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송선 탄 '17살 에이코'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
"학교에 처음 가보니 김일성 초상화가 걸려 있고 선생님들은 북한이 지상낙원이라고 수없이 강조했어요. 이래서 세뇌가 무서운 거예요. 세금도 없고 병원비와 교육비 모두 공짜라는데 사실일까? 북한이 너무 궁금해지기 시작했으니까요."
가와사키 에이코 씨는 경상남도 창원 출신 아버지와 전라남도 목포 출신 어머니를 둔 재일교포 2세다.
과거 수많은 재일동포들이 그러했듯 가정형편은 어려웠고, 장학금을 준다는 말에 낯선 조총련계 고등학교로의 진학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 선택으로 그의 삶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르게 됐다.
당시 일본 내 9개의 조총련계 고등학교가 있었고, 매년 1~2명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을 무상으로 공부시키는 제도가 있었다. 에이코씨는 이 제도가 조총련 활동가를 양성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
'북송선'은 북한∙일본∙국제적십자사 합작품
1959년 12월 14일 일본 니가타항에서 첫 북송선이 출항한 이후 1984년까지 25년간 9만3340명의 재일조선인이 북한으로 갔다.
1950년대 일본은 패망 이후 세계 각지에 흩어져있던 자국인 약 600만명이 맨몸으로 귀국하면서 혼란스러웠고, 안 그래도 핍박받던 조선인은 더더욱 골칫거리로 여겨졌다.
당시 북한은 중공업 우선 발전 노선을 선택하면서 노동력이 부족한 상황이었는데, 이 부분이 조선인을 어떻게든 처리하고자 했던 일본 정부의 셈법과 딱 맞아떨어졌다.
그렇게 북한과 일본, 조총련이 합심해 움직였다. 여기에 '명분' 차원에서 국제적십자사까지 동원되면서 TV와 신문 등 일본 언론에서는 매일같이 북송선 선전이 나왔다.
"북한은 훌룡한 곳이고 재일동포들이 그곳에 가는 것은 옳다는 거예요. 그때 일본 국회가 북송 관련된 것을 다 통과시켰어요. 일본 정부, 북한, 조총련이 다 그렇게 만든 거예요."
"배를 타고 이틀 밤을 지나 저멀리 청진항이 보이기 시작하니까 사람들이 다 환호했죠. 지상낙원에 왔으니까요. 근데 가까이 가면 갈수록 어른들이 막 웅성거리기 시작했어요."
"청진항은 북한에서 세번째로 가는 국제무역항이라고 배웠는데 아무것도 없고 웬 거지떼 같은 시커먼 사람들이 꽃다발을 들고 나와있는데 양말 신은 사람도 없고 옷도 일본에서는 작업복으로도 안 쓸 정도로 형편없는 천으로 옷을 똑같이 입고 있더라고요. 다들 주저앉았어요. '아 속았구나'...."
지난 2003년 43년만에 자력으로 탈북해 일본으로 돌아온 에이코 씨는 현재 북한과 김정은 위원장 그리고 일본 정부를 상대로 재판 중이다.
"거짓선전으로 수많은 재일조선인의 삶과 인권을 송두리째 짓밟았다"는 이유에서다.
에이코 씨는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들 그리고 여전히 북한에서 고통받고 있는 재일조선인들을 위해 삶이 다하는 날까지 이 싸움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한다.
취재: 한상미, 영상: 최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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