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내 러시아 점령지 대선 투표 모습...'무장 군인들이 투표함 들고 찾아간다'

사진 출처, Russian-controlled Donetsk election commission
- 기자, 비탈리 스베첸코
- 기자, BBC 모니터링
러시아 당국이 우크라이나 내 점령지 주민들을 상대로 다가오는 러시아 대통령 선거에 참여하도록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다.
역사상 최초로 이번 대선은 3일(3월 15~17일)에 걸쳐 치러질 예정이지만, 자포리자, 헤르손, 도네츠크, 루간스크 등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 점령지 4곳에선 추가 사전 투표가 이미 시작됐다.
점령지에 사는 한 시민은 친러 성향의 사람들이 무장 군인들과 함께 집마다 투표함을 들고 방문한다고 토로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현 대통령의 연임이 확실해 보이지만, 높은 투표 참여율을 확보한다면 크렘린궁엔 통치를 정당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하는 데도 도움이 될 전망이다.
사실 투표용지에 적힌 후보자는 푸틴 대통령을 포함해 총 4명이지만, 다른 후보들은 현실적으로 푸틴에 아무런 위협을 끼치지 못한다.
푸틴에 저항하며 목소리를 높이던 주요 인사들은 모두 망명길에 떠났거나, 투옥됐거나, 사망했기 때문이다.
투표 강요
일반적으로 러시아의 외딴 지역에선 조기 투표를 실시하지만, 우크라이나 내 점령지 4곳에서도 “보안상의 이유”로 투표 기간이 연장됐다.
이곳 점령지에 사는 우크라이나인 주민들에게 투표 참여를 강요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사진 출처, Tavria TV
점령지 지역 당국이 투표소를 마련하긴 했지만, 시민들은 직접 이곳에 가지 않아도 된다. 관계자들이 투표함을 가지고 집으로 직접 찾아오기 때문이다.
자포리자 지역 내 러시아가 세운 선거 관리 위원회는 SNS를 통해 “유권자 여러분, 저희는 여러분의 안전을 걱정합니다! 투표하러 직접 오실 필요 없습니다. 저희가 투표용지와 투표함을 들고 집에 방문하겠습니다!”고 밝혔다.
아울러 점령지 주민들은 ‘인폼UIK’라는 투표 권유 캠페인에 시달린다. 표면적으로는 시민들에게 투표 절차 및 후보자들에 대한 정보를 알린다는 목적으로 고안된 캠페인이다.
이 캠페인에 따라 관계자들은 러시아 점령지에 남아 있는 모든 시민의 집을 직접 찾는다. 때론 무장한 이들이 이 가정 방문에 동행하기도 한다.
관계자들은 유권자 명단을 작성한다며 개인 정보를 수집한다. 심지어 방문 중 지역 주민들의 모습을 촬영하기도 한다. 자포리자 내 러시아가 세운 지역 정부의 선거위원회 위원장 또한 이러한 촬영에 대해 우려하는 시민들이 있음을 인정했다.
한편 점령지 주민들은 러시아 여권을 받도록 엄청난 강요를 받아왔다. 그러나 투표 과정의 용이성을 위해 이번엔 우크라이나 여권 또한 투표 시 신분증으로 인정해준다고 한다.

사진 출처, Russian-controlled Kherson election commission
주민들에겐 투표 날짜를 알리는 문자 메시지뿐만 아니라 투표소 근처에서 무료 콘서트 및 배식 행사가 열린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과거 투표소로 주민들을 끌어들이고자 구소련 당국이 썼던 방식이다.
‘우크라이나 국민이 러시아에 협력하는 건 정상이 아닙니다’
한편 우크라이나 당국이 불법적인 엉터리 투표라고 비난하는 가운데 이번 투표 조직에 참여하는 이들은 공격의 표적이 되고 있다.
남부 헤르손 내 러시아 점령지에서 사전 투표가 시작된 당일인 지난달 27일, 헤르손 노바카호우카 지역에선 2차례 폭발이 발생했다. 각각 집권 ‘통합러시아당’의 사무실과 투표소를 노린 공격이었다.
그리고 지난주, 우크라이나 중앙 정보국은 자포리자 내 러시아 점령지인 베르디얀스크에서 러시아에 협력해 선거 준비를 돕던 현지 여성이 지난 6일 차량 폭발로 “제거”됐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측 자포리자 주지사인 이반 페도로프는 이 공격을 누가 주도했는지 묻는 BBC의 질문에 “누군가 한 것이다. 큰 저항을 보여준 사람이 한 것이다. 일시적으로 점령당한 영토에서 이러한 행동을 한 이들은 영웅”이라고 답했다.
“우리의 저항은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러시아에 협력하는 건 정상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이걸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바로 이들은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사진 출처, Ukrainian intelligence
페도로프 주지사는 그럼 이러한 공격을 주도한 이들이 우크라이나 당국과 연관 있느냐는 질문에 “물론이다. 잠시 점령된 지역 내 저항 세력과 우리 정보기관은 활발히 협력하고 있다”고 답했다.
점령지 내 러시아가 세운 지역 당국과 친러 언론사들은 적극적으로 투표 참여를 권장하고 있지만, 특정 후보를 지지하거나 집중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다. 사실 그럴 필요도 없다.
이 지역의 합병을 주도한 이는 바로 블라디미르 푸틴으로, 이번 투표는 그에 대한 지지로 여겨진다.
올해 대선의 공식 상징은 바로 V자 상징이다. 이는 소위 러시아의 ‘특별 군사 작전’과도 관련 있는 상징이다. 아울러 러시아 중앙 선거 관리 위원회가 채택한 공식 표어는 “함께하면 강해집니다! - 러시아를 위해 투표합시다!”이다.
점령지 곳곳에서도 전단, 포스터 등 여러 곳에서 그려진 V자 상징과 표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편 러시아 언론은 점령지 내 사전 투표가 굉장한 성공을 거뒀다며 벌써 축배를 드는 분위기이다.
‘이건 민주주의가 아니라 코미디 쇼’
지난 3일 종료된 헤르손 지역 내 사전 투표에 대해 러시아 일간지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는 “진정한 휴일이었다! 음악이 울려 퍼지고, 풍선이 나부끼고, 러시아 국기가 펄럭였다!” 극찬했다.
“수만 명이 모여들었습니다!”
러시아 당국은 이번 선거를 이용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및 합병은 모두가 지지하는 일이라고 선전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렇듯 세심하게 연출된 이미지 뒤엔 희생된 이들도 있다. 수천 명이 침묵 당하거나, 추방되거나, 투옥되거나, 살해당했다.
떠난 이들도 많다. 특히 신념 상 러시아 점령지에서 살 수 없거나 살기 원치 않는 청년들은 이곳을 떠났다.

사진 출처, Russian-controlled Kherson election commission
페도로프 주지사는 점령지 주민들이 투표를 강요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저들은 모든 가정집을 방문해 ‘투표하시겠습니까?’라고 묻습니다.”
“시민들은 극도로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당연하죠. 군인을 대동한 러시아인들이 집에 대뜸 찾아와 푸틴에게 표를 던질 것인지 묻는다면 모두가 그렇다고 답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죽고 싶은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푸틴을 지지한다는 건 아닙니다.”
한편 어느 헤르손 주민은 BBC에 자신이 사는 지역에선 어떻게 투표가 이뤄졌는지 들려줬다.
안전을 위해 그의 이름이 사는 곳을 공개할 순 없지만, 이 주민은 “친러 성향의 지역 당국이 투표함을 들고 가정집을 찾는다. 무장한 군인을 대동한다. 문을 두드렸는데 아무런 대답이 없으면 다른 집으로 간다. 문을 부수고 들어오진 않고 방문하기만 한다”고 말했다.
이 주민은 “웃기지도 않는다. 유권자 명부와 투표함을 든 관계자가 기관총을 들고 있는 군인과 집에 찾아오는 데 이게 어떻게 선거냐”면서 “이건 민주주의가 아니다. 코미디 쇼에 불과하다”며 비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