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하에선 경제가 취약'하다고 믿는 아랍인들

- 기자, 제시 윌리엄스, 사라 하버슨, 베키 데일
- 기자, BBC 아랍 및 데이터 저널리즘 팀
중동 및 북아프리카의 아랍권 국가 국민 사이에서 민주주의하에선 경제적 안정을 이루기 어렵다는 인식이 점차 커지고 있다는 새로운 조사 결과가 나왔다.
아랍권 국가의 사회, 정치, 경제, 가치관 등을 연구하는 '아랍 바로미터'와 BBC 아랍은 아랍권 9개 국가와 팔레스타인 지역 주민 2만3000여 명을 인터뷰했다.
조사 결과, 응답자 대부분이 민주주의하에선 경제가 취약하다는 데 동의했다.
이른바 '아랍의 봄' 혁명이 불며 아랍권 국민들이 민주적 변화를 요구한 지 10년이 갓 지난 지금 이 같은 여론 조사 결과가 나온 것이다.
시위가 벌어진 지 2년도 채 되지 않아 혁명의 발원지인 튀니지만이 민주적인 정치 체제를 유지했다. 그러나 지난주 튀니지 정부가 발표한 헌법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튀니지의 민주주의는 또다시 후퇴할 수 있다.
한편 '아랍 바로미터'는 미 프린스턴대가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다양한 대학 및 여론 조사 기관과 협력하는 리서치 네트워크로, 작년 말부터 올해 봄까지 해당 조사를 진행했다.
마이클 로빈스 아랍 바로미터 국장은 지난 2018~2019년 조사와 비교했을 때 아랍권 국민의 민주주의에 대한 견해가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로빈스 국장은 "(아랍 지역에선) 민주주의가 완벽한 정부 형태가 아니며, 만능은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지역 주민들은 배를 곯고 있습니다. 국민들은 먹을 빵이 필요하고 현재 정부 시스템에 실망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조사 대상 국가 대부분에서 평균적으로 절반 이상의 응답자가 민주주의하에선 경제가 취약하다는 주장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또한 조사가 이뤄진 모든 국가에서 '정부의 형태보단 (정책의) 효율과 성과에 더 중점을 둔다'는 말에 동의하거나 강하게 동의한다고 답한 응답자 비율이 절반이 넘었다.

한편 영국 EIU(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가 발표한 '2021년 민주주의 지수'에 따르면 중동과 북아프리카 국가의 민주주의 순위는 전 세계적으로 하위권에 자리했다.
일례로 이스라엘은 "결함이 있는 민주주의"로, 튀니지와 모로코는 민주주의와 권위주의가 혼합된 "혼합형"으로 분류됐으며, 나머지 아랍권 국가는 "권위주의 국가"로 분류됐다.
한편 7개국과 팔레스타인 지역에선 절반이 넘는 응답자가 일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선 "규칙도 바꿀 수 있는" 국가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말에 동의한다고 답했다.
오직 모로코에서만 해당 질문에 대한 동의가 절반을 넘지 않았으나, 팔레스타인, 요르단, 수단에서도 꽤 많은 응답자가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반면 튀니지에서는 응답자 10명 중 8명이 필요하다고 답했으며, 10명 중 9명은 작년 7월 헌법기관의 기능을 잇달아 정지하고 의회를 해산한 카이스 사이에드 대통령의 결정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쿠데타라고 비난하는 반대파의 목소리도 있었으나, 당시 사이에드 대통령은 부패를 척결하기 위해선 필요한 조치라고 주장했다.

튀니지는 지난 2011년 중동과 북아프리카 일대를 휩쓴 '아랍의 봄' 운동의 발원지로, 이후 지속해서 민주 정부를 구성한 유일한 국가였다.
그러나 사이에드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다시 권위주의로 퇴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EIU의 2021 민주주의 지수에서 튀니지의 민주주의 순위는 21계단이나 떨어졌으며, "결함이 있는 민주주의"가 아닌 "혼합형"으로 분류됐다.
튀니지에서의 조사 기간은 작년 10~11월로, 이때 이후 튀니지에선 반정부 시위가 전개된 바 있다. 사이에드 대통령이 의회를 해산하고 선거관리위원회를 장악했을 뿐만 아니라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강화한 개헌안에 대해 국민투표를 시행한다고 발표하는 등 권한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는 동안 튀니지의 경제 사정은 더 심각해지고 있다.
아랍 바로미터의 공동 설립자이기도 한 아마니 자말 프린스턴 공공국제정책대학 학장은 "오늘날 불행히도 튀니지는 권위주의 국가로 후퇴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퇴보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이런 현상이 유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말 학장은 "(이러한 퇴보의) 주요 동인으로는 권위주의 정치 문화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보단, 튀니지에선 민주주의가 경제면에선 실패했다는 믿음이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7개국과 팔레스타인에서 경제 위기는 부패, 사회적 불안정, 코로나19 확산보다 더 시급한 직면 과제로 평가됐다.
조사 대상 국가 중 오직 이라크와 리비아에서만 경제 위기가 1순위를 차지하지 않았는데, 이들 국가는 각각 부패와 전쟁으로 사회가 불안정하다.
또한 조사 대상 국가의 국민은 적어도 3명 중 1명꼴로 다음번 식량을 살 충분한 돈을 모으기도 전에 식량이 다 떨어진 경험이 지난 1년간 있었다고 답했다.

이 중에서도 이집트와 모리타니의 응답 비율이 가장 심각했다. 이들 국가에서는 응답자의 3분의 2 정도가 가끔 혹은 자주 식량을 살 충분한 돈을 모으기도 전에 식량이 다 떨어진 경험이 있었다고 답했다.
한편 이번 조사는 지난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이전에 대부분 실시된 것으로, 전쟁으로 인해 아랍권 지역의 식량 불안은 더 악화했다. 특히 이집트, 리비아, 튀니지 등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밀 수출에 상당히 의존하는 국가엔 타격이 컸다.
또한 수단, 모리타니, 모로코 등의 국가에선 식량이 떨어지면 더 살 수 없다고 답한 응답자들이 민주주의에 대해 비교적 낮은 지지 성향을 보였다.

한편 아랍권 전반적으로 경제 전망은 어두운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응답자 중 자국의 상황이 좋다고 밝힌 비율은 절반을 넘지 못했다.
그중에서도 현재 자국 경제 상황이 좋다고 답한 응답자 비율이 1%가 채 되지 못해 레바논은 최하위를 기록했다. 실제로 세계은행(WB)은 레바논의 경제위기를 19세기 중반 이후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경제위기로 칭하기도 했다.
조사 대상 국가 전반적으로 향후 몇 년 안엔 상황이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 또한 높지 않았다. 물론 낙관적인 기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어서 6개국에선 응답자의 3분의 1 이상이 앞으로 2~3년 내에는 상황이 더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현재 경제적 혼란 상황을 맞이했음에도 튀니지 국민들은 미래에 대해 가장 희망적인 태도를 보였다. 무려 61%가 몇 년 안에는 상황이 훨씬 혹은 다소 나아질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로빈슨 박사는 미래가 "불확실"하다고 설명했다.
아랍권 주민들은 권위주의적인 일당제의 중국식 모델 등 대안적인 정치 시스템을 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로빈슨 박사는 중국식 모델이 "지난 40년간 수많은 사람을 빈곤에서 벗어나게 했다"고 말했다.
로빈슨 박사는 "이러한 급속한 경제발전이야말로 바로 아랍권 국민들이 원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추가 보도: 어원 리볼트 BBC News 기자

조사 방법론
이번 조사는 '아랍 바로미터'가 실시한 프로젝트로, 중동과 북아프리카 9개국 및 팔레스타인 지역의 2만2765명을 직접 인터뷰했다.
'아랍 바로미터'는 미 프린스턴 대학이 이끄는 연구 네트워크로, 2006년부터 이러한 유형의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연구진이 따로 마련된 공간에서 주로 태블릿을 사용해 45분간 참가자를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번 조사는 아랍권 국가의 여론을 묻는 프로젝트로, 비록 팔레스타인 지역이 조사 대상에 들어갔으나 이란, 이스라엘, 터키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
아랍권 국가 대부분이 조사 대상에 포함됐으나, 몇몇 페르시아만 인근 국가는 완전하고 공정한 접근을 거부했다.
쿠웨이트와 알제리에서 실시한 조사의 결과는 너무 늦게 집계돼 BBC 아랍에서 다루지 못했으며, 시리아는 접근이 여의찮아 조사 대상에 포함되지 못했다.
일부 국가는 법률적, 문화적 이유로 질문 몇 가지를 제외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러한 요청은 결과 작성 시 반영됐으며, 어떤 제한 사항이 있었는지는 명시했다.
조사 방법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랍 바로미터 웹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