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척'으로 구사일생한 부차 민병대 학살의 유일한 생존자

Ivan Skyba
사진 설명, 부차의 러시아기지에서 자행된 우크라 민병대 학살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 이반 스카이바
    • 기자, 퍼갈 킨
    • 기자, BBC News

택시 운전사이자 네 아이의 아버지인 이반 스카이바. 그는 어쩌다 보니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될 무렵 교외의 거리를 방어하게 됐다.

러시아군에 의해 죽을 뻔했던 위기도 간신히 넘겼다.

하지만 그와 함께했던 다른 우크라이나 남성들은 운이 그렇게 좋지 않았다. 현지 검찰은 작은 도시인 부차에서 일어난 일을 전쟁 범죄로 다루고 있다. BBC 특파원 퍼갈 킨이 유일한 생존자 이반을 만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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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한 번이 간절했다.

심리적 압박을 덜기 위해 숨 한 번만 크게 내쉬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이는 이반에겐 죽음을 의미한다. 당시 기온은 영상을 살짝 웃돌았다.

이 차디찬 공기로 내쉰 따뜻한 숨은 작은 입김을 만들 것이고 곧 살인자들에게 나 여기 있소라고 알려주는 꼴이다. 이들은 방금 총살한 사람들의 시체를 확인하고 있었다.

살아있는 흔적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에겐 마지막 방아쇠를 당겨 확인 사살했다.

그러던 중 이반은 러시아 군인 한 명이 말하는 것을 듣게된다. "저 사람은 아직 살아 있다!"

혹여나 자신을 두고 하는 이야기인지 초조해진 이반. 다른 사람이겠지 싶지만, 혹시 모를 총격에 대비해야만 했다.

이미 옆구리에선 부상으로 피가 흐르고 있던 상황.

또 다른 러시아인이 말한다. "저 사람은 저러다 죽을 거야."

그리고 총 한 발이 발사된다.

다른 사람을 겨냥한 한발이었다.

이반의 옆구리에 있는 총상은 너무나 끔찍한 통증을 일으켰다.

그렇지만 고통에 울부짖는 것은 목숨을 내놓는 행동이었다. 이 모든 일이 나중에 꿈에 나타나겠지.

일단, 이반은 사망자들 사이에 누워 있어야만 했다. 살해된 동료들처럼 움직이지 않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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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폴란드 시골의 한 작은 마을에서 이반 스카이바를 만나게 됐다.

그곳에서 이반은 가족을 위한 쉼터를 찾았다. 직업도 갖게 됐고 아이들도 두려움 없이 살고 있다.

날씨가 따듯해지면서 저녁 시간에 가족들은 이반이 낚시하는 호수가 있는 동네 공원에 산책하러 간다. 이반의 얼굴과 몸에 난 상처는 아물었다.

하지만 모두가 잠든 밤이 될 때면 이반에겐 상처 가득한 그때의 기억이 돌아온다. 이반 스카이바는 죽음에서 돌아온 사람이다.

이 모든 것이 시작된 2월 24일의 새벽. 이반은 키이우에서 택시를 몰고 있었다.

그때 들리던 폭발음. 이반은 진짜로 전쟁이 일어난 건지 믿기 어려웠다.

"저는 설마 전쟁이 발발할 것이라곤 상상도 못 했어요."

동영상 설명, '우린 서로 편 가르지 않았으면'...한국 거주 우크라-러시아인들의 외침

배차원은 이반에게 전화를 걸어 모든 택시가 차고지로 복귀해야 한다고 전했다.

43세의 이반은 아내와 네 명의 아이들을 부양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했다.

택시를 운전했고 때로는 건물 개보수도 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공격을 받은 아침, 이반의 머릿속에는 가족의 신분증을 챙기는 일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피난길에 나서야 한다면 여권이 필수였다.

이반은 차로 가족의 주소지인 브로바리를 향해 40km를 빠르게 밟았다. 거기서부터 아내가 아이들과 방문 중인 친정이 있는 부차까지 운전했다.

이들은 부차에서 다음 계획을 세울 때까지 머물 요량이었다.

"러시아군이 부차에 접근하고 있다는 소식이 돌았습니다. 우리는 지하실에 피난처를 마련하기 시작했고, 그곳에 물건들을 가져다 놓았습니다."

Ivan Skyba and Svyatoslav Turovsky with Ivan's daughter Zlata

사진 출처, Ivan Skyba

사진 설명, 이반(왼쪽)과 친구이자 딸의 대부인 스뱌토슬라프 투롭스키(오른쪽)

3일 후인 2월 27일, 러시아군이 부차 근처까지 왔다.

그러나 러시아군은 도착 즉시 잠복해있던 우크라이나군의 포격을 받는다.

복잘나 거리에 진을 치고 있던 러시아 공수부대는 공격당하자 일단 퇴각했다. 러시아군은 주민 일부가 우크라이나 군에 자신들의 위치를 알려줬다는 확신에 분노가 치밀었다.

이때쯤, 우크라이나 전역에서는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움직임이 일었다.

부차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반 스카이바는 친구이자 아이들의 대부이기도 한 스뱌토슬라프 투롭스키로부터 남성들이 지역 사회를 보호하려고 국토방위군의 민병대를 부차에 결성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들은 동부 돈바스에서 러시아 지원을 받는 분리주의자들과 싸운 경험도 있었다.

두 사람은 곧 민병대에 합세했다.

"우리는 검문소에서 사람들의 서류를 확인하고 이들이 무기를 소지하진 않는지 등을 확인하는 업무를 했습니다. 우리는 이 지역을 잘 알고 있어 사람들이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이반의 부대는 무장이 허술했다.

소총 한 자루, 수류탄 한 자루, 쌍안경 한 쌍을 9명의 병사가 나누어 써야 했다.

이반과 동료들은 야블룬스카 거리의 검문소에서 교대로 근무했었다.

야블룬스카는 우크라이나어로 "사과의 거리"를 뜻하는데, 거의 6km로 쭉 들어선 나무들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평상시 이곳은 호수가 있어 낚시하기에 좋은 평화로운 곳이었다.

이 지역은 소련 시대에 지어진 오래된 사무실 단지의 터이기도 하다. 그 단지 일부는 지역 사업체를 위한 일터로 탈바꿈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후에 야블룬스카 거리 144번지는 전쟁의 참혹함을 간직한 러시아 기지로 활용된다.

Map showing Yablunska Street in Bucha

3월 초쯤에 이르자 피난에 나선 우크라이나인 규모는 수십만 명에 달했다.

이반 가족은 당분간 부차에서 피신하기로 했다. 그는 당시 민병대엔 전투력이 넘치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두려움 따윈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저 단결하고, 함께하고 싶어 했죠. 항상 서 있었습니다. 비번일 때도 저희는 지하에 대피해 있는 사람들, 여성과 아이들에게 음식을 나누어주곤 했습니다. 두려움을 느낄 여유 조차 없었습니다."

이랬던 상황이 지난 3월 3일에 극적으로 바뀌게 된다. 러시아군이 "3월 3일 오후쯤, 점심시간 무렵" 돌아온 것이다.

즉시, 이반과 동료들은 차들이 러시아군 진격 방향에서 멀어지도록 안내했다.

러시아 군은 무차별적으로 발포했고 하늘에선 로켓이 떨어지고 있었다.

이반은 공격받아 불타고 있는 흰색 르노 차 안에서 한 여성이 아이들과 꼼짝없이 갇혀 있는것도 목격하게 됐다.

이반의 검문소에는 남성 8명이 있었는데, 이들은 러시아군이 빠르게 접근하자 일단 숨기로 했다.

검문소 바로 맞은편 야블룬스카 거리 31번지에는 발레라 코텐코의 집이 있었다.

53세의 발레라는 이반과 동료들에게 따뜻한 음료와 음식을 내주었다.

발레라는 자기 집을 피난처로 제공했다. 하지만 곧 러시아인들도 발레라 집 바깥에 와있었다.

Ivan Skyba on Yablunska Street holding a rifle

사진 출처, Ivan Skyba

사진 설명, 야블룬스카 31번지의 검문소에서 근무 중인 이반

"인기척을 느낄 수 있었고 그들의 장비가 움직이는 것도 들렸죠. 러시아군에 의해 포위된 거죠."

이반과 동료 남성들은 귓속말로 대화해야만 했다. 도망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러시아 군에겐 야간 탈출 시도도 쉽게 잡아내는 열화상 탐지기가 있었다.

이들은 몇 안 되는 무기마저 버리기로 하고, 입을 맞추기로 했다.

러시아인들이 물으면 자신들은 이 지역 건설업자고 피신하기 위해 숨어 있었을 뿐이라고 하기로 했다.

이들은 아내와 여자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이반은 아나톨리 프라이키드코가 3월 3일 저녁 부인 올하에게 전화를 해 "너무나 조용해 누군가 들을 수 있어서 말을 할 수 없었다"고 속삭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나톨리는 부인에게 숨어있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다음 날 아침, 율리아는 남편 안드리 드보르니코브에게 "우리는 포위돼 일단 여기 앉아 있지만, 나는 기회가 생기면 여기를 떠날 것이다"는 내용의 문자를 받았다.

안드리는 부인에게 휴대전화에 있는 모든 문자와 사진을 삭제하라고 했다.

그리고 아내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Olha and Anatoliy Prykhidko

사진 출처, Olha and Anatoliy Prykhidko

사진 설명, "오전 10시, 남편이 아직 앉아있다고 문자를 보내왔는데, 그게 마지막 남편이 보낸 마지막 문자였어요"

올하 프리이키드코는 눈물을 흘리며 3월 4일 아침 남편 아나톨리가 보낸 마지막 문자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10시에 그는 '우리는 아직도 앉아 있다'는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게 마지막 문자였습니다."

아나톨리가 마지막 문자를 보낸지 한 시간도 안 돼, 러시아군이 쳐들어왔다.

이반은 구타당했고 소리쳤다. 그의 휴대전화와 신발도 고스란히 압수됐다.

11시경 CCTV 두 대에 야블룬스카 144번지 쪽으로 끌려가는 남자들의 모습이 포착됐다.

각각 머리에 한 손을 얹고 다른 한 손은 앞사람의 허리띠를 잡고 있었다.

그들은 러시아 기지 옆 벽을 마주한 채 줄 서 있었고, 러시아인들은 이들을 무릎 꿇렸다.

러시아인들은 이들의 상의를 머리 위로 올려 시야를 가렸다.

소총 바닥으로 구타당했고 언어폭력도 당했다.

이반은 러시아 군인들이 "너희들은 반데라 전사(2차 세계 대전 활동했던 반소련 민족주의 그룹)야. 화염병으로 우릴 태워 죽이려 했잖아! 이제 너희들을 산 채로 태워버리겠다!"라고 했다고 전했다.

동영상 설명, CCTV에 러시아군의 총구에 이끌려 남성들이 줄지어 가는 모습이 포착됐다

이반은 러시아군이 28세의 비탈리 카르펜코를 총살하면서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고 말했다.

이 일이 있고 난 뒤, 겁에 질린 한 젊은이가 러시아인들에게 그들이 민병대 소속 이라고 털어놨다. 구타는 더 심해졌다.

이반과 안드리는 어떤 건물 안으로 호출됐다.

그 안에선 심문이 이어졌고 러시아인들은 이반의 머리에 양동이를 씌운 뒤 벽을 향해 엎드려뻗쳐를 시켰다.

이반의 등위엔 그가 쓰러질 때까지 벽돌이 계속 쌓였다.

그는 또 구타당했고 벽돌은 반복적으로 양동이에 떨어졌다.

그는 경찰이 안드리에게 발을 싸버리겠다고 윽박지른 걸 들은 기억도 있다. 그리고 들려온 총성 한 발. 그 후 이반은 안드리의 소릴 듣지 못했다.

그러고 나서 이반은 일행과 합류하기 위해 건물 밖으로 내보내 졌다.

그곳에서 일어난 사건 중 일부를 목격한 동네 주민도 있었다.

이들은 러시아인들의 명령으로 144번가 앞에 집합했지만 체포된 이들과는 떨어져 있었다.

루시 모스칼렌코는 한 러시아 장교가 딸들이 절대 잊을 수 없는 것을 보게 될 테니 아이의 눈을 가리라고 했던 게 기억났다.

"그는 땅에 누워있는 저 사람들을 보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인간이 아닙니다. 그들은 짐승입니다.'

당시 루시는 여동생 이리나 볼리네츠와 있었다. 둘 다에겐 러시아 장갑차 소음, 포격 소리, 동네 개들이 서로 싸워대던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마치 어디에서 광기가 내려온 것만 같았다.

Map showing what happened at 31 and 144 Yablunska Street

그리고 얼마 안 돼, 이리나는 큰 충격을 받게 됐다.

오랜 동창인 안드리가 피를 흘리며 누워있었다.

유치원 때부터 학창 시절 내내 자신의 옆에 앉았던 그 소년.

불과 몇 주 전만 해도 이리나와 안드리는 쇼핑센터에서 집으로 걸어가기도 했다.

안드리가 누워 있는 바닥엔 얇은 이불 한 장이 던져져 있었다.

"안드리는 추위에 온몸이 뒤틀린 채 누워 있었습니다. 저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죠. 우리는 서로의 눈을 바라봤어요."

이리나는 옛 친구를 이불로 덮어주고 싶었다. 안드리를 따뜻하게 해줄 수 있는 그 어떤 것이라도 덮어주고 싶었지만 결국 그러지 못했다.

"너무 두려웠나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이리나는 이렇게 답했다.

"두려움보단 절망감이 앞섰습니다. 그때 정말 혼란스러웠죠.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리고 왜 옛학교 친구가 바닥에 누워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죠. "

모든 것이 너무 빠르게 일어났다. 심지어 이리나는 이들 대열에 아들 슬라빅이 끼어 있는 것도 목격했던 상황이었다. 앞서 슬라빅은 이반의 일행에 합류되기 전에 따로 붙잡혀서 구타당했다.

줄을 서서 기다리던 슬라빅은 바닥에서 혈흔을 보았다.

러시아 군인이 어떤 부상자에 대해 얘기 하는 것도 들었다.

안드리에 대해서 얘기하는게 확실했다.

슬라빅은 "이들끼리 어차피 안드리는 살아남긴 힘드니 제거해야 한다는 얘길 들었다"고 회상했다. 슬라빅은 자신의 목숨도 걱정되기 시작했다.

이리나는 한 장교를 찾아, 아들의 목숨만은 건져달라고 간청했다.

그 군인은 일단 듣기는 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정보원을 불러 물었다. "이 사람이 그들 중 한 명인가?"

정보원은 "아니오"라고 답했다. 슬라빅은 풀려났다.

러시아군의 명령으로 주민들은 집으로 돌아갔지만 이리나는 떠나면서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끔찍한 일이 일어날까 봐 두려웠습니다."

다음날인 3월 5일. 안드리의 아내 나탈리야는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다.

"어디에요? 당신이 준 행운 목걸이 쥐고 있어요. 부적도요. 저는 모든 나쁜 기운으로부터 당신을 보호하고 있어요. 우리는 당신을 위해 기도하고 있어요. 연락 기다릴게요. 정 안되면 두 글자로만이라도 짧게 연락해요."

그때쯤, 안드리는 숨을 거뒀다.

이반도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안 됐음을 감지하기 시작했다.

3월 4일 늦은 오후까지, 이반과 함께 붙잡힌 8명 중 2명이 총에 맞아 사망한 상황이었다.

"러시아인들은 저희를 어떻게 처리할지 이야기하기 시작했죠.

누가 `그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 물으면 다른 이가 '사살해. 여기 두면 안 되니까 다른 곳으로 옮겨둬'라고 답한 식의 대화였죠."

남은 일행들은 모퉁이를 돌면 있는 작은 뜰로 보내졌다.

이반은 콘크리트 바닥에 누워 있는 한 남자의 시체를 보았다.

예전에 총살 당한 게 분명했다. 러시아인들은 희생자들을 조롱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욕설해가며 총살을 즐기고 있었죠. '이제 끝이네. 넌 이제 죽었어'라며 시시덕 거렸죠."

이반은 동지들과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눴다. "서로에게 작별을 고했습니다. 그게 다였죠." 그가 작별을 고한 사람 중에는 그의 딸의 대부였던 스뱌토슬라프 투롭스키도 있었다.

이반은 또 다른 동료인 아나톨리 프라이키드코가 갑자기 도주 하자 총에 맞았다고 말했다.

러시아군은 남은 이들을 향해 발포했다.

"총알이 제 옆구리에 박히는 것이 느껴졌죠. 총격으로 상처를 입고 쓰러졌습니다."

Ivan Skyba's bruised face and bullet wounds

사진 출처, Ivan Skyba

사진 설명, 이반은 얼굴에 멍이 들었고 상체에는 총격으로 인한 부상 흔적이 남았다

그러고 나서 러시아인들이 얼마나 더 그곳에 있었는지는 이반의 기억엔 명확하지 않다.

몇 시간이라기보다는 몇 분정도 였던 기억이다.

러시아인들이 사라졌다고 느껴질 때쯤 이반은 위험을 무릅쓰고 살짝 주위를 둘러봤다.

이 작은 뜰에는 아무도 없었다. 지금이 기회였다. 이반은 옆에 있던 시체의 발 쪽으로 손을 뻗었다.

맨발 신세 였던 이반은 그 남성의 신발을 벗겨 신었다.

그리고 울타리로 기어가 근처 정원으로 몸을 끌고 갔다. 폭격으로 비어버린 민가에 도착하려면 넘어야 할 울타리가 하나 더 있었다.

하지만 또 다른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반은 그 집 화장실에서 발견한 소독액으로 상처를 치료한 뒤 집주인이 두고 간 옷으로 갈아입었다.

담요를 덮고 잠을 청하려고 누운 순간 들려온 소리로 잘 수 없었다.

러시아인들 소리였다. 알고 보니 러시아 군인들도 그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것이다.

"러시아인들은 저를 보더니 제가 누구이고 왜 이곳에 있는지 묻기 시작했습니다."

이반은 자신이 집주인이며 가족들은 대피했다고 둘러댔다. 그러면서 폭격 때문에 다쳤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러시아 군인들은 그를 믿었지만 그 집엔 머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이반을 치료를 위해 자기네 기지로 데려가겠다고 말했다.

가까스로 도망쳤던, 그 야블룬스카 거리 144번지 말이다.

"다음에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무서웠습니다. 드디어 포로 신세에서 벗어나나 싶었는데, 또다시 포로가 된 거죠."

하지만 이반은 운이 좋았다.그 러시아 기지에서 의무병의 치료를 받았다.

앞서 이반을 쏜 군인이 여전히 기지에 있었다고 해도, 아마도 이반이 돌아온 것을 보지 못했거나 아예 알아보지 못했을 확률이 높다.

이반은 민간인들이 숨어있는 기지 지하 벙커로 보내졌다. 며칠 후, 이 민간들은 허락하에 기지를 떠났다.

이반과 함께 부차를 지키던 동료들의 시신은 러시아 군이 이 지역을 점령했던 기간 내내, 기지 안뜰에 방치됐다.러시아군이 쓰레기를 버리던 곳 말이다.

집으로 돌아간 이반은 숨어있던 가족과 상봉했다.

이반가족은 부차 탈출에 성공해 결국 우크라이나를 떠나 폴란드로 도망칠 수 있었다.

하지만 야블룬스카 144번지에서 있었던 그 끔찍한 시간으로부턴 도망칠 수 없었다.

The office building at 144 Yablunska Street
사진 설명, 우크라이나 민병대 사살이 일어났던 야부른스카 144번지 건물

러시아군의 패배는 부차 퇴각으로 이어졌다.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으로 러시아군은 3월 31일 부차에서 철수해 벨라루스 국경이 있는 북쪽으로 향했다.

러시아 침략자들은 떠나면서 수많은 흔적도 남겼다.

벽에 휘갈겨 쓴 외설스러운 낙서 같은 시답잖은 것에서부터 꽤 중요한 증거가 될 수 있는 물건까지.

우리는 야블룬스카 144번지 건물 바닥에서 한 군인이 군에서 발급받은 직불 카드를 발견했다.

이 카드의 주인은 러시아 공수부대 주요 기지인 러시아 북서부 프스코프 출신이었다.

다른 기자들은 104공수 사단과 234공수 사단이 같은 부대 소속이라는 증거를 발견했다.

부차의 한 주민은 러시아군이 퇴각할 때 두고 간 이반의 휴대전화를 발견했다.

전화기에는 다양한 러시아 전화번호로 건 통화 기록이 확인됐다.

이 통화기록은 대학살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

많은 러시아 병사들이 돌아가면서 이반의 전화기를 썼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 통화기록은 이반과 그의 동료들에게 총격을 가한 가해자의 범위를 좁히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국제형사재판소와 우크라이나 정부는 야블룬스카 거리 144번지와 부차에서 일어난 사건을 중심으로 대규모 전범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경찰의 과잉 진압 수사로 이름을 날린 경찰 변호사 유리 벨루소프가 우크라 정부의 수사를 주도하고 있다.

그는 가해자들이 결국은 정의의 심판을 받기를 바랬다.

그는 최근 키이우 인근에서 민간인 살해 혐의로 기소된 러시아군 포로의 재판을 언급하며 "이런 범죄를 저지른 러시아 병사들은 어디에서든 붙잡힐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전범 재판의 주된 대상은 블라드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러시아 군부와 정치권 엘리트와 같은 거물급이다.

벨루소프 변호사는 다음과 같이 상황을 분석했다.

"그것은 미리 계획됐습니다. 윗선에서 밑으로 행동강령을 지시한 거죠. 그러니 용의자들은 아마 최고위층일 겁니다. 전쟁을 일으킨 진짜 세력들이죠. 꼬리에 꼬리를 문 이들의 결정으로 우크라이나 침공이 결정됐습니다."

러시아에서 정권교체가 일어나지 않는 한 이들이 곧 기소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Ivan Skyba with Fergal Keane in Poland
사진 설명, 이반 스카이바 (왼쪽)와 퍼갈 킨 기자 (오른쪽)

혹시 기소가 이뤄진다면 이반은 중요한 증인이 될 것이다.

현재 그는 가족에게 쉼터를 제공한 폴란드 남성과 일하고 있다.

러시아인들과는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지만 그에겐 밤마다 공포가 찾아든다.

"누군가 제 머리에 총구를 겨누는 건 아닌지 하는 불안감에 잠이 깹니다.

이런 느낌이 마치 파도처럼 몰려옵니다."

기자와 이반 가족은 저녁에 호수길을 걸었다.

그때 어떤 십대 소년이 합류했다.

이 소년은 자신보다 어린 이반의 아들과 어울려 놀았다.

이반은 이 십대 아이가 살해당한 친구이자 딸의 대부인 스뱌토슬라프 투롭스키의 아들이라고 했다. 이 아이와 그의 어머니는 이반 가족들과 함께 폴란드로 이주했다.

소년들은 낚시하고, 이반은 나무에 기대어 이를 구경하고, 그의 아내는 어린 딸들이 혹여나 호수에 빠질까 봐 아이들을 데리고 멀리 갔다.

완벽한 초여름 밤의 풍경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반 가족과 투롭스키 가족, 그리고 야블룬스카 144번지 희생자 가족에겐 러시아의 침공과 이를 통해 촉발된 대학살로 모든 것이 바뀌었다.

기자는 삶의 끈을 놓치지 않기 위해 도망치려다가 변을 당한 아나톨리의 아내 올하 프라이키드코의 말이 떠올랐다.

올하는 자신을 위한 커피 한잔, 남편을 위한 커피 한잔을 들고 매일 남편의 무덤을 찾는다.

"아무도 내 말을 들을 수 없을 때, 남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올하에게 돌아오는 것은 침묵과 전쟁의 공허함 뿐이지만 그래도 그는 매일 같이 남편의 이름을 불러본다.

추가 취재Sofiia Kochmar-Timoshenko, Viachslav Shramovych, Rostylav Kubik, Alice Doyard ,Orsi Szoboszlay

동영상 설명, ‘마지막이 될 수도 있지만'... 외국인 용병들이 우크라이나에서 싸우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