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는 어떻게 '모든 것'이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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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 크리스틴 탈만
- 기자, BBC 어스
‘ESG’는 원래 환경과 사회, 거버넌스를 고려한 기업의 비즈니스 의사 결정을 설명하는 용어였다. 그런데 어쩌다 이 용어의 뜻이 달라진 것일까?
세계 정상들이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를 위해 모여든 2015년의 파리는 기대감으로 들끓었다. 격렬한 토론에 이어 12월 12일, 세계 196개국은 2050년까지 탄소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든다(net zero·넷제로)는 목표를 밝히며 기후변화 대응을 약속했다.
기업 측면에서 볼 때, ESG 운동의 신호탄은 비즈니스 의사 결정에 있어서 환경과 사회, 거버넌스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기업들은 넷제로 목표에 맞춰 각자의 야심찬 캠페인을 쏟아냈다. ESG에 초점을 맞춘 전략은 다양했지만, 특히 녹색 에너지 전환과 화석연료 부문 투자 회수가 목표에 자주 포함됐다.
예컨대 미국의 통신기업 ‘버라이즌’은 2025년까지 자사의 연간 전력 소비량 50%에 해당하는 재생 에너지를 생산하겠다고 약속했다. 프랑스 보험사 ‘악사’는 2030년까지 석탄 산업과 관계를 끊겠다고 했다. 그리고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 사건 이후 ‘애플’, ‘애브비’, ‘페이스북’, ‘화이자’, ‘존슨앤존슨’, ‘프록터앤갬블’ 같은 글로벌 기업들은 인종적 정의(racial justice)를 증진하기 위해 총 3400억달러를 기부하기로 약속했다.
기업들이 화려한 ESG 공약을 제시한 지 몇 년이 지나고 일부 기업들은 주가 부양과 기업 평판 개선 효과를 누리기도 했지만, 그 사이 이 용어는 긍정적 변화보다는 혼란, 심지어 말썽으로 이어졌다. 미국 뉴욕대 스턴 경영대학원 교수인 앨리슨 테일러는 실제로 이러한 ESG 약속 중 일부는 경영진 관련 문제를 많이 일으켰다고 말했다. 그리고 ESG 운동이 점차 '워크(woke·깨어 있다는 뜻)' 자본주의로 치부되면서, 동시에 이것이 그린워싱을 가능하게 한다는 비난도 거세지고 있는 상황이다.
테일러는 이런 상황으로 인해 기업들이 넷제로 공약을 계속 발표하면서도, 비즈니스 결정에 ESG 라벨을 붙이는 것을 꺼리게 됐다고 말했다. 특히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대중의 기대가 높아지는 시기에,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한 채 이 용어에 기댔다가 대중의 더 큰 반감을 살 것을 우려하는 기업들이 이런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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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하기 어려운 ESG라는 표현
ESG 운동의 취약점, 그리고 어떤 측면에서는 이 운동의 몰락을 촉진한 원인으로는 ‘구체적인 의미 없이 포괄적인 캐치프레이즈가 돼 버린 용어’를 들 수 있다.
런던 비즈니스 스쿨 재무 담당 교수 알렉스 에드먼스는 우선 이 단어들이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환경과 사회는 우리가 자신의 이해관계를 넘어서 더 넓은 사회에 어떻게 기여하는지와 관련된 것”이라며 “하지만 거버넌스는 투자에 대한 보상 방법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환경 공약으로 넷제로 계획이 세워지고, 사회 공약으로 공정한 고용 보장이 등장할 수 있다. 거버넌스는 CEO와 직원의 급여 비율과 같은 기업 정책의 뼈대를 뜻한다. 그런데 이런 구상들이 기능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벤처 캐피탈 ‘EQT 그룹’의 런던 수석 고문인 타라 쉬르바니도 세 개 단어를 하나로 묶다 보니 용어의 뜻이 모호해져서 실제 적용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데 동의했다.
그는 “리튬 채굴 기업을 예로 들어 보겠다”며 “에너지 전환 혁명을 위해서는 많은 양의 리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따라서 이 기업은 ‘E(환경)’ 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채굴 작업 시 그린 전기를 사용하는 라틴 아메리카의 리튬 공급업체로 거래처를 바꿀 수 있다. 그러나 해당 공급업체가 ESG에서 ’S(사회)’에 해당하는 요소인 노동법을 위반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다.
명확한 정의와 현실적인 실천 방안이 없다 보니, 사람마다 ESG를 다르게 받아들이고 있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이 이 용어가 녹색 금융 투자나 탄소 배출을 줄이겠다고 약속한 기업에 대한 지원만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반면 어떤 이들은 ‘신념에 기반한 투자’처럼 더 넓은 의미로 ESG를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기업들은 비즈니스 의사 결정에 ESG 요소를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있다. 그리고 기업의 ESG 약속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투자자들도 많다. 회계컨설팅 기업 ‘PwC’는 ESG에 초점을 맞춘 기관 투자가 2022년부터 2026년 사이 84% 늘어, 관리 자산 규모가 33조 9천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ESG에 초점을 맞춘다고 강조하는 것이 특정 ETF에 편입되거나 개인적 가치에 포트폴리오를 맞추고자 하는 개인 투자자에게 어필하는 등의 이점으로 작용한다. 금융 기업 ‘블랙록’의 최고 경영자인 래리 핑크도 연례 서한을 통해 수익과 함께 기후 위기를 고려하고 더 넓은 사회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기 시작했다.
일부 기업의 경우 ESG에 초점을 맞추는 노력을 통해 기업의 인지도를 높이고 언론 헤드라인을 장식했으며 투자자들의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에드먼스는 동시에 ESG를 신경 쓰는 기업이 되려는 노력이 과도해지면서, 용어가 남용되고 그 의미가 평가절하됐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ESG를 기업의 좋은 점을 표현하는 용어로 사용합니다. ‘이 회사가 운영을 잘 하고 있으니 ESG가 좋다고 하자’는 보고서도 나올 정도죠.”
쉬르바니는 그래서 사실 “대형 투자자들을 비롯한 많은 투자자가 이 세 가지 요소를 함께 묶기를 꺼리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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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선 가운데에 놓인
ESG 용어의 남용은 그 기반에 균열을 만들기 시작했고, ESG로 칭찬 세례를 받았던 많은 기업들이 곤경에 처하게 됐다.
ESG가 정치적 분열 요소가 된 것이다. 미국에서는 론 드산티스 플로리다 주지사와 같은 일부 정치인들이 “깨어 있는” 좌파들이 이익보다 이념을 우선시하는 메커니즘으로 ESG 투자를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텍사스주 공화당 의원들은 반(反) ESG 법안을 추진했고,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은 ESG 투자자들이 투표소에서 이루지 못한 것을 기업의 세계에서 이루려 한다고 주장했다. 영국에서는 리시 수낵 총리가 넷제로 입법이 영국 국민의 권리를 위협하는 정부의 지나친 권한 남용이라고 말했다.
반면에 ESG 지지자들은 기업이 지속가능성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도이체방크’의 자산 관리 부문인 ‘DWS 그룹’에서 지속가능성 책임자를 맡았던 데지리 픽슬러는 도이체방크가 펀드에서 ESG를 오도하고 과장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 ‘시티’, ‘산탄데르’ 같은 금융기관들은 2021년 글래스고에서 열린 기후변화당사국총회(COP27)에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은 후 기후 ETF에 자금을 투입하지 못했다. ‘넷플릭스’는 다양한 콘텐츠와 인재를 해고한 후 비난을 받았다. ‘H&M’, ‘KLM’, ‘나이키’, ‘삼성’ 등의 브랜드는 그린워싱 방지 소송에 휘말렸다.
에드먼스는 “나는 ESG를 옹호하는 사람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나 역시 ESG에 대한 반발이 상당히 타당한 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ESG) 펀드는 ‘나에게 투자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세상을 바꾸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반발하는 겁니다.”
테일러는 오늘날 일부 경영진은 이 용어와 선을 그으려 하는 경향이 있지만, 다음 세대의 리더들은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학생들에게 ‘비즈니스’도 한때는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었다고 설명한다”고 했다. 하지만 현재의 학생들에게 정치에서 독립된 비즈니스 개념은 과거의 유물일 뿐이다. “그들은 더 이상 그런 것은 가능하지 않다고 말하죠.”
테일러는 학생들이 ESG와 관련된 약속에 대해 큰 기대를 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비즈니스는 다양성 문제나 화석 연료 사용 중단 등 사회가 돌아가는 흐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화가 진행됐고 기후 변화 및 여러 가지 사회적 이슈가 있는 오늘날, 기업의 비즈니스 관행에 대한 감시는 강화되고 있다. 기업이 ESG라는 용어를 사용하든 사용하지 않든, 투자자들은 기업이 환경과 사회, 거버넌스를 최우선으로 고려해 행동하도록 점점 더 많은 압박을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