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님, 우리도 있어요': (2) 아군이 적진에 있는데 왜 외면해요?

사진 출처, 뉴스1
#1 올해 92세의 유영복씨. 6.25전쟁에 참전한 그는 1953년 강원도 금화지구 전투에서 포로로 붙잡혀 북한에서 47년간 강제 노역을 했다.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2000년 6월 15일, 드디어 고향에 갈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쁨의 눈물을 흘렸지만 이는 곧 실망감으로 바뀌고 말았다.
"평양에 온 김대중 대통령이 국군포로에 대해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어요. 비전향 장기수 문제는 언급하면서 대한민국 최전방에서 싸우다 붙잡힌 국군포로를 외면하는 것을 보고 희망을 접었습니다."
유씨는 한 달 뒤 두만강을 건넜고 중국을 거쳐 그렇게 자력으로 한국에 왔다.
지난 5월에는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받아 다녀왔다. 그는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부분을 인정해주는 것 같아 고마웠다"고 전했다.
#2 올해 62세의 손명화씨는 2006년 한국에 왔다. 그의 아버지는 경남 김해 출신으로 1950년 9월 참전해 1953년 5월 26일 북한군 포로가 된 손동식씨다. 그는 북한 탄광에서 고된 노동을 하던 중 1984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손씨는 '죽으면 고향에 묻어달라'던 아버지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탈북을 결심했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아버지의 유해를 김해에 묻었다. 손씨 역시 자력으로 한국땅을 밟았다.
"한국에서 인권이 중요하다 하지만 국군포로의 인권이 어디 있습니까? 있긴 있었습니까? 이날 이때까지 그 어느 대통령도 국군포로 이름 넉자도 부르지 않았습니다. 울어도 울 곳이 없었고 소리를 질러도 우리 이야기를 들어줄 곳이 없었습니다."
"미국은 뼈 한 조각도 돈 주고 사오는데 북한에 묻힌 국군포로 유해라도 송환해 주세요. 살아 돌아온 국군포로와 유족에게 미안하다 말 한 마디라도 해주세요."
북에 100명 생존 추정… 대부분 90대 '시간 없어'
전쟁 당시 북한군에 잡힌 국군포로는 약 8만2000명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한국으로 돌아온 포로는 휴전 당시 송환된 8343명. 이후 지금까지 한국 땅을 밟은 국군포로는 80명, 현재 생존자는 15명이다.
물망초 국군포로송환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수한 울산대 교수는 BBC 코리아에 "국군포로 어르신들이 '북한에서 일했던 탄광에 어디 출신 누가 몇 명 있었다' 이렇게 증언하신 것들을 포함해 여러 자료들을 종합하면 전체 국군포로 규모를 최소 8만~10만 명 정도로 추정한다"며 "증언을 바탕으로 100명 정도는 살아계시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내년이면 정전협정 70주년인데 전쟁 당시 스무 살이라고 해도 지금 대부분 90세가 넘으신 거죠. 지난 2010년에 마지막으로 한 분 오시고 못 오셨어요. 이제 다들 연세가 많으셔서 자력으로 압록강, 두만강 넘기 힘드십니다. 시간이 얼마 없어요."

사진 출처, 뉴스1/육군 제공
"이 분들이 탄광 등 열악한 곳에서 오랫동안 힘들게 일하셔서 건강이 다들 좋지 못하세요. 이제 15명 남아계시는데 노후를 편안하게 보낼 수 있게 작은 요양병원이나 국군통합병원에 자리를 마련해주기를 바랍니다."
2020년 국방백서에 따르면 탈북해온 국군포로는 1994년 1명을 시작으로 2010년까지 꾸준히 이어졌다. 2004년에는 14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하지만 2010년 이후 생환한 국군포로는 없다. 게다가 북한은 여전히 국군포로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영환 전환기정의워킹그룹 대표는 "한국 정부가 다리를 놓거나 적극적으로 요구해서 모셔온 사례가 단 한 번도 없다. 게다가 국군포로가 몇 명인지 정부가 공식적인 규모 자체를 내놓지 못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군포로 송환 요구는 정치적 타협이나 외교 문제가 아닌 당연히 이뤄져야 하는 정상 국가의 '아이덴티티' 차원이라는 것이다.
"전쟁 포로를 방치하고 아군을 적진에 두고 찾지 않는 나라? 그럼 누가 그 나라를 위해 총을 들겠어요? 누가 국방의 의무를 다 하겠냐고요, 전쟁에 참전했다가 죽으면 말 그대로 'X죽음' 아닌가요? 한국은 전담 부서도 없어요. 국가적 차원에서 사실 조사, 역사적 사료 수집 같은 기본적인 것이라도 해줘야죠. 지금까지 이어진 이런 무관심을 윤석열 정부가 바로잡아주면 좋겠어요."
이 대표는 "전쟁포로를 돌려보내지 않고 강제 노역을 시키고 자녀들까지 감시하는 북한의 이 같은 인권 침해는 모두 제네바 협약 위반"이라며 "유엔 등 다자무대에서 꾸준히 언급하고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향후 대북 교섭에서 국군포로 송환을 최우선시하는 것은 물론 국군포로의 탈북 및 입국 지원 정책, 전담 상설기구, 관련 법제 정비 등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련희 북송법'이란?
한편 북한으로 가겠다는 사람은 보내고 북에 억류된 국군포로를 데려오자는 내용의 법안이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외교관 출신의 태영호 의원(국민의힘)은 지난 4월 "김련희씨 등 자진월북을 희망하는 이들을 모두 보내고 북한에 있는 우리 국군포로와 억류된 국민들을 데려와야 한다"고 밝혔다.
김련희씨는 지난 2011년 탈북 브로커에 속아 한국에 왔다며 북한으로의 송환을 요구해온 인물로, 인도적 차원의 인적 교류가 진행되면 남북관계 개선의 물꼬가 트고 통일도 앞당겨질 수 있다는 것이다.
태 의원은 "김씨를 판문점을 통해 공개적으로 보내야 한다"며 "김씨가 한국에서 번 돈과 물자를 트럭에 싣고 간다면 평양 주민들에게 주는 영향도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지난 5월 인사청문회 당시 "장관에 취임하면 심도 있게 관련 내용을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이후 통일부 측은 관련 내용에 대해 "북송 문제는 국가보안법 등 다른 법률과 저촉되기 때문에 쉽게 결정하기는 어렵다"며 거주 이전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차원에서 좀 더 깊이 고민할 문제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