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여왕이 평생 열정을 바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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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 프랭크 키오
- 기자, BBC 스포츠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별장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여왕의 경주마 '에스티메이트'의 실물 크기 조각상이다.
별장 샌드링엄 하우스에 우뚝 선 동상은 여왕의 꾸준한 경마 사랑을 보여준다. 여왕의 왕관에 가려진 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경마를 통해 드물게 엿볼 수 있다.
'에스티메이트(Estimate)'가 영국 왕실이 주최하는 경마 대회 '로열 애스콧(Royal Ascot)' 골드컵에서 2013년 우승을 거머쥐면서, 여왕은 207년 만에 처음으로 재위 중에 골드컵 우승마를 소유한 군주가 됐다. 여왕이 '로열박스'에서 마필 관리사 존 워런과 함께 기뻐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워런은 "경주마가 골드컵 우승을 끝으로 은퇴한다면, 경주마로서의 여정을 정말 멋지게 마무리한 것"이라고 말한다.
'에스티메이트' 외에도, 보라색, 금색, 주홍색 기수복을 입는 여왕의 기수들은 총 1800번 이상의 크고 작은 승리를 거뒀다. 지난해 여왕은 영국 챔피언스 시리즈 명예의 전당에 올라 오너-브리더(마주 겸 말 생산자)로서 경마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여왕은 경마를 즐기며 복잡한 국내외 현안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조교사 리처드 해넌은 "여왕 폐하는 '새로 칠한 페인트 냄새가 없는 곳에 와서 좋다'며 내게 말씀하시곤 했다"라고 전했다. 여왕이 매일 확인하는 서신에는 언제나 영국 경마 신문 '레이싱 포스트' 한 부가 들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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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여왕의 어린 시절부터 함께했다. 여왕의 조부 조지 5세는 네 번째 생일을 축하하며 '페기(Peggy)'라는 이름의 셰틀랜드 포니종을 선물했고, 여왕은 페기를 통해 말 타는 법을 배웠다.
2차 세계 대전 중에 부친과 함께 윌트셔 지역의 왕실 말 훈련에 참관하면서 말에 대한 관심이 더 커졌다. 여왕은 당시를 회상하며 "나중에 마구간에서 말들을 쓰다듬었는데, 그렇게 비단처럼 부드러운 느낌은 처음이었다"라고 말했다.
유럽에서 전쟁이 끝나고 2주 후인 1945년 5월, 여왕은 처음으로 양친과 함께 애스콧에 참석해 경마 대회에서는 처음으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로열 애스콧 대회는 여왕이 가장 반기는 사교 행사가 됐고, 총 24번 승리했다. 여왕은 매년 윈저성에서 경마장으로 향하는 행렬에 참가했는데, 사람들은 여왕이 착용할 모자의 색에 돈을 걸었다 (파란색이 인기가 많았다).
부친 조지 6세는 많은 우승마를 배출한 샌드링엄의 경주마 사육장 '로열 스터드'를 물려줬다.
1949년 폰트웰파크 장애물 경주에서 우승한 '모나빈(Monaveen)'이 여왕에게 첫 승리를 선사했고, 이후 1954년과 1957년 두 번의 평지 경주에서도 여왕의 말이 우승을 거머쥐었다.
방송인 클레어 발딩의 조부, 부친, 형제는 모두 여왕을 위해 말을 훈련시켰다. 발딩은 "여왕은 마필을 눈으로 구분했고, 마필의 정신적, 육체적 성장에 매료됐으며, 말을 돌보는 마부에게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짚어줬다"라고 말했다.
"(여왕님은) 세세한 부분까지 챙기셨는데, 아주 사소한 예를 들자면 말을 보러 목장에 나가실 때 절대 향수를 뿌리지 않으셨어요. 향수 냄새가 테스토스테론으로 가득 찬 어린 망아지를 흥분시킬 수 있으니까요."
"여왕님은 말 조교사 몬티 로버츠를 아주 좋게 보셔서, 어린 말들에게 로버츠의 방식을 많이 적용하셨어요. 예를 들어 물 위를 걸을 때 무서워하지 않도록 먼저 파란색 비닐 위를 걷게 했죠. 그랬더니 다양한 경주장에 더 빨리 적응했고 더 안정적으로 행동했어요."
여왕은 '의무(Duty Bound)', '헌법(Constitution)', '결정권(Discretion)'과 같이 명확한 뜻을 가진 단어를 말의 이름으로 정하기도 했다.
승마에도 뛰어났던 여왕은 1981년 '군기분열식(Trooping the Colour)'에서 공포탄 총격 사건이 발생한 후에도 안장에 능숙히 올라타며 기량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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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티메이트를 비롯해 100필 이상의 왕실 우승마를 훈련시킨 조교사 마이클 스타우트 경은 여왕을 위해 일할 수 있어 기뻤다고 말한다.
"여왕님의 깊은 이해, 지식, 의지 덕분에 조교는 전혀 힘들지 않았습니다. 여왕님은 항상 다음을 생각하셨죠. 이 말에게 무엇이 필요할지, 교배를 진행할지, 어떤 말과 교배시킬지, 말의 기질·속도·체력 등 모든 고민에 푹 빠져계셨어요."
여왕이 가장 아낀 기수 중 한 명인 프랭키 데토리는 큰 경주에서 승리한 뒤 여왕과 종종 농담을 나눴는데, 애스콧에서 '킹조지4세 & 퀸엘리자베스 스테이크스' 우승 후를 다음과 같이 회상햇다.
"내가 '이렇게 조지4세 대회에서 4번째 우승하네요'라고 하자, 여왕님은 날 향해 눈썹을 치켜뜨시며 '(영국의 기수) 레스터 피곳은 7승이나 거뒀지'라고 말씀하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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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은 마주로서 5대 '브리티시 클래식' 대회 중 4개 대회에서 승리했다.
1977년 여왕의 즉위 25주년하고도 3일 전 '던펌린(Dunfermline)'이 '엡섬 오크'에서 우승했고, 같은 해 '세인트 레저'에서도 우승을 거머쥐었다. 그 이전에는 '카로짜(Carrozza)'의 1957년 엡섬 오크 우승, '폴 몰(Pall Mall)'의 1958년 2000 기니 우승, '하이클레어(Highclere)'의 1974년 1000 기니 우승이 있었다.
가장 큰 대회인 '엡섬 더비'는 여왕의 손에 쉽게 들어오지 않았다. 대관식이 열린 1953년 대회에서는 '오레올(Aureole)'이 '핀자(Pinza)'에 이어 2위로 들어왔다. 당시 새로 작위를 받은 기수 고든 리처드 경이 26번째 도전 끝에 '핀자'의 승리를 이끌었다. 2012년 '칼튼하우스(Carlton House)'도 아쉽게 3위로 들어왔다.
12개월 후 에스티메이트의 애스콧 우승 상금이 15만파운드(약 2억4000만원)에 달하는 등, 여왕은 수년간 수백만 파운드를 벌어들였을 것이다. 물론 우승 상금 대부분은 훈련 및 기타 비용으로 나가고, 승리보다 참가에 의의를 둔 것으로 보인다.
워런의 말에 따르면 여왕에게 경마는 다른 의무에서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소중한 휴식처"였고, 여왕의 지원은 영국 경마 부흥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여왕님께서 군주가 되지 않으셨다면 말과 함께하는 일을 찾으셨을 겁니다. 그렇게 태어나신 분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