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만인이다' … 중국과 거리두는 대만인들의 정체성

사진 출처, Getty Images
- 기자, 루퍼트 윙필드-헤이즈
- 기자, BBC News, 대만
매년 10월 10일은 또는 '더블 텐(Double Ten)'은 대만의 국경일이다.
매년 이를 기념하는 행사가 열리지만, 중국과의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 속에 올해는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중국 당국은 그 어느 때보다도 대만은 자국 영토의 일부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며, 특히 이와 관련해 강경하게 "재통일"의 뜻을 고수해온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이번 주 역사적인 공산당대회에서 재연임 확정을 앞두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10월 10일은 대만 섬 혹은 대만 역사와는 관련이 없다.
사실 이 기념일은 1911년 현재 중국 중부 우창 지역에서 봉기가 시작한 날을 기념한다는 취지로 제정됐다. 이 봉기를 기점으로 한 신해혁명으로 결국 중국 마지막 청 황조가 무너지고 중화민국이 수립됐다.
그렇다면 대만에선 왜 이날을 기념할까. 왜냐하면 대만의 공식 명칭은 여전히 '중화민국'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대만에선 청색과 적색 바탕에 하얀 태양이 그려진 청천백일만지홍기를 국기로 채택하고 있다.
이러한 독특한 상황은 중국 국공내전에서 비롯한다고 볼 수 있다. 1949년 중국 공산당에 패배한 장제스와 국민당은 대만 해협을 건너 대만 섬으로 도망쳤다.
대만의 초대 총통이 된 장제스는 철권 통치를 펼치며 자신을 필두로 한 이 정권이야말로 "자유 중국의 진정한 민주적인 정부"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오늘날 이는 약간은 황당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리고 많은 대만인들, 특히 청년들은 더욱 그렇다.
미국인과 결혼해 자녀 둘을 낳고 타이베이에서 승무원으로 일하는 하니 셴(38)의 발언은 바로 이러한 대만 청년층의 변화를 잘 보여준다.
"조부모는 중국 (본토) 출신이시고 여전히 애국자이시다"는 셴은 "그러나 나는 대만에서 나고 자랐다. 내가 대만인이라는 것에 아무런 의심도 없다. 중국은 내 조국이 아니다. 중국은 대만을 소유한 적이 없다. 중국에서 대만으로 도망친 사람들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이 섬의 소유권을 지녔다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렇게 생각하는 건 셴뿐만이 아니다.
2020년 실시한 어느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만인의 절반 이상이 완전한 독립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다른 조사에선 그 수치가 3분의 1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올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70~80% 대만인들이 자신을 "대만인"이라고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10년 전 당시 절반가량의 인구가 자신을 "중국인"으로 여기던 것에 비해 매우 증가한 수치다.
한편 중국 당국은 이렇게 자신들과 멀어지는 대만 내 변화를 간과하지 않고 앙갚음에 나서고 있다.
지난 8월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행 이후 대만에선 중국이 언제 침략할지에 대한 많은 말들이 있었다.
그런데 비교적 언급이 덜 되는 주제가 있으니 바로 이미 진행 중인 중국의 경제 압박이다.

중국은 대만, 특히 대만 식품 산업의 주요 고객이다.
대만 남서쪽 타이난 해안을 따라 운전하다 보면 어디서 육지가 끝나고 바다가 시작하는지 그 구분이 모호하다. 이 거대한 진흙의 소금물 연못은 겉보기엔 아름답지 않을 수 있으나, 그 아래엔 엄청난 보물이 숨겨져 있다.
이 지역에서 어느 연못에 정어리를 붓고 있는 쑤 궈진을 만났다. 거대한 물고기 수십 마리가 먹이를 먹기 위해 서로 밀치면서 물거품이 일었다. 쑤는 그루퍼(농어목 생선) 수백 마리를 기르고 있다.
"연못에 발 넣지 않는 게 좋다"는 쑤는 웃으면서 "그루퍼들은 자신의 영역에 민감하고 공격적"이라고 말했다.
그루퍼는 비싼 값에 팔린다. 다 자란 크기의 그루퍼는 상하이와 베이징에서 2000달러(약 280만원)까지 몸값이 올라간다.
그런데 올 여름 대만산 그루퍼의 약 80%가 중국으로 수출됐으나, 이젠 그 숫자가 0으로 뚝 떨어졌다.
"중국은 그루퍼 최대 시장"이라는 쑤는 "중국인들은 연회나 기념행사에서 그루퍼를 즐긴다. 인기가 좋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지난 6월 대만산 그루퍼 수입을 금지하면서 주문이 끊겼으며, 가격이 폭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들의 생각에도 변화가 찾아왔다는 게 쑤의 설명이다.
"나이 든 나 같은 어민들은 걱정이 크지만, 젊은 어부들은 걱정하지 않습니다. 청년들은 만약 중국이 사지 않는다면 전 세계 다른 시장에서 내다 팔면 된다는 생각입니다."
쑤의 딸과 사위가 바로 이러한 경우다. 이들 부부는 싱가포르, 미 샌프란시스코, 캐나다 밴쿠버 등을 대상으로 쑤가 키우는 그루퍼를 홍보하고 있다.
또한 대만의 파인애플 농장주들은 올해 수확한 파인애플을 일본으로 수출했다.
이처럼 대만의 농업은 어려운 과도기를 겪고 있다.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크게 의존해 현재 문제에 직면한 유럽처럼 대만은 중국이라는 드넓은 시장에 크게 의존하면서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됐다.

한편 이러한 경제 압력은 중국의 의도와는 달리 역효과를 낸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 수치가 3분의 1에 가까웠던 조사 결과도 있지만, 2020년 여론조사에선 대만인의 약 절반이 현재 중국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인 독립을 지지한다고 응답했다.
그런데 지난해 여론조사에 따르면 약 75%의 대만인이 중국의 침략에 맞서 싸우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대만인으로서의 정체성 증가'는 대만이 써 내려간 역사에 대한 시민들의 자랑스러움이 반영된 결과로도 볼 수 있다. 대만은 힘겹게 민주주의를 이뤄냈으며, 이젠 아시아에서 가장 열린 사회를 향해 크게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 속에 대만인은 중국의 위협을 단순히 대만 정치 세력에 대한 위협뿐만이 아니라 자신들이 누리는 모든 권리와 자유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일례로 대만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지역이다.
대만에서 동성 결혼을 한 모타 린은 "동성애자라는 건 절대 알려서는 안 되는 비밀이었다"면서 "그런데 이제 우리는 세상에 나올 수 있다. 정부가 우리를 받아들이고 인정해주니 사람들의 태도가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린은 아내인 시티 첸과 딸 린-첸(2)과 함께 타이베이 남부에 살고 있다. 이들 부부의 집은 벽엔 가족사진으로, 바닥은 온통 아기 장난감으로 가득했다.
린과 첸은 부모가 된다는 것에 크게 기쁨을 느꼈고 이제 첸은 둘째를 임신 중이다.
린보다 나이가 어린 첸은 대만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더 열정적인 모습이었다. 대만에 대한 중국의 위협에 관해 묻자 첸의 눈에선 분노가 번뜩였다.
"대만은 독립적으로 주권을 지닌 국가"라는 첸은 "중국이 대만을 차지하고자 한다면 우크라이나에서의 러시아처럼 전쟁을 벌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쟁이 발발하면 가족의 안전이 최우선이다. 그래서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전쟁은 떠올리기만 해도 끔찍하다. 그러나 모타 린, 시티 첸, 쑤 궈진, 하니 셴 등 2300만 대만인은 현재 그 어느 때보다도 전쟁 발발 위험성이 큰 현실에 직면했다.
지난 30년간 대만인들은 독특한 대만만의 무언가를 만들어냈고 오늘날 자랑스럽게 이를 기념한다.
그리고 중국이 어떤 위협을 가하든 대만인들은 이를 포기할 생각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