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2세 여왕 서거를 둘러싼 아프리카 내 엇갈린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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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Getty Images

지난 8일(현지시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서거하면서 전 세계 지도자들과 일반 시민들은 진심 어린 조의를 표하고 있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많은 국가가 공개적으로 여왕을 기리고 있으며, 과거 여왕이 자국을 방문했을 적 찍은 사진을 공유하는 곳도 있다.

하지만 모두가 같은 마음인 것은 아니다.

이번 여왕의 서거로 원주민에 대한 잔학 행위, 서아프리카 국가에서의 문화재 약탈, 남아프리카와 인도에서의 금과 다이아몬드 약탈, 노예제 및 억압 통치 등 피비린내 나던 식민지 지배 역사에 대한 기억이 다시 떠오르는 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은 여왕을 전 세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던 특별한 공인으로 묘사했으나, 야당인 경제자유전사당(EFF)은 애도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남아공 내에서 3번째로 큰 당인 경제자유전사당은 성명을 통해 "엘리자베스 2세는 70년간 여왕으로 재위하면서 영국과 영국 왕실이 전 세계에서 저지른 범죄를 절대 인정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잔혹한 과거사의 자랑스러운 상징과도 같았다"고 전했다.

"우리에게 여왕의 죽음은 남아공과 아프리카 대륙 역사에서의 매우 비극적인 시기를 상기시킵니다."

한편 SNS에서 비난의 목소리를 더욱 높이는 이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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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지리아 태생 미국인인 우주 아냐 교수가 여왕 서거 몇 시간 전에 올린 트윗은 날카로운 논쟁으로 이어졌다.

아냐 교수의 트윗 게시물 중 하나는 규정 위반으로 삭제된 상태다. 두 번째 트윗에서 아냐 교수는 "내 가족의 절반을 학살하고 추방했으며 이후 살아남은 이들 또한 계속 고통받는 집단학살 사건을 지원한 정부의 군주에 대해선 경멸 외엔 표할 감정이 없다"고 적었다.

아냐 교수의 이러한 트윗은 1960년대 후반 '비아프라 전쟁(나이지리아 내전)'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영국 정부로부터 무기 등 지원을 받은 나이지리아 정부는 분리 독립을 선언한 비아프라 공화국 분리주의자들을 고립시켜 굶주림으로 몰아넣었으며 결국 진압했다.

이에 대해 또 다른 트위터 사용자인 '@ParrenEssential'은 "당신은 우리 문화와 국가를 잘못 전하고 있다"면서 나이지리아인들은 이렇게 행동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또한 임종을 앞둔 이를 격렬히 비난하는 건 "비 아프리카적"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한편 1905년 남아공에서 채굴돼 현재 영국 왕실의 대관식 의례용품을 장식하고 있는 '아프리카의 별' 다이아몬드 반환을 요구하는 게시물도 여왕의 서거 당일 등장했다.

많은 이들은 이 다이아몬드가 "도둑맞았다"고 표현한다.

당시 남아공 트란스발 정부가 영국 왕실에 충성의 표시로 건넨 것이지만, SNS상에선 이 다이아몬드의 진정한 주인은 남아공 국민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Qban_Linx'라는 트위터 사용자는 현재 영국 국왕의 대관식 왕홀에 박힌 가장 큰 조각 등 이 4억달러(약 5500억원)짜리 다이아몬드라면 남아공 학생 75000명의 고등 교육 비용을 충당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또 다른 옛 영국 식민지였던 인도에서도 비슷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여왕 서거 이후 해시태그 '코히누르'가 온라인에서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코히누르'는 새로운 왕비가 착용할 것으로 예상되는 왕관에 박힌 대형 다이아몬드다.

또한 엘리자베스 2세가 힘과 영향력을 이용해 영국의 식민지 지배에 맞서 싸운 사람들의 유해 반환을 위해 힘썼어야 했다는 비판도 있다.

케냐와 남아공 시민들은 19세기 말 현재의 케냐 지역에서 '난디 항쟁'을 이끈 코이탈렐 사모에이 족장과 1835년에 살해된 남아공 코사 왕국의 힌스타카 카하울라 왕과 같은 영웅의 머리를 돌려달라고 각각 요구하고 있다.

당시 이들의 시신은 훼손됐으며, 영국은 이들의 머리를 전리품 삼아 본국으로 가져갔다.

한편 영국의 식민지 통치에 대항해 벌어진 '마우마우 투쟁' 당시 케냐인들이 잔인하게 살해된 사건도 재조명되고 있다. 81년전 당시 17살로 투쟁에 가담했던 가투 와 카헨게리는 당시 영국군이 자신을 억류 후 구타했으며 먹을 것도 주지 않았다고 회상한다.

81년전 당시 17살로 투쟁에 가담했던 가투 와 카헨게리는 당시 영국군이 자신을 억류 후 구타했으며 먹을 것도 주지 않았다고 회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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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81년전 당시 17살로 투쟁에 가담했던 가투 와 카헨게리는 당시 영국군이 자신을 억류 후 구타했으며 먹을 것도 주지 않았다고 회상한다

카헨게리는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그들(영국군)은 내 땅, 내 생득권을 유린했다"면서도 "그러나 우리는 여왕의 죽음을 애도한다. 왜냐하면 여왕도 한 인간이기 때문"이라면서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것에 유감인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왕을 "사심 없는 봉사의 우상"이라 칭하며 나흘간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한 우후루 케냐타 케냐 대통령에게도 일부 케냐인들은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안 카마 보츠와나의 전 대통령 또한 여왕을 대체할 수 없는 존재로 묘사하면서 여왕의 유산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

카마 전 대통령은 "우리가 기억하고 싶은 건 식민주의가 아니다. 당시는 암흑기였다"면서 "여왕은 (식민주의의) 유산을 물려받은 것이지 직접 건설한 이가 아니었다 … 하지만 여왕은 식민주의로 인한 피해를 복구하려는 것 같았다. 여왕은 영국이 당신들(옛 피지배국)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들의 발전에 참여하고 국가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태도를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아프리카 대륙이 여왕을 "어두운 과거에서부터 새로운 시대를 이끈 인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여왕이 대영 제국이 당시 저지른 범죄에 대해 사과한 적이 없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여왕은 1997년 인도 북부 암리차르를 방문해 1919년 해당 지역에서 일어난 대학살과 같은 "고통스럽고도 어려운 사건들"을 인정한 바는 있다.

당시 영국군 장군은 빠져나갈 수 없는 벽으로 둘러싸인 정원 안에 모인 시위자들을 향해 발포 명령을 내렸다. 여왕은 이 현장을 방문하기 전 유감을 표명하는 연설을 했다.

"역사는 다시 쓰일 수 없습니다. 다른 방식으로 전개됐길 우리가 때때로 얼마나 바랄지라도 말입니다. 역사엔 기쁨뿐만 아니라 슬픔의 순간도 있습니다. 우리는 슬픔으로부터 배우며 기쁨으로부터 쌓아나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