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즈 트러스의 ‘45일’보다 짧게 재임한 국가 지도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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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 페르난도 두아르테
- 기자, BBC 월드서비스
리즈 트러스 총리가 사임하면서 영국은 6년 만에 최소한 5명의 총리를 맞이하게 됐다. 이 정도면 세계 신기록일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아르헨티나 국민이라면 2주 동안 5명의 대통령이 거쳐간 역사를 빠르게 떠올릴지도 모른다.
그가 영국 총리 관저 다우닝가 10번지에 머무른 45일의 기록은 전 세계 국가 지도자의 더 짧은 기록에 비하면 영원처럼 길게 느껴지기도 한다.
독일 나치의 하룻밤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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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제프 괴벨스는 나치 통치 기간(1933~1945) 동안 독일의 악명 높은 선전 장관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괴벨스를 단 하루의 총리로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1945년 4월 30일 아돌프 히틀러의 자살 후 공석이 된 총리직이 2인자였던 괴벨스에게 돌아갔다. 그러나 총리가 된 괴벨스는 이튿날 6명의 자녀를 청산가리로 살해한 뒤 아내와 함께 베를린의 지하 벙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렇게 유럽에서 제2차 세계대전의 막이 내렸다.
백악관에서의 한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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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육군 장교였던 윌리엄 헨리 해리슨(1773~1841)은 미국에서 재임 중 사망한 최초의 대통령이자 최단기 대통령으로, 폐렴에 걸려 취임 32일 만에 향년 68세의 일기로 생을 마쳤다.
카사 로사다의 '회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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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는 2001년 12월 큰 곤경에 처했다. 심각한 경제 위기로 거리에서 폭력 시위가 촉발돼 최소 25명이 숨진 것이다.
뒤이은 정치적 혼란으로 12월 20일 페르난도 데 라 루아 대통령이 사임했다.
이후 정계에서 놀라운 도미노가 진행됐다. 당시 부통령직은 조기 사직 이후 공석이었기 때문에 상원 다수당 원내대표였던 라몬 푸에르타가 대통령직에 올랐다.
이틀 후, 의회에서 대통령궁 카사 로사다의 새 주인으로 아돌포 로드리게스 사아를 선출하자 푸에르타는 자리를 비웠다.
그러나 긴급 경제 구제책에 대한 지지 여론이 감소하자 사아도 일주일 만에 사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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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에 따라 푸에르타가 다시 공석에 올라야 했지만, 그는 이를 거부하고 상원의장직에서 물러났다.
이어서 하원의장인 에두아르도 카마뇨가 4번째 대통령으로 등장했지만 3일 만에 물러났고, 2003년 총선까지 집권했던 에두아르도 두알데가 대통령직에 올랐다.
2주를 넘기지 못한 인도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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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탈 비하리 바지파이는 인도 역사상 최단기 총리다. 1996년 총선 후 연립 과반 확보에 실패해 13개월 만에 임기가 끝났다.
1998년 다시 총리직에 올랐지만 임기는 13개월에 그쳤고, 이후 연정이 와해된 뒤 의회가 해산됐다.
그러나 바지파이의 정당(BJP)은 그다음 선거에서 다시 좋은 성과를 거뒀고, 바지파이는 1999~2004년에 3번째 총리직을 수행했다.
시에라리온의 이상한 임기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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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카 스티븐스의 임기는 시에라리온 총리로서는 가장 짧고, 대통령으로서는 가장 길다.
1967년 경선에서 당선된 스티븐스는 취임 당일 발생한 쿠데타로 면직된 후 체포됐다.
그러나 마지막에 웃는 자는 스티븐스였다. 군사통치가 끝난 뒤 1년 후 관저로 돌아와 1971~1985년 대통령을 지냈다.
스티븐스의 대통령 재임 중 독재 기조가 드러났고 수많은 인권 침해 의혹, 부정 선거 의혹이 있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도 흥미로운 역사가 있다. 2008년 9월 24일 당시 통신부 장관이던 아이비 마트세페 카사부리는 타보 음베키 전 대통령 사임 후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됐다.
그러나 남아공 의회가 음베키의 후임으로 또 다른 내각 장관인 크갈레마 모틀란테를 정식 선출하면서, 카사부리의 대통령 권한대행 임기는 15시간가량에 그쳤다.
멕시코와 브라질의 과도기적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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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외에도 라틴 아메리카 지역에는 다양한 초단기 대통령 사례가 있다. 멕시코의 페드로 라스쿠라인은 1913년 2월 프란시스코 마데로 당시 대통령을 축출하는 군사 쿠데타 기간에 대통령직을 맡았는데, 임기는 1시간에도 못 미쳤다.
브라질에서는 카페 필로 전 대통령이 중병에 걸린 뒤 1955년 11월 8일 카를로스 루즈 당시 하원의장이 대통령직을 이어받았다.
이때 브라질은 이미 새로운 대통령으로 주셀리누 쿠비체크를 선출했지만, 임기는 1956년 1월에 시작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국방부에서 임시 대통령인 루즈가 쿠비체크의 취임을 막으려 쿠데타를 준비 중이라고 주장했고, 루즈는 국방부의 지시에 따라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후 2개월 동안 네레우 하무스 당시 상원 원내대표가 대통령직을 맡았다.
찰나의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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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왕과 여왕은 선거에서 경쟁할 필요가 없고 공화정 혁명의 위기에서 비교적 안전하지만, 그렇다고 긴 통치 기간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이탈리아의 움베르토 2세가 대표적이다. 움베르토 2세는 1946년에 부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의 퇴위 후 즉위했으며, 군주제에 대한 국민투표를 지지함으로써 이탈리아에서 고조되는 반왕정 정서를 달래려 했다.
그러나 새로운 왕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이탈리아 국민의 54%가 공화정 전환에 찬성표를 던졌고, 움베르토의 통치는 34일 만에 막을 내렸다.
네팔의 디펜드라 비르 비크람 샤 데브 왕은 더 짧고 비극적인 기록을 남겼다.
2001년 6월 1일 당시 왕세자였던 디펜드라는 양친을 포함해 여러 명의 네팔 왕족을 총으로 살해했다. 한 인도 귀족과 결혼하려 했으나 친족들이 축복을 거부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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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펜드라는 난사 후 스스로에게도 총을 쐈다.
그러나 즉시 자살하지는 못했고 혼수상태에 빠진 뒤 사흘 만에 숨졌다. 엄밀히 말하면 그 기간 동안 디펜드라는 네팔의 왕이었다.
다만, 왕실의 통치 기록을 기준으로 최단기 왕은 아마도 프랑스 왕 루이 19세일 것이다. 루이 19세는 1830년 8월 2일 왕정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 기간에 부왕 샤를 10세의 퇴위 후 왕위에 올랐지만, 불과 20분 뒤 조카인 보르도 공작(샹보르 백작)에게 왕위를 넘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