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가방에 영주권까지...전쟁 대비하는 한국의 2030 청년들

헬스 트레이너 박휘빈(22) 씨와 대학원생 김정호(30) 씨는 평소 재앙·재난에 대비해 준비하는 '프레퍼'다
사진 설명, 헬스 트레이너 박휘빈(22) 씨와 대학원생 김정호(30) 씨는 평소 재앙·재난에 대비해 준비하는 '프레퍼'다
    • 기자, 문준아
    • 기자, BBC 코리아

“영주권, 시민권 준비 중이에요.”

“전쟁이 나기 전 외국에 나가는 걸 목표로 언어, 돈, 기술을 준비하고 있어요.”

한반도에서 전쟁을 대비하는 2030 청년들이 있다. 핵 전쟁과 같은 재앙·재난에 대비해 평소 철저히 준비하는 이들로 일명 '프레퍼(Prepper)'라 부른다.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등 세계 곳곳에서 전쟁과 분쟁이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 한반도의 긴장감도 고조되고 있다.

북한의 연이은 미사일 발사 시험에 이어, 최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한국을 ‘제1의 적대국'으로 규정하면서 군사 충돌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실제 재난가방 등 생존 키트를 판매하는 온오프라인 상점 '꾼스'는 “생존 키트를 찾는 이들이 최근 많이 늘었다"고 전했다.

‘프레퍼’들의 모임도 활발해졌다. 2년 전 개설 당시 50명 미만이던 오픈 카카오톡 방에는 현재 400명이 넘는 인원이 모였다.

지난 1~2월 간 '세계 전쟁, 재난 정보 공유센터' 오픈 카카오톡 채팅방에 전쟁 위기를 느끼고 질문하는 사람들

사진 출처, BBC, '세계 전쟁, 재난 정보 공유센터' 오픈 카카오톡 방

사진 설명, 지난 1~2월 간 '세계 전쟁, 재난 정보 공유센터' 오픈 카카오톡 방에는 전쟁 위기를 느끼고 질문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전쟁 및 재난을 대비하는 사람들 늘었다'

박 씨와 김 씨가 72시간 생존가방 물품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설명, 박휘빈 씨와 김정호 씨가 72시간 생존가방 물품을 소개하고 있다

15년 넘게 도시 재난 생존을 연구해 온 우승엽 도시재난연구소 소장은 “확실히 10년 전에 비해 국내에 전쟁 및 재난을 대비하는 사람들이 늘었다”며, 특히 선거가 있는 해 남북 관계 긴장이 고조되는 현상을 ‘프레퍼’ 증가의 이유로 꼽았다.

우 소장은 또한 대만 총통 선거에서 친미·반중 성향의 라이칭더 민주진보당 후보가 당선됨에 따라 미중 관계가 악화되고, 중국의 대만 침공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반도 안보 위기와도 직결돼 전쟁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KBS 공영미디어연구소가 2023년 8월에 전국 만19세 이상 성인 남녀 1675명 대상으로 실시한 '국민 통일의식 조사'에 따르면 현재 안보상황에 대해 응답자의 75.2%(‘매우 불안하다’ 23.8%, ‘약간 불안하다’ 51.4%)가 ‘불안하다’고 응답했다. 안보상황이 ‘불안하다’는 의견은 2022년(70.2%)에 비해 5.0%p 증가했고, 최근 3년간 지속적인 증가 추이를 보이고 있다.

박휘빈 씨
사진 설명, 박휘빈 씨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최근 북한의 지속적인 도발에 위협을 느껴 최소 3일 간 버틸 수 있는 생존 가방을 준비했다"고 전했다

박휘빈(22) 씨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서 처음으로 전쟁의 “위협”을 체감했다고 한다.

그는 “민간인들이 사는 지역에 백린탄이 불꽃놀이처럼 떨어지는 영상을 봤다. 그걸 맞으면 사람이 타들어간다고 하던데…우리의 일상에 그런 끔찍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니 최소한의 대비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밝혔다.

박 씨는 직접 일상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들로 여성 필수 생존 가방도 꾸렸다. 그리고 다른 여성들을 위해 이러한 과정을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올리기도 했다.

또 지난 1월엔 심폐소생술(CPR) 일반인 심화 과정을 이수했다. 그는 “여성들이 안전 교육이나 응급 상황 대처 방법에 대해 배울 기회가 많이 없다”며 생명과 직결된 공부를 스스로 찾아 한다면 응급 상황 시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프레퍼'의 생존 필수템

김 씨가 실제 준비한 생존가방 안 물품들. 쌀, 통조림 음식, 라디오, 손전등, 침낭 등
사진 설명, 김정호 씨가 실제 준비한 생존가방 안 물품들. 쌀, 통조림 음식, 라디오, 손전등, 침낭 등

김정호(30) 씨는 전쟁에 대한 불안감 뿐만 아니라 평소 지진, 화재, 폭우 등 자연재해 및 기후 위기를 대비해 약 3일간 버틸 수 있는 ‘72시간 생존 가방’을 준비해 놨다.

가방에는 비상식량과 물, 침낭을 비롯한 생필품과 응급 의약품이 들어있다.

또한 방탄복과 방독면도 준비했다. 그는 “군에서 지급하는 보호장구 물량이 부족할 수 있고 노후화된 장비들이 많다”며 “예비군으로서 언제 징병될지 모르는 상황에 대비해 준비했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동원 지정 장소까지 갈 때 “기본적인 인프라가 작동하지 않는 경우, 휴대폰이 터지지 않거나 대중교통을 사용하기 어려워 도보로 이동을 해야 할 때를 고려해 지도와 나침반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 외에도 그의 생존 가방 안에는 식량, 반합, 파이어스타터, 라디오, 건전지, 손전등 그리고 비누 등이 있었다.

생존가방만으로는 부족해 국내 다른 지역으로 이주를 고려하거나 해외 영주권 및 시민권을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20대 초반 대학생 A씨는 “최근 전쟁 리스크가 커져서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있다”며 “전쟁이 나기 전 외국으로 나가는 걸 목표로 언어, 돈, 기술을 준비하고 있다”고 ‘생존주의’ 오픈카톡방에서 밝혔다.

그는 “파라과이 영주권은 1000만 원이면 취득 가능하다”고 들었다며 “시민권은 호주, 캐나다, 미국 중 한 곳으로 염두에 두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과정에서 "가족들이 유난이라고 하는데 무시하고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씨가 실제 준비한 생존가방 안 물품들
사진 설명, 박휘빈 씨가 실제 준비한 생존가방 안 물품들. 누룽지, 견과류, 초콜릿 바, 비상 의약품, 핫팩 등

'전쟁불안증 혹은 전쟁불감증?'

이러한 ‘프레퍼’들의 시각이 다소 과장됐다는 의견도 있다.

대학생 B씨는 “아무리 요즘 남북 관계가 안좋아졌다고 해도 전쟁 걱정은 해본 적이 없다”며 “그냥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고 전했다.

30대 초반 회사원 C씨는 생존가방을 꾸리고 집에 통조림을 비축해 놓는다고 말하면 “친구들이 자신을 ‘예민충,’ ‘불안충’이라고 놀린다"고 토로했다.

김 씨 또한 생존 관련 물품을 구비하자 “어머니께서 질색팔색 하셨다”며 “별거 아닌 일에 괜한 돈을 쓰는 게 아니냐”는 질타를 받았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는 “해외여행을 나갈 때 여객기를 타면 내부에 구명조끼, 산소마스크, 그리고 안전벨트 같은 게 다 구비돼있지 않냐"며 “그런 (안전) 장비를 산다는 것은 안전벨트를 매는 것과 같다"고 답했다.

박 씨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유별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에겐 생존과 연결돼 있기 때문에 일종의 보험이라고 생각한다"며 “부끄러워할 필요 없다. 생명과 관련된 일이 아니냐"고 말했다.

우 소장은 대다수의 한국 사람들이 “전쟁 불감증을 겪고 있다”며 그 이유로 ‘집단 자기방어 기제’를 꼽았다. 즉, 무의식적으로 불안을 감소시키기 위해 현실을 왜곡해 인식한다는 것.

그는 “한반도가 너무 좁기 때문에 난리가 나면 어디로 대피할 데가 없을뿐더러 어떠한 위험이나 경고도 오랫동안 겪게 되면 만성화되고, 여기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심리가 들어서 위험 상황을 간과하는 경향이 생긴다”고 덧붙였다.

김 씨는 "최근 (국제정세에)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이 생겼는데, 자기 일에 열중하되 최소한의 대비를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며 "불안에 너무 자신의 삶이 침해 당하지 않았으면 좋을 것 같다"고 전했다.
사진 설명, 김 씨는 "최근 (국제정세에)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이 생겼는데, 자기 일에 열중하되 최소한의 대비를 하는 게 좋겠다"며 "불안에 너무 자신의 삶이 침해 당하지 않길 바란다"고 전했다.

실제 한반도 전쟁 가능성은?

로버트 칼린 미들베리 국제문제 연구소 연구원과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는 지난 1월 북한 전문 매체 ‘38 노스’ 공동 기고에서 “한반도 상황은 1950년 6월 초 이래 그 어느 때보다 위험하다”며 우려했다.

반면 전인범 전 특수전사령관은 BBC 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한반도 전쟁 확률은 “1%”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0%보다는 많은 것"이라며 “올해 전면전 위험은 크지 않지만, 우발적인 충돌이 확대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고 강조했다. 이어 “5~10년 내 북한이 미본토를 핵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면 한반도 긴장 상태는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전 장군은 만약 전쟁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북한이 사이버 공격, 자폭 무인기(드론), 미사일과 화학탄, 특수작전 부대와 땅굴을 이용한 경보병 부대를 침투시켜 아군에게 혼란을 초래하고 미국을 비롯한 외국의 증원 전력이 도착하기 전에 한반도를 점령하거나 최소한 수도권을 점령하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우 소장 또한 “6.25 전쟁과 같은 전면전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연평도 포격 때처럼 경기도 북부에서 충분히 도발이 일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오는 4월 한국의 총선과 5월 대만 총통 취임식 등에 맞춰 한반도의 긴장이 높아질 것이라 예상했다.

특히 “올해 4~5월에 미군 전체 원자력 추진 항공모함 전력(11척)의 절반에 가까운 항모 5척이 한반도 주변 서태평양 일대에 처음 집결한다”며 “미 항공모함 5척 이상이 동시에 한 해역에 집결하는 건 걸프전 이후 처음"이라고 강조했다.

우 소장은 해외에서 한반도 전쟁 가능성에 경고등을 키고 있는데 “우리나라만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만일의 사태를 위해 꼭 챙겨야 하는 것들은?

재난 발생 시 대피법에 관한 요령과 생존가방 꾸리는 법을 안내하는 책이다.
사진 설명, 재난 발생 시 대피법에 관한 요령과 생존가방 꾸리는 법을 안내하는 책

전 장군은 “평화를 위해서 대비태세를 약화시키는 건 비겁한 평화”라며 “전쟁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과 남에게 내 나라의 국방을 맡기면 안 된다는 모든 국민의 정신무장이 필요하고 그게 어떤 무기보다 중요하다"고 전했다.

그는 전쟁 및 재난 대비를 위해 꼭 필요한 물건 세 가지로 “자가발전 라디오, 물, 청테이프”를 꼽았다.

통신이 터지지 않을 때를 대비해 라디오가 필요하며, “음식은 7일 동안 먹지 않아도 살 수 있지만 물은 3일만 못 먹어도 생명에 지장이 있다”며 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청테이프는 상처 보호, 지혈 또는 옷 수선 등 용도가 다양해서 구비해두면 좋다는 것.

우 소장은 김장 비닐이 재난 시 매우 유용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화재가 났을 때, 방독면이 없으면 김장 비닐을 뒤집어써서 숨을 5분 정도 쉴 수 있어 안전지대로 탈출할 수 있고, 수도가 끊길 때를 대비해 김장 비닐 안에 샤워기로 물을 받으면 약 100리터 정도는 받아둘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가격도 1000원에 약 5장으로 저렴하고 다용도로 쓰이며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쉽게 깨질 수 있다는 인식을 하고, 당장 내일 아침에 세상이 뒤집어질 수 있다는 걸 대비해서 가족들과 미리 (만날 장소, 대피 방법 등에 관한) 계획을 세워둘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