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 위기에 처한 대리모와 부모들

우크라이나 키이우의 지하 탁아소에서 아기를 돌보는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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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던 날, 스베틀라나는 뉴스에 나오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그의 고향은 수도 키이우(키예프)에서 남쪽으로 80km 떨어진 구불구불한 강가에 위치한 역사적인 도시인 빌라 체르크바. 평온했던 이곳에 폭발이 시작됐다.

스베틀라나와 그의 남편은 아파트 복도에 매트리스를 끌고가 세 자녀와 함께 웅크리고 있었다. 사이렌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그들은 며칠 동안 잠을 잘 수 없었다.

수천 마일 떨어진 호주에서 엠마 미칼리프는 쉴새없이 스베틀라나와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스베틀라나가 엠마의 둘째 아이를 임신했기 때문에 두 여성은 각별한 사이다. 로켓이 빌라 체르크바에 떨어지자 엠마는 분노와 동시에 무력감을 느꼈다.

6개월 동안 두 엄마는 번역 어플리케이션을 사용해 대화를 주고받았다. 이들은 아이들의 사진을 공유하고, 아이들과 함께 음식을 굽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홈스쿨링의 스트레스에 대해 불평을 나누기도 했다.

그들은 이제 막 대피처를 옮기려고 하고 있었다.

엠마는 "암에 걸린다거나 치료를 받는 동안 아이를 갖는 것, 그리고 체외 수정을 계속 했음에도 효과가 없는 것 등이 스트레스였다"고 말했다.

엠마는 대리모 기관의 도움을 받아 우크라이나에 대리모를 둔 다른 두 부모들과 연락을 취했다. 그들은 몰도바 국경까지 18시간 동안 이동 중이던 세 명의 여성과 10명의 아이들을 태운 버스를 찾아냈다.

마침내 몰도바의 수도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작은 아파트에 머물게 됐다. 엠마는 침대가 충분하지 않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는 "임신한 스베틀라나가 바닥에서 자고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큰 충격에 빠진 스베틀라나는 그것조차 신경 쓸 겨룰이 없었다. 남편은 우크라이나에 남았고, 어머니는 독일로 피신했기 때문이다. 스베틀라나의 어머니는 전화를 걸면 눈물만 흘린다고 한다.

그는 "이 전쟁으로 가족이 헤어지게 돼 마음이 너무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저는 몰도바에서 안전하다고 느끼지만 제 마음은 우크라이나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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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에서는 매년 2000명 이상의 아이들이 대리모를 통해 태어나는데, 대부분의 부모는 해외 부부들이다. 우크라이나에는 약 50개의 대리모 관련 클리닉과 부부를 대리모와 연결해주는 많은 기관과 중개인이 있다.

우크라이나에선 대리모에 대한 법률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현지에서의 대리모는 인기 있는 옵션이다. 영국을 비롯한 많은 유럽 국가에서는 대리모가 출산할 때 출생 증명서에 어머니로 기재해야 한다. 대리모가 기혼인 경우 남편이 아기의 아버지로 등록된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에선 대리모를 요청한 부모가 어머니와 아버지로 기재된다. 즉, 아기에게 여권을 발급하고 집으로 데려오는 게 훨씬 간단한 것이다.

엠마와 스베틀라나가 사용하는 대리모 업체는 소규모로 현재 9명의 대리모를 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의 가장 큰 대리모 업체는 임신 단계에 따라 500명의 대리모를 보유하고 있다.

41명의 아기가 전쟁으로 인해 키이우(키예프)에 밝이 묶였다. 전 세계에서 부모가 될 예정이었던 부부들이 우크라이나에서 아기를 데려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군이 도시 외곽에 포격을 가하면서, 이 아이들 중 상당 수는 키이우의 지하 보육원에서 돌봄을 받고 있다.

매일 더 많은 아이들이 태어나지만, 러시아의 침공 이후 9쌍의 부모만이 아기를 데리러 키이우로 가는 위험을 감수했다. 다른 5쌍은 원격으로 아기를 데려올 준비를 했다. 대리모 관련 기관의 법률 고문인 데니스 허먼은 "가까운 장래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우리는 100명의 아기를 돌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는 아기들을 키이우에서 우크라이나 서부의 더 안전한 곳으로 옮길지 여부를 놓고 고심해왔다. 하지만 전쟁 지역으로 아기를 옮기는 것 역시 위험하다는 점에서 이 회사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발이 묶인 아기들로 인해 고민에 빠진 사람은 데니스 허먼뿐만이 아니다.

나스티아는 어린 두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하르키우에 집을 사기 위해 저축을 하고 있었고, 두 번째 대리 임신도 끝나가고 있었다. 전쟁이 시작됐을 때 그는 출산 예정일을 불과 몇 주 남겨놓은 상태였고, 며칠 후 진통이 시작됐다.

우크라이나 국토방위군 병사가 하르키우에서 불에 탄 러시아 차량을 둘러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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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병원 대피소에서 모든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하르키우는 폭격을 받았고, 병원의 지하실은 매트리스와 아기 침대로 가득 찼다.

나스티아는 두 자녀와 함께 창고에서 머물러야 했고, 파일과 서류가 쌓여 있는 선반 아래 바닥의 소파 쿠션에서 잠을 잤다.

그는 "하지만 의사들은 훌륭했고 저는 그들에게 매우 감사했다"고 전했다. 나스티아는 건강한 쌍둥이 아들을 낳았다.

일주일 후 세 명이 모두 병원에서 퇴원했다. 하르키우는 여전히 공격을 받고 있었고 해외 부모는 쌍둥이를 데리러 가기 위해 그곳으로 갈 수 없었다.

이에 따라 나스티아는 대행사 직원들과 새로 태어난 쌍둥이와 함께 우크라이나 전역을 떠돌아야 했다. 국경에서 아기들을 부모에게 데려다 주는 동안 나스티아는 아기들을 돌봤다.

일주일이 지났지만 나스티아는 그 이후로 그들로부터 어떤 소식도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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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는 가족을 떠올릴 때면 호주 캔버라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시드니에 있는 부모님 집으로 가는 드라이브를 생각하곤 한다. 차 뒷좌석에서 수다를 떠는 아이들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다.

5년 전 엠마는 아들을 임신했을 당시 자궁경부암 진단을 받았다. 종양은 임신 중에 생산한 호르몬의 영향으로 놀라운 속도로 커지고 있었다. 이는 흔치 않은 경우였고, 엠마의 아들이 태어났을 당시 의사들은 이를 돌보기 위해 분만실로 몰려들었다.

엠마는 "아기는 잘 태어났고 신생아 중환자실에 갈 필요가 없었다"며 "저는 매우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아기가 태어난 지 불과 5주가 지난 후, 엠마는 생식 기관을 손상시키는 강한 방사선 치료와 화학 요법을 받았다.

엠마는 "저는 29살에 조기 폐경에 들어갔는데 그래서 기뻐요"라며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암 진단을 받은 후 5년 동안 엠마는 매순간 둘째 아이를 임신하는 방법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엠마와 그녀의 남편은 비용이 많이 드는 13주기의 체외수정 과정을 거쳤지만, 배아 중 어느 것도 성공하진 못했다.

엠마와 그녀의 남편 알렉스는 이른바 '이타적 대리모'를 허용하는 호주에서 대리모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이들은 우크라이나의 선택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 망설였지만 좋은 경험을 했던 다른 호주인들의 말을 듣고 안심했다.

하지만 첫 번째 대리모에서 두 번의 임신 시도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엠마 부부는 더 큰 상실감을 느꼈다. 그리고 마침내 스베틀라나와 연락한 후 곧바로 임신을 했을 때, 모든 고난이 마침내 끝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리가 싸움을 끝낼 수 있어서 정말 안도했습니다. 우리 부부는 너무 오랫동안 싸우거나 기피한 상태였어요."

엠마 미칼리프, 알렉스 부부와 아들

사진 출처, Emma Micall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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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온 가족이 우크라이나로 여행을 떠날 계획이었다. 엠마는 스베틀라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딸에게 생모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출산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지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일부 대리모를 요청한 부모에게는 이번 전쟁이 대리모와의 관계를 더욱 가깝게 만들고 있다.

크리스틴(가명)은 침공 당일 잠에서 깨어났고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의 대리모는 우크라이나 남동부의 자포리자에 있었다. 며칠 후 러시아군이 이 지역의 원자력 발전소를 공격하면서 화제가 됐다.

대리모인 타티아나(가명)는 이날 여섯 살 난 아들과 함께 폴란드로 떠났다. 크리스틴은 타티아나의 용기를 극찬했다.

크리스틴이 타티아나에게 영국에 오는 데 관심이 있는지 물었다. 크리스틴은 타티아나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타티아나가 "다음 주에 올 수 있다"고 답했을 때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크리스틴은 "지난 며칠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고 말했다.

지난 1월 크리스틴과 그녀의 남편은 미숙아로 태어난 딸을 5주 만에 잃었다. 출산 중 남편은 크리스틴과 아기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크리스틴은 임신을 다시 시도하지 말라는 권고를 받았지만 다시 시도했고, 결국 유산했다. "이제는 슬픈건 물론 조급하기도 하고, 또 아기를 원했기 때문에 저희는 해외로 눈을 돌렸습니다."

부부는 지난 1월 타티아나가 임신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크리스틴은 "정말 너무나 좋았다"고 말했다.

최근 크리스틴은 폴란드로 날아갔고, 그곳에서 타티아나를 처음 만났다. 둘 다 긴장했지만 폴란드 의사가 첫 번째 검사 결과가 좋았다고 말했을 때, 그들은 안도했다.

이제 그들은 구글 번역을 사용해 서로를 알아가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그는 "어제 저희는 영적 믿음에 대해 토론했다"며 "그건 단지 임신에 관한 것뿐만이 아니다"고 말했다.

비자는 3년 동안 제공될 것이고, 크리스틴과 남편은 타티아나가 아기를 낳을 때까지 원하는 만큼 함께 머물도록 했다.

한 산모가 병원 지하실에서 출산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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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한 산모가 병원 지하실에서 출산을 기다리고 있다

영국에서는 대리모가 합법이지만 영국법에 따라 대리모의 이름은 크리스틴의 남편의 이름과 함께 출생 증명서에 기재해야 한다. 법적 부모는 타티아나에서 크리스틴으로 변경해야 한다.

아기가 제3국에서 태어난 경우 법적 문제가 훨씬 더 복잡해진다. 이에 따라 스베틀라나, 엠마, 알렉스는 딜레마에 빠졌다.

몰도바에서는 대리모가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기가 현지에서 태어나면 스베틀라나가 법적 보호자가 된다. 스베틀라나는 그 아기를 입양할 수 있지만 엠마와 알렉스가 자녀를 집으로 데려갈 수 있기까지는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

엠마는 "아기를 낳으려면 그녀를 전쟁터로 돌려보내야 한다"라고 말했다.

스베틀라나는 우크라이나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 복잡한 심경을 갖고 있다. 그는 "사방에서 총격이 일어나고 집이 잔해로 변하고, 러시아군이 산부인과 병원, 유치원, 학교를 포격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부부는 대리모가 국경과 가까운 도시에서 아기를 낳을 계획을 세웠고 스베틀라나도 이 계획을 받아들였다. 스베틀라나는 또 계엄령에 따라 우크라이나를 떠날 수없는 남편을 만나고 싶어한다.

스베틀라나가 우크라이나로 돌아가더라도, 아기의 출생 증명서가 발급되기 까지는 몇 주가 걸릴 수 있다.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엠마와 알렉스는 그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확신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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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베틀라나가 몰도바에 안전하게 도착한 직후, 엠마는 씁쓸한 안도감을 느꼈다.

엠마는 "스베틀라나가 맥도날드 소프트 아이스크림과 풍선을 들고 있는 막내딸의 사진을 보냈다"면서 "얼굴에 미소가 만연한 그 사진을 보고 저의 감정은 완전히 무너졌다"고 토로했다.

이 사진은 엠마에게 모든 아이들은 가족과 함께 안전하게 삶을 즐기고 있어야 한다 점을 상기시켜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