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적인 이슬람 국가 사우디서 예술로 변화를 일구는 사람들

알 제프리는 예전의 사우디에선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작품을 창작했다

사진 출처, Sebastian Usher

사진 설명, 알 제프리는 예전의 사우디에선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작품을 창작했다

"부모님 차 뒷좌석에서 잠을 자곤 했던 어린 시절, 마을 구석에 있던 야자수 숲 냄새가 날때 쯤이면 집에 거의 다 왔다는 신호였다"고 사우디 동부 주 카티프에서 태어나고 자란 시인 가산 알 쿠나이지는 기억한다.

가산은 친구이자 예술가인 후세인 알모하센의 집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 집은 사우디에 불고 있는 가차없는 현대화 바람에 철거될 운명에 처했다. 후세인의 동네에는 새로 생기는 4차선 고속도로가 관통할 예정이다.

후세인과 가산은 이 계획을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 주민들은 전면적인 보상금을 받을 것이며, 이런 사업은 주민 편의를 위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가산과 후세인은 그림, 석판, 책으로 가득 찬 큰 방에서, 강렬했던 추억은 이런 사업으로 사라질 순 있겠지만, 오히려 머리와 작품들 속에 오랫동안 보존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산이 1960년대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떠올린 그 야자나무도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작업실에 있는 후세인의 작품들

사진 출처, Sebastian Usher

사진 설명, 작업실에 있는 후세인의 작품들

이 집에서 차로 45분 거리에 있는 거대한 박물관 단지, 킹 압둘아지즈왕 세계문화센터에서는 이들의 작품이 전시 중이다. 사우디 동부와 서부의 예술가에게 공간이란 무엇인지를 묻는 아마킨 (Amakin) 이라는 제목의 전시회다. 아랍어로 makan은 공간에 대한 느낌, 공간 등을 의미한다.

킹 압둘아지즈왕 세계문화센터는 걸프 해안에 있는 도시 중 하나인 알코바르 외곽의 고속도로 가장자리에 지어졌다. 박물관은 주변 풍경을 닮도록 디자인 됐다. 다섯 개의 거대한 바위가 마치 절벽에 지어진 대피소를 연상시킨다.

이드라(Ithra)라고도 불리는 이 센터의 역사는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 시절 볼 수 있었던 혼란스러운 문화 및 사회 변혁이 있기 훨씬 전 이다.

사우디인과 사우디 거주 외국인들은 저녁 늦은 시간까지 연주되는 곡을 즐기기 위해 이곳으로 몰려든다. 이 문화센터의 거대한 입구에 자리한 자연사, 이슬람교, 현대 예술작품을 갖춘 호화로운 미술관 역시 볼거리다.

신임 센터장인 압둘라 알 라시드는 이곳이 사우디의 예술과 문화 분야에서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사우디가 매우 보수적인 이슬람권에서 조금씩 깨어나고 있을 무렵 한 발 더 앞장섰다는 것이다. 이슬람권에서는 대부분의 예술적 표현에 대한 명시적인 혹은 암묵적인 금기사항이 있다.

알 라시드 센터장은 이곳이 변화에 대비해 디자인됐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공공장소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게 꿈에서나 가능했던 시대에 최첨단 시설의 영화관을 미술관 안에 지었다.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영화를 상영 중인 주요 도시 영화관을 필두로 이제 사우디 전역에서 영화관을 찾을 수 있다. 알 라시드 센터장은 센터가 경계를 넓히거나 도발하기 위함이 아닌 자국에서 예술과 문화가 발전할 수 있는 공간을 확장하는 데 도움이 되고자 지어졌다고 강조했다.

'과거에 부치는 시'

아마킨 (Amakin) 전시회가 이러한 의도의 좋은 예다.

전시회의 베네치아 포터 큐레이터는 유명 사우디 가수인 모하메드 압둘의 노래를 듣고 전시회 주제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참고로 그는 대영 박물관에서 이슬람과 현대 중동 미술 큐레이팅을 맡았다.

이 노래의 애처로운 리듬은 사우디 예술가들의 공감을 샀다. 이들은 한때 자기표현을 할 여유를 주지 않다가 이젠 현대 문화를 발전시킨다며 엄청난 국비를 쏟아붓는 이 나라에서 어떻게 자신들이 개성을 찾으려고 노력했는지를 노래에서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아마킨 전시회의 사우디 작가들

사진 출처, Sebastian Usher

사진 설명, 아마킨 전시회의 사우디 작가들

사진작가 바더 아와드 알 발라위는 자기가 살던 동네인 호바르의 평범한 6,70년대 건축물을 사진으로 기록해 왔다. 낡기도 했고 중심부 일부는 방치됐지만, 아직 사람이 사는 건물이다. 에미 캣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또 다른 현지 예술가도 사우디 수도 제다를 주제로 비슷한 작품을 했다.

캣은 현재 지역별로 철거되고 있는 제다의 옛 중심지인 알바라드에서 몇 달 동안 거주 중이다.그는1980년대에 거물급 사업가로 활동했고 미국으로 건너가선 패션 사진작가로 변신했다가 지금은 컨셉트 아티스트가 되는 등 흥미진진한 소설의 악당 주인공 같은 삶을 살고 있다.

그는 작품에 추상적인 파란색과 흰색을 사용해 홍해의 신부라고 알려진 제다의 벽을 표현했다. 파란색은 물을, 흰색은 신부 드레스를 의미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

Artist Emy Kat

사진 출처, Sebastian Usher

사진 설명, 에미 캣과 그의 추상화 작품

같은 전시 공간에는 예술가 아스마 바힘의 작품도 있다. 수평의 벽 모양인 이 작품엔 손 편지가 쓰인 금박 잎이 조각으로 삽입됐다. 이 벽은 알 바라드에서 발견한 돌무더기로 만들어졌다.

곧, 이와 같은 예술작품들이 한 때 제다의 상업중심지였던 곳의 유일한 흔적이 될지 모른다.

사우디 당국은 빈민가 지역 같은 곳도 철거했다. 사우디 예술가들은 이 지역의 흔적을 포착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제다 태생의 모하메드 해마드 감독은 단편 영화에서 어린이, 마녀, 네온사인이 달린 아이스크림 트럭을 등장시켜 노스탤지어를 자아냈다. 그는 자신의 영화가 " 과거의 추억으로 가득 찬 이 놀라운 곳에 부치는 나만의 시"라고 묘사한다.

몽환적인 풍경을 담은 또 다른 작품은 제다에서 태어난 또 다른 젊은 예술가 오바다 알 제프리에 의해서도 탄생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우디 작품 치곤 너무 위험할 뻔했던 이 그림엔 보라색 켄타우루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반인반마의 괴물) 파워퍼프 걸(1988년 애니메이션), 그리고 눈을 가진 모래언덕이 나온다.

그림을 통해 자기 내면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사실 알 제프리에게도 긴장되는 일이다.

"제 작품은 남성성과 여성성을, 그리고 다른 여러 정체성을 탐구합니다." 알 제프리가 왜 이 작품의 제목을 <불가능한 자아>로 지었는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두 개의 현실

카티프에서는 구시가의 잔해가 간신히 목숨을 유지하기도 했다. 폐가의 나무 덧문은 용광로처럼 뜨거운 바람이 안으로 들어올 때마다 조금씩 흔들린다.

이 폐가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균열을 막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진흙 벽돌 위에 콘크리트로 덧칠했다.

카디프 구시가의 허름한 폐가

사진 출처, Sebastian Usher

사진 설명, 카디프 구시가의 허름한 폐가

카티프는 3,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고대 정착지다. 사우디에선 이렇게 오래된 역사는 한때 소홀히 여겨졌지만 이젠 국가 정체성을 재설정하는 작업의 일환으로 탐구되고 있다.

그 지역은 사우디에선 소수파인 시아파의 고향이기도 하다. 때문에 정치적 불안이 자주 일어났던 곳이기도 하다. 사우디가 국제적으로 비판 받았던 대규모 공개 처형 당시, 이곳 주민 일부가 테러로 기소돼 처형 대상에 포함 된 바 있다.

카디프에서 차로 가까운 거리에는 몇 년 전 일어났던 시위의 중심지인 알 아와미야가 있다. 이곳의 구시가 지가 폐쇄됐을때, 당국은 보수와 개축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지만, 지역 주민들은 반대했다.

국제사회에서 사우디의 위치는 양날의 칼과 같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공식 방문하면서 사우디에 관심이 쏠리지만, 이곳은 아직 외부적으론 자말 카슈끄지 피살 사건의 그늘에 가려져 있다.

반면 현지 젊은이들을 생각하면, 사우디에선 변화가 불가피하다.

사우디 담당 기자들은 이 양극 사이에서 어떻게 현실을 잘 반영할지 그 방법을 찾으려고 애쓰고 있다.

10년 전 사우디 여성 감독의 첫 장편영화 와즈다 (Wadjda)는 자전거 타는걸 허락받는 게 소원인 한 소녀의 소박한 바람을 다뤘다. 이 영화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정체성에 대한 획기적인 표현방식으로 국제적인 관심과 찬사를 받은 바 있다.

이젠 여성도 자유롭게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된 나라 사우디아라비아. 타루트섬의 코바 끝자락에선 검은 두건을 쓴 한 소녀가 자전거에 태연하게 앉아 미래를 기다리는 것처럼 또 어떤 변화가 올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Girl on tricycle

사진 출처, Sebastian Ush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