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디아스포라: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이 들려주는 '코리안 언더독' 이야기

동영상 설명, 디아스포라 영화 감독이 들려주는 '코리안 언더독' 이야기 (촬영, 편집: 최정민)
    • 기자, 정다민
    • 기자, BBC 코리아

지난 4월 29일, 한국계 미국인 작가 이민진(Min Jin Lee)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애플 TV+ 오리지널 드라마 '파친코(Pachinko)'는 세계적으로 뜨거운 호평을 받으며 시즌 1 마지막 에피소드를 공개했다.

코리안 디아스포라를 주제로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해 온 재미 한인 전후석 감독( Joseph Juhn, 38세)은 "디아스포라라는 보편성을 가진 파친코의 내러티브가 세계인의 공감을 얻은 것"이라며 "한국과 관련된 모든 것이 이토록 주목을 받는 것이 인류 역사상 한 번도 없었던 일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전 감독의 말대로 한국 문화가 세계적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역사로, 한류의 본격적인 세계화는 2010년대 중반부터 이루어졌다.

과거 한국의 세계적 영향력이 크지 않던 시절, 재외 한인들은 고향에서도 정착지에서도 소수자였고 어느쪽으로부터도 보호 받지 못한 채 지역사회 내 벌어지는 폭력에 직접 노출되곤 했다.

특히 '파친코' 시즌1의 마지막 에피소드가 공개된 날로부터 딱 30년 전인 1992년 4월 29일은 재미 한인들사이에서 아직까지도 '사이구(4.29)'라고 불리는 잊을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난 날이다.

당시 LA지역 흑인사회에서는 미국 사법부의 인종 차별적 행태에 반해 폭동이 일어났다. 사건 발생 과정에서 미국 경찰이 백인거주지역만을 보호하고 한인거주지역은 방치했고 재미 한인들은 고립된채 자체적으로 폭도들에 맞섰다.

한인 청년들이 총을 들고 한인타운을 방어하고 있다

사진 출처, Connetpictures

사진 설명, 1992년 4월 29일 발생해 수일 간 지속된 LA 폭동 당시 한인 청년들이 총을 들고 한인타운을 방어하고 있는 모습

재미 한인들은 거듭해서 미국 정부에 도움을 호소했지만 어떤 도움도 받지 못했고, 오히려 무장한 한인들의 모습이 미국 언론에서 부정적으로 다뤄지기도 했다.

재미 한인 기자 이경원(K.W. Lee, 93세)은 "당시 한인들은 스스로 외에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했다"며 "바로 그 순간이 내가 재미 한인으로서 새롭게 태어난 순간이었다"고 회상한 바 있다.

한국계 미 하원의원 4명이 갖는 의미

전 감독은 대학생 시절 우연히 참석한 한 강연에서 사이구 당시 한인들의 고독한 투쟁을 기억해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는 이경원 기자의 모습을 보게 됐다.

전 감독은 자신은 그 때까지 "순진하고 이상적인데다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재미한인 대학생이었지만 젊은 재미 한인들에게 한인의 역사를 기억하라며 호통치는 이경원 기자님과의 만남이 인생을 바꾸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때 자신 역시 "재미한인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덧붙였다.

이경원 기자가 1992년 LA폭동 당시 한인들의 투쟁이 실린 신문을 들고 사건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출처, Connetpictures

사진 설명, 전후석 감독이 대학생 당시 참가한 한 강연에서 이경원 기자가 1992년 LA폭동 당시 한인들의 투쟁이 실린 신문을 들고 사건을 설명하고 있는 모습

이후 전 감독은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다양한 국가의 한인 커뮤니티 일원들을 만났다. 특히 뉴욕에서 변호사로 일하던 중 2015년 12월 말 떠난 휴가 여행에서 쿠바 내 한인 사회 일원들을 만나면서 다큐멘터리 감독의 길을 걷게 됐다.

쿠바 한인 디아스포라의 이야기를 발굴해낸 '헤레니모(Jerenimo, 2019 개봉)' 이후 전 감독이 두 번째로 선보이는 다큐멘터리 영화의 제목은 '초선(Chosen, 11월 3일 개봉 예정)' 으로, 지난 2020년 미국 하원의원 선거에 도전한 재미한인 5인의 여정을 담았다.

전 감독은 "1903년에 재미 한인들이 처음 하와이에 도착하고 나서 2018년까지 115년 동안 한인 출신 연방 하원이 단 한 명밖에 존재하지 않았다"며 "그런데 2020년에는 무려 다섯 명의 재미 한인이 본 선거에 도전을 한 것이 굉장히 역사적 여정이었는데 코로나 사태 등으로 생각보다는 많은 조명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영화 '초선'의 주인공 5인은 ▲데이비드 김(David Kim, 37세, 민주당), ▲메릴린 스트릭랜드(Marilyn Strickland, 59세, 민주당), ▲미셸 박 스틸 (Michelle Park Steel, 67세, 공화당), ▲영 김(Young Kim, 59세, 공화당), ▲앤디 김(Andy Kim, 40세, 민주당)이다.

이 중 데이비드 김은 현역 지미 고메스(Jimmy Gomez) 의원과 맞대결에서 53% 대 47% 로 석패했고, 나머지 4명은 당선되며 '한국계 미 하원의원 4명의 탄생'이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이 다섯 명의 한인 정치인들은 오는 11월 8일 치러지는 미국 중간선거에서 다시 한번 하원의원 자리에 도전한다.

전 감독은 "모든 후보자들을 정치적 성향이 아닌 인간으로 그리려 했다"면서 "우리가 다름 속에서 어떻게 공존할 수 있었을까 라는 명제를 갖고 이들을 공통되게 하는 분모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

영화 '초선'은 '국뽕' 아닌 '언더독(underdog)' 이야기

전 감독은 영화 '초선'이 "우리가 이만큼 정치적으로 성공했다, 이만큼 많은 연방 하원을 배출했다라는 자화자찬 내러티브를 떠나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불편한 지점들, 여러 갈등적 요와 이질적 요소를 담으려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특히 "그 중에서 가장 언더독(underdog)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데이비드 김을 집중적으로 조명해서 그 친구의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려고 했다"고 말했

데이비드킴, 미셸 스틸 박, 영 김, 앤디 김, 메릴린 스트릭랜드의 사진들로 이루어진 영화 '초선'의 포스터

사진 출처, Connetpictures

사진 설명, 전후석 감독의 두 번째 다큐멘터리 영화 '초선'의 포스터

이번 중간선거에서 캘리포니아 34지구 하원의원 자리에 재도전하는 데이비드김 후보는 한인 후보들 중 가장 나이가 어리다. 김 후보는 대기업 등으로부터 정치 자금을 지원받지 않고 대중 모금을 기반으로 캠페인을 벌였다. 그는 막강한 후원 세력을 가진 유력 정치인인 상대후보와 10대 1이라는 자금 열세 속에서도 53%대 47% 의 표차로 낙선해 '언더독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영화 '초선'은 한인사회와 히스패닉 중심 지역사회에 이렇다할 기반이 없던 김 후보가 한인사회 기성세대들, 지역 주민들과 소통하며 지지를 호소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 이면에 깔린 한인사회내, 나아가 지역 커뮤니티 내 존재하는 세대 간의 갈등이나 이념이나 종교, 인종의 차이로 인한 갈등에 대해서도 여과 없이 이야기한다.

지난 2020년 선거에서 하원의원에 당선된 다른 네 명의 후보들의 이야기 역시 언더독들의 이야기다.

미셸 스틸 박 의원은 이민 1세대, 메릴린 스트릭랜드와 영 김 의원은 이민 1.5세대로 앞선 세대들의 '아메리칸 드림' 스토리를 대표한다. 이렇다할 경제적 기반 없이 미국에 도착해 생존을 위해 분투했던 이민 앞 세대들은 특유의 근면 성실함으로 지역 사회 내 자리를 잡았고, 세 의원은 특히 한인 여성으로서는 처음 하원에 입성했다.

'오바마 키즈'로 알려진 앤디 김 의원은 이민 2세대로, 김창준 전 의원 당선 이후 26년만인 2018년 미 동부지역 최초의 한인 연방하원이 됐다.이후 2020년, 그는 백인 유권자의 비율이 85%이상이고 한인 유권자는 1%에도 못 미치는 뉴저지주 제3구에서 상대후보와 53% 대 45%의 표차로 재선에 성공하면서 특히 주목을 받았다.

'코리안 디아스포라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국사회 다문화 이해해야'

전 감독은 재미 한인 정치인 5인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에 대해 "정치인이라서 관심을 가진 것 보다는 이들의 인간적 스토리에 우연히 정치라는 요소가 들어가 있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다"며 "특히 매릴린 스트리클랜드 의원의 디아스포라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계기였다"고 설명했다.

메릴린 스트릭랜드는 주한미군 용산 기지에서 태어났다. 흑인 아버지는 미군 부대 소속이었고 한인 어머니는 당시 '전쟁 신부'로 불렸다.

전 감독은 "이분(메릴린 스트릭랜드)의 스토리를 따라가면서 당시에 전쟁 신부라고 불리던 가정, 이들에 대해서 우리가 과연 얼마나 조명을 하고 있고 이분들이 대한민국이 발전할 수 있게 해외에서 경제적 원조를 하는 것에 대해서 얼마나 인정을 하고 있는지를 다뤄보고 싶었다"면서 특히 "이들이 그 당시에 한국전쟁 이후 다문화 가정 출신 혼혈로서, 한국 사회에서, 이후 또 재미 한인 사회에서 살아남는데 있어 오명과 편견에 노출돼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데 얼마나 힘이 들었을지를 다루고 싶었다"고 밝혔다.

메릴린 스트릭랜드 의원과 전후석 감독이 함께 웃으며 사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출처, JosephJuhn's Facebook

사진 설명, 메릴린 스트릭랜드 의원(왼쪽)과 전후석 감독

전 감독은 또 "8백 만에 가까운 재외 동포들이 하나 이상의, 다수의, 혼합된 정체성을 갖고 정착국에서 소수자로서, 영원한 이방한 이방인으로서 살아간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한국 사회가 예멘 난민 사태 등 다문화 사회로 가기 위한 진통을 겪고 있는 과정에서 디아스포라적 사유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국 밖에서 살아가는 한국인들의 고충을 알리는 것이 한국 사회가 다원성을 향해 나아가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정부의 통계에 따르면 재외 동포와 한국 체류 외국인 인구는 각각 약 740만 명, 200만 명에 달한다. 하지만 전 감독은 한국 사회가 이들을 다양성의 측면에서 포용하는 면이 아직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전 감독은 "한인 디아스포라 일원들, 그중에서도 특히 재중 동포들을 만나 친구가 되고 정을 나누면서 그들의 아픔과 역사를 알게됐고, 한국 사회에서 그들을 향해 표출되는 편견과 혐오가 부당하다고 느꼈다"면서 "특히 예맨 난민 사태를 보면서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그런 철학적 기재 도적적 마음 가짐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생각했을 때 저의 결론은 디아스포라적 정체성, 디아스포라적 사유였다"고 말했다.

전 감독은 자신에게 있어 디아스포라란 "고정된 개념이 아닌 계속 진화하는 개념"으로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환대, 다름에 기반한 평화로운 공존을 통해 내가 속한 커뮤니티를 확장시키는 것"이라면서 "앞으로 디아스포라 개념에 대한 사람들의 공감을 확산하기 위해 스토리텔링을 계속 하고 싶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