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2세 여왕 서거를 보는 말레이시아 청년들

말레이시아에서도 여왕을 추모하고 있으나, 많은 말레이시아 청년들이 여왕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한다

사진 출처, Reuters

    • 기자, 조나단 헤드
    • 기자, BBC 특파원

고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1972년, 1989년, 1998년 총 3차례에 걸쳐 영연방 국가 중 하나인 말레이시아를 방문했다. 그 기간 말레이시아는 상품 의존 위주의 낙후한 경제에서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공산품 수출국으로 발돋움했다.

이 과정에서 영국 및 영국 왕실에 대한 말레이시아인들의 태도 또한 변화했다.

마지막 영국군이 말레이시아를 떠난 건 1972년이지만, 독립 후에도 영국군 수천 명이 계속 주둔하며 공산주의 세력의 반란과 60년대 초 인도네시아와의 군사적 충돌로부터 신생 국가 말레이시아를 보호했다. 당시 인도네시아 당국은 말레이시아를 영국의 신식민지라며 날을 세우고 있었다.

또한 당시 영국인 소유 기업들은 고무와 주석 수출 의존도가 매우 높은 말레이시아 경제의 대부분을 여전히 장악하고 있었으며, 영국은 말레이시아에 대한 최대 투자국이었다. 오늘날엔 19번째로 큰 무역 상대국이다.

그러다 1998년 부터 마하티르 빈 모하맛 당시 총리의 활발한 지도력 아래 말레이시아는 동남아시아의 소위 "호랑이 국가" 중 하나로 발돋움했다. 전 세계 공급망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됐다. 물론 당시 아시아 금융 위기로 인한 고통이 있긴 했으나, 훨씬 더 부유해진 것이다.

영국에서 교육받지 않은 최초의 말레이시아 지도자였던 모하맛 전 총리는 서방 세계의 영향력을 불신했다.

개발도상국을 위한 투사를 꿈꿨던 모하맛 총리는 "동쪽을 보라(Look East)" 정책을 내세워 동쪽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다른 아시아 국가들을 배우고자 했다. 또한 한때는 "영국 상품은 가장 나중에 사자(Buy British Last)"는 정책을 도입하기까지 했다.

이렇듯 모하맛 전 총리는 영국과 말레이시아 양국 왕실에 적극적이지 않았으며, 영연방에 대해서도 영국이 지배하는, 행동 없이 말만 무성한 곳이라며 그 가치와 의미에 대해서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1972년 처음 말레이시아를 방문한 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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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1972년 처음 말레이시아를 방문한 여왕

그러나 1980년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유색인종에 대한 차별 정책)를 둘러싼 영연방 내 갈등이 불거지면서 영연방에 대한 모하맛 전 총리의 태도도 누그러지는 듯했다.

영연방 소속 타 국가 정상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모하맛 총리 또한 아파르트헤이트를 크게 반대했다.

이에 마거릿 대처 당시 영국 총리는 남아공에 대한 경제 제재에 반대했으나, 편을 들어주는 국가가 거의 없었다.

이러한 선택이 영연방 존립 및 영국의 국제적 지위에 해를 끼칠 것을 우려한 여왕은 대처 총리의 결정에 반대의 뜻을 밝혔는데, 좀처럼 실질적 지도자인 총리와 반목하지 않는 여왕으로선 드문 행보였다.

한편 오늘날 말레이시아는 영연방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남아 있으며, 아마도 세상을 떠난 여왕에겐 마음이 갔던 곳일 것이다. 여왕이 말레이시아를 방문한 주된 이유도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모하맛 전 총리의 지도하에 1989년까지 변화를 거듭한 말레이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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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모하맛 전 총리의 지도하에 1989년까지 변화를 거듭한 말레이시아

말레이시아는 1989년 56개 회원국으로 구성돼 2년마다 열리는 영연방 정부 수반 회의를 주최했으며, 1998년에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코먼웰스 게임'(영연방 회원국 간 종합 스포츠 대회)을 개최하기도 했다.

당시 이러한 행사를 통해 말레이시아는 현대적인 모습을 드러냈다. 여왕은 수도 쿠알라룸푸르 비즈니스 지구에 멋지게 새로 건설된 쌍둥이 타워도 둘러봤으며, 새로 건설된 지하철도 탑승했다.

또한 제임스 나야감이 버려진 아이들을 위해 운영하던 '쉘터 홈' 보호소에도 방문했는데, 나야감은 아직도 이 순간을 생생히 기억한다고 했다.

제임스 나야감은 자신이 운영하는 보호소의 소녀들과 여왕이 "평범하게" 소통했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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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제임스 나야감은 자신이 운영하는 보호소의 소녀들과 여왕이 "평범하게" 소통했다고 회상했다

나야감은 "영국 대사관 측이 전화로 여왕의 방문을 원하는지 물었다"면서 "다른 VIP 손님 말고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 참석하길 원했다. 또한 여왕이 보호소 주방을 통해 중앙으로 들어오길 바란다고 했다"고 회상했다.

"대사관 측이 여왕님이 보호소 소녀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일일 봉사를 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정말 멋진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 멀리 영국에서부터 매우 고급스러운 선생님이 오시는 거잖아요."

"직접 만나본 여왕님은 제 생각과는 다른 분이었습니다. 평범한 분이셨어요. 친절하고 유쾌한 분이었습니다. 덕분에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또한 그냥 자리에 앉으셔서 소녀들과 평범하게 소통하시던 모습도 기억납니다. 마치 일주일 내내 이곳에 계셨던 분처럼 즐기면서 수업하셨습니다."

나야감은 마찬가지로 여왕을 직접 만난 적 있는 다른 친구 2명과 쿠알라룸푸르 교외의 어느 찻집에 만나 기억을 회상했다.

그러나 이제 이들 모두 1950년대 영국이 말레이시아를 통치하던 마지막 해까지 부모님 댁 벽에 걸려 있던 젊은 여왕의 초상화를 기억할 만큼 나이가 들었다.

말레이시아 청년들은 여왕의 방문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여왕이 영감을 주는 여성상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사진 설명, 말레이시아 청년들은 여왕의 방문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여왕이 영감을 주는 여성상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이에 따라 말레이시아 청년들에게 여왕의 서거에 관해 물으며 어떠한 반응을 끌어내 보고자 했으나 쉽지 않았다.

물론 이들 또한 여왕에 대해 들어본 적은 있으나, 여왕과 말레이시아의 관계 및 영연방에 대해선 대부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도에서 직접 만든 귀걸이 등 공예품 노점을 운영하는 일레인은 "여왕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영국 왕실을 따른다"면서 "여왕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는데, 여왕은 훌륭한 지도자였다고 본다"고 밝혔다.

"하지만 젊은 세대는 역사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여왕에 대해서도 잘 모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틱톡,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의 SNS이죠."

친구의 중고 옷 가게 운영을 돕는다는 이베트는 "여왕이 매우 강하고 독립적인 여성상이었다고 생각한다"면서 "여성으로서 영국의 고위 인물로서 (여왕의 그러한 모습은) 이곳 말레이시아 여성들에게도 본보기가 된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영연방 청년 의회' 의장이었던 키슈바 앰비가파티는 2016년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영연방 기념일 행사를 이끌었다.

사진 출처, PA Media

사진 설명, '영연방 청년 의회' 의장이었던 키슈바 앰비가파티는 2016년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영연방 기념일 행사를 이끌었다.

말레이시아의 또 다른 청년인 키슈바 앰비가파티는 여러 번 여왕을 실제로 만나본 적 있다. '영연방 청년 의회' 의장으로 활동할 때였다.

"여왕님과 대화를 해볼 수 있어 감격스러웠습니다. 언제나 리더십을 보여주시는 분이었습니다. 어떻게 해결책을 만들어내고 어려움에서 기회를 만드는지 보여주셨습니다."

"여왕은 지위와 명성을 생각하면 많은 사람을 만났고 수많은 역사적 사건을 목격하셨습니다. (그러한 경험에서 오는) 경험은 오늘날 청년들에게 많은 가르침이 됩니다."

이렇듯 영연방은 여왕이 영국 밖에서 남긴 가장 위대한 유산이지만, 그 미래가 불확실하기도 하다.

말레이시아 정부의 무역 자문을 맡은 수피안 주소 말레이시아 국립대학 교수는 "여전히 영연방은 의의가 있다고 본다"면서 "문화와 교육적 연결고리도 있고, 또 말레이시아의 법체계는 영국의 관습법 체계를 물려받은 형태인데, 매우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영연방이) 계속 유의미하게 남기 위해선 개혁이 필요합니다. 많은 활동이 이뤄지곤 있지만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회원국이 50개국이 넘지만 다른 국제단체만큼이나 유명하지 않습니다."

과연 영연방은 현재와 미래의 청년 세대에게도 유의미한 존재로 남을 수 있을까
사진 설명, 과연 영연방은 현재와 미래의 청년 세대에게도 유의미한 존재로 남을 수 있을까

초기 영연방은 소속 국가들의 독립국으로의 전환을 원활하게 도왔으며, 영국이 계속 과거 식민지국과 긴밀한 관계를 지속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성공한 기업가 손꼽히는 비노드 세카르 회장은 신임 국왕인 찰스 3세가 영연방의 정체성을 이보다 한 단계 발전시켜주길 바란다.

세카르 회장은 "영연방이 이전 대영제국과 같은 형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영연방은 '이런 모임이 있는데 어때?' 식의 기회 형태다. 역사적 공통점을 공유한 국가 간의 대단한 연합 형태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러한 영연방을 오늘날 필요에 맞게 바꿔나가는 건 어떨까요? 특히 말레이시아에 필요한 존재로 말입니다. 말레이시아는 정치, 군사적으로 강대국은 아니지만, 무역에서 강합니다. 우리는 전 세계 무역을 이끌어야 하고 사람들을 하나로 모아야 합니다. 영연방이 우리 말레이시아가 (무역을) 이끌 기회의 장이 되진 않을까요?"

세카르 회장의 이러한 야망은 높이 사지만, 과연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수많은 지역별 무역 협상이 이미 존재하거나 협상 중인 상황에서 영연방을 무역과 연관된 또 다른 체제로 바꾸려는 정치적 의지가 형성될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회원국 간 결속력을 높이려는 여왕의 의지와 권위가 없는 상황에서 계속 존재하고 나아가기 위해선 영연방에도 새로운 아이디어나 방향 감각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한편 여왕이 떠난 지금, 여왕이 생전 말레이시아에서 만난 이들에게 남긴 인상만큼은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여왕보다 1살 많은 마하티르 빈 모하맛 전 말레이시아 총리는 여왕의 서거 소식을 들었을 때 여왕이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사진 출처, Reuters

사진 설명, 여왕보다 1살 많은 마하티르 빈 모하맛 전 말레이시아 총리는 여왕의 서거 소식을 들었을 때 여왕이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나야감은 "여왕이 서거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가만히 앉아서 조용히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준 이 특별한 여성에 대한 나와 내 가족의 추억을 회상했다"고 밝혔다.

올해 나이 97세로 아시아의 원로 정치인이자 한때 말레이시아에서 영국의 영향력에 맞섰던 모하맛 전 총리 또한 여왕을 추모했다.

"여왕은 언제나 우아했습니다. 여왕을 만나는 일은 즐거웠습니다. 서거 소식을 들었을 때 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습니다. 저보다 겨우 1살 어린 여왕이니까요."

"여왕은 입헌군주제의 군주로서 훌륭한 모범이었습니다. 여왕의 서거는 영국인들뿐만 아니라 법치주의를 믿는 우리 모두의 손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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