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벨리, 잉글랜드 최초의 왕비가 소유했던 마을

사진 출처, Amanda Ruggeri/BBC
- 기자, 아만다 루게리
- 기자, BBC 트래블
마을 전체가 한 사람 소유인 마을, 그림 같은 풍경, 차로는 안 되고 걸어서만 다닐 수 있는 곳. 화가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부터 작가 찰스 디킨스까지 수많은 예술가들이 영감을 받은 클로벨리다.
잉글랜드 남서부 데본 해안가에 있는 클로벨리는 두 가지 독특한 점이 있다.
첫 번째, 방문자 센터에서 성인 한 명당 8.5파운드(어린이는 4.95파운드)를 내야만 들어갈 수 있다.
두 번째는 썰매다. 이곳은 마을 꼭대기부터 항구까지 약 120미터 정도 길이의 가파른 언덕길을 따라 작은 집들이 이어진다. 이 언덕에 사는 주민들은 상점에서 구입한 물건을 이동할 때 썰매를 이용한다.
이곳을 처음 방문한 이들은 이 두 가지가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1988년에 문을 연 방문자 센터와 1970년대까지 당나귀가 하던 역할을 대체한 썰매는 이 마을 공동체가 1000년 역사를 보존하면서 현대에 적응한 방식이다.
오늘날 클로벨리에는 자동차가 다니지 않는다. (사실 마을에 자동차를 도입하려 해도, 차가 오르기에는 너무 가파른 마을이다) 체인점과 교통 소음, 빛 공해도 없다.
대신 자갈길과 하얀 오두막, 14세기에 만들어진 돌 부두에서 물살을 타는 작은 배들, 꽃 위에서 꿀을 빨고 있는 뚱뚱한 벌과 나비, 그리고 마을의 여백을 채워주는 대서양의 소리와 냄새, 풍경이 있다.
2007년 런던에서 6개월간 가족의 비단 공방을 돕겠다고 이곳에 왔다가 눌러앉은 엘리 자비스는 "절벽 끝에 있는 작은 집에 산다는 것은 상상도 못해봤다"고 말했다. "그런데 관광객 입장에서 보는 것들이 클로벨리의 진짜 매력이 아니더라고요. 과거가 이 마을에 살아있다는 점이 아름답고 독특한 이곳의 진짜 매력이죠."
과거는 이곳에서 생명력을 계속 확장하고 있다.

사진 출처, Amanda Ruggeri/BBC
11세기에 영국 최초의 공공 기록인 '돔스데이 북'에 등재되던 당시 클로벨리는 윌리엄 1세 소유였다. 왕은 잉글랜드 최초로 정식 대관식을 치른 왕비인 마틸다 플랑드르에게 이 마을을 선물했다. 이후 이 마을은 고풍스러움을 잃지 않았다.
그러면서 화가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부터 작가 찰스 디킨스까지 수많은 예술가들이 영감을 얻는 원천이 됐다. 드라마 '센스 앤 센서빌리티(2008)'와 영화 '건지 감자 껍질 파이 북 클럽(2018)'이 이곳을 배경으로 삼은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19세기 소설가이자 시인인 찰스 킹슬리는 그 누구보다 클로벨리를 영감의 원천으로 삼았던 사람이다. 그는 1854년 아내가 이곳을 처음 방문했을 때 아내에게 쓴 편지에 "방금 당신은 내가 당신을 만나기 전까지 영감의 원천이 되어줬던 나의 오래된 낙원을 만났다"고 썼다.

사진 출처, Amanda Ruggeri/BBC
물론 이 근방에 입장료도 없고 풍경도 그림 같은 또 다른 어촌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첫눈에 그럴듯해 보이는 것은 자세히 봤을 때 그 실체가 드러나곤 한다. 많은 목가적인 여행지가 휴가용 임대 목적으로 개발되면서, 여름에는 관광객들로 가득 차지만 비수기에는 텅텅 비는 것이다.
마을 안에 83채 오두막이 있고 그곳에서 약 300여 명이 살고 있는 클로벨리는 정반대다. 방문자 센터와 기념품 가게를 지나면 실제 이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활기찬 삶을 만나게 된다.
카스 맥파레인은 "이곳에는 실제로 이 공간을 살아가는 공동체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가을 런던에서 이곳으로 이사 온 그녀는 작가에게 헌정된 작은 박물관 '킹슬리 코티지'에서 과자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공동체에선 나이와 지위를 막론하고 모두가 활기차고 즐겁게 살아가고 있죠. 언제든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진 출처, Amanda Ruggeri/BBC
나도 이전에 이 마을을 방문한 적이 있었지만, 사람들이 말하는 클로벨리의 살가움을 직접 목격한 건 크리스마스 시즌이었다. 당시 우리 마을은 클로벨리에서 남쪽으로 15마일 정도 떨어져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입을 모아 클로벨리의 크리스마스 전구 장식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클로벨리에 도착했을 때, 마을은 여름 성수기보다 훨씬 더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었다. 마을 학교 학생 밴드는 크리스마스 캐롤을 연주했고, 사람들은 자갈길에서 서로서로 정겹게 인사를 나눴다.
자비스는 "방문자 중에는 이 마을이 따분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이곳은 정말 많은 일이 일어나는 곳"이라고 말했다. 축제와 행사, 연극 등이 다채롭게 벌어진다는 뜻이다. "그리고 보다 온화한 삶이 있죠. 저는 아이들에게 항상 누군가 너희들을 살펴보고 있다고 말해요. 그러면 아이들은 잘못된 행동을 할 수 없어요. 항상 보살펴주는 사람들이 있는 거죠."

사진 출처, Amanda Ruggeri/BBC
클로벨리의 소유자인 존 라우스에 따르면, 이곳 공동체의 역동성은 의도된 것이다. 나는 그를 12세기에 지어진 교회 그늘에 덮인 석조 건물 단지 내 부동산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클로벨리가 항상 살아있는 마을이어야 한다는 게 중요했다"고 말했다. "휴가 때만 붐비는 마을이 되기를 원하지 않았어요. 시간 단위로 공간을 대여하는 것도 원치 않았죠."
올해 71세가 된 라우스는 백작 부인이었던 어머니로부터 1983년 이 마을을 물려받았다. 클로벨리가 독특한 또 하나의 이유는 이것이다. 영국에서 개인이 마을 전체를 소유하고 있는 곳 중 하나라는 것. 1200년대 이후 이 마을을 소유했던 가족은 라우스 가족을 포함해 총 셋뿐이다.

사진 출처, Amanda Ruggeri/BBC
귀족들의 전성기에는 이러한 소유 형태가 일반적이었다. 토지를 소유한 가족이 농장에서 일할 사람들을 고용하고, 그들에게 집과 상점을 빌려줬다.
그러나 과거 많은 저택들이 매물로 나온 것처럼, 마을들도 소유주의 경제 상황이 달라지면서 매물이 됐다. 1980년대까지 라우스의 가족도 다른 자산을 유지하기 위해 북부 데본에 있는 2000에이커가량의 부동산 중 일부를 매각했다고 한다.
라우스는 "부동산 수입이 별로 없고 관광 수입만 약간 나오는 매우 고달픈 시기였다"고 말했다. 그는 "쇠퇴해가는 것들의 명맥만 유지하고 싶지는 않았다"며 "악화하는 상황을 막고 스스로 재정을 조달하려고 노력하다가 관광에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방문자 센터를 짓고 처음으로 주차장 요금이 아닌 마을 입장료를 부과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방문자 수가 올라갔다. (오늘날 연간 15만 명이 이곳을 방문한다)
물론 이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이곳을 관광지로 만든 지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트립 어드바이저'에는 입장료를 내는 것에 대한 짜증 섞인 불만이 나온다.
그러나 라우스는 그 수입 덕에 클로벨리를 보존할 수 있었다고 했다. 관광 수입 일부는 15세기에 지어진 낡은 오두막집 개조에 들어갔다. 이 마을의 오두막은 습하고 바람이 거센 영국 해안가 날씨 때문에 곰팡이나 지붕 손상 등이 많이 생겨서 지속적인 보수가 필요하다.

사진 출처, Amanda Ruggeri/BBC
클로벨리 고유의 부동산 소유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도 관광 수입이다. 이곳에선 별채나 실제 거주하지 않은 채 집을 소유하는 게 불가능하다. (유일한 토지 소유주인 라우스는 클로벨리 영주 저택에 거주하고 있다. 원래의 영주 저택은 1943년 2차 세계대전 때 화재로 소실됐고, 돌담을 친 클로벨리 코트 가든만 남아서 관광요금에 포함되어 있다) 이곳에서 집을 빌리려면, 반드시 이곳에서 상시 거주를 해야 한다.
자비스처럼 장기 거주하는 사람은 가족이 늘어나면서 집을 여러 차례 바꿔야 한다. 현재 아홉 살, 열세 살인 그녀의 두 아들은 이곳에서 자랐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해마다 썰매로 집기를 나르며 집을 옮긴다.
주민들은 썰매가 그냥 눈요기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클로벨리에서 살기 위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마을 꼭대기에 자신의 썰매를 보관한다. 그리고 이곳에 식료품을 배달하는 외부 차량은 마을 도착 15분 전에 알림을 보낸다. 그러면 마을 사람들은 보관소에서 썰매를 꺼내 배달받은 물건을 싣고 집으로 가져간다.
맥파레인은 "이곳에선 남몰래 물건을 옮길 방법이 없다"고 했다. "오늘 아침에는 한 신사분이 새로운 세탁기와 밥솥 옮기는 걸 봤어요. 작년에는 그랜드 피아노가 썰매를 타고 내려간 적도 있고요."

사진 출처, Amanda Ruggeri/BBC
주민들은 이런 작은 불편을 목가적인 곳에 사는 특권에 따르는 대가로 생각한다. 만조가 되면 자비스의 아이들은 부엌 문에서 곧바로 바다로 뛰어들 수 있다. 불편함이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데이브 프란시스는 "일단 마음을 먹으면 가스와 중앙 난방을 버리고 썰매에 통나무와 석탄을 싣는 것, 그리고 그것을 중력으로 내려보낸 뒤 장작을 패고 난로를 피우는 삶이 괜찮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는 2020년 클로벨리로 와서 아내 재키와 함께 '돈키 슈 숍'을 운영하고 있다.
방문객들은 잘 모르지만, 사실 클로벨리는 꽤 큰 곳이다. 700에이커의 삼림, 세 개의 커다란 농장, 항구, 정원, 제재소 등이 클로벨리에 있다. 이곳 운영은 80여 명의 직원이 담당하고 있다. 삼림에서 생기는 잎마름병부터 끝없는 오두막 관리까지 할 일이 참 많다.
라우스는 "엄청나게 돈이 많이 들어가지만 겉으로 봐서는 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붕 하나를 복원할 때도 값싼 재료 대신에 돌이나 슬레이트 등 역사를 따져야 하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 Amanda Ruggeri/BBC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라우스는 미래를 긍정적으로 본다. 그는 클로벨리에서 빠르게 공예 산업(비단 제작자 자비스나 비누 제작 및 항아리 공예장이 이곳에 있다)과 어업 및 바다와 마을이 이룬 역사를 특화할 계획이다. 또한 소규모 굴 양식장도 생각 중이다. 그는 과거를 보존하면서도 "우리는 계속에서 진화하고 변화된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비스와 다른 주민들 역시 이러한 균형을 이뤄낼 때 클로벨리가 성공하리라 보고 있다.
자비스는 "과거를 보존하며 변화에 적응하는 것은 쉽지도 간단하지도 않은 삶"이라며 "이곳에서 사는 것을 다른 곳의 삶과 비교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해보면, 푹 빠지게 될 겁니다. 이곳에서 사는 모든 순간에 온 마음을 쏟게 되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