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뱅크: 과학자들이 멸종위기 종을 냉동시키는 이유

체스터 동물원 수의사들이 동물원의 마스코트였던 수다쟁이 앵무새 '로리'의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해 조직 샘플을 채취했다
사진 설명, 체스터 동물원 수의사들이 동물원의 마스코트였던 수다쟁이 앵무새 '로리'의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해 조직 샘플을 채취했다
    • 기자, 빅토리아 길
    • 기자, BBC 뉴스 과학 전문 기자

"세상을 떠났습니다."

체스터 동물원의 수의사 개비 드레이크가 28년된 선홍색 열대 앵무새의 흉곽에 청진기를 대고 말했다.

오랫동안 체스터 동물원을 지켜온 이 수다쟁이 앵무새는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이 멸종 위기 취약 종으로 분류한 종이다.

이 새를 떠나보내는 것은 슬픈 일. 하지만 이 새의 조그마한 발은 치료가 불가능할 정도로 심한 관절염이 확산된 터라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새의 세포에 담겨있는 독특한 유전적 특징까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채취된 세포 조각 몇 개가 다른 100여 종에서 채취한 샘플과 함께 영국 최대 생체자원은행(바이오뱅크)인 '네이처스 세이프'에 냉동 보관될 것이기 때문이다.

샘플은 영양분이 풍부하고 세포 친화적인 부동액 병, 그리고 세포 내 모든 자연 화학 작용이 멈추는 영하 196도에서 보관된다.

동물들의 조직 샘플은 영하 196도의 액체 질소 통에 보관된다

사진 출처, NAtures Safe

사진 설명, 동물들의 조직 샘플은 영하 196도의 액체 질소 통에 보관된다

이 샘플이 미래의 어느 시점, 수십 년 어쩌면 수 세기 안에 부활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진행되는 작업이다. 즉 생물이 멸종될 경우를 대비해 만든 대안인 셈이다.

삶은 다시 시작된다

환경 보호론자들은 인류가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생물 다양성을 잃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유엔(UN)은 이러한 생물 다양성 위기로 100만 종의 동식물이 멸종 위기에 처했다고 추산한다.

과학자들이 미래를 위해 무엇을 냉동시켜야 할지 고심하는 이유다.

네이처스 세이프의 설립자인 툴리스 맷슨은 "냉동이 멸종을 막지는 못하겠지만, 확실히 도움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툴리스 맷슨 네이처스 세이프의 설립자는 우리 주변에 있는 희귀 가축의 유전자를 보존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사진 출처, NAture's Safe

사진 설명, 툴리스 맷슨 네이처스 세이프의 설립자는 우리 주변에 있는 희귀 가축의 유전자를 보존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그는 또 현미경으로 치타의 피부세포가 담긴 시약병에 빛을 비추며, "여기에서 생명이 다시 시작된다"고 말했다.

빛을 비추자, 모니터에 피부 세포가 빽빽하게 들어찬 화면이 나왔다. 뾰족하게 생겼으면서 서로 연결된 세포 가운데에 있는 검은 점이 유전적 지시가 들어 있는 핵이라고 했다.

툴리스는 "이 동물은 2019년에 죽었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가 며칠 전에 세포를 깨웠습니다. 그리고 보시다시피, 이렇게 증식하고 있죠."

피부 세포는 특히 섬유아세포(우리 몸에서 결합 조직을 이루는 세포들)라고 불리는 결합 조직 형태라서 이러한 시도에 유리하다. 이 세포들은 치유와 치료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냉동고에서 꺼낸 세포들은 필요한 영양분이 담긴 접시에서 체온에 해당하는 온도로 데워진 후, 아름답게 분열하고 증식한다.

마지막 "야생마"를 복제한 '커트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고 동물원에서 방문객들과 만난다

사진 출처, Ben Novak/Revive and Restore

사진 설명, 마지막 "야생마"를 복제한 '커트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고 동물원에서 방문객들과 만난다

이 세포들의 잠재적 사용 용도 중 하나는 해동된 DNA 패키지를 활용해 동물을 복제하는 것이다.

사실 동물 복제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스코틀랜드의 과학자들은 이미 1996년에 양 '돌리'를 복제했다. 당시 암컷 양의 세포를 다른 양의 난자와 융합시켰다. 이 기술은 가축의 영역에서 시작돼 현재는 보존 분야로도 확대됐다.

미국 생명공학 회사인 '리바이브 앤 리스토어'도 수십 년 전에 죽은 검은발 족제비의 피부세포를 이용해 멸종위기에 처한 이 동물을 복제해냈다. 이 과정에서 1988년에 냉동된 난자를 사용해 섬유아세포를 융합시켜 배아를 만들었다. 이것이 2020년 12월 복제동물인 검은발 족제비 '엘리자베스 앤'이 됐다.

이 회사는 같은 기술로 몽고 말도 복제했다. 6만달러 정도를 들여 실제로 살아있는 마지막 "야생마"를 복제해 낸 것. 복제된 말은 샌디에고 동물원에서 커트라는 이름으로 방문객과 만나고 있다.

수십 년 전에 죽은 검은발 족제비의 피부 세포를 이용해 복제한 '엘리자베스 앤'은 2020년 12월 태어났다

사진 출처, Ben Novak/Revive and Restore

사진 설명, 수십 년 전에 죽은 검은발 족제비의 피부 세포를 이용해 복제한 '엘리자베스 앤'은 2020년 12월 태어났다

리바이브 앤 리스토어의 수석 과학자 벤 노박은 "동물원 입장에선, 더 큰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말을 복제하는 것이 유럽 동물원에서 말을 들여오는 것보다 더 저렴했다"고 말했다.

어떤 종을 얼려야 할까?

유전적 다양성은 중요하다. 한 종의 개체수가 줄어들면, 근친 교배로 이어질 수 있다. 포유류의 자손은 각각의 생물학적 부모로부터 유전적인 지시를 받는다. 그런데 만약 그 부모가 친척이라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어떤 유전적 질병도 유전될 가능성이 훨씬 더 높아진다.

하지만 노박은 은행에 보관된 세포 내 유전자를 부활시키는 게 가장 저렴한 방법은 아니라고 말했다.

"보호론자들은 종을 구하기 위해 싸우고 있지만, 우리는 모든 것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파괴는 계속되고 있죠."

그는 "생체자원은행에 멸종 위기의 동물 조직 샘플을 보관하는 것은 미래에 복구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했다. "만약 우리가 이것을 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후회할 것입니다."

체스터 동물원의 수의사 개비 드레이크가 암컷 재규어 '고시'의 유전자를 바이오뱅크에 보존하기 위해 조직 샘플을 채취하고 있다
사진 설명, 체스터 동물원의 수의사 개비 드레이크가 암컷 재규어 '고시'의 유전자를 바이오뱅크에 보존하기 위해 조직 샘플을 채취하고 있다

케임브리지 대학의 보존 생물학자인 빌 서덜랜드는 생체자원은행이 "훗날을 위해 동물을 냉동시킬 수 있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종을 구하는 것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저장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게 문제"라고 했다. "20개의 다른 장소에 있는 20개의 눈표범으로부터 조직을 얻는 것은 멋진 일이지만, 이는 정말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네이처스 세이프는 유럽의 동물원, 특히 체스터 동물원과 긴밀하게 협력 중이다. 동물을 안락사하거나 예기치 않게 죽여야 할 때마다 수의사들이 은행을 위해 조직을 채취한다.

툴리스는 "이게 한 줄기 빛"이라고 말했다. "죽어가는 동물이 그 종의 미래에 작은 희망을 줍니다. 그 유전자를 동결시킬 수 있기 때문이죠."

물론 이러한 방식이 종을 보존하는 완벽한 방법은 아니다. 하지만 네이처스 세이프는 진균 질환에 의해 거의 멸종 위기에 처한 양서류인 자이언트 디치 프로그와 야생 조류 거래로 인해 멸종 직전의 새인 자바 초록 까치의 조직을 확보했다.

체스터 동물원의 과학 책임자인 수 워커 박사는 가능한 한 많은 유전 물질을 보존해야 한다고 말했다. "만약 우리가 그 동물이 죽었을 때 동결 보존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것을 잃어버리게 되는 거죠."

자바 초록 까치는 불법 야생 조류 거래로 멸종 직전 상황에 처해 있다

사진 출처, Chester Zoo

사진 설명, 자바 초록 까치는 불법 야생 조류 거래로 멸종 직전 상황에 처해 있다

올해 초 체스터 동물원에선 9살의 암컷 재규어 '고시'가 울타리 안에서 죽은 채로 발견됐다. 수의사 개비 드레이크는 조심스럽게 재규어의 왼쪽 귀를 잘라내 네이처스 세이프에 보낸 후, 고시를 사후 검시에 보냈다.

개비는 "재규어는 가장 심각하게 멸종 위기에 처한 큰 고양이과 동믈은 아니지만, 숫자가 감소하고 있고 다른 큰 포식자들처럼 인간의 압력에 직면하고 있다"고 했다.

"고시는 꽤 어린 동물이었고 안타깝게도 한 번도 새끼를 낳은 적이 없었습니다. 슬프지만, 고시의 조직을 살아있는 채로 보존할 방법을 알게 돼 기쁩니다."

올해 초 채스터 동물원에서 죽은 채로 발견된 암컷 재규어 '고시'의 유전자는 네이처스 세이프의 바이오뱅크에 보존돼 있다

사진 출처, Chester Zoo

사진 설명, 올해 초 채스터 동물원에서 죽은 채로 발견된 암컷 재규어 '고시'의 유전자는 네이처스 세이프의 바이오뱅크에 보존돼 있다

현재 완두콩 몇 개 만한 크기의 고시의 귀는 깨끗하게 소독된 후 보존 용액에 담겨 액체 질소 통 안에 보관돼 있다.

툴리스는 미래 과학에 대해 낙관하고 있다. 그는 "유전자 편집 기술로, 새로운 유전적 다양성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체스터 동물원의 수 워커는 현재 홀로 남은 수컷 재규어를 보면서 "우리가 이 샘플로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기술을 갖추기까지는 수십 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그의 희망이자 대부분의 환경 보호론자들의 바람은 생물이 잘 보존돼 오래 전에 죽은 동물의 냉동 세포를 사용할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샘플을 모아놓지 않는다면 이 유전자는 영원히 사라지겠죠. 그렇게 되면 독특한 생물학적 다양성을 모두 잃게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