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 영국의 ‘민치에르 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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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 다니엘 스태이블스
- 기자, BBC 트래블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있는 채널제도 내 저지섬에서도 남쪽에 있는 '민치에르 군도(the Minquiers)'는 1000년이 넘도록 노르만족, 영국, 프랑스의 여러 공국과 정부 간 분쟁의 대상이 됐던 곳이다.
브리튼 제도(그레이트브리튼섬과 아일랜드섬을 비롯한 주위의 여러 작은 섬)의 최남단엔 어떤 건물이 있을까. 정복자로부터 땅을 지키고자 지었다가 이제 무너져가는 성벽도, 지나가는 선원들의 길을 밝혀주는 외로운 등대도 아니다.
바로 공중화장실이다.
가까이 가보면 "이 화장실은 브리튼 제도의 최남단에 있습니다"는 깔끔한 안내판이 붙어있다.
"조심해서 사용하세요! 가장 가까운 다른 화장실은 11마일(17.7km) 떨어진 저지섬 혹은 10마일 떨어진 쇼제섬(프랑스령)에 있습니다."
이 화장실은 정말 작은 민치에르 군도에서 유일하게 문명의 흔적이 남아있는 '메트레스 섬'에 있다.
돌로 지은 작은 집이 모여있는, 영국의 최남단 지역인 이곳은 저지섬에서도 남쪽으로 10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섬과 암초 등을 포함한다.
그렇다면 민치에르 군도의 크기는 어떻게 될까. 흥미롭게도 이는 조수간만의 차에 따라 달라진다. 이곳의 바다는 전 세계에서도 조수간만의 차가 가장 큰 곳 중 하나다.
썰물 때 민치에르 군도는 길이 약 10마일, 너비 약 7마일의 크기를 자랑한다. 이는 저지섬이나 본토의 맨체스터 지역보다 크다.
그러나 6시간 뒤 밀물이 찾아오면 이 육지는 어느새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다. 암석 몇 개만이 겨우 물 위에 남아있어 크기가 0.004제곱마일(약 1만359.9㎡)밖에 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근처 주민들은 '민키스(the Minkies)'라고도 부르는 이곳의 분위기는 독특할 수밖에 없다. 일부는 사람이 살지 않는 바위섬 같기도 하고, 일부는 마치 전설 속 아틀란티스 섬처럼 물에 잠겨있고, 일부는 육지도 바다도 아닌 그 경계에 걸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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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민치에르 군도는 여러모로 '경계에 걸친 땅'이다. 영국과 프랑스 사이 경계에 있는 이곳은 극심한 조수간만의 차뿐만 아니라 지난 1000여년간 노르만족, 영국, 프랑스의 여러 공국과 정부 간 분쟁으로 시달렸다.
그러다 오늘날에 이르러 채널제도의 저지 섬의 관할 하에 있으며, 엄밀히 말하면 영국의 일부가 아닌, 브리튼제도 내 자치령의 지위를 유지한다.
한편 저지섬의 선박여행사인 '저지 시파리스' 소속으로 영국해협을 통해 나를 메트레스 섬까지 데려다 준 조쉬 디어링 선장은 "서기 955년 이후부터 (이곳은) 끊임없이 분쟁을 겪었다"면서 "그러나 1800년대 이후 건물들은 그대로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투어 가이드도 겸하는 디어링 선장은 메트레스 섬 내 유령 마을 같은 곳으로 나를 데려갔다. 여러 석조 건물이 파괴되고 망가진 채 남아 있었다.
디어링 선장에 따르면 "(저지섬 남부 지역) 라 로크 항구에서 온 어부나 섬의 화강암을 채취하기 위해 온 광부나 채석공이 남긴 건물"이라고 한다.
비료로 쓰이는 바다풀(해조류의 일종)을 채집하고자 이곳에 오는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한편 메트레스 섬의 북쪽 해안엔 과거 병원이었던 건물이 폐허가 된 채 남아 있다. 19세기 당시 채석을 위해 몰려든 광부들을 위한 곳이었다고 한다.
이 병원 건물이 남아 있는 지역은 메트레스 섬에서도 밀물 때 사라지지 않는 유일한 부분이다. 같은 이유로 초록빛 제라늄이 남아 있는 유일한 땅이기도 하다. 과거 어부들이 화장지로 사용하기 위해 제라늄을 심었다고 한다.
디어링 선장은 병원 건물 외벽에 깔끔하게 새겨진 글자를 가리켰다. '1865'라는 날짜 밑에 'C BS'라는 이니셜이 새겨져 있었다.
실제로 이 근처 대부분 건물이 1865년 즈음 지어진 것으로, 오늘날까지도 어부들이 이용하는 몇몇 건물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저지섬 주민들의 사적 소유물이라고 한다. 날씨가 좋으면 메트레스 섬에 놀러 와 하루나 이틀 밤 정도 지내는 용도다.
그렇기에 영구 거주민도, 관광객이 묵을 호텔 등도 없으며, 소유주들이 이러한 작은 집을 시장에 내놓는 일은 거의 드물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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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소유주들이 이렇게 방어적일 만도 하다. 민치에르 군도의 전략적, 경제적 가치를 노린 침략자들이 오랫동안 가깝거나 먼 곳에서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해양 사학자인 더그 포드는 "민치에르 군도를 장악하면 이 근방 어장을 장악할 수 있다"면서 "그리고 지난 200년간 이곳은 영해였다. 연안의 암초가 거대한 장벽을 형성해 접근하는 선박들을 쉽게 감시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이끌었다"고 설명했다.
한편 민치에르 군도에 대한 소유권은 1360년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3세에 넘어갔지만 이후 프랑스의 수도원으로 넘어갔다. 그러다 다시 1413년 잉글랜드의 헨리 5세에게 넘어갔다.
그 뒤 민치에르 군도는 해적과 밀수업자들이 즐겨 찾는 곳이 됐다. 워낙 외딴곳이기에 쉽게 접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근처에 암초도 많아 많은 선박이 난파되기도 했다.
그러다 1929년 프랑스 파리의 어느 은행가가 이곳에 집을 짓기로 하자 외교적 분쟁이 발생했으며, 10년 뒤인 1939년에도 '마린-마리'라고 알려진 프랑스의 예술가 및 선원이 메트레스 섬에 조립식 오두막을 짓고 프랑스 국기를 게양했을 때도 분쟁의 배경이 됐다.
이후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인 1945년 5월 9일엔 저지섬에서 쫓겨난 나치 독일군 병사 몇몇이 민치에르 군도에 몇주간 고립돼 있었는데, 이들은 전쟁이 끝난 줄도 몰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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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치에르 군도는 영국과 프랑스 간 오랜 분쟁 거리로 남아있었으나, 1953년 마침내 국제사법재판소(ICJ)가 이 지역을 영국의 영토로 인정하면서 마무리됐다.
그렇다고 해도 이렇듯 오랫동안 분쟁 거리로 남아있었던 탓에 민치에르 군도를 둘러싸고 우스꽝스러운 일도 많이 일어났다.
일례로 '아라우카니아 파타고니아 왕국'을 대표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지난 40년 동안 4차례에 걸쳐 이 지역을 "침략"하기도 했다. '아라우카니아 파타고니아 왕국'은 오늘날 칠레와 아르헨티나 일부 지역에 몽상가인 프랑스인 변호사 오렐리-앙투안 드 투낭을 필두로 19세기에 세워진 미승인 국가다.
그리고 드 투낭보다 한 세기 뒤에 태어난 프랑스 출신 작가 장 라스파유가 또 한 번 이 '파타고니아 왕국'을 들먹이며 등장한다. 인종차별적 소설로 유명한 '성자들의 진지'를 저술했으며, 우익 성향으로 유명한 라스파유는 이민자가 대량 유입되면서 서구 문명이 몰락할 것이라고 주장했던 인물이다.
라스파유는 1984년 '침공'과 같은 홍보성 짙은 행위를 "완전히 게임은 아닌 게임"이라 부르며 좋아했다. 당시 언론에서 "잔뜩 취한 프랑스 학생들"이라고 불렀던 무리와 함께 라스파유는 영국이 남대서양의 포클랜드 제도를 침략한 것에 대한 보복이라며 메트레스 섬에서 파타고니아 왕국의 국기를 들어 올렸다.
라스파유는 1998년에도 섬을 방문해 메트레스 섬의 공중화장실을 파타고니아 왕국의 상징색으로 칠했으며, 2019년엔 브렉시트에 대한 대응의 일환으로 화장실 문 앞에 걸린 안내판을 '파타고니아 왕국의 최북단 건물'이라고 적힌 안내판으로 교체했다.
그 중간인 2012년에도 파타고니아 왕국의 국기를 게양하려고 시도했는데, 가족과 함께 저지섬에서 메트레스 섬을 방문한 어느 어린아이가 깃대 아래에서 놀고 있자 국기 게양을 포기하고 화장실 문에 작은 국기를 부착하는 것으로 만족했다고 한다.
우리가 탄 보트가 메트레스 섬 근처에 잠시 멈췄다. 썰물 때가 되면서 금빛 해변이 눈에 띄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여름 오후의 완벽한 파란 하늘 아래 있자니 이곳이 한 때 전쟁터였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저지섬에서 놀러 온 시민들은 바비큐 불을 붙이며 바닷가에서 장난을 치고 있었다.
침략자들이 탄 함선이 아닌, 시민들이 타고 온 하얀 요트에 반사된 햇빛이 수평선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어딘가 섬뜩한, 무언가 동떨어진 느낌을 지울 순 없었다. 내 휴대전화는 이곳이 어디인지 도통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고, 휴대전화 속 시계도 영국과 프랑스 시간대에서 우왕좌왕하며 한 시간 사이로 계속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마치 드라마 '로스트'의 어느 한 장면 같았다. 좀 더 휴양지 차림이란 점을 빼면 말이다.

사진 출처, Daniel Stables
머리 위로 검은머리물떼새가 날고 있었다. 메트레스 섬엔 나무로 된 어느 경고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새들이 둥지 트는 곳. 더 들어가지 마시오,' '갈매기가 둥지 트는 곳. 가까이 오지 마시오!' 등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디어링 선장은 이 섬에 사는 "일반 갈매기보다 3배 크고, 10배는 더 매섭게 화내는" 검은등갈매기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죽하면 "내가 (성난 검은등갈매기를 피해) 뛰면 따라서 뛰라"고 했다.
한편 사람을 보기 드물고 오염되지 않은 이 생태계엔 새뿐만 아니라 여러 동물이 서식하고 있다.
영국 플리머스 대학교에서 민치에르 군도의 해양 생태계를 연구하는 샘 블램피드 박사과정 연구원은 "민치에르 군도는 바닷물 위, 아래 할 것 없이 자연미가 뛰어난 곳"이라고 설명했다.
"조석간만의 차가 크다는 뜻은 때때로 해류가 강하다는 의미이자 조석 간 면적이 크다는 의미"라는 블램피드 연구원은 "이 때문에 다양한 서식지가 조성된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몸통 색을 바꾸는 갑오징어도 살고 "공작벌레가 해저에 마치 꽃다발처럼 보이는" 군락을 이루는 등 "다른 곳에서는 거의 기록된 적이 없는 서식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저지 섬과 그 주변 지역의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지정을 위해 노력하는 '저지섬 지질공원 지정 추구(Aspiring Jersey Island Geopark)' 프로젝트는 이러한 민치에르 군도의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선 지질공원 지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프로젝트를 이끄는 밀리 부텔은 "민치에르 군도만의 독특한 다양성이야말로 이곳이 특별한 이유"라면서 "지리적으로도 보기 드물 곳일 뿐만 아니라 이곳에 사는 야생동물들 또한 특이하다. 이곳은 모래장어와 작은 물고기를 먹기 위해 바다로 뛰어드는 가마우지나 흔들리는 보트를 보기 위해 해수면을 뛰어오르는 대서양 회색 바다표범을 볼 수 있는 곳"이라고 덧붙였다.
나 또한 보트를 타고 저지섬으로 돌아가는 길에 모래톱에서 정확히 이 장면을 목격했다. 마치 정원 울타리를 넘어 이웃을 경계하는 듯한 사람처럼 반짝이는 매끄러운 몸을 지닌 바다표범이 예의 바른 듯 경계하는 듯 우리를 관찰하고 있었다.
해양 사학자인 포드는 "바다표범 사냥꾼부터 채석공, 어부 등 먼 옛날부터 인간은 이곳에서 활동했지만, 스쳐 가는 일시적인 활동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이 지역은 사람들이 방문객으로 그저 스쳐 지나가는, 조금은 괴상하기도 한 영국의 남쪽 해안으로 남아있다.
*'히든 브리튼(Hidden Britain)'은 영국의 특이한 풍습과 식문화, 과거와 현재의 미스터리 등을 파헤치는 'BBC Travel'의 시리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