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2세 여왕 서거: 호주의 미래는?

시드니 오페라하우스가 외벽에 사진을 띄우며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추모했다

사진 출처, James D. Morgan

사진 설명, 시드니 오페라하우스가 외벽에 사진을 띄우며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추모했다
    • 기자, 샤이마 칼릴
    • 기자, BBC 뉴스, 시드니

리티아나 라카라카티아 터너는 눈물을 머금고 "나는 '갓세이브더퀸(God Save the Queen'을 부르며 자랐고 오늘은 '갓세이브더킹(God Save King)을 불렀다. 찰스 국왕이 정말 자랑스럽지만, 여왕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라고 말했다.

터너는 호주 캔버라에서 열린 국가 추도식에 이어 시드니의 찰스 3세 즉위 선포식으로 향하는 호주인 행렬에 함께했다.

많은 이들이 호주와 군주국의 새로운 시대를 상징하는 '갓세이브더킹'을 합창했다. 이제 찰스 국왕은 호주의 군주이자 국가 원수지만, 서거한 모친의 빈자리가 뚜렷하다.

또 다른 여성 프랜시스 킨레이드는 BBC에 "(나는) 기쁘고 또 슬프다. 여왕은 떠났지만, 새로운 왕이 왔다. 찰리... 아니, 찰스 국왕의 성공을 바랄 뿐이다!"라고 고쳐 말하며 미소 지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 후 호주에서 일련의 공식 행사가 진행됐다. 10일(현지 시간)에는 국회의사당 '여왕의 테라스'에서 화환식이 거행됐이다.

의회일정은 2주 동안 중단됐이고, 9월 22일은 일회성 국가공휴일 '국가 애도의 날'로 정해졌다.

각종 깃발은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조기 게양된다. 지폐와 동전에는 이제 왕이 등장한다.

또한, 여왕의 서거로 공화제 전환 논쟁이 재부상했다. 말콤 턴불 호주 전 총리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여왕의 재위 중에는 (공화정) 투표가 없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제 재위가 끝났다"라고 말했다.

시드니에서 열린 선포식에 참석한 리티아나 라카라카티아 터너
사진 설명, 시드니에서 열린 선포식에 참석한 리티아나 라카라카티아 터너

또한, 바로 국민투표에 돌입하지는 않겠지만, 언젠가는 투표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턴불 전 총리는 확고한 공화정 찬성파지만, 9일(현지 시간) 호주 국영 ABC 방송에서 여왕을 회상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이 모습은 호주와 군주국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는 11일(현지 시간) 선포식 후 지금은 여왕의 삶에 경의를 표하고 여왕을 추모할 때라고 밝혔다.

헌법을 개정해야 하는 더 큰 문제도 남아있다.

그러나 호주 정부는 언젠가 국민투표가 진행될 것을 분명히 해왔다.

올해 초 여왕 즉위 70주년을 일주일 앞두고 맷 시슬스웨이트 공화국 차관보가 임명됐다.

사상 처음으로 호주 하원의원에게 국가 원수와 함께 호주를 공화제로 전환하는 공식 임무가 부여된 것이다.

아직 불확실한 부분이 많지만, 앨버니지 총리가 2024년이나 2025년 연임에 성공하면, 국민투표가 실시될 것으로 보인다.

1999년 국민투표에서는 대부분의 호주인이 여왕의 편을 선택해 공화제 전환 "반대"파가 승리했다. 당시 공화정 찬성파는 공화제의 구체적 모델을 두고 분열됐다.

지금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물론 여왕의 서거다. 여왕은 호주와 군주국의 가장 강력한 연결고리였다. 많은 호주 국민이 "가족을 잃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찰스 3세에 대한 호감도 많다지만, 분위기가 같을 수는 없다.

현지 거주 여성 엘스 폭스는 "중요한 행사, 역사의 일부"라고 생각하며 시드니 선포식에 참석해, "호주와 민주주의가 함께 나아갈 미래는 정말 흥미로울 것이다. 하지만 여왕의 업적도 존중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엘스 폭스는 논의의 향방이 "흥미로울 것"이라고 말한다

독립적인 국가 정신과 여왕을 향한 깊은 애정은 많은 호주인에게 복잡한 숙제로 남아있다. '호주공화국운동(Australian Republic Movement)'의 피터 피츠시몬스 대표는 "찰스 3세에 대한 큰 존경을 담아 말하건대, 개인적으로 찰스 3세에게 아무런 나쁜 감정이 없지만, 여왕 폐하를 향하던 깊은 애정과 충의를 누리지는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대 간 차이도 있다. 여왕의 재위 중에 호주는 크게 변화했다. 회계사 겸 재무관리자 엠마 스탠튼은 "젊은 사람들은 찰스 (국왕) 세대보다 젊은 왕족에게 더 관심을 가진다"라며, 호주인들이 국왕에게도 기회를 드려야 겠지만, 본인이나 주변에서는 국왕의 세대가 좀 "어중간(in between)"하다는 인상을 받는다고 말했다. 또한, 젊은 호주인들이 "윌리엄 왕자처럼 새로운 세대의 즉위를 기다린다"라고 덧붙였다. "저는 해리 왕자와 동갑이라, 비슷한 세대의 왕족을 보며 자랐죠."

여왕의 서거는 호주 원주민에게도 복잡다단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여왕을 애도하는 이도 많지만, 참혹한 식민지화의 트라우마를 다시 떠올린 이들과, 호주 원주민에 대한 강제 이주와 폭력의 역사에서 왕실의 역할을 논하는 이들도 있다. 여왕의 즉위 당시, 호주 원주민은 국민에 포함되지도 않았다. 70년이 지난 지금, 캔버라에서 열린 국왕 즉위 선포식은 다른 많은 행사처럼 원주민의 '환영 의례(Welcome to Country)'로 시작됐다.

턴불 전 총리는 여왕의 첫 호주 방문에 대해 "1954년 당시, 여왕이 방문한 나라는 스스로를 영국이라고 생각했다"라며, "지금의 호주와는 전혀 다른 나라였다"라고 설명했다.

군주제를 안정의 중요한 상징으로 보는 의견도 여전하다. 스스로를 군주제 지지자로 설명하는 조시 롭은 호주가 새로운 군주에게도 기회를 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한 연속성이 중요합니다. 관계가 견고해지려면 시간이 걸리는 법이죠. 지금까지 찰스 국왕은 옳은 말과 행동만 보였습니다."

이 모든 것의 중심에는 호주의 정체성이 놓여있다. 호주는 지구상에서 가장 오랜 문명을 가진 젊은 국가로, 어두운 과거와 왕좌의 역할 사이에서 실타래를 풀어내려 계속 분투하고 있다.

그러나 여왕의 서거 이후, 사람과 제도 사이의 감정적 분리가 나타나고 있다.

턴불 전 총리는 이렇게 전한다. "당신이 여왕을 사랑하더라도... '우리'는 독립된 국가입니다. 우리의 국가 원수는 우리 중에서 나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