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한국에 낙담한 젊은 세대

사진 출처, BBC/ Danny Bull
- 기자, 조나단 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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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현장은 작고 좁다. 비탈에서 약 60m 내려온 바닥 부근은 폭이 3.5m에 불과하다.
아침 햇살이 들어오기에도 너무 좁은 골목. 그 골목에는 이름조차 없다.
한 줄의 출입금지 테이프와 경비를 선 두 명의 경찰이 없었다면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골목 한쪽에는 10층 높이 해밀턴 호텔의 특색 없는 벽이 우뚝 솟아있다. 다른 한쪽에는 작은 가게가 줄지어 있다. 남인석 씨(81세)가 11년 동안 운영한 옷가게 '밀라노 컬렉션'의 초록 간판이 보인다.
10월 29일 밤 남 씨는 좁은 골목이 죽음의 덫으로 바뀐 참혹한 사건을 목격했다.
"19시쯤에는 이미 골목이 꽉 차서 걱정이 됐다. 걸어 다니기가 정말 힘들어 보였고, 내 가게 입구는 완전히 막혀 있었다."
"식당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고, 동시에 더 많은 사람들이 큰길에서 올라오려 했다."
"21시 50분쯤 가게 문을 열었더니 두 젊은 여성이 들어왔다. 신발은 벗겨져 있었고 몸은 흙과 멍투성이였다. 진정될 수 있도록 안아줬다."
"밖에서는 도와달라는 비명이 들렸다. 싸움이라도 일어난 줄 알았다. 밖으로 나가보니 사람들이 층층이 쌓여있었다."
"다들 도와달라고 소리를 질렀다. 빼내려고 해봤지만 실패했다. 그 젊은 친구들은 모두 숨을 못 쉬었고 완전히 탈진한 상태였다."
피해자를 돕기 위해 오전 4시까지 길가를 떠나지 못한 남 씨는 그날 밤 목격한 광경을 떨쳐낼 수가 없다.
"사고 장소 정리를 도왔다. 신발이나 가방처럼 거리에 남겨진 물건이 너무 많았다. 경찰이 가방과 옷 수거를 도와달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 그 상황에서 자러 들어갈 수 있겠나? 그럴 수는 없었다."
밤 10시가 조금 지나자 혼돈이 절정에 달했다. 내리막의 비극을 아직 눈치채지 못한 경찰 한 명이 골목 맨 위에서 인파를 분산시키려 애쓰는 모습이 포착됐다.
"제발 이동하세요,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경찰은 계속 외쳤다. 힘든 모습이 확연했다.
이날 밤 근무한 이태원 파출소 김백겸 경사의 고군분투에 많은 감사가 전해진 한편, 김 경사 본인의 설명으로 현장 도착 과정이 드러났다.
이태원 파출소는 사고 현장에서 불과 몇백 미터 거리에 있지만, 압사 상황이 발생하기 전까지 경사는 파출소 내에서 대기 중이었다.
실제로 출동한 것은 시비 사건이 접수됐기 때문이다. 도착 전까지는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그때까지 경찰에는 이미 11건의 신고 전화가 접수됐다. 오후 18시 34분에 전화한 첫 번째 신고자는 이미 인파 과밀 상태가 위험 수준임을 경고했다.
아시아에서 특히 뚜렷한 존재감을 보이며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한국 경찰이 이 비극에 앞서 아무런 예방 조치도 세우지 않았다는 사실이 전해지자 전국이 충격에 빠졌다.

사진 출처, BBC/Jonathan Head
거리에서는 한 여성이 경찰관에게 고함을 지르자 다른 사람들이 이를 제지하며 경찰 개인의 잘못이 아니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특별수사본부를 꾸려 대응했지만, 당국이 이번 참사의 원인을 철저히 규명해낼 것인지 회의적인 시각이 존재한다. 여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한국은 2014년 최악의 평시 재난을 겪었다. 산업 도시 안산의 단원고 학생 325명을 태운 여객선이 전복되면서 청소년 약 250명이 숨졌고 교사 11명과 관계자 43명도 사망했다.
이후 조사를 통해 여객선이 불법 개조됐고 화물 고정에 문제가 있었으며 과적 상태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선장은 살인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다른 많은 관계자도 기소됐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대응이 부적절했다는 인식이 추후 탄핵에 영향을 미치는 등 해당 사안은 고도로 정치화됐다.
3차례의 청문회 끝에도 핵심 내용이 밝혀지지 않았다.
침몰 사고에서 살아남았지만 6명의 친구를 잃어야 했던 장애진 씨의 아버지 장동원 씨는 "아이들을 잃은 지 8년이 지났지만 제대로 밝혀진 것이 없다"라며 "이번에도 진실은 묻혀버릴 거라는 불안감이 또 다른 트라우마로 다가온다. 인생을 채 펼쳐보지도 못한 젊은이들이 왜 죽어야 하는가"라고 말했다.
또한 "더 이상 이런 비극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이번에야말로 진실을 밝혀 정말로 안전해진 나라에서 가족과 행복하게 살 수 있길 진심으로 소망한다"라고 전했다.
장 씨는 현재 책임자 처벌을 위해 노력하는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피해자 가족협의회'를 총괄하고 있다.
장 씨와 대화한 장소는 학교에서 멀지 않은 안산 시내 사무실로, 이 곳에서 유가족을 지원 중이다.

사진 출처, BBC/ Danny Bull
아직 어리고 때묻지 않은 세대가 더 냉소적인 어른 세대에게 다시 한번 배신당했다는 인식이 널리 확산되고 있다.
한 틱톡 사용자는 "기성세대가 젊은이들을 다시 죽음으로 내몰았다"라며 "왜 과거가 미래를 물어뜯도록 내버려 두는가? 이 끝없는 순환을 깨뜨릴 수는 있는가?"라고 썼다.
유튜브에는 이런 댓글도 달렸다. "20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조국이 날 지켜주지 않을 것 같다. 너무 우울하다", "나는 정말 21세기에 선진국 한국에 살고 있는 걸까? 이 땅에서 계속 살아가려면 우리 청년들은 누구를 믿어야 하나?", "정치인들은 권력만 원하고 책임은 나 몰라 한다. 이런 태도가 정말 역겹다."
한국이 급격한 경제성장의 대가로 안전을 희생시켰다는 인식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큰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회자됐고 국가도 분명 여기에 책임이 있다. 안전을 강화하겠다는 약속도 반복됐다.
세월호 참사 8주기를 맞아 윤석열 당시 대통령 당선자는 페이스북에 공약을 내걸고 "세월호 희생자들에 대한 가장 진심 어린 추모는 대한민국을 안전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믿는다"라고 썼다.
대중의 분노가 고조되는 가운데, 윤 대통령은 그 약속을 두고 시험대에 오른 정권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