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적 낙관주의'가 '해로운 긍정성'보다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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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 앨리 볼페
- 기자, BBC Worklife
지난 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은 공포에서 불편함. 불편함에서 장기적인 삶의 변화로까지 이어졌다.
이에 따라 우리도 대응하고, 적응하고, 진화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그러나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고립에 적응한 것은 아니었다.
일부 사람들은 긍정을 문제 해결의 중심으로 생각하며 지내왔다.
천천히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으로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감사함을 느끼며 지내온 것이다.
물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감사함을 표현하는 것이 나쁘기는 어렵다.
하지만 지나친 낙관은 실패나 약점과 같은 부정적 감정을 가리는 독이 될 수 있다.
또 어두운 현실 속에 지나친 낙관주의자를 만나는 것만큼 무서운 일도 많이 없다.
실패를 인지하지 못하는 일은 우리의 정신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
갈등과 씨름할때 ‘얼마나 좋은 상황인지’를 계속해서 상기시키려는 노력은 슬픔, 걱정, 혹은 공포를 완화해주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연구는 오히려 부정적 감정을 억누를수록 상황이 악화할 수 있다고 말한다.
반대로 ‘비극적 낙관주의’는 조금 더 현실적이다.
비극적 낙관주의는 희망과 의미에 삶의 중심을 두면서도 상실, 아픔, 고통의 존재를 인정한다.
오스트리아 심리학자이자 홀로코스트 학살 생존자인 빅토르 프랑클(V.Frankl)이 1985년 처음 고안한 이 개념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모두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며 우리가 각각에서 성장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철학이 무거운 마음으로 현 팬데믹 시대를 앓고 있는 현세대에게 도움이 되거나 필요한 접근법이 될 수 있다고 제안한다.
혼돈 속에 의미를 찾는 법
작가 에밀리 에스파하니 스미스는 비극적 낙관주의가 고난과 위기를 극복하고 성장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그는 비극적 낙관주의가 “어려움과 고통 그리고 고난을 인지하면서도 희망을 유지할 능력을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철학의 초석은 도전과 좌절 속에서 의미와 목적을 찾는 것이다.
‘의미의 힘`의 저자 에스파하니 스미스는 “고통은 삶의 일부이며, 질문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많은 이들이 고난을 부정하거나 무시한다. 또 어떤 이들은 고난에 완전히 압도된다"고 말했다.
비극적으로 낙관한다는 것은 고난에 맞서 정신이 피폐해지는 것에 대한 행복한 대안으로, 어려움과 도전이 배움의 순간을 준다고 생각하는 관점이다.
가령 많은 이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강연을 해야 할 때, 그것을 위협으로 느끼기 보다 성장할 수 있는 도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팬데믹이 펼쳐놓은 현실 속에서 마냥 낙관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기에 오히려 상실, 고통, 처지에 대한 비관을 인정하는 것이 유익할 수 있다.
지난해 봄 영국에서 봉쇄가 시작됐을 때, 스완지 대학 심리학과 박사 과정 학생 제시카 메드는 주민들의 정신건강을 조사했다.
이들의 정신건강 수준은 팬데믹 이후 대체로 나빠졌지만, 비극적 낙관주의적 사고를 하는 주민들이 팬데믹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트라우마에 더 잘 대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주민들은 다음과 같은 문장에 대해 얼마나 강하게 동의하는지를 평가받았다.
“나는 인생이 내게 던지는 모든 것에 직면하고 적응하는 법을 배웠다.”
“내 인생에서 바꿀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 문장에 더 강하게 동의하는 이들이 비극적 낙관주의를 보이는 것으로 정의했다.
그리고 삶에는 필연적으로 어려움이 따른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비극적 낙관주의자들은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봉쇄 조처에 더 잘 적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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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드는 또 비극적 낙관주의자들이 친구, 가족 등과의 관계를 통해 의미를 찾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힘든 시기에 의미를 찾는 것이 비디오 게임 등을 하며 몇 시간 동안 잠시 평안을 찾는 임시 조치보다 깊은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메드는 “의미에 초점을 두고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이 시간이 조금 더 걸릴 수는 있지만, 훨씬 더 오래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스트레스를 성장동력으로
우리의 사고방식은 평소 팬데믹에 대처하는 방법뿐만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시간 동안 어떻게 벗어날 것인지에도 영향을 끼친다.
우리 중 일부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겪게 될 수도 있다. 이는 팬데믹 종식 이후 정신 건강 전문가들의 주요 관심사이기도 하다.
메드는 긍정적으로 살아야 한다거나 매사에 감사해야 한다는 해로운 낙관에 기대는 이들에게는 특히 위험이 크다고 말한다.
그러한 행위들이 비극을 통한 성장을 장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적당한 낙관은 좋지만, 극단적인 낙관은 후에 죄책감, 수치심, 그리고 자신의 실제 감정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반대로 트라우마는 오히려 우리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를 제공하고 ‘트라우마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이라고도 알려진 관점의 변화를 촉진할 수 있다.
그리고 비극적 낙관주의는 이 트라우마 후 성장을 돕는다.
팬데믹이 우리에게 가한 고통스러운 감정을 받아들이고 함께 살기로 선택함으로써, 그것을 개인의 발전을 위한 자양분으로 생각할 수 있다.
캐나다 온타리오에 있는 트렌트 대학의 심리학자 폴 웡은 현재 삶이 어렵기 때문에 이러한 변화를 위한 길로 들어서는 것이 불편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동시에 “외로워도 괜찮다. 기분이 안 좋아도, 걱정스러워도 괜찮다. 인간 사회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해로운 낙관 등을 통해 부정적인 감정이 우리를 압도하고 완전히 무시하도록 놔두는 것보다는 비극적 낙관을 선택해 일상 속의 외로움이나 걱정에 익숙해지려 노력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고독을 즐기는 법을 배울 수도 있다. 공동체를 더 소중히 여기게 될 수도 있다. 아니면 팬데믹이 끝났을 때 어떤 사람으로 거듭나고 싶은지 찾을 수도 있다.
그저 웃고, 참고 싶은 유혹이 있을 수 있지만, 조금 더 불편한 비극적 낙관주의의 길을 택한다면 터널 끝에 빛을 보고 기다리는 시간을 조금 더 편안히 숨 쉬며 견딜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