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사고: 위기의 상황에서 보통의 사람들이 발휘한 힘

서울 용산구 해밀톤 호텔 옆 이태원 압사 참사 사건 현장

사진 출처, News1

사진 설명, 1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해밀톤 호텔 옆 이태원 압사 참사 사건 현장

이태원 압사 사고 현장에서 누군가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위급 상황에서 벗어난 이들의 이야기가 주목받고 있다.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던 경찰관부터 다른 사람들을 구조한 시민들, 인근에서 사고 소식을 듣자마자 달려와 사상자들에게 심폐소생술(CPR)을 한 의사 등 다양한 시민들의 이야기가 온라인 커뮤니티와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청자켓 남성, 가죽자켓 남성, 그리고 인터넷 방송인

인터넷 방송 아프리카TV의 BJ 베지터는 29일 라이브 방송을 위해 이태원을 찾았다가 우연히 사고 현장에서 인파에 휘말렸다.

당시 현장의 혼란스러운 모습이 고스란히 영상에 담겼다. 사람들로 꽉 막힌 골목에서 힘으로 버티고 서 주변사람들을 도운 청자켓 남성으로 부터 구조된 베지터의 이야기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됐다.

베지터는 1일 자신의 방송 채널에서 "정말 감사한 사람은 청자켓 형님"이라며 "나뿐만 아니라 여러명을 감싸서 힘으로 버티고 있었고, 넘어지지 말고 믿고 버티라고 마인드컨트롤을 해줬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서울 용산구 원효로 다목적 실내체육관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유실물센터를 찾은 부상자가 유실물을 찾고 있다

사진 출처, News1

사진 설명, 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원효로 다목적 실내체육관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유실물센터를 찾은 부상자가 유실물을 찾고 있다

사람들 사이에 끼어 있던 그는 근처 난간 쪽에 있던 다른 사람들에 의해 구조됐다며, 이에 대해 "외국인 형님과 뿔테 안경 형님이 손 뻗어줄 때 (청자켓 형님이) 먼저 올라가라고 했다"며 "청자켓형님은 나를 올려준 이후에 다른 사람을 계속 올려줬다"고 덧붙였다.

온라인 상에 화제가 된 사진에는 당시 첫자켓을 입은 남성의 어깨를 밟고 난간 위로 올라가는 베지터의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난간 위로 구조될 때 베지터를 잡아준 "외국인 남성"은 검은 가죽재킷을 입고 있었는데, 이 남성은 베지터 외에도 여러 사람들을 도와 난간 위로 끌어올렸다.

이후 자력으로 난간 위로 올라간 '청자켓 남성'과 '가죽자켓 남성', 그리고 베지터가 여러 차례 다른 사람들을 난간 위로 끌어 올렸다는 이야기 알려지면서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이들을 '이태원 의인'이라 부르고 있다.

베지터는 현장에서 세 사람 외에도 여러 사람들이 구조를 도와줬다고 전하기도 했다.

한편, '청자켓 남성'은 사고 직후 KBS 인터뷰에 응해 당시 상황을 전했는데, 함께 현장에 있던 그의 친구가 끝내 사망했다고 전해 안타까움을 샀다.

동영상 설명, 이태원 사고: 슬픔과 비탄에 빠진 생존자와 유가족들

절박하게 소리치며 고군분투한 경찰들

사고 현장에 출동해 사람들이 더 이상 접근하지 않도록 통제하고 사상자들을 구조하려고 애썼던 경찰들의 이야기도 뒤늦게 알려졌다.

특히 한 유튜브 채널에 31일 올라온 영상에 등장한 한 경찰관은 영상 속에서 "사람이 죽고 있어요", "제발 도와주세요"라고 절박하게 소리치며 사람들이 사고 현장으로 진입하지 못하게 했다.

해당 영상에 "이분 덕에 반대 방향으로 갈 수 있었다. 혼자 이렇게 외치고 다녔다. 진심 훌륭한 분이시다. 감사드린다"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또 "주변 음악 소리가 너무 시끄럽고 분장 때문에 처음엔 코스튬(플레이어)인지 상황파악이 안 되었는데 영상에 나오신 경찰관분이 사고장소 윗쪽에서 제발 뒤로 가달라고 울부짖고 계셔서 마스크를 쓰셨는데도 애절함이 너무나 느껴져서 당시엔 어떤 상황인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지만 큰 일이 났구나 싶 바로 집으로 왔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러면서 "아직도 얼굴이 잊혀지지 않는다"며 "트라우마가 심하실까봐 너무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해당 경찰관은 서울 용산경찰서 이태원파출소 소속 김백겸(31세)경사로 알려졌다.

그는 1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 응해 "참사 사고가 발생하기 이전이었던 지난달 29일 밤 10시에서 10시 10분 사이 나와 같은 조를 이루고 있는 후배 경찰 2명과 단순 시비 신고를 받고 출동을 나갔다"며 신고 발생지가 해밀톤호텔 옆 골목길 근처로 사고 발생지 인근이었다고 덧붙였다.

서울경찰청 수사본부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들이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인근에서 현장감식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출처, News1

사진 설명, 서울경찰청 수사본부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들이 31일 오후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인근에서 현장감식을 진행하고 있다

김 경사와 후배 경찰 2명은 신고 발생지로 이동하다가 사고 현장을 발견했고, 이후 구조 작업에 동참했다. 구조활동을 돕던 그는 구조가 지체되자 무전으로 지원을 요청하고 사람들의 통행을 통제해 구조 공간을 확보했다.

그는 해당 인터뷰에서 "하지만 시간이 너무 지체됐던 것 같다"며 "언론에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를 낸 것은 유족들에게 죄송한 마음을 이렇게나마 전달해 드리고 싶어서 결정했다"고 말했다.

딸 구하러 온 아버지 도와준 남녀

사고 현장에서 부상당한 딸의 다급한 전화와 문자를 받고 서둘러 이태원으로 갔던 60대 남성을 도운 "30대로 보이는 남녀"의 이야기도 알려졌다.

이 남성은 다친 딸과 자신을 병원에 데려다준 젊은 남녀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며 30일 자신의 SNS에 사연을 올렸다.

장 씨는 다음날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다리를 다친 딸을 등에 업고 1km가 넘게 뛰었지만, 택시를 못 잡고 있던 자신에게 젊은 남녀가 다가왔다며, 이들이 병원까지 태워다주겠다고 먼저 제안했다고 전했다.

당시 이태원 근방은 교통 통제로 택시를 잡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장 씨가 택시로 이태원에 도착했을 때도 교통 통제로 택시에서 내려 1.5km가량을 뛰어가야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장 씨는 해당 인터뷰에서 이태원파출소에서 만난 딸의 몸상태가 "빨리 병원으로 이송돼야 할 정도로 안 좋았다"며 "그런데 사망자가 너무 많아 경찰과 소방이 그쪽을 먼저 대응하면서 딸 순번까지 오려면 최소 서너 시간은 걸릴 것으로 보였다"고 전했다.

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현장 앞에 마련된 추모공간을 찾은 많은 시민들이 추모를 하고 있다

사진 출처, News1

사진 설명, 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현장 앞에 마련된 추모공간을 찾은 많은 시민들이 추모를 하고 있다

그는 결국 딸을 업고 뛰었지만 택시를 잡기도, 지나가는 차량을 잡기도 어려웠던 상황에서 이 젊은 남녀가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이다.

네 사람은 이 차량을 타고 여의도성심병원 응급실로 갔지만 이곳은 이미 앞서 실려온 사상자들로 포화상태였다.

이 남녀는 장 씨에게 사는 곳을 물어 다시 장 씨 집 근처인 분당차병원 응급실까지 그와 딸을 태워줬다.

장 씨는 "지금 입원한 병원에 도착하기까지 서너 정도 시간이 걸렸다"며 "병원 응급실에 도착해서도 우리를 데려다준 젊은 남녀가 휠체어까지 갖고 와서 딸을 태워 옮겨다주고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거듭 고마운 마음을 거듭 전했다.

그러면서 "고마운 마음을 표시하기 위해 약소한 돈이라도 비용을 치르려고 했는데 한사코 안 받고 다시 건네주고 돌아갔다"고 덧붙였다.

시민들이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를 찾아 헌화를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사진 출처, News1

사진 설명, 시민들이 2일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를 찾아 헌화를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현장으로 달려간 익명의 의사, 구조 활동 동참한 사람들

사고 소식을 듣고 도움이 되기 위해 이태원으로 간 익명의 의사도 있었다.

의사 A씨는 지난달 30일 직장인 앱 블라인드에 글을 올려 "이태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가 사고 소식을 듣고 CPR을 할 줄 아니 현장에 갔다"며 "무딘 편이라 괜찮을 줄 알았는데 가보니 끔찍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 의사는 현장에 도착해 경찰에 의료진이라고 밝히고 사상자들에게 CPR을 했는데 "코와 입에서 피가 나와서 '이 사람들을 살릴 수 없겠구나' 싶었다"고 전했다.

한편 이 의사는 앰뷸런스에 환자가 실려 가는 상황에서 CPR 하다가 잠시 물을 마시는데 행인이 "아우 씨, 홍대 가서 마저 마실까?"라고 말하는 걸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면서 "아무리 CPR을 해도 맥박이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무능한 의사가 된 기분도 끔찍했지만, 타인의 죽음 앞에서 아무 감정 없이 다음 술자리를 찾던 그들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고도 전해 안타까움을 샀다.

일부 시민들이 사고 현장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모습이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현장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구조 활동에 동참했다는 증언들이 나오고 있다.

구조 작업을 벌이던 김 경사는 한겨레 인터뷰에서 구조 활동을 계속 하다보니 힘이 너무 부쳐 인근에 있던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했는데 수십 명이 달려오는 등 "모두 함께 구조를 도와주셨다, 정말 소방, 경찰, 시민 누구 할 것 없이 구조 활동에 응해 주셨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