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약도, 물도 없었어요'…3일간 고립된 채 중공군과 싸웠던 영국 참전용사
"이제 사람들이 전통 옷(한복)을 안 입나요? 제가 있을 때는 모두가 한복 차림이었는데…"
지난 23일, 올해 95세인 애드윈 C. 워윅에게 한국을 방문한 소감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지금까지 그의 기억 속 한국의 모습은 75년 전 지금의 파주 임진강쯤에 머물러 있다.
영국 맨체스터 출신인 그는 1951년 4월 한국전쟁에 파병돼 임진강전투(설마리전투)에서 중공군에 맞서 싸웠다. 올해는 전투 75주년을 맞는 해로, 국가보훈부의 초청을 받아 전쟁 이후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 것.
당시 애드윈이 속한 글로스터 대대는 영국 얼스터·푸실리어 대대와 벨기에 대대 등과 함께 영국군 제29보병여단으로 편성됐다. 병력은 4000명이 넘었지만, 이들을 뚫고 남하하려는 중공군 제63군은 3만 명에 달했다.
애드윈은 원래 무기정비 기술병으로 직접 참전하지 않고 병사들에게 대전차포 사용법을 교육해 왔으나, 전장의 상황은 역할을 따질 정도로 녹록지 않았다.
4월 22일부터 중공군이 강을 넘어 공격을 시작했고, 23일부터는 적성 부근에 배치됐던 글로스터 대대를 집중 공격하기 시작했다. 중공군의 공세에 점점 밀리던 글로스터 대대는 235고지(설마리 고지)에 집결해 방어 진지를 구축했다.
글로스터 대대원 400여 명이 고립된 상태에서 그들의 10배가 넘는 중공군 *약 1만 명을 막아야 하는, 승리는커녕 버티는 것조차 불가능해 보이는 전투였다. (*정확한 숫자는 사료나 기준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다)
애드윈은 애초에 목표는 "'이기는 것'이 아니라 (중공군을) '붙잡아두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서울을 지켜내기 위해서였죠."

사진 출처, National Army Museum
그는 "중공군이 마치 파도처럼 밀려왔다. 절대 멈추지 않을 것 같았다"라고 회상했다.
이들을 구하기 위한 몇 번의 구출 작전이 있었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23일에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면서 이렇게 말했어요. '남은 게 아무것도 없다'고…탄약도, 물도, 음식도요."
결국, 여단장으로부터 퇴각 명령이 내려졌다. 당시 대대장을 맡은 제임스 칸 중령과 부상자, 군의관 수십 명만 남고 각 중대는 탈출하기로 했다. 하지만 탈출에 성공한 중대는 유일하게 북쪽으로 탈출한 중대 하나 뿐이었다.
애드윈은 "최선을 다해 빠져나가라"라는 말을 들었고, 무작정 달렸다고 했다.
애드윈을 포함한 약 40명 정도만이 탈출에 성공했고, 나머지는 전사하거나 포로로 붙잡혔다.
겉으로는 패전으로 보일 지 모르지만, 설마리 전투는 글로스터 대대가 사흘 동안 항전하는 동안 국군과 유엔군은 중공군의 서울 진격을 막을 새로운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 전투로 평가받고 있다.
애드윈은 "한국에 다시 오게 돼 기쁘고, 추모식에 참석하게 돼 영광"이라면서도 "개인 차원으로 온 것이 아니라 전우들 모두를 대표해 참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사진 출처, 보훈부
하지만 애드윈이 참전 경험을 털어놓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
"지금까지 제가 기억하는 한국은 전쟁으로 황폐해진 모습이었죠…사람을 보기 힘들었던 것 같아요. 대부분 숨어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아이들이 '어머니, 아버지'를 외치며 부모를 찾는 광경은 도저히 잊을 수가 없어요."
이후 미국으로 건너간 애드윈은 50년 넘게 아무에게도 참전 경험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다. 자녀에게도 2010년이 되어서야 이를 털어놨다고 말했다.
29여단은 임진강 전투로 사망자 140명을 포함해 1000명 이상의 사상자를 냈다.
한국전쟁은 흔히 '잊힌 전쟁(Forgotten War)'으로도 불린다. 많은 사상자를 냈음에도 제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명확한 결론을 내지 못한 채 휴전을 맞이했다.
하지만 애드윈과 한국을 함께 방문한 딸은 아버지가 참전한 설마리 전투에 "'잊혔다'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글로스터 대대는 임진강 전투 공로로 '영광스러운 글로스터(Glorious Glocester)'라고 불렸으며, 미 트루먼 대통령 부대훈장과 영국 최고훈장을 수상했다.
임진강 전투에 참여한 50여 명을 인터뷰해 기록한 '마지막 한 발(To the Last Round)'의 저자이자 워싱턴타임스의 기자인 앤드루 새먼은 BBC에 "임진강 전투는 한국에서도 영국에서도 좀 더 알려질 필요가 있다"라며 "전투의 격렬함이나 드라마, 비극성은 여느 유명한 '최후의 저항'으로 남은 전투 못지않다"라고 했다.
올해 3월 기준으로 보훈부에 등록된 한국전쟁 참전용사 중 생존해 있는 인원은 2만5738명이다.
영상: 최정민 피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