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우폴: 수백 명 숨어 있던 극장을 강타한 포탄… 한 여성의 생존기

우크라이나 내무부가 공개한 사진. 마리우폴의 한 극장 건물이 포격으로 파괴된 모습

사진 출처, Ukrainian interior ministry via Getty

사진 설명, 우크라이나 내무부가 공개한 사진. 마리우폴의 한 극장 건물이 포격으로 파괴된 모습
    • 기자, 휴고 바체가, 오리시아 히미악
    • 기자, BBC News, 리비우, 우크라이나

러시아군의 포격으로 우크라이나 동남부 항구 도시 마리우폴이 돌무더기로 변해가고 있을 무렵 대부분 여성과 아이들로 구성된 민간인 수백 명은 해안가 근처 극장 건물로 숨어들었다. 구소련 시대에 지어진 외관이 웅장한 건물이었다.

그러나 지난 16일(현지시간) 이곳에도 포탄이 날아들었다. 불과 몇 초 만에 극장 건물은 둘로 쪼개져 폐허로 변해버렸다. 아직 이곳에서 몇 명이 사망했는지 공식적으로 알려진 바는 없다.

그러나 BBC는 생존자들을 만나 이 극장 건물에 포탄이 떨어지는 순간에 대한 설명을 최초로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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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내내 러시아 전투기들이 마리우폴 상공을 선회하고 있었다.

교사인 마리아 로디오노바(27)는 강아지 2마리를 데리고 살던 9층짜리 아파트를 탈출해 열흘째 극장에서 생활하고 있었다고 했다. 건물 뒤편 강당 홀 내부의 무대 옆에 자리를 깔고 지냈다고 했다.

그날 아침 강아지들을 위해 야외 부엌에서 생선 부스러기를 가져왔지만, 강아지들이 물을 입에도 대지 않았다는 걸 발견했다. 그래서 아침 10시쯤 강아지들을 짐가방에 묶어두고, 정문에 가서 줄을 섰다. 뜨거운 물을 받기 위한 줄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포탄이 날아들었다.

큰 박수 소리같은, 귀가 찢어질 듯한 큰소리였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창문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고 했다.

적십자사에서 자원봉사 경험이 있던 로디오노바(27)는 부상자들을 치료하려고 했지만 할 수 없었다
사진 설명, 적십자사에서 자원봉사 경험이 있던 로디오노바(27)는 부상자들을 치료하려고 했지만 할 수 없었다

로디오노바 뒤에 서 있던 한 남성이 로디오노바를 벽으로 밀치고 자기 몸으로 가려 보호해줬다고 한다. 폭발음이 너무 커서 한 쪽 귀에 엄청난 고통이 몰려들었다고 했다. 고막이 찢어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고통이었다.

그러나 이내 고막이 찢어지지 않았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고 했다. 사람들의 비명이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비명은 사방에서 들려왔다.

폭발로 한 남성은 창문으로 던져졌다고 했다. 이내 바닥으로 쓰러진 이 남자의 얼굴엔 깨진 유리가 가득 박혀있었다. 머리를 다친 한 여성이 이 남성을 도우려고 애썼다.

마리우폴 내 우크라이나 적십자사에서 자원봉사 경험이 있던 로디오노바는 그 여성에게 그만하라고 소리치기 위해 정신을 가다듬었다고 했다.

5살 아이의 비명

"잠깐, 그를 만지지 말라"라고 말했다던 로디오노바는 구급상자를 가져와 그 남성과 여성을 도와주려 했던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로디오노바의 구급상자는 포격으로 무너진 바로 그 건물 부분에 있었다.

"돌무더기로 변해버린 건물 잔해뿐이었습니다. 들어가는 건 불가능했어요.

두 시간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냥 그렇게 있었어요. 충격에 휩싸인 채로 말입니다."

자물쇠 수리공이라는 블라디슬라브(27)도 그날 아침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서성거렸다고 했다. 그 건물 안에는 친구들이 남아있어 그들을 찾으려고 애썼다. 블라디슬라브 또한 포격 당시 정문 근처에 있었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지하로 뛰어 들어갔지만, 10분 뒤 건물이 화염에 휩싸이며 이내 아수라장이 됐다고 했다.

"끔찍한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었다고 했다. 내부가 훤히 보일 만큼 심각한 골절상을 입은 이도 있었다.

"어떤 여성은 잔해더미 밑에서 자녀들을 찾아다녔습니다. '죽고 싶지 않아요'라고 외치는 5살 아이의 비명이 들렸습니다.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BBC가 의뢰한 맥켄지 정보 분석 서비스의 분석에 따르면, 그날 극장 건물에 떨어진 미사일은 한 개일 가능성이 크다. 미사일 단 한 개가 모든 걸 이렇게 파괴한 것이다.

영국 런던의 맥켄지 정보 분석 서비스는 "미사일이 건물 중앙부를 정확히 타격한 것으로 보아 해당 미사일은 KAB-500L 또는 유사한 종류의, 폭격기에서 발사된 레이저 유도폭탄인 것으로 보인다"라고 분석했다.

레이저 유도 폭탄인 KAB-500L 제원

"폭발의 특징을 살펴볼 때, 즉시 폭발하는 도화선 형태였기 때문에 지상층을 뚫고 더 들어가진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타격의 정확성으로 미뤄 짐작해보건대 해당 극장 건물은 사전에 선택된 목표물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 위성 사진 기업 맥사르가 공개한 위성 사진에 따르면 공격 며칠 전 이 극장 건물 앞 잔디밭에는 '아이들'을 뜻하는 러시아어 단어가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다. 상공을 지나는 폭격기에서도 선명하게 볼 수 있는 글자였다.

러시아 측은 극장 건물에 대한 공격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내 다른 민간인 건물 포격 사실도 부인했다. 러시아군의 포격으로 파괴된 수많은 민간인 주택과 비군사 시설이 우크라이나 전역에 걸쳐 잘 기록되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마리우폴만큼 철저히 파괴된 곳도 없다.

한편 마리우폴 출신이자 전 국제투명성기구 우크라이나지부의 회장이었던 안드레이 마루소브 기자는 공격이 있기 이틀 전에 극장을 방문했었다고 했다. 마루소브는 "이곳이 여성과 어린이들이 몰려 있는 중심지였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라면서 "그 극장엔 민간인들만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러시아어로 '아이들'을 뜻하는 단어가 극장 앞뒤로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사진 출처, PA Media

사진 설명, 러시아어로 '아이들'을 뜻하는 단어가 극장 앞뒤로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폭발 당일 마루소브는 마리우폴을 조사하기 위해 아침 6시 자신이 사는 건물 꼭대기에 올라갔다고 했다. 여전히 러시아 전투기들은 윙윙 소리를 내며 돌고 있었다. 마루소브는 러시아 전투기들이 그날 오전 내내 그 극장이 있던 아조프해 연안을 향해 포격을 가했다고 말했다.

"도심은 화염에 휩싸였고 폭발은 지속됐습니다."

포탄으로 파괴된 극장 건물

사진 출처, Anadolu Agency / Getty Images

사진 설명, 포탄으로 파괴된 극장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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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디오노바 또한 그날 아침 극장 근처에서 군용기가 "원을 그리며" 날더니 "다른 곳에 폭탄을 투척했다"라고 기억했다. 그러나 그 지역을 비행하는 군용기를 발견한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라고 했다. 로디오노바는 군용기 소리에 이미 익숙하다고 했다.

이번 공격과 관련해 아직 대다수 세부 사항이 불분명한 채로 남아있다. 당시 극장에는 천여 명이 대피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시 당국과 같은 건물 다른 부분에 숨어있었던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일부는 건물 지하 방공호에 머물렀던 것으로 보인다. 로디오노바는 지상층 복도에도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고 기억했다.

BBC가 인터뷰한 사람들의 말에서 분명히 알 수 있는 한 가지는 사람들이 극장 건물과 복도 주변을 배회했으며 들어갔다 나오길 반복했다는 것이었다.

폭격 다음 날 마리우폴 시장은 극장 건물에서 130명이 구조됐다고 말했다. 추가로 전해진 소식에 따르면 생존자가 더 많을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로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절박한 상황으로 내몰린 마리우폴 내 극장에 머물렀던 사람이 정확히 몇 명이었는지, 그중 몇 명이 살아남았는지에 대해선 결코 알아내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로디오노바는 샹들리에가 달려있던 강당 홀 건물 안 무대 바로 옆에서 10일간 머물렀다고 했다. 데리고 있던 강아지들로 주변 사람들이 불편해했기 때문이었다.

로디오노바는 그 홀에만 대략 30명이 있었다면서 미사일이 날아들었을 때 이들이 모두 죽었을 것이라고 믿는 듯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그 순간 건물 밖에 있었던 건 순전히 행운이라고 말했다.

로디오노바는 강아지들을 찾을 수 없었다고 했다. "내게 강아지들은 그 어떤 것보다 더 소중했다"라는 로디오노바는 절망적인 심경을 토해냈다.

블라디슬라브처럼 로디오노바도 많은 사람들이 건물 밖으로 뛰쳐나오는 것을 봤다고 했다.

도시를 탈출하다

로디오노바는 "그중 몇 명은 짐가방을 들고 있었다"라면서 "무엇을 해야 할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여전히 그 지역에는 포탄이 떨어지고 있었다"라고 전했다.

극장 밖에 서서 로비오노바도 건물 잔해를 바라봤다고 했다. 그리고 또 다른 피난처를 찾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망연자실한 상태로 몇 시간을 그렇게 있다가 결국 현장을 떠났다고 밝혔다.

로디오노바는 도시를 탈출하는 차를 잡아 올라타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패닉에 빠져" 아무도 태워주지 않았다고 했다. 결국 로디오노바는 해변을 따라 무작정 남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도시를 벗어나야만 했거든요."

그렇게 로디오노바는 피슈찬카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만난 한 여성이 제게 괜찮은지 물어보더군요. 울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 여성은 차와 음식은 물론 하룻밤을 머물 곳도 내어 줬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로디오노바는 또다시 길을 떠나 멜레킨에 도착했다. 통행금지가 있기에 저녁 8시에는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 날엔 얄타에, 그다음 날엔 남부 소도시 베르디얀스크에 도착했다고 했다.

"저는 내내 걸어서 이동했습니다."

마리우폴에서는 전쟁의 최악의 순간이 펼쳐지고 있다. 러시아군은 도시를 포위했으며 거의 한 달 동안 공중과 육지를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포격을 이어 나가고 있다. 최근에는 바다에서도 공격이 날아들고 있다고 했다.

주민 약 30만 명이 이런 중세 시대 같은 포위에 발이 묶였다. 전기도, 가스도, 수돗물도 없는 채로 말이다.

로디오노바가 극장 건물로 가기 위해 아파트를 떠날 때 함께 살던 할머니는 같이 떠나길 거부했다고 한다. 할머니는 손녀에게 "이곳이 내 아파트다. 내 집은 이곳이다. 나는 이곳에서 죽을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로디오노바는 여전히 할머니의 생존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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