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학대 아동을 마주친 당신,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알고 있나요?

사진 출처, CCTV 캡처
- 기자, 김효정
- 기자, BBC 코리아
부모의 학대를 피해 4층 높이에서 탈출했던 '창녕 소녀' A양은 한 시민의 신고로 구조됐다. 경찰 조사 결과 A양은 목에 쇠사슬이 채워져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며 학대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속에서 고립된 학대 피해 아동들이 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학대 아동을 우연히 마주치게 된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전문가들에게 알아봤다.
전문가들이 본 창녕아동 신고자
신고자: "얘야, 여기서 뭐하고 있는거니?"
창녕 아동: "지금 놀고 있는데 슈퍼 가려고 나왔어요"
신고자: "슈퍼 어디로 가니? 아줌마 괜찮으니까 이야기해봐 데려다줄게"
창녕 아동학대 신고자 송모 씨가 A양과 처음 나눈 대화다.
송 씨는 "내가 어른이고 경계할 수도 있어서 우선 편하게 해주려고 했다"라고 SBS 취재진에게 밝혔다.
맨발이던 아이에게 자신의 신발을 신겨 준 그는 인근 편의점으로 데려가 아이에게 먹을 것을 사주며 응급 치료를 했다.
송 씨에게 A양은 처음엔 "무조건 괜찮다"라고 답했지만 이후 학대 피해 사실을 털어놨다.

사진 출처, CCTV 캡처
전문가들은 송 씨의 말과 행동들이 아이의 심리적 안정에 도움이 됐을 것으로 판단했다.
헬로스마일센터 김진희 아동 심리상담가는 "아이가 심리적으로 보호감을 느끼고 안전하다고 지각하게 되면 자신의 두려운 상태에 대해 터놓고 말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며 "아이를 신고한 시민의 행동은 일종의 라포(rapport·상호신뢰관계) 형성"이라고 분석했다.
학대 피해 아동들이 사람들에게 '도와달라'라며 자신의 이야기를 먼저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서 편안한 분위기 조성은 매우 중요하다.
김 상담가는 "학대 피해 아동은 부모를 두려워하기도 하지만 사랑하는 양가적 마음이 있어서 거부와 폭력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며 "그렇기에 부모의 훈육 방식이 잘못됐다고 자각하기 어렵다"라고 했다.
아이가 '괜찮다'라고 해도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직접적인 질문은 피해야
학대 피해 정황이 보이는 아이와 이야기를 할 상황이 온다면 '직접적인 질문'은 피해야 한다. 아이에게 혼란을 주는 행동일 뿐만 아니라, 유도 질문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이런 경우 실제 있었던 일보다 과장하거나 축소해서 말하는 '진술 오염'이 돼 조사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아이 몸에 있는 상처 등을 보고 '부모님이 때렸니?', '여기 그 사람이 그렇게 했지?' 등의 물음은 피하는 것이 좋다.
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피해 상황을 아이에게 계속해서 물어보면 정작 조사실에 왔을 때는 "다 이야기했어"라며 진술을 거부하는 일도 생긴다.
특히 CCTV 등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아동 진술은 법정 판단을 가르는 요소가 되기에 학대 피해 아동과의 대화는 유의해야 한다

사진 출처, tvN<마더>
법무법인 신세계로 조인섭 변호사는 "아동 대상 학대나 성범죄의 경우 아동 진술의 신빙성이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그런데 "아동들의 경우 진술을 하면 할수록 진술이 확대재생산이 되는 등 처음과 진술이 일관되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섣불리 아이에게 반복 질문을 하거나, 아이가 이야기하지 않은 내용을 추정해서 확인하는 질문을 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아이가 대답하지 않는다면 더 묻지 말고 전문기관에서 이야기를 나누도록 신고를 하는 게 좋다.
대화를 하며 시간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쉬운 언어로 객관적인 사실을 짚어주는 정도가 적당하다.
'신발을 안 신었구나', '여기 상처가 있네?'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학대 정황을 기록하기 위해 아이에게 동의를 구해 말을 녹음하거나 사진을 찍으면 증거 수집에 도움이 된다.
부모 찾지 말고 바로 경찰 신고
아이에게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다면 바로 경찰이나 관련 기관에 신고해야 한다. 신고가 늦어지면 아이가 더 기나긴 고통의 시간을 견뎌야 하는 일도 생긴다.
지난 2016년 12월 인천에서는 12살 소녀가 3년간의 학대를 이기지 못해 집 배관을 타고 탈출한 사건이 있었다.
16kg로 만 4세 아동 평균 몸무게밖에 나가지 않았던 이 아이는 동네 슈퍼에서 과자를 뜯어 먹고 빵이 담긴 바구니를 훔치다 붙잡혔다.
한겨울에 반소매 옷을 입고 음식에 집착하는 모습을 이상하게 여긴 슈퍼마켓 주인은 곧바로 경찰에 아동학대를 신고했고 아이는 구조됐다.

사진 출처, CCTV 캡처
그런데 경찰 조사 결과 이 아이는 전에도 한차례 집을 탈출한 적이 있었지만, 다시 감옥 같은 집으로 보내졌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첫 번째 탈출 당시 아이를 본 행인이 도움을 준다는 요량으로 부모에게 인계했기 때문이다. 아이는 경찰에서 "그 어른에게 집이 있다고 알려준 걸 후회했다"고 말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공혜정 대표는 "만약 슈퍼 주인 입장에서 '과잣값을 받기 위해 부모를 찾아야겠다'라고 생각했다면 학대 피해가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의심이 생기면 고민하지 말고 바로 112로 신고해달라"고 당부했다.
경찰에 신고하고 아이와 함께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편의점 등 개방된 공간에 보호를 요청할 수 있다.
공 대표는 "한국에선 경찰이 10분 이내에 출동한다. 기다려주면 제일 좋지만 어려울 경우 열린 공간에 아이를 맡기고 경찰에게 인계해달라고 요청해달라"고 조언했다.
'신고하면 귀찮아지는데...'
현실에선 '신고해 봐야 귀찮아지고 달라지는 것도 없다'는 인식도 있다.
"별것 아닌데 문제를 키운다'거나 '내 자식은 내가 가르친다'는 부모와 갈등이 생길 수 있다는 게 그 이유다.
알고 지내던 이웃이나 지인이 아동 학대 가해자로 의심된다면 고민은 더 커진다. 확실한 증거가 없어 신고가 망설여지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 공 대표는 "아동 학대는 다른 사건과 달리 '의심'만으로 신고를 할 수 있고, 신고자의 신고와 신원은 비밀로 보장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여전히 부담스럽고 두려움이 있다면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등 관련 기관에 제보해달라. 대신 신고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신고자의 신분은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 10조, 제 62조에 의해 보장된다.
이 외에도 막상 용기를 내 신고했지만, 무죄로 판단되면 명예훼손이나 무고죄로 소송을 당할 수 있다는 부담도 있다. 하지만 신고 자체만으로 이는 성립하지 않는다.
조 변호사는 "무고죄는 범행을 하지 않았다는 걸 알면서 거짓으로 고소한 경우에 해당한다"며 "수사기관에 신고했다고 명예훼손이 되는 건 아니고,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해 소문이 나면 (명예훼손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학대 피해 아동의 징후
이번 창녕 아동처럼 멍이나 고름 등 외상이 있어 아동학대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아동권리보장원에 따르면 계절에 맞지 않는 옷차림하고 있거나 울음이나 비명이 들리는 경우, 아동이 위축돼 있거나 실수에 대해 과잉 반응을 보이는 경우, 나이에 맞지 않는 성적 행동을 보이는 경우 등에는 학대 피해를 의심해봐야 한다.

사진 출처, 아동권리보장원/보건복지부
공 대표는 "요즘같은 여름에 긴 옷을 입고 다니는 아이들이 있다면 팔을 걷어 상처가 있는지 확인을 해보는 게 좋다"며 "또 맨발로 아이가 돌아다닌다면 일단은 신고를 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아동학대 신고 건수 줄어
한편 한국에서 아동학대 사례는 계속 증가하는 추세였지만 올해 상반기 신고 건수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아동학대 사례 건수는 2016년 1만8700건, 2017년 2만2367건, 2018년 2만4604건, 2019년 3만70건이었다.
하지만 지난 18일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올해 3~5월 아동학대 신고 접수는 전년 같은 기간 대비 13~21% 정도 감소했다.
이는 코로나19 확산으로 학교나 유치원·어린이집에 가는 횟수가 줄어들면서 아동학대 사각지대가 넓어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