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조용한 소도시에서 벌어진 러시아군의 잔혹 행위
- 기자, 자나 베지피에추크
- 기자, BBC News, 이르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인근의 녹음이 우거진 작은 도시 이르핀. 이르핀의 거리에선 러시아 점령군의 잔혹성이 명확히 드러났다. 붉은색 외투 차림의 한 젊은 여성의 시신이 4주째 거리에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한 번도 아니고 여러 차례 반복적으로 러시아 탱크 바퀴에 깔린 모습이었다.
주의: 이 기사에는 살해 묘사 등 다소 불편한 장면이 포함돼 있습니다.
키이우 바로 옆 소도시인 이르핀은 지난 3월 초 키이우 점령을 노리고 쳐들어온 러시아군 손에 떨어졌다.
이르핀의 폭파된 다리와 그 옆 임시로 마련된 다리는 이르핀 인근 소도시 부차에서 피난 온 주민들의 위험한 탈출 경로로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부차는 러시아의 전쟁 범죄로 추정되는 많은 사건이 일어난 곳이다.
이르핀에서도 또한 민간인 시신 290구가 발견됐으며, 목격자들과 검찰 당국에 따르면 이르핀 남서쪽 작은 지역에선 한 달간 공포가 이어졌다고 한다. 이곳에서 발견된 희생자 대부분은 여성이었다.
전쟁 전 이르핀은 수도에서 버스로 통근할 수 있으며, 번잡한 수도에서 벗어나 가족과 편히 쉴 수 있는 안식처와 같은 지역이었다.


그러나 이르핀의 푸시킨스카가, 러르몬토바가, 다비드쇼카가, 비고스코호가 등 모든 거리와 골목엔 잔인했던 러시아 점령 기간의 상처가 남았다.
우크라이나군이 이르핀을 탈환한 지금 푸시킨스카 거리를 걸어봐도 멀쩡한 주택이 거의 없었다. 많은 집이 불에 타버린 상태였다.
그러나 민가 파괴보다 더 끔찍한 것은 바로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폭력에 관한 증언이었다. 민간인 총살, 즉결 처형, 지하실 억류 등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러시아 점령 기간 푸시킨스카는 민간인의 안전을 위한 주요 통로였다. 푸시킨스카에서 우니베시테스카가까지 이르면 외곽 순환 도로까지 차로 그리 멀지 않은데, 이는 우크라이나군이 지키고 있는 지역이다.
우니베시테스카 거리를 따라 걷다 마주친 민간인 차량엔 총알과 파편 자국이 빼곡했다.
푸시킨스카 거리와 우니베스테스카 거리가 만나는 지점 근처의 중앙 공원에서 만난 아르템 후린 지역 보안관은 자동차 3대 안에서 시신을 봤으며, 거리에 그대로 방치된 노인 시신 한 구 또한 봤다고 말했다.
한편 우크라이나 정보기관과 검찰은 현재 러시아 군대 및 경찰 부대 11곳이 이르핀과 부차, 인근 호스토멜에서 점령과 파괴 행위에 가담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 중엔 체첸의 '카디로프의 군대'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으며 잔혹하기로 악명 높은 제141특수차량화연대와 더불어 한때 크림반도 점령에서 세운 공으로 상을 받은 군인들이 소속된 제247 근위공수강습연대도 있다.
이르핀이 공격받던 당시 자원병이었던 후린은 푸시킨스카 거리에 있는 거의 모든 민간인 주거지 뒤편에 탱크가 배치됐었다고 말했다.
키이우스카가와 푸시킨스카가와도 맞닿아 있는 러르몬토바가에 설치된 사격진지를 포함해 러시아군은 이 좁은 구역에서만 군 검문소 최소 2곳을 구축했다.
러시아군 기지 또한 최소 2곳에 세웠는데, 푸시킨스카가에서 남서쪽에 위치한 라스티브카의 옛 어린이 요양병원과 인근의 큰 아파트 단지가 바로 그곳이다.

이 아파드 단지는 푸시킨스카가와 비고스코호가가 교차로에서 가깝다. 붉은색 외투를 입은 여성 시신이 러시아 장갑차에 밟힌 모습 그대로 방치된 곳이기도 하다.
올렉산드르 마르쿠샨 마을 시장과 몇몇 주민들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 여성의 시신이 거의 한 달간 그 자리에 있었다고 말했다.
너무 많이 밟혀 얼굴을 알아보긴 힘들었지만, 후린은 "시신의 손을 보고 이 여성이 아주 젊다는 걸 알았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길 건너편에는 어떤 노인의 시신이 있었다고 한다. 후린은 "저 여성의 아버지뻘 되는 나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자원병들은 여성의 지갑에서 발견된 신용카드와 손으로 쓴 쇼핑 목록을 토대로 이 여성의 나이를 25세 전후로 추정했다.
거리의 시신을 수습해 화장하는 업무를 맡은 페트로 코롤은 "여성의 시신에서는 신분증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르핀의 이 구역에서 살해된 희생자 절반 이상이 총에 맞아 숨졌다. 이 주택가에서 발견된 희생자 중에는 여성이 다수를 차지해 마을 시장이 이 지역을 "여성 살해"의 장소로 이름을 바꿀 정도였다.
지난 3월 8일 지역 주민들은 러시아군의 총에 맞아 죽은 4명을 땅에 묻어주고자 끊임없이 쏟아지는 포격과 총격의 위험을 무릅썼다고 했다. 주민들은 다비드쇼카가가 리셴스카가와 만나는 지점에 있는 버스 정류장 옆에 얕게 땅을 파고 시신을 매장했다.
주민 타티아나는 "분홍색 외투를 입은 40대 민간인 여성 1명과 남성 1명을 묻었다. 차에서 살해됐다"면서 "또한 차에서 총에 맞은 채 발견된 방위군 자원병 2명도 묻었다"고 덧붙였다.
이들 자원병은 후에 드미트리 우크리네츠와 세르게이 말류크로 신원이 밝혀졌다.

희생자 290명중 수십 명의 신원이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지만, 우크라이나 검찰은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희생된 남성 161명, 여성 73명, 어린이 1명에 대한 정보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희생자 다수가 푸시킨스카 거리와 인근 거리에서 총에 맞은 채 발견됐으며, 포격으로 죽거나 굶어 죽은 이들도 있었다.
검찰과 목격자들이 확인한, 전쟁 범죄로 의심되는 대부분 사건은 3월 중순과 러시아군이 철수하기 직전 며칠간 벌어졌다.
우크라이나군이 키이우 외곽 이르핀을 되찾으면서 러시아군은 점점 더 초조해지기 시작했고 눈에 보이는 대로 총을 쏘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러시아군이 착용을 강요한 흰색 완장을 거부하거나, 명령을 오해하는 순간 살해당할 수 있었다.
푸시킨스카가의 주택가에 사는 루드밀라 멘키브스카(54)는 "3월 중순 아파트 창가 밑에서 총소리를 들었다"고 기억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창문을 통해 거리를 내다봤더니 여성 시신 1구가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멘키브스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만약 그 여성의 시신을 묻으려고 했다면 멘키브스카도 살해당했을 수 있다.

"2주 넘게 저는 매일 아침 그 여성의 시신이 아직도 그곳에 있는지 창문 너머 확인했습니다. 이후엔 포격이 있을 때마다 확인했어요.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제 마음은 찢어졌습니다. 한 40~45세 정도 같아 보였어요."
멘키브스카는 피난길에 오르는 대신 집에 남아있기로 했다. 사실 멘키브스카에겐 이번 전쟁이 처음이 아니었다. 우크라이나 동부에 살던 그는 지난 2014년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친러 분리주의자 간 전쟁이 발발하자 고향을 떠나왔다.
러시아군을 몰아낸 후 그 여성의 시신은 수습됐다. 또 다른 주민인 미하일로 쿠즈멘스코는 그 여성에 대해 이름은 알료나이고 청각장애인이었다고 말했다. 쿠즈멘스코는 알료나가 러시아군의 명령을 듣지 못해 살해당한 건 아닌지 두려워했다.
한편 점령 마지막 한 주가 가장 끔찍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라리사 오시포바(75)는 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유치원을 운영해온 인물이다. 이곳 주민들은 몇 세대에 걸쳐 오시포바의 유치원을 다녔다.
3월 24일경, 오시포바는 남편 바딤과 함께 다비드쇼카 8A 번지에 위치한 집 뒷마당에서 총에 맞아 사망했다.
총성이 크게 울리자 이들 부부는 집에 숨어있었다.
이웃에 사는 콘스탄틴 벨킨은 "오시포바 부부가 절 돕기 위해 달려오고 있었다"면서 "그때 총소리가 들렸고 바딤이 '라리사, 라리사!'하고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고 나서 폭발음이 났고 울타리 너머 더 많은 총성이 들렸다"고 회상했다.
세 군데 총상을 입은 벨킨은 더 이상 기억해내지 못했다. 오시포바 부부는 며칠간 매장되지도 못하고 버려져 있었다. 오시포바는 얼굴에 총을 맞은 모습이었다.


43년간 '비노촉 유치원'을 운영해오다 얼마 전 은퇴한 오시포바의 죽음은 충격적이었다. 오시포바의 조카 나탈리야 도브가는 "계속 '우리는 오시포바의 손에 자랐어요'라는 전화를 받곤 한다. 이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는 걸 아무도 믿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오시포바의 뒤를 이어 비노촉 유치원을 새로 맡게 된 옥사나 프타슈니크 또한 "유치원 아이들은 오시포바에게 곧장 달려가 안기곤 했다"면서 "아이들은 오시포바가 나이가 들었다는 걸 결코 이해하지 못했다. 아이들 수천 명에게 오시포바는 엄마와도 같은 존재였으며, 언제나 따뜻하고 자상하며 여유로운 사람이었다"고 슬퍼했다.
한편 비슷한 시각, 오시포바의 집에서 모퉁이를 돌면 나오는 비고스코호 9A번지의 아파트 단지 마당에선 올렉산드르 셰레멧이라는 이름의 남성을 포함해 남성 3명이 총에 맞아 사망했다. 아울러 아파트 건물 안에선 4번째 희생자가 자택에서 살해된 채 발견됐다.
사망한 셰레멧(37)은 어린이 오리엔티어링 수업 코치로, 아이들을 이끌고 우크라이나 서쪽 카르파티아산맥으로 갔다가 침공 전날 막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셰레멧은 그전에 아내 율리아와 자녀 3명을 프랑스에 있는 친구 집으로 피신시켰다.

율리아는 "남편은 우크라이나 서부나 해외로도 도피할 수도 있었지만, 아버지와 노인, 어린이들의 대피를 돕고자 남아있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셰레멧의 부친 레오니드는 3월 22일 마지막으로 아들이 살아있는 모습을 봤다고 했다. 레오니드가 그다음으로 아들을 본 곳은 키이우의 영안실이었다. 가슴, 복부, 손, 다리 등에 총상 5발을 입은 모습이었다.
이르핀 내 다른 즉결 처형 또한 비슷한 시기 다비드쇼카 42번지에서 자행됐다.
총상을 입은 다른 남성 2명의 시신 또한 발견됐는데, 이 중 1명은 나이 든 장애인이었다. 같은 블록의 체육관에서 살해된 채 발견된 다른 남성은 수상 경력이 있는 권투 선수이자 어린이 스포츠 트레이너로 일했던 올렉세이 준키프스키로 밝혀졌다.
한편 살인이 벌어진 다비드추카 거리 가까이 사는 주민 타티아나 레브첸코(54)는 러시아군 점령 끝 무렵 러시아 군인들의 통제하에 다른 주민들과 지하실에 숨어 지냈다고 했다.
"저들이 우리를 러시아군 탱크에 앉히고 인간 방패로 쓰진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레브첸코의 아들과 딸은 손자들과 함께 떠났지만, 레브첸코는 지하실에 남아 숨어있기로 했다.
레브첸코는 "3월 23일 러시아군이 강제로 문을 열었다. 다음날 거의 30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을 우리와 함께 지내게 했다. 사람들을 데려오는 과정에서 한 민간인 남성을 죽였다"고 말했다.
레브첸코가 지하실에서 지내는 동안 고령의 부모는 집에 머물렀다.
"러시아군이 부모님 옆에서 수류탄 2개를 터뜨리고 장롱을 향해 총을 쐈습니다. 그래야 부모님이 젊은이들이 어디 숨었는지 털어놓을 것이라면서요."
그리고 3월 26일, 마침내 이르핀에 자유가 찾아왔지만 레브첸코와 이웃들은 혹시 러시아 군이 남아있는 건 아닐지 두려워 몇 시간 기다린 후에야 바깥으로 나갔다고 했다.
전쟁 전 이르핀의 친환경 운동, 특히 강 정화 운동에 활발히 임했다던 레브첸코는 "그러나 외국 군대가 쳐들어와 우리 마을과 삶을 파괴했다"고 말했다.

지금 비고스코호와 푸시킨스카 거리를 걷다 보면 주민들이 뒷마당을 청소하고 집을 다시 짓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곳 주민들은 작은 것에서 기쁨을 느끼는 법을 배웠다. 전기, 가스, 물이 다시 복구됐다는 것 등에 기뻐했다. 집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은 주민은 이제 다시 부엌에서 요리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정상적인 삶을 되찾으려는 모습 이면엔 4주간 자행된 잔학 행위가 아직 뚜렷하게 남아있다.
푸시킨스카 거리에 사는 주민 올렉산드르 비에로콘은 길가에 남은 커다란 얼룩을 보여줬다. 점령 기간 내내 빨간 외투의 여성 시신이 놓여있던 자리라고 했다.
"여기 보십시오. 아직 남아있습니다. 러시아군의 탱크에 치인 여성의 피로 얼룩진 실루엣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