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호주 원주민에게 남긴 복잡다단한 유산

여왕으로부터 MBE 훈장을 받는 세드릭 제이콥스

사진 출처, Narelda Jacobs

사진 설명, 세드릭 제이콥스는 1981년 호주 원주민을 위해 힘쓴 공로를 인정받아 여왕으로부터 대영제국 단원 훈장(MBE)을 받았다
    • 기자, 티파니 턴불
    • 기자, BBC 뉴스, 시드니

호주에서 자란 나렐다 제이콥스의 어린 시절, 집에는 아버지 세드릭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함께한 사진이 자랑스레 걸려 있었다.

호주 원주민 방송을 진행하는 나렐다는 "어린 시절 나는 여왕을 동경하며 자랐다. '우와, 여왕님이잖아! 우리 아빠가 여왕님께 대영제국 단원 훈장(MBE)을 받고 있어!'라며 좋아했고, 항상 우러러봤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나렐다가 나이를 먹으면서 사진의 의미가 바뀌었다. 이제 나렐다는 사진 속에서 부족민의 자주권을 인정받기 위해 인생을 바친 한 남자와, 남자 앞에 선 지배자를 본다.

와적 눈가(Whadjuk Noongar) 원주민인 나렐다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아버지는 자주권을 인정받기를 고대하다 세상을 떠나셨다"라고 말했다.

많은 원주민과 토레스 해협의 섬 주민이 여왕 서거 후 복잡한 심경을 털어놓았다.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 이어져 온 공동체를 형성했으나, 식민주의로 큰 고통을 겪어야 했던 탓이다. 1770년 해군 대장 제임스 쿡이 상륙한 이래, 호주 원주민은 땅을 빼앗기기 시작했고 학살, 심각한 문화 충돌, 세대 간 트라우마가 이어졌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1954년 처음 호주를 방문했을 때, 원주민은 국민으로 취급되지 않았을뿐더러 백인 가정에 동화시킨다는 명목으로 어린 원주민 아이들에게서 가족을 빼앗았다. 호주를 방문해 둘러보는 여왕의 시야에서 호주 원주민의 모습을 열심히 지우기도 했다.

1954년 호주 방문 당시 군중에 손을 흔드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필립공

사진 출처, Getty Images

사진 설명, 호주 인구의 약 70%가 여왕의 첫 방문을 목격했다

그 후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호주 원주민은 다른 호주인에 비해 건강, 교육, 기타 정책 측면에서 확연히 불리한 상태로 남아 있다. 위라주리족(Wiradjuri) 학자 샌디 오설리반은 "우리 상황은 여전히 힘들다"며 "식민 통치가 그 원인이다"라고 말했다.

만감이 교차하는 심경

이 때문에 호주는 자국의 가장 어두운 역사를 인정하면서도 여왕의 생애를 기리는 방법을 두고 진통을 겪었다.

여왕을 추모하기 위해 원주민 깃발을 다른 공식 깃발처럼 조기 게양하고 2주 동안 의회 일정을 중단하기로 한 결정도 비판받았다.

멜버른의 한 병원 이름을 원주민 단어 "마룬다(Maroondah)"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병원"으로 바꾸겠다고 약속한 것도 "분위기 파악을 못 한다"라며 공격받았다.

호주 여자 풋볼 리그(AFL Women)가 지난주 원주민 문화 유니폼을 착용하는 경기에서 여왕을 향한 1분 묵념을 의무화하지 않기로 한 결정에도 논란이 일었다. 내셔널 럭비 리그(NRL)는 여왕에 대한 공격적 게시물을 작성한 원주민 선수에게 벌금을 부과하고 자격을 정지시켰는데, 표현의 자유를 두고 선수를 변호하는 의견도 있었다.

캔버라 대학 총장이자 원주민 원로인 톰 칼마가 본 여왕은 "위엄과 인간미가 넘치는" 헌신하는 삶을 살았다. 쿤가라칸(Kungarakan)·이와이자(Iwaidja) 원주민인 칼마 교수는 "여왕이 아주 어린 나이에 세계적 문제들을 떠안았다. 우리는 많은 변화를 목도했고, 이때 여왕이 앞장섰다"라고 말한다.

칼마 교수에 의하면, 여왕은 원주민의 염원에 공감하는 것처럼 보였다. 예를 들어, 2000년에는 호주 정부에 "모든 호주인이 번영을 누릴 수 있도록" 촉구하면서, 많은 원주민이 "소외된" 느낌을 받는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호주에서 여왕이 남긴 유산과 침략, 식민지화를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녹색당의 리디아 소프 상원의원은 올해 초 상원 선서식에서 여왕을 식민지배자라고 언급했다.

소프 상원의원은 잡우룽 군나이 군디치마라(Djabwurrung Gunnai Gunditjmara) 원주민으로, 지난주 호주 가디언지에 원주민은 결코 자주권을 넘긴 적이 없다는 글을 기고했다.

소프 의원은 "영국은 식민 지배 당시 원주민을 역사에서 지우는 교육부터 세상에서 지우는 감옥까지, 호주에 각종 제도를 들여와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 이어져 온 문화를 파괴하도록 설계했다"라고 적었다.

"이것이야말로 영국 왕실이 호주에 남긴 유산입니다."

여왕이 한 일이 없다며 비판하는 의견도 있다. 호주의 많은 원주민이 여왕의 재위 기간 중 더 큰 지원을 요청했다. 그 중에는 영국 성공회 목사이자 한때 전국 원주민 회의 의장이었던 나렐다의 아버지 세드릭도 있었다. 세드릭은 언제나 여왕을 "매우 친애"했지만, 원주민 조약을 둘러싼 부족민의 열망에 대해서도 말을 아끼지 않았다.

나델라는 "여왕이라면 분명 가능했을 일들이 실행되지 않은 걸까?"라고 묻는다.

나렐다 제이콥스와 세드릭 제이콥스

사진 출처, Narelda Jacobs

사진 설명, 아버지 세드릭과 함께 있는 나렐다 제이콥스

오설리반 교수는 다른 이의 죽음을 추모하겠다는 사람에게 참견하고 싶지는 않지만, 여왕의 영향력이 크고 "엄청난 부"를 가졌다고 해서 여왕을 그저 "친절한 할머니"처럼 묘사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여왕이 그 힘을 사용해 "엄청난 설득력"을 보여줬지만, 원주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덧붙였다.

칼마 교수는 여왕이 직접 시작하지도 않은 식민 지배의 갈등을 떠안았다고 주장한다.

"개선 활동이 부족했다는 주장이 계속되지만, 군주라고 모든 걸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1901년 이후 자국 헌법을 수립한 호주가 계속해서 영국 왕실만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팔을 걷어붙여야 하는 건 호주 정부입니다."

'기회'

일각에서는 호주가 원주민 식민 지배의 피해를 인정하는 동시에 계속 영국 왕실의 지배를 받을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공화제 전환 국민투표까지는 적어도 3년이 더 걸린다. 앤서니 애버니지 호주 총리는 먼저 호주 헌법에서 원주민을 인정하고 원주민 자문 기구를 신설하는 안에 대해 국민투표를 실시하기로 약속했다.

또한 칼마 교수는 호주가 공화국이 되더라도 영연방에 남을 수 있다고 말한다.

왕실이 새 시대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오설리반 교수는 "지금이 바로 새 출발의 기회"라고 말한다.

"저는 정말 큰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톰 칼마(왼쪽) 교수가 호주를 방문한 찰스 3세와 함께 찍은 사진

사진 출처, Tom Calma

사진 설명, 톰 칼마(왼쪽) 교수가 호주를 방문한 찰스 3세와 함께 찍은 사진

일부 호주 원주민은 1995년 뉴질랜드 마오리족의 사례처럼 찰스 3세가 식민 지배로 인한 피해에 대해 사과하기를 원한다. 금전적 보상, 토지·유물 반환, 영국 박물관에 보관된 선조의 유해 송환 등 배상 요구도 있다. 일각에서는 찰스 국왕도 원주민 자문 기구를 지원해야 한다고 말한다.

BBC와 대화한 모든 사람들은 찰스 국왕이 원주민을 만나 의견을 듣길 바랐다.

나델라는 "정말 답답하다. 우리 지도자들이 선대와 나눴을 대화를 똑같이 반복하고 있다"라며 "하지만 원주민의 자주권 인정을 기다리다 생을 마감하는 사람이 더는 없길 바란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