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종 머스타드에 '디종'이 없는 이유

사진 출처, Reine de Dijon
현재 프랑스에서 불거진 디종 머스타드 부족 사태에 대해 현지 언론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그 원인으로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엔 더 많은 톡 쏘는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다.
요즘 프랑스 슈퍼마켓 양념 코너에서 두리번거리다 보면 마요네즈와 케첩 사이가 텅 비어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올해 5월부터 프랑스에선 디종 머스타드가 아주 귀한 몸이 됐다. 디종 머스타드 2병을 6000유로(약 800만원)에 판매한다는 광고가 올라오기도 했을 정도다. (이후 장난인 것으로 밝혀졌지만 말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프랑스 내 외국인들은 미국 같은 해외에서 머스타드를 들여오고 있으며, 수도 파리에 사는 작가 데이비드 레보비츠는 심지어 한적한 동네의 가드닝 가게까지 찾아가 머스타드를 공수해 오기도 했다.
프랑스 언론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탓하고 있지만, 실제 그 이면엔 더 많은 톡 쏘는 이야기들이 기다리고 있다.
프랑스 중동부 부르고뉴의 주도인 디종 지역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진 '디종 머스타드'는 프랑스 식탁에 자주 오르는 양념으로, 갈색 겨자씨를 화이트 와인에 섞어 만든다.
기름지고 포만감을 주는 음식과 곁들여 먹었을 때 특유의 톡 쏘는 신맛과 매운맛이 매력으로 다가오며 껍질이 바삭한 로스트 치킨 한 조각과도 환상의 콤비를 이룬다.
평범하게 햄과 버터를 넣어 만든 샌드위치의 풍미도 한층 풍부하게 만드는 이 머스타드 품종은 집에서 마요네즈를 만들 때도 필수적으로 들어간다.
디종 머스타드가 부르고뉴 지방에서 이토록 단단히 자리 잡게 된 이유는 바로 갈색 겨자씨를 포도와 함께 심은 이 지역의 역사적인 농법 덕분이다. 고대 로마인들이 포도덩굴에 인 등의 필수 영양소를 공급하기 위해 썼던 방법이기도 하다.
이 지역 수도승들은 수 세기 동안 이러한 방식을 고수하며 겨자를 재배했다. 그러다 1752년 디종 출신의 장 나이종이라는 남성이 겨자씨를 기존 식초가 아닌 버주스와 섞으면서 디종 머스타드가 처음 탄생했다.
버주스는 설익은 포도를 압착해 만든 신맛 나는 과즙으로, 역사적으로도 감귤류가 자라기 적합하지 않은 지역에서 신맛을 더하는 용도로 사용된 바 있다.
디종 머스타드는 은은하고 균형 잡힌 맛으로 시중의 다른 머스타드보다 돋보인다. 아메리칸 옐로우 머스타드보다 톡 쏘는 맛이 강하지만 중국식 머스타드나 독일 바이에른 주가 원산인 스위트 머스터드보다는 약하다. 겨자씨의 매운맛이 부르고뉴의 지역의 버주스(오늘날엔 화이트 와인으로 대체)를 만나 적당한 맛을 자랑한다고 볼 수 있다.

사진 출처, Reine de Dijon
그러나 사실 알고 보면 디종 지역과의 역사적 연관성에도 불구하고 디종 머스타드는 꽤 오랫동안 디종 외 지역에서 생산됐다.
수십 년 전 부르고뉴 농부들이 수익이 더 좋은 농작물을 재배하기 위해 겨자를 재배하지 않게 되면서 머스타드 제조업자들은 겨자씨를 뿌릴 지역을 찾아 멀리 나섰고, 캐나다가 주 생산지로 떠오르게 된다.
현재 캐나다는 전 세계 겨자 생산에 약 80%를 담당하지만, 올겨울 캐나다산 겨자도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몇 년간 생산량이 계속 감소하면서 비축분도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여름에 건조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겨자가 제대로 자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겨자씨 가격은 3배 치솟았다.
한편 머스타드 생산업체인 '레인 드 디종'의 뤽 반데르마센 최고경영자(CEO)는 현재의 머스타드 품귀 현상에 대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유일한 원인은 아니며, 전쟁으로 악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디종 머스타드 생산 기업들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는 디종 머스타드에 들어가는 갈색 겨자씨가 아니라 아메리칸 옐로우 머스타드나 잉글리시 머스타드의 원료인 흰색 겨자씨의 주요 수출국이다.
그런데 전쟁이 발발하면서 굳이 특정 겨자 품종을 굳이 고집할 필요가 없는 머스타드 생산 기업들이 캐나다산 겨자씨로 눈을 돌리면서 안 그래도 부족했던 물량이 더욱 귀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디종 머스타드는 그 이름과 출신에 걸맞지 않게 디종 지역에서만 생산되는 게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결국 샴페인이나 로크포르 치즈와 달리 디종 머스타드의 '디종'은 지역이 아닌 특정 제조법을 지칭한다고 볼 수 있다.
프랑스에선 와인, 치즈, 렌틸콩과 같은 일부 농산물 및 식료품을 AOC나 AOP와 같은 원산지 통제 및 보호 제도를 통해 지정된 지역에서 생산되도록 관리하고 있다.
프랑스에서 AOC와 AOP 라벨을 관리하는 '국립원산지명칭연구소(INAO)'의 소피 마루리앙게 홍보 담당자 또한 "디종 머스타드를 디종에서만 생산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면서 "전 세계 어디서나 (디종 머스타드를) 생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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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실제로 디종 머스타드는 전 세계 곳곳에서 만들어진다.
1866년 모리스 그레이와 오귀스트 푸폰이 디종에서 출시한 '그레이 푸폰' 디종 머스타드는 1940년대부터 미국에서 생산되고 있으며, 프랑스 최대 디종 머스타드 생산 업체인 '아모라-마이'사는 2009년 '유니레버'에 인수되면서 생산 공장을 디종에서 인근 슈비니-셍-쏘뵈흐로 이전했다.
마루리앙게 홍보 담당자는 "'에드몽 팔로'사에서 생산하는 아주 적은 양을 제외하면 디종 자체에선 머스타드가 거의 생산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에드몽 팔로'사는 1840년 디종 인근 지역인 보네에 공장을 두고 소규모로 머스타드를 만들어오다 2014년에 들어서야 디종에 작게 작업장을 열었다.)
그래서 결국 디종 머스타드는 이름과 달리 디종이 아니라 그 인근 지역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게 진실이다. 1752년 디종 머스타드가 최초로 탄생한 이후 수십 년간 인근 교외 지역에서 만들어온 것이다.
한편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마크 데사미낭 '에드몽 팔로' CEO에 따르면 과거 숯 생산업자들이 천연비료인 숯가루를 뿌린 밭에 겨자를 재배해 디종이나 보네에 있는 머스타드 생산업자들에게 겨자씨를 팔았다고 한다.
19세기 초 이 지역 머스타드 생산업체는 이미 33개나 됐다. 데사미낭 CEO는 이들이 "일종의 협동조합을 조직했다"면서 "당시 머스타드 산업은 꽤 강력하고 탄탄했다"고 말했다.

사진 출처, Reine de Dijon
데사미낭 CEO는 진정한 의미의 디종 머스터드 산업은 거의 한 세기 전부터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데사미낭 CEO의 조부가 지난 1928년 '팔로'사를 사들였을 때도 "프랑스산 겨자씨에 의존하긴 했지만 그뿐만은 아니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프랑스 내 다른 지역과 다른 유럽 국가에서도 겨자씨를 들여왔습니다. 고품질의 제품을 안정적으로 생산하기 위해서였죠."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부르고뉴 지역 농민들은 다른 작물, 특히 식용유와 동물 사료에 사용되는 유채씨를 재배하기 위해 겨자씨에서 등을 돌렸다. 유채를 키우면 정부로부터 보조금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1980년대에 이르러선 "머스타드 제품 대부분이 캐나다산 겨자씨로 만들어졌다"는 게 데사미낭 CEO의 설명이다.
부르고뉴엔 1997년에 설립된 '겨자재배자협회(APGMP)'라는 단체가 있다. 그런데 이 단체는 10년 전만 해도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로흐 올라이어 APGMP 회장에 따르면 당시 디종 지역 겨자씨에 대한 수요가 적었기 때문에 부르고뉴 지방에선 겨자 생산이 "실질적으로 사라졌었다"고 한다.
그러나 90년대에 들어 '유니레버'사 덕분에 부르고뉴의 겨자씨는 조금씩 부흥기를 맞이했다.
올라이어 회장은 '아모라-마이'사의 모기업인 '유니레버'가 "머스타드 생산을 다시 현지화하길 원했다"면서 "그렇게 (부흥기가) 다시 시작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몇 년간 겨자 생산자들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부르고뉴 지역 농민들은 매년 겨자씨 500톤가량을 생산하고 있다.

사진 출처, Tuul and Bruno Morandi/Alamy
한편 프랑스의 카망베르 치즈 생산업자들이 80년대에 겪었듯이 제품의 지리적 기원을 소급해서 보호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2000년대 초 일부 겨자 생산업체들은 새롭게 주목받는 겨자씨 산업을 더욱 촉진하기 위해 머스타드에 '떼루아' 개념을 도입하고자 했다. ('떼루아'는 프랑스어로 '토양'을 뜻하는 말로 생산 환경이나 토양에 따라 와인 등의 식품 맛이 달라진다.)
그렇게 2009년 결국 AOP와 비슷하지만 조건은 완화된 'IGP'라는 이름의 보호 인증 등급을 만들게 된다.
이에 따라 '디종 머스타드'라는 이름에 더 친숙하지만, 부르고뉴 지역에서 부르고뉴산 겨자 씨와 부르고뉴산 와인으로 만들어진 머스타드만이 'Moutarde de Bourgogne(부르고뉴의 머스타드)'라고 표시할 수 있으며, IGP의 보호를 받는 상품이다.
마루리앙게 담당자는 데사미낭 CEO가 "IGP 인증에 가장 적극적인 사람"이었다면서 머스타드의 IGP 도입을 이끌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겨자재배자협회(APGMP)가 씨앗을 납품하는 대형 머스타드 생산업체 5곳 중 머스타드 전 제품군에 IGP 인증 등급을 받은 곳은 '에드몽 팔로'사뿐이다.
데사미낭 CEO는 현지에서의 생산을 가업의 필수적인 요소로 본다. 그래서 여전히 저온에서 돌로 겨자씨를 갈아 약간 알갱이 같은 질감과 풍부한 식감을 유지한다.
물론 '에드몽 팔로'사가 전통을 고집할 수 있었던 이유 중에는 다른 머스타드 생산업체 4곳('아모라-마이', '레인 드 메종', '유럽피언 데 콩디멍(EdC), '샤르보노 브레벙')보다 훨씬 규모가 작기 때문도 있다.
데사미낭 CEO는 이들 나머지 4개 업체가 모든 프랑스 내 디종 머스타드 생산량의 80~90%를 차지하고 있다면서, '에드몽 팔로'사의 머스타드는 5%정도 된다고 설명했다.
반데르마센 CEO는 '레인 드 디종'사의 제품 중 약 1% 미만이 IGP 인증을 받았다면서, 재료로 들어가는 부르고뉴산 화이트 와인의 가격 상승을 그 이유로 지목했다. 그러나 "(IGP 인증을 받는 자사 제품군의 비율은)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아니, 증가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최근 기후 변화와 그로 인한 겨자를 좋아하는 딱정벌레가 들끓으면서 부르고뉴 지역의 머스타드 시장은 정체는 물론 축소되고 있다.
오랫동안 살충제로 막아왔지만, 화학 살충제에 대한 유럽연합(EU)의 엄격해진 규제뿐만 아니라 살충제저항성으로 인해 문제를 통제하고 회복하기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올라이어 회장은 "지금까지 부르고뉴산 겨자씨 수요는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면서 "그러나 생산이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한 이유로 부르고뉴산 겨자씨가 공급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0~30%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사진 출처, Georg Berg/Alamy
마루리앙게 담당자는 이러한 문제들이 머스타드 산업에 단기적인 문제를 초래한다면서도 최근 품귀 현상에 대해선 희망이 없지 않다고 언급했다.
마루리앙게 담당자는 "지난 몇 년간 기후 문제로 인해 많은 겨자 농가가 낙담했다"면서도 품귀 현상에 따른 겨자씨 가격 상승이 "다시 이 분야를 일으키고 있다"고 말했다. 겨자 농민들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열심히 겨자를 성공적으로 재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데사미낭 CEO는 풍부한 지역 역사에 답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데사미낭 CEO는 "조상들은 해충 등을 피해 겨자를 재배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며 "오늘날 우리는 유기농까지는 아닐지라도 지속가능한 작물을 생산하기 위해선 화학약품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조상들의 이러한 마음가짐을 따라야 한다. 그게 우리의 목표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한편 '디종 머스타드'가 진정으로 디종 지역에서만 생산되는 머스타드가 될 것 같진 않지만, 'Moutarde de Bourgogne(부르고뉴의 머스타드)'는 머스타드 생산자들이 유지하고자 했던 웅장함이나 고급화가 아니라 지속가능성이나 떼루아를 통해 독자적인 명성을 구축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올해의 수확량을 어떤 조짐으로 여긴다면 부르고뉴 겨자씨 산업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 것으로 기대해볼 수 있다. 프랑스 언론 매체 '20뉴트'는 지난 7월 말 부르고뉴 겨자 재배량이 작년보다 50% 증가했다면서, 이는 2016년 기록을 넘어선 기록이라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머스타드 생산 업체들은 올 11월에는 다시 원활하게 공급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프랑스인들이 사랑하는 가을 요리에 톡 쏘게 곁들이기 안성맞춤인 시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