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에서의 한 달: '모든 일상이 사라졌다'

- 기자, 사라 레인스포드
- 기자, BBC 동유럽 특파원
포격이 없는 도시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집을 파괴하는 그 어떤 러시아 미사일도, 속이 너덜거리게 뒤집히며 힘이 쭉 빠지게 만드는 공습 경보음도 들리지 않는 곳이다.
우크라이나 사람들도 이 같은 말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지난 한 달 동안 우크라이나 취재를 마친 후 떠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우크라이나는 언제 끝날지 알 수조차 없는 잔혹한 공격을 받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어떤 짓을 벌일 수 있는 인물인지 몰랐던 건 아니었다. 나는 지난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과 친러 분리주의자들과 러시아의 선전 선동으로 촉발된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서의 전쟁에 대해 취재한 경험이 있다.
또한 러시아에 대해서도 수년간 보도했었다. 야당 인사 암살 및 음독 사건, 체첸과 조지아에서의 전쟁, 2004년 베슬란 학교 인질 사건과 같은 끔찍한 일들을 취재하고 보도했다. 그러다 지난여름 "안보 위협"으로 지목돼 러시아에서 추방됐다.
그럼에도, 푸틴 대통령이 설마 우크라이나를 향해 전면전을 선포하진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지난달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로 건너갔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런 나의 확신은 터무니없고, 비이성적이고 형편없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당시 내가 만난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들 모두 나와 비슷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난 2월 24일 우리 모두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듯 울리는 폭격음에 나는 잠에서 깼다.

전쟁이 발발하자 15세 소녀 니카는 너무 무서워서 피아노 앞에 앉아 가능한 한 큰 소리로 연주했다고 한다. 소리도 있는 힘껏 질렀었다고 했다. 이 소녀는 포격 소리를 견딜 수 없어 했다.
니카는 우크라이나 제2 도시 하르키우 출신이다. 그러나 내가 니카를 만난 곳은 어느 작은 마을의 모텔이었다. 이곳에는 살던 곳에서 도망쳐 러시아 전투기에 발각될까 두려워 어둠 속에서 지내는 가족들로 가득 차 있었다.
모텔에 도착했을 때 접객원은 서둘러 구내식당으로 데려가더니 어서 빨리 먹으라고 재촉했다. 식당 직원이 통금 시간 전에 퇴근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해가 떨어진 후 외출하면 총살당할 위험이 있다고 했다.

니카는 내게 "전등을 켜지 말고 뜨거운 물을 너무 많이 사용하지 말라"고 알려줬다. 가장 가까운 공습 대피소가 어딘지 물었을 때 니카는 부엌 뒤 어딘가를 가리켰다.
니카는 이 모텔에 머무른 지 며칠이 됐지만 잠들 수 있었던 밤은 거의 없었다고 했다. 이 10대 소녀는 매일 아침 "신이시여, 제가 살아있어서 감사합니다"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니카는 영어를 할 줄 알았다. 이 소녀의 직설적인 어법은 사람의 마음을 여는 힘이 있었다.
니카는 전쟁 첫 주에 이모의 지하실에서 보낸 생활이 어땠는지 들려주며 "목숨이 위태로워 숨을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패닉 상태였다"라고 말했다.
"지하실은 춥고 작았어요. 먹을 것도 많지 않았습니다. 정말 정신적으로 힘든 시간이었어요. 이제 저는 모든 소리에 놀랍고 겁에 질립니다. 누군가 박수 친다면 울지도 몰라요. 모든 소리에 몸이 떨립니다."
손전등 불빛에 의지해 니카는 휴대전화에 저장된 사진들을 넘기며 보고 있었다. 전쟁 전의 모습들이었다. 친구들과 웃으며 포즈를 취하며 공원과 집에서 찍은 사진들이었다.
니카는 "우리는 정말 되돌아가고 싶을 뿐"이라면서 "가족이 내일은 살아있을지 알고 싶을 뿐이다. 평화를 원한다"라고 말했다.

니카의 고향인 우크라이나 북동부의 하르키우는 러시아에서 불과 40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다. 하르키우 주민 대부분이 우크라이나어 대신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며, 러시아에 친구나 친척을 둔 사람도 상당히 많다.
아마도 이런 이유로 푸틴 대통령은 자신의 군대가 하르키우나 마리우폴, 수미, 헤르손 등 러시아와 가까운 지역에 쳐들어가면 이 도시들을 쉽게 점령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푸틴은 분위기를 읽지 못했다.

러시아가 지난 2014년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서 부채질한 전쟁은 이미 우크라이나 내부 분위기를 바꿔놓았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심지어 러시아어 사용자들마저도 이젠 훨씬 더 강력한 국가 정체성을 정립했다.
그리고 전쟁이 발발해 공공연한 침공이 계속되면서 조금이라도 남아있던 "형제 같은" 관계는 모두 잿더미가 됐다. 이번 전쟁은 푸틴이 구하겠다고 호언장담한 바로 그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다.
이런 상황으로 이제는 검문소와 참호로 뒤덮인 밀밭을 가로질러 갈 때면 러시아 혹은 푸틴 대통령에게 "꺼져"라고 적힌 거대한 광고판 수십 개를 볼 수 있었다.
러시아 군인들을 향한 직접적인 글귀가 적혀 있는 것도 있었다. 도로를 따라 늘어선 한 광고판에는 "네 가족을 생각하라"라는 문구가, 어떤 광고판에는 "항복하라. 그러면 살 수 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기도 했다.

전쟁 초기 3주 동안 나는 하르키우에서 남쪽으로 200km 떨어진 도시 드니프로에 머물렀다. 우크라이나를 세로로 관통하는 거대한 드네프르강이 지나가는 곳이다.
러시아군이 다른 도시에 항복을 종용하며 포격을 퍼붓는 동안 드니프로는 상대적으로 안전했다. 그러나 3월 11일 우리는 한밤중에 길게 울리는 공습 경보음에 잠에서 깼다. 도심에 공습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소리였다.
당시 드니프로 내 신발 공장이었던 건물의 잔해 옆에 서 있었다. 러시아군의 미사일이 떨어져 이곳 경비원으로 일하던 한 은퇴자가 목숨을 잃은 곳이었다. 그곳엔 아직도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근처 아파트 단지에서 복도로 쏟아진 유리 파편을 치우던 나타샤는 아들의 공포에 질린 비명을 묘사하며 무너졌다.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나타샤는 "저들은 왜 우리를 죽이는가"라며 울음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모국어가 러시아어인 나타샤는 러시아가 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지 알고 싶어 했다.
"우리는 구해달라고 요구한 적 없어요."
나타샤의 이 말은 이곳 우크라이나에서 계속 들어왔던 말이기도 했다.
그 무렵 이미 사람들은 드니프로를 떠나기 시작했다. 하르키우 중심부에 있는 한 대학 건물이 포격을 당하자 대규모 탈출 행렬이 시작됐다. 갑자기 아무도 안전하다고 느끼지 않게 된 것이다. 심지어 최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곳인데도 그랬다.
많은 사람들이 피난 열차로 몰려들었다. 비명을 지르는 여자들, 짓눌린 애완동물들, 그리고 가족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눈물로 얼룩진 남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아내와 아이가 탄 기차 밖에서 창문에 손바닥을 대며 "모든 게 괜찮아질 거야"라고 혼잣말로 되뇌는 한 남자도 있었다.
다른 모든 남자들처럼 그도 이곳에 남아서 군에 소집되길 기다려야 했다.

한편 폴리나라는 한 소녀에 관한 이야기를 전화로 알게 됐다. 하르키우에서 빠져나오는 건 더 힘들었다고 한다.
세 살짜리 소녀 폴리나는 암 환자였지만 약이 바닥나고 있었다고 했다. 폴리나 가족은 하르키우를 속히 빠져나와야만 했지만, 도시는 이미 러시아의 집중포화 세례를 받고 있었다. 폴리나의 부모는 감히 집 밖으로 나올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사진 출처, polinka_pobedimka
폴리나의 엄마 크세니야와 영상통화를 하고 있을 때 어린 폴리나가 불쑥 화면에 나타났다. 폴리나는 쿠션으로 가득 채운 욕조 안에서 놀고 있었다. 만약 건물이 포격 된다면 딸이 더 안전하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이었다.
하르키우를 포격은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폴리나의 부모는 용기를 내 마을을 가로질러 기차역으로의 위험한 질주를 시작했다.
며칠 후 크세니야는 폴란드 시골 마을에서 찍은 영상을 보내왔다. 폴리나는 이 가족을 받아준 어느 폴란드 주민의 집 정원에 있는 트램펄린 위에서 행복하게 뛰고 있었다.
크세니야는 폴란드 국경에서 봉사자들을 만났을 때 울음이 터졌다고 말했다.
"숨 막힌 4일이 지나고 갑자기 멈춰서자 너무 슬퍼졌다"라는 크세니야는 "아이들이 무사해서 다행이지만 우리의 삶 전체를 하르키우에 두고 왔다"라고 말했다.
"폴리나는 계속 아빠는 어디 있냐고 물어요. 딸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곧장 하르키우로 향했다. 나는 북쪽으로 향했지만, 옆에는 반대 방향으로 가는 차들이 6km나 늘어져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혹시나 자녀들을 보호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deti'라고 손으로 휘갈겨 쓴 표지판을 자동차 창문에 테이프로 붙여놓은 모습이었다. 'deti'는 러시아로 '아이들'을 뜻한다.
하르키브 주변의 검문소에서 폭발음이 들렸고 곧 파괴되는 모습을 볼 수밖에 없었다.

반쯤 날아간 아파트 건물과 무너진 상가 잔해 옆에선 사람들이 녹고 있는 눈 위에서 시내로 나가는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 시간표는 없었다. 소문만 있을 뿐이었다.
피트니스 강사라는 스비틀라나는 전날 자신의 아파트에서 50m 떨어진 곳에 미사일이 떨어지자 조금 더 머뭇거리다가 목숨을 잃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일주일간 잠을 자지 못했다"라는 스비틀라나는 떨고 있는 작은 개를 코트 안으로 껴안으며 "저들은 우리들의 집을 날려버리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와 대화를 나눌 때도 쿵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수천 명이 지하로 내려가고 있었다. 인근 지하철역의 계단, 기차 승강장, 지하철 안에는 사람들이 지내고 있었다. 자원봉사자들이 수프와 빵을 가져왔지만, 아기들을 포함한 사람들은 담요를 덮고 바닥에 웅크린 채 하루를 보냈다.
살아 있긴 하지만 정신이 멍한 상태로 불안정한 모습이었다. 전쟁은 이곳 시민들의 모든 일상을 정지시킨 듯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옆자리에는 키이우에서 도망쳐 딸이 머무는 런던으로 향하는 부부가 있었다. 우크라이나를 빠져나와 몰도바, 루마니아를 가로질러 도로로 이동할 수 밖에 없었던 이들은 몹시 지친 기색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들은 화가 난다고도 했다. 러시아어를 사용한다는 이 부부는 러시아에 사는 친척들에게 일어난 일을 설명했지만, 그들이 믿지 않으려고 했다고 했다.
니콜라이라는 이름의 남편은 친척에게 러시아군의 미사일로 파괴된 키이우 아파트 단지와 포위된 마리우폴의 모습과 그곳 주민들이 거리에서 굶주리며 살해당한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보냈다고 했다.
하지만 니콜라이의 사촌은 그 사진들이 조작됐다고 믿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 "나치" 정부를 비난하며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자살 폭탄 테러를 저지르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했다.
나는 반전 운동을 벌이다가 체포된 러시아인을 많이 안다. 다른 몇몇은 러시아를 떠나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비행기에 탑승하기 몇 시간 전, 나 또한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 모스크바 경기장을 가득 채운 대중 앞에 서서 연설하는 영상을 봤다. 영상 속 러시아 군중은 이번 전쟁의 상징이자 사악한 느낌을 주는 'Z'가 그려진 배지를 가슴에 달고 있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 화자들을 "집단 학살"로부터 "구해내기" 위해 파병된 러시아 군을 치하하는 모습이었다.
니카, 나타샤, 폴리나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리고 지난 2월 24일 나를 거칠게 잠에서 깨웠던 첫 폭발 이후 내가 목격한 모든 것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속이 울렁거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