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의 절대 권력자 그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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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오는 16일 개막 예정인 제20차 공산당대회에서 사상 초유의 3연임을 공식화할 예정이다.
이미 지난 2018년 당대회에서 1990년대 제정된 국가주석의 연임 제한 규정이 없어진 상황에서 이번 당대회는 시 주석의 종신 집권을 향한 발판이 될 전망이다.
2012년 시 주석이 집권한 이래 중국은 국내적으로도 더욱 권위주의적인 국가로 변해갔다. 정치적 반대자, 비판론자는 물론 영향력 있는 억만장자와 기업도 탄압했다.
이에 시 주석을 "마오쩌둥 초대 주석 이후 가장 권위적인 지도자"로 묘사하는 목소리도 있다.
실제로 시 주석이 이끄는 중국 당국은 신장위구르자치구에 일명 "재교육" 캠프를 세워 위구르족 등 다른 소수민족의 인권을 유린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으며, 홍콩에 대해서도 강력한 통제 정책을 폈다. 게다가 필요하다면 무력으로라도 대만과 "재통일"할 것이라는 강경한 태도를 내세우고 있다.
시 주석의 막강한 영향력은 지난 2017년 제19차 당대회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시 주석의 정치 이념인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을 당장(당의 헌법)에 기재하기로 한 것이다.
공산당 초대 주석이자 창건자인 마오쩌둥과 1980년대 경제 개혁을 도입한 덩샤오핑 전 주석 시대를 이어 중국 역사상 3번째 '역사결의(중국 공산당의 역사를 결산하는 주요 문건)' 채택이었다.
태자당, 농민, 대통령
시 주석은 1953년 베이징에서 공산당의 혁명 원로이자 부총리직까지 올랐던 시중쉰의 아들로 태어났다.
권력자인 아버지를 둔 시진핑은 '태자당(중국 공산당 고위 관료의 자제)'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아버지가 1962년에 수감되면서 시 가족의 운명은 크게 변하게 된다. 의심이 많아 반란이 두려웠던 마오쩌둥이 잠재적으로 경쟁자가 될 수 있는 인사들을 대상으로 숙청 작업에 돌입한 것이다.
이후 1966년 소위 '문화 혁명'이 일어나면서 수백만 명이 중국 문화의 적으로 낙인찍히는 등 중국 전역이 폭력과 혼란에 빠진다.
시 가족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공식적인 기록에 따르면 시 주석의 이복 큰 누이이자 시중쉰의 장녀는 박해 끝에 사망한 것으로 돼 있으나, 미 '뉴욕타임스'는 당시 당 지도층에 대해 잘 아는 어느 역사학자의 설명을 인용해 누이는 고통스러운 상황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라고 보도했다.
시진핑 또한 엘리트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쫓겨나는 것은 물론 15살엔 수도를 떠나야 했다. 그렇게 "재교육"과 노동을 명분으로 북동부 산시성의 가난한 지역인 량자허에서 7년을 보내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도 시진핑은 공산당에 등을 돌리기는커녕 오히려 입당하고자 애썼다. 그러나 아버지가 반동으로 찍힌 까닭에 여러 차례 퇴짜맞는다.
결국 1974년 허베이성에서 공산당에 입당하게 된 시진핑은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며 당내 입지를 굳혀 나간다.
그러던 1989년 베이징 톈안먼(천안문) 광장에서 정치적 자유를 요구하는 항쟁이 촉발됐을 당시 시진핑은 35세의 나이로 푸젠성 남부 닝더시 지구 당서기를 맡고 있었다.
닝더시는 수도에서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으나, 시 주석은 다른 당 관료들과 마찬가지로 시위가 지방으로 번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애썼다고 전해진다.
공산당 내부 분열을 보여줬던 이 반부패 항쟁은 끝내 유혈 진압됐으며, 지금까지도 중국에선 검열 탓에 역사책이나 공공 기록에서 톈안먼 항쟁과 관련한 기록을 찾아보기 힘들다.
사망자가 수백 명에서 수천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는 등 유혈진압이 문제로 제기되면서 중국은 2000년 올림픽 유치 경쟁에서 패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거의 20년 후인 2008년 시진핑은 하계 올림픽 개최권을 따내게 된다. 중국은 올림픽을 계기로 중국은 앞으로 나아가는 국가 이미지를 내세우고자 했다. 그리고 실제로 강력하게 부상하는 중국의 존재를 세계에 각인시키면서 효과가 있는 듯했다.
시진핑 또한 당내에서 입지와 인기를 굳히면서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까지 승승장구했으며, 결국 2012년 최고 지도자 자리에 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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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시 주석의 아내이자 유명 가수 출신인 펑리위안은 남편과 함께 중국의 '퍼스트 커플'로 관영 언론에서 비중 있게 다뤄지는 인물이다.
이는 전통적으로 영부인의 존재를 크게 강조하지 않았던 이전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시 주석은 펑리위안과 딸 하나를 뒀다. 그러나 시밍쩌라는 이름과 하버드대학에 입학했다는 사실 외에는 딸에 대해 알려진 바는 많지 않다.
시 주석의 다른 친인척과 이들이 해외에서 벌이고 있는 사업을 종종 국제적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차이나 드림'
시 주석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며 자신의 중국몽 비전을 열렬히 내세운다.
이러한 시 주석의 집권 이래 세계 2위의 경제 규모를 자랑하는 중국은 비대해진 국유 산업을 줄이는 등 성장 둔화를 타개하기 위한 개혁에 착수했다.
그뿐만 아니라 수십억 달러를 들여 '일대일로' 전략에 착수해 세계 무역 무대에서의 입지를 넓히기 위해 애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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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남중국해에서 점점 더 강경하게 야심을 드러내는 한편 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역엔 수십억 달러를 투자해 문화적 영향력을 확장하는 등 중국은 국제 사회에서 더 강력한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간 기하급수적인 성장세를 보였던 중국 경제는 시 주석의 강경한 '제로 코로나' 정책의 여파로 일부 크게 둔화했다. 방역 정책에 따라 전 세계로부터 사실상 문을 걸어 잠갔기 때문이다.
한때 호황기를 누렸던 중국의 부동산 시장은 깊은 침체기에 빠졌으며, 세계 경제성장률 또한 최근 몇 달간 전망이 어둡다.
게다가 미국과의 격렬하고도 파괴적인 무역 전쟁은 끝날 기미조차 없다.
'마오쩌둥 이후 가장 권위적인 지도자'
시 주석은 집권 이후부터 당의 최고위층을 포함해 광범위한 부패 단속을 지시했다. 비평가들은 이를 정적 숙청으로 해석한다.
또한 시 주석이 집권하면서 중국에선 자유가 점점 더 억압받고 있다.
신장자치구 지역의 인권 단체는 지난 몇 년간 무슬림 위구르인 100만 명 이상이 당국의 "재교육" 캠프에 구금됐다고 주장한다. 물론 중국 당국은 해당 지역에서 집단 학살이 자행되고 있다는 미국 등 다른 국가의 비난을 일체 부인한다.
시 주석 치하에서 홍콩에 대한 통제도 더욱 심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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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주석은 2020년 국가보안법을 통과시키면서 홍콩 내 민주화 시위의 숨통을 끊었다. 해당 법은 이른바 국가 분열, 국가 전복, 테러 활동, 외국 세력과의 결탁 등을 범죄로 규정하며 최고 무기징역형으로 처벌할 수 있다고 명시한다. 이에 따라 옛 영국 식민지였던 홍콩인들의 삶은 크게 바뀌었다.
이 국가보안법에 따라 홍콩의 유명 민주화 운동가와 정치인이 대거 체포됐을 뿐만 아니라 '빈과일보'나 '스탠드 뉴스' 등 대표적인 언론사도 문을 닫았다.
한편 시 주석이 이끄는 중국은 대만과의 "재통일"을 이뤄내겠다면서 대만 또한 더욱 주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대만의 독립 시도를 사전 방지하기 위해 군사력을 내세워 위협하고 있다.
중국의 힘과 영향력을 감안한다면 시 주석은 예상한 대로 3연임을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뚜렷한 후계자도 없는 상황에서 69세의 시 주석은 단연코 1970년대 마오쩌둥의 사망 이후 중국에서 등장한 가장 강력한 지도자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