지속되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번 보고서에서 심층분석국으로 지정된 국가는 없었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보고서를 통해 "재무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 무역 정책'을 지원하기 위해 무역 상대국들이 외환 개입과 비시장적 정책 및 관행을 통해 통화를 조작해 무역에서 불공정한 경쟁 우위를 점하고 있는지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 재무부는 한국의 환율 흐름에 대해서도 평가를 내놨다. 재무부는 보고서에서 "2024년 4분기에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와 국내 정치적 불안이 맞물리면서 원화에 강한 약세 압력이 가해졌다"고 밝혔다. 이어 "2025년 말까지 이어진 원화의 추가적인 약세는 한국의 강력한 경제 기초여건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다만 한국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에 대해서는 비교적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재무부는 "한국 당국은 급격한 절하와 절상 압력 모두에 대응하기 위해 시장에 개입해 왔다"며 "과거 원화 강세를 억제하기 위해 일관되게 개입하던 패턴에서 벗어나 최근에는 원화 약세 국면에도 대응하는 대칭적인 개입 패턴으로 전환한 점은 환영할 만하다"고 밝혔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 안경을 낀 정장차림의 남성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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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무역 상대국들이 외환 개입과 비시장적 정책 및 관행을 통해 무역에서 불공정한 경쟁 우위를 점하고 있는지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의 의미를 제한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숙명여대 경제학부 강인수 교수는 "환율 관찰 대상국 지정은 이미 여러 차례 반복돼 온 사안으로, 이를 계기로 한국의 상황이 새롭게 악화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에도 한국이 외환시장에 개입해 통화를 인위적으로 약세로 만들었다는 문제 제기는 없었다"며 "최근 외환당국의 개입 역시 원화 약세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원화 가치가 지나치게 낮아진 상황에서 변동성을 완화하려는 목적이었다는 점이 보고서에도 반영돼 있다"고 설명했다.

시장에서는 이번 환율 관찰 대상국 유지 결정이 단기적으로 원·달러 환율에 큰 충격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미국 정부가 공식 보고서를 통해 원화 약세가 한국의 경제 기초여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인식을 거듭 드러낸 점은 향후 환율 흐름을 가늠하는 하나의 기준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강 교수는 "보고서에서 원화가 경제 기초여건에 비해 약하다는 점이 언급된 만큼, 단기적으로는 원화가 다소 강세로 조정될 가능성도 있다"며 "다만 이번 조치 하나만으로 원·달러 환율 흐름이 크게 바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30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430원대 초반에서 비교적 안정적인 흐름을 보였다. 이번 조치는 즉각적인 환율 변동보다는 향후 환율 방향과 정책 환경을 가늠할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편, 한국 정부는 이번 결정이 평가 기준에 따른 절차적 판단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외환 당국이 미 재무부와 긴밀히 소통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소통을 지속할 계획"이라며 "이번 재지정은 정해진 평가 기준에 따라 기계적으로 이뤄진 결정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