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2세 여왕: 홍콩의 슬픔이 중국에 전하는 메시지

- 기자, 그레이스 초이, 조이스 리
- 기자, BBC 뉴스, 홍콩
이번 주 홍콩에서는 여왕을 기리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긴 시간 줄을 섰다. 영국을 제외하면 세상을 떠난 군주에 대한 애정이 가장 크게 표현된 곳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통제력을 강화하는 가운데 애도의 물결은 과거뿐 아니라 현재에 대해서도 많은 메시지를 던진다.
홍콩 애드미럴티 지역(영국령 시절 해군 본부 위치)에 늘어선 긴 줄과 꽃·카드 더미는 영국 식민지였던 다른 나라들의 더 잠잠한 반응과 대조적이다.
홍콩은 중국 본토에서 금지된 시민의 자유권을 비롯해 홍콩의 생활 양식을 최소 50년 동안 유지하기로 약속하는 "일국양제"에 따라 중국에 반환됐다.
그러나 시위대 탄압, 중국의 국가보안법 제정, 친중파인 "애국자"에게만 허용된 공직 출마 등, 중국이 그 약속을 어겼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홍콩중문대학에서 문화종교학을 강의하는 리메이팅 박사는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있다"라고 설명한다.
조문객들은 영국 영사관 밖에서 뜨거운 태양을 피하려 양산을 폈고, 휴대폰으로 '갓세이브더퀸(God Save the Queen)' 음악을 들었다.
많은 부모가 자녀를 데려왔고, 한 아버지는 7개월 된 딸을 유니언잭 깃발로 감싸 안았다.
현재 호주에 거주하는 테드 후이 전 홍콩 의원은 BBC에 "홍콩 사람들이 작고한 지도자에게 이런 행동을 보이는 건 처음 본다"라고 말했다.
'황금기'에 대한 향수
홍콩 사람들은 애정을 담아 여왕을 "시 타우 포르(si tau por)"라고 부르는데, "보스레이디"의 광둥어 표현이다.
긴 줄에는 국화꽃을 가져온 60대의 리처럼 고령자가 많았다.
그는 "고백할 때도 꽃을 사 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리는 식민 지배 당시 홍콩 경제가 번성하고 사회가 자유롭게 개방됐다며 여왕에게 감사를 전했다. 영국의 지배하에 교육·의료 시스템이 크게 개선됐고 법치를 누렸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진 출처, Getty Images
홍콩은 19세기 두 차례의 아편전쟁을 거쳐 영국의 식민지가 됐고, 156년 동안 식민 통치가 이어졌다. 당시 중국 본토는 대기근과 문화대혁명을 비롯한 정치적 혼란에 휩싸였다.
75세의 펑은 "그 당시 홍콩은 평화로웠다"라고 말한다.
리메이팅 박사는 홍콩 사람들이 식민 지배 시절을 회상할 때 197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까지를 주로 언급한다며, "이 시기를 경험한 사람들은 당시를 홍콩의 황금기로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영국 식민 정부는 노동쟁의와 중국의 입김으로 촉발된 1967년의 극단적 반식민주의 폭동을 경험하고 지배 전략을 변경했다.
더 많은 공공주택이 건설되고 무료 초등교육이 도입됐는데, 여기에는 또 다른 사회운동을 막으려는 의도도 있었다는 것이 리메이팅 박사의 설명이다.
그러나 미국에서 활동하는 제프리 응고 사회운동가는 지난 30년의 식민시대만으로 전체 그림을 논할 수는 없다며, 현 상황에 이르기까지 대영 제국이 "매우 큰 역할"을 했다고 설명한다.
"특히 2019년 이후 많은 운동가들이 기소됐는데, 식민 정부가 1997년 이전에 제정한 후 폐지되지 않은 법률들이 이때 적용됐죠."
지난주에는 5명의 언어치료사가 중국 정부를 늑대로, 홍콩인을 양으로 묘사한 아동 도서를 출판한 혐의로 식민지 시절의 선동금지법에 따라 유죄 판결을 받았다. 판사는 해당 행위를 "세뇌 훈련"으로 묘사했는데, 판사의 선고가 언론의 자유를 탄압한다는 비판이 높았다.
또한, 식민 지배기 동안 영국이 홍콩의 민주화에 기여한 부분은 거의 없다는 것이 제프리 응고의 설명이다.
쌓여가는 불만
어떤 이들은 여왕을 추모하는 행위로 홍콩 정부에 불만을 표한다. 중국의 광범위한 국가보안법과 엄격한 코로나19 규정에 따라 이제 시위가 금지되었다.

영국 국기 '유니언잭'이 달린 목줄을 채우고 반려동물 웰시코기를 데려온 체는 여왕을 추모하는 행위가 "대안적 형태의 정치적 표현"이라고 설명한다.
다른 날에 '유니언잭'을 걸면 국가보안법에 따라 체포되거나 기소될 수도 있지만 지금은 여왕의 서거 상황이라 용인된다고 덧붙였다.
찬은 아내와 두 자녀를 데리고 왔다. 가족 모두가 1963년에 개원한 퀸엘리자베스 병원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여왕에게 친숙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존경받아 마땅한 분께 경의를 표할 겁니다. (관계 당국은) 외세와 결탁했다며 비난만 하지 말고, 홍콩인들을 큰 불행에 빠뜨린 스스로를 돌이켜봐야 합니다."
길게 늘어선 다른 사람들도 홍콩을 떠나려 계획 중이었다. 홍콩 인구는 지난 2년 동안 200,000명 가까이 감소했다. 홍콩을 떠난 이들 중 많은 수가 영국에 정착할 계획이다.
21세의 딸과 함께 온 리는 "홍콩 사람들이 무더위 속에서 긴 줄을 만들고 있다. 우리는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설명이 필요 없다"라고 말했다.
또한, "과거와 현재가 극명히 대비된다. 우리는 한때 손에 넣었던 것을 다시 잃었다. 많은 지인이 이민을 진행 중이다"라며, 리 본인도 이민을 계획 중이라고 밝혔다.

홍콩의 정체성
식민지 시대를 직접 경험하지 못한 젊은이들도 함께 줄을 섰다. 홍콩을 바꾸려는 중국의 계획 때문에 식민지 시절의 역사가 묻혀버릴 것 같아 걱정된다는 의견도 있었다. 신설 교과서에 따르면, 홍콩은 결코 영국의 식민지가 아니었고 단지 외세에 의해 점령되었을 뿐이다.
법대생 샘은 할머니가 바다를 헤엄쳐 중국 본토에서 탈출했다고 말한다. "이민국 직원이 할머니께 '우리의 시 타우 포르(보스레이디)도 여성이니 홍콩에서 할머니를 잘 돌봐줄 것'이라고 말했어요."
15세의 크리스토퍼는 오래된 지폐나 거리 표지판처럼 식민지 역사의 흔적이 아직 남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흔적이 점점 희미해지는 것 같아요."
리메이팅 박사는 "우리의 비판과 상관없이, 식민지 시대는 홍콩의 정체성이자 역사의 일부였다"라고 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