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4대 세습 위한 밑그림?'… '통일' 지우고 '영토' 선 그은 북한 개헌

2026년 2월 28일 공개된 사진. 북한 평양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사격에 집중하고 있고 딸 김주애는 망원경을 보고 있다

사진 출처, Reuters

    • 기자, 한상미
    • 기자, BBC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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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개정된 헌법이 최근 공개됐다.

내용을 보면 북한은 자국 영토를 '북측 지역만'으로 한정하고 남한을 '동족'이 아닌 '국경을 맞댄 타국'으로 규정했다. 또한 '통일', '민족' 개념까지 전면 삭제했다. 이는 사실상 한반도 내 '두 국가 체제'를 공식화한 것으로, 남북 관계를 '남남'으로 확실하게 못 박았다는 점에서 그 핵심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번 개정은 단순한 문구 수정을 넘어, 지난 70년간 북한 체제를 지탱해온 '조국통일'이라는 국가적 지향점을 공식적으로 폐기한 '중대 사건'으로 해석된다.

전문가들은 "김정은 위원장이 선대의 유훈을 덜어내고 '두 국가' 노선'을 법제화함으로써 북한이 더 이상 과거의 통일 담론에 얽매이지 않고 독자적인 '생존형 국가주의'로 나아가겠다는 선언을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앞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2023년 말 남북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선언하고 이듬해인 2024년 1월 최고인민회의에서 헌법 반영을 직접 예고한 바 있다.

북한의 '특수 관계' 폐기

그동안 남북한은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특수 관계"를 유지해왔다. 남북한 헌법에 명시된 이 통일 담론은 지난 1991년 12월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이를 이해하려면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90년대 초, 독일 통일 및 소련 해체로 냉전 질서가 무너지면서 북한은 상당한 압박 및 체제 불안에 직면해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 1991년 9월 남북한의 유엔 동시 가입이 이뤄지게 되는데, 당시 북한은 남북 각각 가입을 원칙적으로 거부했다. '조선반도는 하나의 국가이며, 유엔은 반드시 단일 국가로 가입해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실제 김일성과 김정일 모두 유엔 가입 직전까지 '자주 통일', '민족 통일'을 주장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외교 환경이 급변하면서 북한은 현실적으로 '두 개의 코리아'를 수용해야 했다.

북한 1차 자료에 공개된 1986년 1월 3일자 자주적조국통일 제안

사진 출처, 애국애족의 통일방안 / 평양출판사

사진 설명, 북한 1차 자료에 공개된 1986년 1월 3일자 자주적조국통일 제안. 북한은 남북한 유엔 각각 가입을 원칙적으로 거부했는데, 이는 북한이 '사회주의 통일국가를 만들겠다'는 혁명 노선을 견지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 결과, 같은 해 12월 13일 제5차 남북고위급회담이 개최됐고 <상호 존중-비방 금지- 특수 관계 규정>을 골자로 하는 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됐다. 이 합의에 따라 남북 관계는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특수관계'로 규정됐다.

그러나 35년간 이어져 온 이 '특수 관계'는 이번 북한의 헌법 개정을 계기로 사실상 종지부를 찍게 됐다.

'결국 4세 대습을 위한 포석'

한국의 초대 통일부 장관을 지낸 강인덕 경남대 석좌교수는 BBC에 "특수 관계를 포기하는 것은 북한의 생존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체제 존립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것.

강 교수는 "특수 관계를 유지하면서 한민족, 통일을 계속 끌고 가다가는 남한의 역량, 자본주의 등으로 인한 문화적 침투가 저변에서부터 체제를 무너뜨릴 것이라는 사실을 북한은 잘 알고 있다"며 특히 "청년층, 새로운 세대에게 막대한 영향을 주는 것을 막으려는 방편"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이는 사방에서 몰려오는 자유 민주주의 및 사상적 침투를 막기 위한 일종의 '쇄국 정책'"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사회주의 통일국가를 만들겠다'는 혁명 노선까지 포기하고 노동당 강령도 싹 다 바꾼 것"이라고 했다.

강 교수는 "김정은이 세습 체제를 포기한다면 이처럼 극단적인 조치를 취할 필요가 없다"며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공산주의를 유지하면서 당내 민주주의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결국 "두 국가 노선은 세습 유지, 4대 세습과 연결된다"고 그는 강조했다.

2024년 6월 19일 북한 평양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회담을 위해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환영하는 행사에 북한 주민들이 참석하고 있다

사진 출처, SPUTNIK/KREMLIN POOL/EPA-EFE/REX/Shutterstock

사진 설명, 2024년 6월 19일 북한 평양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회담을 위해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환영하는 행사에 북한 주민들이 참석하고 있다

김영희 동국대 북한학연구소 객원연구원 역시 '두 국가론'을 '정권 유지' 차원으로 진단했다. 북한에게 통일은 곧 '정권 소멸'을 의미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두 국가 체제를 내세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통일은 어쨌든 한쪽이 무너져야 하는데, 김정은 위원장이 지금껏 국정을 운영하면서 통일이 될 경우 잘사는 남한에 흡수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뼈저리게 인식했을 것"이라며 "그럴 바에는 그냥 두 국가로 가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2023년 말 김 위원장이 굳이 '적대적'이란 표현을 붙여 두 국가를 꺼내든 것은 내부용, 즉 주민 통제을 위한 목적이 크다"고 판단했다. 이는 반동사상문화배격법(2020년)과 청년교양보장법(2021년), 평양문화어보호법(2023년) 제정 명분과도 일맥상통한다는 설명이다.

김 연구원은 "이번 헌법 개정 내용을 보면 김정은이 자기 권한을 더욱 강화했음을 알 수 있다"면서 이는 결국 김 위원장 본인이 체제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하고 체제 붕괴에 대한 불안이 크다는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북한은 체제 특성상 최고지도자의 결심에 따라 개헌이 언제든 가능하다며 "김 위원장 마음이 변한다면 당장 내일이라도 바꿀 수 있는 것이 북한 헌법"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한편 한국 국가정보원은 7일 북한 개헌과 관련해 "남북을 '두 국가'로 명확히 규정했지만 대남 적대성은 오히려 완화된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이번 개헌이 한국과의 단절 의지를 분명히 하면서도 "대남 공세보다는 현상 유지와 상황 관리에 무게를 둔 것"이라고 해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