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미국에서 '직장 내 핫이슈' 된 임신중지권

회사의 임신중지 복지에 찬성하는 직원들은 비록 자신이 그 혜택을 직접 사용할 가능성이 없더라도, 그러한 혜택의 유무는 기업이 중시하는 가치를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사진 출처, Getty Images

사진 설명, 회사의 임신중지 복지에 찬성하는 직원들은 비록 자신이 그 혜택을 직접 사용할 가능성이 없더라도, 그러한 혜택의 유무는 기업이 중시하는 가치를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전통적으로 임신중지는 직장 생활과는 무관한 개인의 사적인 문제였다. 약물 치료를 할 것인지 아니면 수술을 할 것인지는 물론, 보험이나 정부가 지원하지 않는 비용을 충당하는 일은 당사자가 알아서 해결했던 것이다.

그런데 최근 일부 미국 기업들이 직원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이 문제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경향은 최근 몇 년 새 미국의 몇 개 주에서 임신중지 관련 규제를 도입하면서 시작됐다.

그러던 지난 6월 24일, 미국 연방대법원은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에 명시된 낙태권을 뒤집었다. 이후 직원들의 임신중지를 지원하는 기업들이 더 늘었다. 연방대법원 판결로 많은 의료진이 방아쇠법(Roe v Wade 판결의 효력이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임신중지가 자동으로 금지되는 법)과 함께 관련 시술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대부분의 기업들은 이 문제에 침묵하고 있다. 섣불리 나섰다가 대중의 인식이나 기업 운영 측면에서 후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에 신중을 기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일부 기업들은 임신중지를 원하는 근로자를 지원하겠다고 공표하는 상황이다. 그 지원에는 상담 지원, 유급 휴가, (임신중지가 합법인) 다른 주로 가는 교통비, 필요한 경우 변호사 선임비용 등이 포함됐다.

향후 몇 달간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는 알 수 없다. 임신중지 지원책을 내놓는 기업이 늘어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직장에서 생식 건강(생식기 계통과 관련된 건강)과 관련된 문제를 이야기하거나 이에 대해 조치하는 것은 기업과 직원 모두 쉽게 논쟁을 매듭지을 수 있는 사안은 아닐 것이다.

일부 기업들은 직원 복지에 임신중지 관련 지원을 포함시키고 있지만, 이 흐름은 아직 산발적으로만 나타나고 있다

사진 출처, Getty Images

사진 설명, 일부 기업들은 직원 복지에 임신중지 관련 지원을 포함시키고 있지만, 이 흐름은 아직 산발적으로만 나타나고 있다

교통비 및 돌봄 비용을 지원하는 기업들

임신중지를 제한하는 움직임은 미국 내 보수 성향이 강한 주에서 활발하다. 특히 지난해 9월 텍사스에서 임신 6주 이후의 임신중지가 금지된 이후, 이러한 흐름이 더욱 거세졌다. 텍사스 주 법안에 영감을 받은 오클라호마 주 의원들은 지난 5월 주차에 상관없이 모든 임신중지를 법으로 금지했다.

세간의 이목을 끄는 임신중지 제한 조치가 나오자, 개인의 선택권을 옹호하는 사회 운동가들의 반발도 격렬해졌다. 그리고 아직은 소규모지만, 이 담론에 참여하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특히 작년에는 기업의 복지 정책에 임신중지 관련 지원을 넣는 기업들도 등장했다. 이러한 흐름은 로 대 웨이드 판결에 대한 연방대법원의 결정이 나온 뒤에도 계속 이어졌다.

미국 HR 컨설팅 기업인 '넥스트 레벨 베네핏'의 대표인 로렌 와이난스는 기업들이 임신중지를 지원하는 "가장 일반적이고 인력 운용 면에서 지속가능한 방식은 건강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생식 건강 서비스에 드는 비용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요즘 이런 식으로 혜택을 제공하는 회사 대부분은 직원이 임신중지를 위한 이동에 들어간 비용 및 돌봄에 사용한 금액 중 최대 1만달러까지 보상해주고 있어요."

임신중지를 위한 이동 비용은 보통 수술이나 자가 임신중지 처방을 위해 다른 주로 가는 비용을 말한다. (약물 치료 등 자가 임신중지는 미국에서 가장 일반적인 임신중지 형태다.) 아마존과 리바이스, 시티그룹은 현재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주에서 임신중지를 할 수 없는 직원들의 이동 비용을 보상해주고 있다. 요구르트 제조업체 초바니, 파워 홈 리모델링, 아말게이티드 뱅크 등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임신중지를 위해 집을 비웠을 때의 아이 보육 비용을 제공한다.

동영상 설명, 낙태 시술을 받은 여성의 이야기

임신 및 모성 건강에 중점을 둔 벤처캐피탈 펀드인 리아벤처스는 기업들이 공개한 생식 건강 지원 내용을 자료로 만들어 정리했다. 이 자료에는 현재 100개 미만의 기업들이 들어 있는데, 기업마다 선별적인 지원을 하고 있었다.

지속가능성 컨설팅 BSR의 최고운영책임자인 라우라 기트만은 임신중지 혜택 제공에 적극적인 기업들은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데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정치적으로 자유주의 경향이 강한 미국 연안에 본사가 있는 기업이나 대형 IT 기업들도 여성 직원의 목소리에 귀를 많이 기울이려 한다. 때문에 이들 기업 중에서 향후 생식 건강 정책을 확대하는 기업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지난 1월 확대된 생식 건강 정책을 도입한 알로이도 이러한 기업에 속한다. 이 회사의 지원 정책에는 임신중지 금지법과 관련된 법적 비용(최대 5000달러), 주 외부로 가는 교통비 (최대1500달러), 직원 및 그의 파트너 부담 의료비(최대 1500달러)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은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뒤집힌 연방대법원 결정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알로이의 인사 책임자인 킴 응웬은 회사의 직원들이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기회와 능력이 저마다 다르다는 점을 회사의 설립자가 강하게 지적했다고 말했다. 이 회사엔 직원 약 200명이 있는데, 대부분 임신중지 제한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역에 살고 있다. 직원의 50%는 여성이며 3%는 성소수자다.

자료에 따르면, 이 정책은 직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지난해 8월 리서치 기업 '페리 언덤'이 미국 성인 18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73%는 고용주의 건강 보험에 임신중지를 포함해주기를 원했다. 그리고 69%는 기업이 성 평등을 위해 노력할 때 생식 건강 문제도 챙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임신중지 지원에 대한 선호는 특히 젊은 노동자들과 여성들에게서 높았다.

그들은 비록 자신이 그 혜택을 직접 사용할 가능성이 없더라도, 그러한 혜택의 유무는 기업이 중시하는 가치를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기업이 중시하는 가치는 많은 노동자들이 기업을 선택하거나 직장 잔류를 고려할 때 따지는 주요 요소다.

위험 대 보상

그러나 전반적으로 대부분의 기업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여러 기업, 특히 기술 분야 기업들이 임신중지 지원 정책을 밝혔지만, 대부분의 저명한 기업 및 산업 협회는 지난 5월 유출된 연방대법원 자료에서 로 대 웨이드 판결의 전복이 예고된 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법과 조직 관련 문제, 이념적 입장 등으로 모든 기업이 직원들에게 임신중지를 지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진 출처, Getty Images

사진 설명, 법과 조직 관련 문제, 이념적 입장 등으로 모든 기업이 직원들에게 임신중지를 지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수동적 태도의 원인 중 일부는 임신중지를 지원했을 때 어떤 결과가 생길지 아직 불확실하다는 것과 정치적 이유일 것이다. 미국의 의료 서비스는 엄청나게 복잡하다. 임신중지 및 관련 지원이 불법인 주에서 기업이 이를 지원하면 법적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 버지니아에 본사를 둔 '닉슨 그윌트 로' 소속 변호사인 베다니 코빈은 미국 전 지역에서 사업하는 기업들은 임신중지 법안에서 제한하는 것을 하나하나 따져 지역 별로 맞춤형 지원을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맞춤형 정책은 대기업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중소기업은 일반적으로 복지 혜택을 자사가 원하는 대로 짜기 어렵다. 법률 회사 '브래들리'의 복리후생 전문가인 데이비드 조프는 작은 기업에는 자사의 의료 관련 복지를 맞춤형으로 만들려는 고용주도 적고, 기존 복지 정책을 확장하려 해도 자원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지리적인 문제도 있다. 그는 "일부 주에 있는 보험사들은 임신중지를 합법화한 주에서 받은 치료에 대해서는 혜택을 제공하지 않으려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임신중지 지원을 시행할 경우 부정적인 파급 효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LA에 본사를 둔 '웨스트 코스트 트라이얼 로이어'의 고용 소송 담당인 론 잠브라노는 "예를 들어 보수적인 주에서 선출된 공직자들은 공공 기관이 해당 기업과 사업을 하지 않도록 압박하는 방식으로, 임신중지를 지원하는 기업을 처벌하려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부 기업들은 임신중지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고 직원들을 지원하기도 한다. 한 HR 리더는 직원들의 임신중지를 지원하려는 기업들은 조용하고 비공개적인 방식으로 지원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말했다.

뉴스레터 '포퓰러 인포메이션'에 보도된 것처럼, 한 PR기업은 대법원 자료 유출 직후 자사 기업 고객에게 "이 문제는 교과서 '50/50' 문제입니다. 국가를 분열시키는 주제는 때로는 기업에게 불리한 상황이 될 수 있습니다"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기트만을 포함한 일부 전문가들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생식 건강을 위해 임신중지 치료에 대한 합리적인 접근이 가능해야 한다는 게 많은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대다수 미국인들의 의견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기업이 직면할 위험이 적을 것"이라며 "임신중지 지원 정책이 실제로 소비자나 직원을 대규모로 등 돌리게 만들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임신중지 지원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다양하다. 이러한 다양한 반응에는 기업이 사업을 하는 영역, 정치적 행동주의에 대한 기록, 소비자 기반의 정치적 견해가 영향을 미친다. 어떤 사람들은 텍사스에서 임신중지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구호 기금을 만들고 있다고 밝힌 데이트 앱 '범블'에 가입하거나 투자하겠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식품회사인 초바니가 임신중지 접근에 대한 건강 보험을 확대한다고 발표한 후, 일부 고객들은 회사에 감사와 애정을 표했다. 반면 금융그룹 씨티의 주주들은 회사의 임신중지 치료 교통비 지원 정책이 합리적인 자금 사용인지 의문을 제기했다.

'미지의 땅'

직장에서 임신중지를 지원하는 것이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다. 기트만은 많은 사람들이 고용주보다는 지역 사회 단체로부터 지원받는 것을 더 편하게 여길 것이라고 말했다. 코빈은 이와 함께 정보 보안을 우려하고 있다. 그는 임신중지 혜택을 시행하는 회사가 관련 법률을 알고 있는지 확인하고 데이터 개인 정보 보호 및 보안 표준을 다시 검토해 모범 사례를 마련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게다가 임신중지 지원 혜택은 이미 상대적으로 가진 게 많은 직원들에게 유리할 수 있다. 미국에서 원치 않는 임신이 일어날 가능성은 불안정 고용이나 저임금 고용 상태에 있는 여성에게 더 높다. 하지만 기업들이 밝힌 임신중지 지원 정책 중 일부는 시간제 근로자 또는 아직 직원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법이나 정책이 계속 달라지는 환경에서는 항상 누가 그 혜택을 누릴 수 있고 그렇지 못한 이들에 대해선 어떻게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래서 그래서 기트만은 "아직 우리는 미지의 땅에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