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가라아게는 어떻게 '국민 음식'이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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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 폴 파인스타인
- 기자, BBC 푸드
50여 개의 "가라아게" 식당이 있는 작은 도시 나카스. 이곳이 일본 또는 세계 최고의 프라이드 치킨 성지로 꼽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라아게는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라이드 치킨이다. 먹기 좋은 크기에 섬세한 맛이 담겼다. 씹으면 바삭바삭 유쾌한 소리를 내는 이 간식을 향한 일본인들의 애정은 어마어마하다.
전국 최고의 가라아게를 가리는 투표에 매년 수십만 명씩 참여할 정도다. 이 가라아게 그랑프리에는 도쿄와 교토, 오사카 같은 대도시의 식당들이 앞다투어 출전한다. 그런데 특이하게 규슈 남쪽 오이타현에 있는 소도시 나카스의 식당들이 그랑프리에서 상을 받는 경우가 많다.
가라아게 그랑프리는 일본에서 매년 열린다. 가장 바삭바삭하고 육즙이 풍부하며 맛이 좋은 프라이드 치킨으로 뽑히고자, 해마다 1000여 개의 식당들이 자존심 대결을 펼친다. 올해까지는 소비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가라아게 투표하는 방식으로 우승자를 가렸다. 하지만 2023년에는 규칙이 바뀐다. 심사위원의 맛 평가가 도입되고, 최고의 가라아게에겐 보상도 주어질 전망이다.
이런 변화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그리고 나카스는 어떻게 일본 최고의 프라이드 치킨, 또는 어쩌면 세계 최고의 프라이드 치킨 성지가 됐을까?
정교한 심사와 전문가의 맛 평가가 도입되면, 나카스의 가라아게 식당들은 다른 지역의 일반적인 식당들보다 증명할 것과 잃을 것이 많아질 것이다. 어쩌면 일본의 가라아게 수도로서 군림해 온 도시의 명성도 위태로워질 수도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가라아게는 쉽게 만들 수 있고 섬세한 맛을 가진 일본 최고의 인기 프라이드 치킨이라 할 수 있다. 감자 전분을 주재료로 한 반죽에 간장과 생강, 소금, 마늘, 과일, 특별 재료를 넣어 만든 튀김 옷을 닭의 다리와 가슴, 목, 날개 부위에 입혀 튀겨낸다. 한입 크기로 튀겨진 가라아게를 씹으면 바삭바삭한 식감과 함께 입안에서 터지는 풍미를 느낄 수 있다.

사진 출처, Karaage festival ExCo
가라아게가 인기다 보니 일본 사람들은 각자 선호하는 가라아게를 가진 경우가 많다. 심지어 저명한 요리사 안소니 부르뎅도 가라아게 애호가였다. "나는 이 튀긴 치킨 커틀릿에 중독됐어요… 죄책감을 느낄 정도로 좋아합니다. 저는 이걸 파는 로슨 편의점이 나리타 국제 공항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으며, 가라아게 없이는 비행기에 타지 않습니다."
일본 가라아게 협회가 제작한 가라아게 영화에서는 이 맛있는 간식을 "궁극의 국민 음식"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가라아게는 근본적으로 대항해 시대, 서로 다른 문화 간 교환, 기근, 세계대전 등 여러 세대를 걸친 역사의 최종 산물이다. 다른 프라이드 치킨과는 다른 의미가 있고, 나카스에선 영혼의 음식으로 추앙받는다.
가라아게의 기원은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나가사키 항구를 통해 규슈에 도착한 포르투갈 선교사들이 튀김 요리법을 일본에 가져왔다. 이후 일본인들은 이 서양 요리법을 서서히 오늘날 '덴푸라'라고 하는 음식에 접목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일본인들은 불교 신앙의 영향으로 주로 페스카테리언(해산물 채식주의자) 식단을 하고 있었다.
닭을 식재료로 활용하는 것이 확산한 것은 이 섬 국가에 비극이 닥친 이후다. 교호 시대(1716~1736년)에 대기근이 발생해 규슈의 벼농사가 거의 전멸했고 수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규슈 축산업' 단체에 따르면, 당시 살림을 복구하기 위해 농부들에게 양계업이 장려됐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전성기를 지나 산란을 잘 못하는 닭을 고기로 활용하게 됐다.
일본의 식습관은 1868년에 또다시 대대적인 변화를 겪는다. 일본의 새 왕이 산업화와 군사 기술, 심지어는 식생활에 서양식 사고를 대대적으로 도입하는 급격한 사회 개혁에 착수했던 것이다. 당시 메이지 일왕은 국경을 개방하고, 중국 및 서양 요리가 일본 문화에 스며들게 했다. 이는 더 많은 육류 섭취를 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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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야 프라이드 치킨, 특히 가라아게가 오늘날과 같은 지위를 갖게 됐다. 전후 일본은 심하게 훼손돼 식량난이 걷잡을 수 없는 상태였다.
쌀이 부족해지자, 일본인의 식생활은 극적으로 달라졌다. 미국으로부터 식량을 들여왔고, 밀을 이용해 면 요리(일본 라멘 등)를 많이 만들었다. 고기를 얻기 위해 소나 돼지보다 키우기 쉽고 빨리 크는 닭을 많이 키웠다. 규슈는 이내 가금류 사육의 중심지(오늘날 모든 닭고기의 절반 이상이 규슈에서 나온다)로 떠올랐고, 새로운 육류 요리법이 유행하면서 국민 영양 공급에 기여했다.
가라아게의 시작은 나카스의 이웃 도시인 우사에 있는 '라이라이켄'이라는 중국 음식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곳은 1950년대 후반, 닭을 튀긴 가라아게를 정식에 포함해 팔기 시작했다. 가라아게는 이곳에서 조리법 전수를 통해 길 건너 '쇼스케'라는 작은 주점으로 퍼져갔다. 쇼스케의 주인은 원래 지역 농부들로부터 닭을 사서 정육점에 팔았고, 그의 아내는 단골들에게 가라아게와 사케를 판매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그에게서 가라아게를 사 먹는 이들은 주로 쌀 수확기에만 음식과 음료값을 낼 수 있는 벼농사 농부들이었다. 그래서 그의 사업은 돈이 잘 돌지 않았다. 여기에 대형 농장들이 구이용 판매를 목적으로 양계를 산업화하기 시작했고, 그의 닭고기 중개 사업은 점점 수익성을 잃어 갔다.
요시타케 유코 우사 가라아게 협회 대표는 "쇼스케는 이자카야를 접고 가라아게만 파는 최초의 테이크아웃 식당을 시작했다"며 "돈을 늦게 주고 사케를 (너무) 많이 마시는 남자들 대신 가정주부들로 목표 고객층을 바꾼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가라아게는 우사 주민들 사이에서 값싸고 빠르게 먹을 수 있고 단백질을 맛있게 보충할 수 있는 식품으로 떠오르며 큰 인기를 얻었다. 오늘날에도 40개 이상의 가라아게 식당이 있는 우사는 여전히 이 바삭바삭한 튀김 요리의 중심지 중 하나다. 하지만 가라아게가 전국적, 그리고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된 것은 나카스로 전파된 이후다.
나카스의 요리사인 호소카와 아라타와 쇼지 모리야마는 모두 가라아게에 매료됐다. 그리고 그들은 가라아게에서 더 다양한 맛을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요시타케에 따르면, 이들은 1970년 나카쓰에 각각의 자신의 가라아게 식당을 열었다. 양념에 재우는 각자의 비결을 만들고, 사과 조각을 넣거나, 고기를 소금물에 재우는 시간을 늘려 닭고기에서 더 다양한 맛을 냈다. 이 식당들은 금세 인기를 얻었고, 다른 식당들이 이들을 모방하면서 나카스는 가라아게의 심장이자 영혼으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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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나카스의 요리사들은 가라아게의 경지를 한층 더 끌어올렸다. 약 50여 개 식당 간 건전한 경쟁으로 요리사들이 조리 시간 및 반죽 양념장 등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게 된 것이다. 나카스의 거의 모든 식당에는 다른 이들과 공유하지 않는 비밀 재료가 있고, 이를 통해 다른 가라아게와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가라아게 그랑프리에서 5번이나 '그랜드 골드 상'을 수상한 나카스 주민이자 가라아게 '쇼쿠닌(장인)'인 신이치 수미가 운영하는 식당 '토리신'을 예로 들어보자. 수미는 자신의 가라아게 요리법을 완성하는 데 15년이 걸렸다. 오늘날, 그는 닭의 모든 부분을 별도의 온도에서 요리하는데, 그의 가라아게는 나카스에서 꾸준히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타카에 타테이시라는 여성 식당 주인도 있다. 그녀의 식당 '코코야'는 모든 것을 가게에서 직접 만드는 것은 물론 소금과 쌀, 맥아 양념장에 가라아게를 재우는 것으로 유명하다. 타테이시는 "내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 가게에선 닭고기의 지방 여분을 섬세하게 제거한다는 것"이라며 "고기를 준비하는 것은 정말 자신 있다"고 말했다. 이 식당의 닭고기는 부드러운 식감과 입안에 불이 나는 듯한 매운맛이 돋보인다.
그리고 코우지 모리야마가 있다. 나카스 가라아게의 창시자인 쇼지 모리야마의 조카로, 그가 운영하는 '모리야마'는 가라아게 그랑프리 사상 첫 챔피언이다. 그는 먹을 때마다 육즙이 분출되는 소금 기반의 바삭바삭한 가라아게를 만들고, 닭고기에 남다른 풍미를 불어넣는 비밀스러운 과일 조합 양념장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가라아게는 나카스에 국한된 게 아니라, 일본의 정체성을 담고 있다. 매년 가을 일본 및 전 세계에서 5만여 명이 모이는 가라아게 축제 '가라페'가 열린다. 이 축제에는 거의 모든 가라아게 식당이 참여해 출신 도시를 알리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보니 2019년에는 1667.301kg의 닭고기 요리를 만들어 기네스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나카스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50여 개의 가라아게 식당 중에 가장 좋아하는 곳이 있다. 그리고 그 식당에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 서려 있다. 가라아게는 굶주렸던 일본을 먹여 살렸고 가난에서 벗어나게 도와주었다. 그리고 이제는 크리스마스에 수백만 명이 먹을 정도로, 가라아게는 결혼식과 생일, 주요 기념일에 빠지지 않는 음식이 됐다. 여기에서 가라아게 그랑프리는 유서 깊은 나카스가 일본 프라이드 치킨의 심장임을 증명하는 수단이다.
가라아게 그랑프리는 가라아게 순위를 매기고 전국적으로 맛있는 음식을 홍보하기 위한 전국 대회로 2010년 도쿄에서 시작됐다. 2022년까지 전적으로 온라인 투표로 순위를 가렸고, 가장 인기 있는 가라아게 식당들이 보통 상을 휩쓸었다. 일본 가라아게 협회의 야기 코이치로에 따르면, "(2023년에는) 상의 가치를 더욱 높이기 위해 심사위원들에 의한 맛 평가가 도입될 것이다."
심사위원들은 튀김의 색깔과 반죽, 고기와 반죽의 조화, 육즙, 맛, 비용 효과(값은 얼마나 받는지), 온도 수준(너무 많은 열을 가하면 탈 수 있음) 등을 기준으로 평가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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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스의 식당 주인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이제 그들은 과거의 후광에 기대지 않는 듯하다. 올해는 남 다른 각오로 대회에 임하겠다는 것이다. 토리신의 신이치 수미는 "내년이 진짜"라며 "나는 도전할 것이고 승리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사히코 이노우에 나카스 가라아게 협회장은 2023년 그랑프리를 통해 가라아게 세계에서 나카스의 실질적인 지위를 확인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다음 대회는 어느 가게가 진짜 1등인지 알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나카스의 가라아게가 특별하다는 것을 모두가 알았으면 해요. 그렇게 되면 브랜드가 되겠죠. 특정 지역의 와규가 브랜드가 되는 것처럼요. 나카스 가라아게라는 것이 맛과 품질을 공인해주는 징표가 되길 바랍니다."
가라아게는 인내를 상징한다. 독창성을 보여주며, 일본이 역경을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떠올리게 해준다. 그리고 나카츠 주민들에게는 단순히 더없이 편안한 영혼의 음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