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보호: '사랑의 매도 안 된다'…62년 만에 삭제되는 '자녀 징계권'

지난 9월 22일 서울 중구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앞에 아동학대에 사용된 물품들이 전시돼 있다

사진 출처, 뉴스1

사진 설명, 지난 9월 22일 서울 중구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앞에 아동학대에 사용된 물품들이 전시돼 있다

자녀 체벌의 법적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온 자녀 징계권 조항이 삭제된다.

법무부는 13일 민법 제915조 징계권 조항 삭제를 포함한 민법 일부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이번 개정에 따라 아동학대에 관한 사회적 인식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자녀 징계'

현재 민법에는 '친권자는 그 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하여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고 법원의 허가를 얻어 감화 또는 교정기관에 위탁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이는 1958년 민법이 제정된 후 62년간 유지됐다.

법무부 개정안은 '필요한 징계' 부분과 '감화 또는 교정기관에 위탁' 부분을 삭제했다.

같은 조항에는 친권자가 법원의 허가를 얻어 감화나 교정기관에 아동을 위탁할 수 있다고도 규정돼있는데 이 부분도 삭제됐다.

13일 국무회의에서는 개정된 '가정폭력범죄처벌특례법' 공포안도 의결됐다. 개정안에는 가정폭력 범죄에 대한 대응과 처벌, 피해자 보호를 강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새로운 법률이 시행되면 가정폭력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수사 돌입 시 형사소송법에 따른 현행범 체포가 가능하다. 가정폭력 범죄에 주거침입과 퇴거불응죄도 추가해 처벌 범위를 넓혔다.

기존 접근금지 위반시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 부과에 불과했지만, 앞으로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 또는 구류에 처할 수 있다. 또 상습범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 조치를 받을 수 있다.

법무부는 앞서 지난 8월 개정안을 입법 예고 후 의견수렴 기간을 거쳐 정부안을 확정했다. 법무부는 오는 16일 국회에 최종 개정안을 제출할 계획이다.

굿네이버스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9월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맞을 짓은 없다 민법 915조 징계권 삭제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뉴스1

사진 설명, 굿네이버스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9월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맞을 짓은 없다 민법 915조 징계권 삭제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훈육 VS. 학대

62년간 유지된 '자녀 징계권'은 오랫동안 '시대착오적' 조항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올해 천안과 창녕에서 일어난 아동학대 사건으로 이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졌다. 당시 사건의 가해 부모들은 '아이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한 훈육'이었다고 주장했다.

천안에서 9살 남아를 가방에 가둬 숨지게 한 계모는 "아이가 게임기를 망가뜨리고 거짓말을 해서 훈육을 목적으로 가뒀다"고 진술했다.

창녕에서 심한 화상으로 손가락의 지문이 없어진 채 발견된 9세 여아를 학대한 혐의를 받는 계부 또한 "거짓말을 해서 훈육하려고 했다"고 진술했다.

실제로 해당 조항의 해석에 따라 친권자의 폭력적 아동학대 행위가 훈육 목적에 따른 것으로 해석돼 감경되거나 무죄가 선고되는 일이 있다.

앞서 지난 2019년 서울북부지법은 16세 아들을 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최모(당시 46세)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012년 대구지법 안동지원은 물건 훔치는 버릇을 고치겠다며 파리채로 딸을 수차례 때린 아버지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들을 훈육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폭행이고 친권자의 징계권 범위에 속하는 행동이라고 봤다.

9세 의붓아들이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7시간이 넘게 여행용 가방에 가둬 심정지 상태에 이르게 한 40대 계모

사진 출처, 뉴스1

사진 설명, 9세 의붓아들이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7시간이 넘게 여행용 가방에 가둬 심정지 상태에 이르게 한 40대 계모

하지만 아동단체들은 자녀 체벌은 훈육 목적에도 효용성이 없다고 말한다.

지난 6월 세이브더칠드런이 만 14세부터 18세 아동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체벌을 받은 이후 생각이나 감정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73.8%가 '싫고 짜증난다', '억울하다', '체벌을 가해서는 안 된다', '수치스럽다'고 답했다.

반면 '자신의 잘못 때문에 체벌을 받았다'고 답한 비율은 26.2%에 그쳤다. 자신의 행동을 바로 잡는 데 도움이 된 부모의 말이나 행동으로는 절반 이상이 '그 행동을 하게 된 이유를 물어주며 더 나은 해결방법을 알려주기'(58.5%)라고 답했다.

아동 전문가들은 체벌이 아이들에게 부작용을 끼친다고 지적했다.

헬로스마일센터 김진희 아동 심리상담가는 앞서 BBC 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상당수의 부모들이 빠지는 오류가 '내가 널 낳았잖아'하면서 아이들에게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학대 피해 아동은 부모를 두려워하기도 하지만, 사랑하는 양가적 마음이 있어서 거부와 폭력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고 말했다.

김 상담가는 "내가 이전에 받았던 경험들이 잘못됐다는 걸 알고 부모님들이 스스로 깨달음을 얻는 교육이 필요한 때"라고 덧붙였다.

장화정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본부장도 아동 학대 관련해 부모 징계권이 아이의 인격에 앞설 수 없다고 했다. 그는 "국민들의 인식, 예를 들어 '때려서라도 좀 가르쳐 보지', '말 안 들으면 당연히 맞아야지' 같은 생각들이 이제는 좀 고쳐져야 할 시기가 됐다"며 "사실 내 아이라해도, 이 아이도 하나의 인격체이고 독립체"라고 했다.

동영상 설명, 아이를 학대하는 부모는 어떤 마음가짐을 갖고 있는 걸까. 학대 받는 아이들에게선 어떤 징후가 포착될까.

하지만 징계권 삭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친권자는 법적으로 아동을 보호하고 교육할 의무가 있는 사람인데, 정작 자녀가 잘못했을 때 이를 바로잡을 방식까지 국가가 규율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주장이다.

자녀들이 부모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거나, 극단적이지만 부모가 자녀 양육을 포기하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다른 나라 기준은?

현재 전 세계 60여개국이 자녀 체벌을 금지하고 있다.

스웨덴은 1979년 세계 최초로 아동체벌 금지를 명문화했다. 스웨덴의 '어린이와 부모법'은 가정, 학교, 공공장소에서 아동을 때리거나 벌주고 폭언하는 등의 체벌을 금지한다.

미국은 과거 1800년대 체벌실(Whipping Room)을 따로 둘 만큼 체벌이 만연했지만, 지금은 체벌을 금지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특히 뉴멕시코주에선 아동학대가 사망으로 이어지는 경우 1급 살인으로 간주해 3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

뉴질랜드는 지난 2007년 부모의 친자녀에 대한 체벌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당시 뉴질랜드 형법으로 자녀교육상 맨손으로 세게 때리는 정도는 범죄 행위로 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규정이 자녀를 학대하는 부모의 구실로 악용되고 있다고 비판을 받으면서 개정을 하게 됐다.

독일도 2000년 민법 개정을 통해 자녀 체벌 금지 조항을 신설했다.

일본에서도 부모의 체벌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아 아동학대방지법을 개정해 올해 4월 1일부터 시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