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한복판에서 벌어진 분신자살을 통해 느끼는 트랜스젠더 난민들의 고통

이란 출신 트랜스젠더인 엘라 니크 바얀

사진 출처, Dagmar Harm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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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 프랭크 아미디
    • 기자, BBC 월드서비스

이란 출신 트랜스젠더인 엘라 니크 바얀(40)은 지난해 9월 베를린의 상징과도 같은 알렉산더 광장에서 분신자살했다. 친구와 동료들에겐 매우 충격적인 일이었다.

6개월이 지난 지금, 현장엔 불에 탄 돌바닥 포장만이 흔적으로 남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줄 뿐이다. 해당 사건은 한동안 독일 언론에서 뜨거운 화젯거리였다. 그러나 제기된 많은 의문 중 해답을 찾은 건 거의 없었다.

사건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이내 수그러들었다. 그러나 바얀의 지인들은 여전히 혼란과 슬픔을 겪고 있다.

바얀의 자살을 시위적 성격을 담은, 적극적 자기희생으로 해석하는 트랜스젠더 단체들도 있다. 그러나 바얀은 생을 마감하기 전 아무런 메시지나 설명도 남기지 않았다. 바얀의 가장 가까운 친구들 또한 바얀에겐 정치적 동기가 없었다고 느끼는 듯했다.

그럼 무엇 때문에 바얀은 그런 필사적인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

이란을 떠난 이후 바얀은 대체 어떤 일을 겪었기에 자기 삶을 끝내기로 한 것일까. 알렉산더 광장에서 끝나버린 삶에서 그가 마주쳤던 여러 어려움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엘라 니크 바얀의 무덤

사진 출처, Michael Uh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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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사회복지사인 에드나 페베스토프는 "정말 친절하고 수줍은 많은 여성으로 항상 웃는 얼굴이었다"라고 바얀을 기억했다.

페베스토프는 바얀이 처음 독일 중북부 마그데부르크에 왔을 때 만났다고 했다. 마그데부르크는 옛 동독에 속해있던 지역으로 현재 이곳에선 반(反)이민을 부르짖는 '독일을 위한 대안당'이 득세하고 있다.

바얀은 트랜스젠더였다. 바얀 자신이 느끼는 성 정체성과 그가 태어나면서 배정받은 성은 일치하지 않았다. 바얀은 2015년 독일로 이주했다.

여느 트랜스젠더들처럼 바얀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4년 전 불법적인 경로로 이란을 탈출한 바얀은 우선 터키로 건너갔다. 터키는 이란 난민들이 비자 없이도 입국할 수 있는 곳이다.

처음에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밝히지 않던 바얀이 사회복지사에게 마음을 열고 질문을 하기까지는 거의 1년이 걸렸다고 했다.

페베스토프는 "바얀은 내가 가르치던 독일어 수업을 들었다"라면서 "독일에서는 동성애자로 사는 것이 합법인지, 괜찮은 것인지 물었다"라고 기억을 더듬었다. 그러면서 그때 처음으로 "바얀이 무언가 고민이 있구나"라고 느꼈던 순간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바얀은 동성애자가 아니었다. 상당수 LGBTQ+성소수자들과 마찬가지로 바얀은 자신의 정체성과 감정을 끊임없이 억눌렀다. 사회적인 박해와 탄압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바얀은 성 정체성이나 성적 성향에 대한 정보를 거의 접할 수 없는, 남부 이란의 한 보수적이며 종교적인 가정에서 나고 자랐다. 바얀이 자신은 사실 여성이라고 밝히는 일은 간단하지 않았다.

친구 에드나, 리사와 함께

사진 출처, Edna Pevesto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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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베스토프는 2016년 어느 가을날 바얀과 나눴던 특별한 대화를 기억했다.

"바얀이 제 사무실로 오더니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고 했어요. 그러더니 '전 동성애자는 아니지만, 여자가 되고 싶어요!'라고 말하더군요."

페베스토프와 바얀은 몇 시간 동안 그녀가 트랜스여성(생물학적으로 남성으로 태어났으나 자신의 정체성을 여성으로 규정하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몇 달 뒤인 2016년 12월, 바얀은 페베스토프의 사무실에 다시 찾아왔다.

"매니큐어를 새로 발랐다는 것 빼고는 달라진 게 없었습니다. 왼손 손톱 딱 한 군데에만 발랐더군요."

이것은 바얀이 변화를 위해 내딛는 작지만 첫 발걸음이었다.

바얀은 마그데부르크의 한 지역 센터에서 난민들과 일하기 시작하면서 페베스토프나 리사 슐츠 등 친해진 사람들에게 자신의 성 정체성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슐츠 또한 바얀과 같은 지역 센터에서 근무했다.

슐츠 또한 "쉽게 친구를 사귀던, 늘 웃고 사교적이었던 사람"이라고 바얀을 기억했다.

"지역 센터에서 바얀을 처음 만났습니다. 처음에 독일어 실력을 향상하기 위해 온 것이라고 했어요. 그러나 이후 바얀은 통역할 만큼 실력이 늘었습니다. 바얀은 영어, 독일어, 아랍어, 터키어, 페르시아어 등 5개 국어를 구사했어요. 매우 도움이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슐츠는 바얀의 젠더 표현에 대해선 "바얀은 항상 바얀이었다. 그러나 초반에는 우리가 알던 바얀의 모습이 아니었다. 변화의 과정을 겪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바얀이 자신의 젠더 표현을 마음껏 펼치기까지는 1년 이상이 걸렸다.

자전거를 타는 엘라

사진 출처, Offener Kanal Magdebu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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슐츠는 "바얀은 지역 공용 정원에서 늘 활동적이었다. 들판에서 감자를 캐는 등 늘 뭔가를 하고 있었다. 하이힐을 신고 짧은 치마를 입었다"라고 회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바얀에게 안전한 곳만 있지 않았다. 페베스토프와 슐츠 모두 바얀이 거리에서 괴롭힘을 당하거나 곤경에 빠진 적이 있었다며 기억했다.

"바얀이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바얀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했습니다. 심지어 언어 공격을 당한 적도 있어요. 바얀은 그냥 있는 그대로의 여성으로 받아들여지고 싶어 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죠."

마그데부르크에 살고 있는 바얀의 또 다른 친구인 마이클은 기차에서 젊은 남자들이 바얀을 공격했던 날을 기억한다고 했다.

"그들은 다른 승객들이 목격하건 말건 신경 쓰지 않았어요. 바얀은 후추 스프레이를 뿌리며 자신을 스스로 보호해야만 했습니다."

마이클은 공격자들이 페르시아어로 말했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었지만, 바얀에게 듣기로는 강간하겠다며 협박하는 내용이었다고 전했다.

유색인종 트랜스여성으로서 바얀의 삶은 쉽지 않았다. 바얀은 마그데부르크에서 5번이나 이사했다고 한다. 마이클에 따르면 마그데부르크에서 바얀은 마지막으로 여성 전용 쉼터에 머물렀다고 한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일부 여성들이 바얀을 불편해하자 결국 떠났다고 했다.

그리고 2019년 가을, 바얀은 좀 더 여성으로서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고 수도 베를린으로 이사하기로 했다.

베를린은 동성애자들을 위한 안전 장소가 많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 출처, Getty Images

사진 설명, 베를린은 동성애자들을 위한 안전 장소가 많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베를린은 동성애자들을 위한 안전 장소가 많은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LGBTQ 성소수자들에게 더 자유로운 분위기로도 유명

그러나 베를린의 트랜스젠더와 동성애자들을 돕는 단체인 '레스미그라스'의 카베 케르만샤히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이러한 친 동성애자 공간에 난민들은 접근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케르만샤히 "망명자들과 난민들은 대부분 정부의 재정적인 지원에 의존한다. 그러나 이 지원금은 보통 부족하다. 따라서 동성애자들에게 잘 알려진 술집, 카페, 클럽에 갈 형편이 안 된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문제는 이들 공간 대부분이 백인 시스젠더(생물학적 성과 성 정체성이 일치하는 사람) 동성애자 남성을 위한 것입니다. 그 외의 사람들, 예를 들어 유색인종 트랜스여성을 위한 곳이 아니라는 겁니다. 게다가 언어 장벽도 존재합니다."

처음 망명을 신청했을 때 바얀은 거절당했다. 그러나 케르만샤히는 이례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케르만샤히는 이란에서는 트랜스젠더들이 성전환 수술을 받은 이후 '자유롭게' 살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으로 망명 요구가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케르만샤히는 이러한 잘못된 편견과 달리, 이란의 트랜스젠더들은 의무적으로 치료받아야 하며, 이때 상담자들이 가진 편견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수술을 원하는 사람들조차도 허가를 받기까지 몇 년을 기다리는 일도 있다고 덧붙였다.

케르만샤히는 "한 개인에게 성전환 수술이 필요한지를 결정하기 위해 진행되는 상담 치료는 충분하지도 않으며, 이란의 이러한 상담사와 치료사들은 최신 지식이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부분의 사람이 호르몬 치료와 수술로 내몰리는 기분을 경험한다. 이란의 법률상 성전환 수술을 받은 사람만 신분증을 바꿀 수 있다. 즉, 이란의 상당수 트랜스젠더에겐 딱히 선택의 여지가 없는 셈"이라고 말했다.

한편 2017년부터 터키에 살고 있는 이란 출신 트랜스여성인 바란은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지만 일할 권리는 없다고 했다.

성전환 수술을 받기 싫어 이란을 탈출한 바란은 가족들의 강요로 호르몬 치료를 받아 우울증에 걸렸다고 말했다.

"저는 제 몸과 생식기에 만족했습니다. 호르몬제를 복용하거나 수술을 받고 싶지 않았어요."

그러나 바란의 가족은 계속 그를 설득했으며, 의사들 또한 수술을 거부한다면 바란은 여자가 아니라고 말했다고 한다.

바란은 터키의 상황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바란의 망명 신청을 담당했던 경찰관 또한 트랜스젠더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으로, 바란에게 "수술을 어서 받고 빨리 끝내버려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바얀 또한 독일에서 바란과 비슷한 경험을 겪은 것으로 보인다. 바얀은 독일에서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계속 의심한다며 불만을 토로했다고 한다.

슐츠는 바얀이 자살하기 몇 달 전인 2021년 7월 베를린에 찾아가 바얀을 만났다.

"바얀은 호르몬 치료를 시작했다고 했어요. 변화의 첫 징후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바얀은 좋아 보였고 멋진 원피스를 입고 있었어요."

당시 바얀은 행복해 보였으며, 자신이 즐겨 찾는 초밥집으로 슐츠를 데리고 갔다고 했다.

초밥을 좋아했던 바얀

사진 출처, Lisa Schul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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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얀은 초밥을 참 좋아했어요. 바얀의 가까운 친구들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있어 정말 즐거웠습니다."

당시 바얀은 테슬라 자동차 생산 공장에 지원하기 위한 근로 훈련 과정을 밟고 있었다. 카페와 레스토랑에서 이상한 일을 여러 번 겪은 후, 마침내 바얀이 안정된 직업과 수입을 얻을 기회였다.

"저는 바얀과 헤어지는 길에 정말 잘됐다고 생각했어요. 바얀이 행복해 보여서 기뻤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바얀이 행복하지 않았다는 걸 안다.

많은 이란 출신 LGBTQ 난민들은 서방 세계로 가면 자신이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그러나 막상 현실은 기대와 다르다.

독일 법에 따라 망명 신청자는 난민 지위를 인정받을 때까지 원래의 출생 성별과 이름으로 구분된다. 난민 지위를 인정받기까지는 몇 년이 걸릴 수 있다. 즉, 바얀 또한 모든 서류에서 '남자'로 기재됐을 것이다.

바얀에게는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받기 위한 길고도 실망스러운 투쟁이 새롭게 이주한 나라에서도 계속된 셈이다.

슐츠는 "베를린에 사는 바얀의 친구들 말로는 바얀이 베를린 거리에서도 괴롭힘을 당했다고 한다"라고 전했다.

트랜스젠더에 대하여 적대적인 태도와 감정을 갖는 '트랜스포비아'는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트랜스젠더 살인과 관련된 조사 보고서(TMM)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적으로 트랜스젠더 370명 이상이 살해당했으며, 이 중 96%가 트랜스여성이었다.

베를린에서 슐츠와 행복한 시간을 보낸 지 불과 몇 달 후인 지난해 9월 14일, 바얀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바얀의 친구들은 깊은 충격에 빠졌다.

The spot where Ella set herself alight outside a department store on Berlin's Alexander Platz

사진 출처, Michael Uh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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슐츠는 "말이 안 된다. 바얀이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직업과 좋은 삶을 기대하던 친구였다. 충격적이다"라고 토로했다.

마이클은 바얀이 생을 마감하기 며칠 전인 같은 달 9월에 바얀을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 중 하나였다. 바얀의 생일이 11월이어서 바얀에게 무엇을 좋아하냐고 물었더니 겨울 코트를 사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함께 쇼핑하러 갔을 때 바얀에게는 자살할 계획이 없었다고 확신했다.

"바얀은 매우 신중하게 예산을 짰어요. 만약 자살을 계획하고 있었다면 당시 제가 그 코트를 결제하지 못하게 했을 겁니다. 정말 말이 안 돼요."

바얀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장소는 몰려든 사람들이 남긴 꽃, 촛불, 카드로, 이내 성지가 됐다.

Ella's grave at night

사진 출처, Georg Matz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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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증오는 멈추지 않았다. 올해 1월 베를린 묘지 내 바얀의 무덤은 휘발유가 담긴 캔과 소화기를 들고 침입한 괴한들로 훼손됐다.

우리는 바얀이 왜 공공장소에서 자살하기로 결정했는지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어느 순간 바얀은 더는 자신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결정 내린 듯 하다.

고국 탈출부터 망명 신청이라는 긴 관료주의적 절차와 각종 의료, 정신과, 법률 상담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이제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바얀의 삶에서 겹치고 또 겹쳐 그를 힘들게 했는지 안다. 차별과 학대가 끊이지 않았던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바얀은 이 삶의 투쟁 내내 대개 웃음을 잃지 않던 여성이었다. 가깝고도 사랑스러운 인간관계를 스스로 만들어온 사람이었지만, 바얀의 친절에 보답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너무 많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BBC는 독일 연방 이민 및 난민사무소(BAMF)에 바얀 사건에 대한 설명을 요구해 대변인으로부터 상세한 답변을 전달받았다. 대변인은 특정 사건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할 순 없지만, 망명 절차는 법이 정한 원칙에 따라 사안별로 신중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망명 신청이 거부된 사람들은 언제나 항소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