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 심리학: '무한 긍정'의 힘? 독 될 수도 있다

사진 출처, Getty Images
'부정적 감정은 숨겨야 한다'고 느낀 적이 있는가?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언제나 행복한 척을 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 같은 것 말이다.
납득이 잘 안 될 수 있지만, 긍정적 태도가 독이 될 수도 있다.
"인생에 모든 가치 있는 것들은 부정적 경험을 극복하는 데서 얻어진다."
베스트셀러 '신경 끄기의 기술(The Subtle Art of Not Giving a F***, 2018)'의 저자 마크 맨슨의 말이다.
맨슨은 "부정적 상황을 피하거나, 가라앉히거나, 또는 애써 무시하려는 시도들은 역효과를 낼 뿐"이라며 "고통을 회피하는 것도 고통의 일면이며, 고생을 회피하는 것도 결국 고생이다. 실패를 부인하는 것도 실패"라고 덧붙였다.
이는 이른바 '무한 긍정'이나 극단적 낙관론이 요구하는 태도들이기도 하다. 낙관론이 얼마나 덧 없든 부정적 감정은 무시하고 가짜 긍정적 태도로 무장하도록 강요하는 것 말이다.
불안 장애 및 최면 치료 전문 심리학자인 안토니오 로델러는 이처럼 통제되지 않은 감정들을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로델러는 "우리 감정의 팔레트는 슬픔, 절망, 분노, 불안 또는 질투 등 통제되지 않은 감정들을 포함한다"고 했다.
그는 "인간의 수많은 감정은 저마다의 쓰임새가 있고, 우리를 둘러싼 환경, 또 몸 안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준다"며 "이 감정들을 무시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사진 출처, Getty Images
영국에서 활동하는 심리학자 겸 치료사인 샐리 베이커도 이에 동의했다.
베이커는 "해로운 긍정주의는 우리가 힘든 상황을 마주했을 때 느낄 수 있는 넓은 감정의 스펙트럼을 부정하게 만든다"며 "긍정적 감정만 받아들이려고 하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베이커는 "힘든 상황과 마주할 때 일어나는 모든 부정적 감정을 부인하는 일은 당신을 지치게 할 것"이라면서 "이보다 더 나쁜 건 회복력, 즉 부정적 상황에 적응하는 힘을 기를 수 없게 된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이는 우리가 느끼는 실제 감정들로부터 우리를 고립시킨다"며 "우리는 자신이 불완전한 존재임을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긍정성 뒤에 숨는다"고 지적했다.
긍정 심리학 VS. 해로운 긍정주의
해로운 긍정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이를 긍정 심리학과 구분지을 수 있어야 한다. 두 개념은 비슷해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로델러는 "긍정 심리학은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에 의해 대중화된 개념"이라며 "우울증을 연구한 셀리그만이 다양한 문제나 상황 또는 질환을 다루는 다른 관점을 찾아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1990년대 당시 미국심리학회의(APA) 회장이던 셀리그만은 심리학의 초점을 과학적 관점에서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요소들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셀리그만은 유명 저서 '낙관적인 아이(Optimistic Children 1995)'에서 인간이 애초부터 비관적으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 삶의 경험을 통해 비관적인 성향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셀리그만에 따르면 우리는 비관론과 싸우며 부정적 사고를 긍정적 사고로 바꿀 수 있다.
그렇다면 슬픈 일이 있어도 행복에만 초점을 두면 되는 걸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이런 생각은 해로운 긍정의 덫으로 향하는 지름길이다.
부정적 감정을 해소하고 싶다면, 이를 무시해선 안 된다. 이 감정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먼저다.
핵심은 긍정주의가 극단으로 향하지 않도록 제어하는 것이다.

사진 출처, Getty Images
로델러는 "긍정 심리학 개념은 시간이 지나면서 왜곡된 측면이 있다"며 "인생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상황의 긍정적 면에 초점을 두는 건 긴장을 푸는 데 도움이 되고 건설적일 수는 있으나 이것이 극단으로 향할 경우 부정적 상황을 마주하는 능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게 문제"라고 설명했다.
로델러는 이어 "긍정 심리학을 제대로 적용해 행하면 굉장히 유용하지만, 분별 없이 적용하면 현실을 바라보는 시각이 좁아지고 무력감에 빠질 수 있다"며 "고통스럽고 힘든 상황을 부정하는 건 현실을 한쪽 눈으로 보는 것과 같다"고 덧붙였다.

'해로운 긍정주의' 자가진단법
1. 진짜 감정을 감춘다.
2. 무시 또는 묵살을 통해 하나 또는 그 이상의 감정을 떨쳐내려 한다.
3. 당신의 감정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다.
4. 당신의 기분을 나아지게 만드는 글 등을 보며 다른 사람의 경험을 깎아내린다.
5. 특정 상황에 대해 당신이 느끼는 감정을 인정하는 대신 "이 정도로 끝난 게 다행이다" 같은 말들로 상황을 왜곡하려 한다.
6. 상대가 좌절감 등 '긍정적이지 않은' 감정을 표현하면 상대를 비난하거나 부끄럽게 만든다.
7. "뭐 어쩌겠어" 하며 당신을 괴롭히는 문제를 무시한다.
(출처: 사마라 퀸테로, 제이미 롱)

'무한 긍정'이 우리에게 끼치는 영향
부정적 감정을 막거나 무시하는 태도는 건강에 해로운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로델러는 "우리가 억누르는 모든 감정이 쌓이면 신체화(심리적 고통이 신체적 증상들로 나타는 것), 즉 몸을 통해 감정이 드러나게 되는데 이는 주로 질병으로 나타난다"며 "우리가 부인하면 감정은 빠져나올 다른 길을 찾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베이커도 로델러의 말에 동의했다.
로델러는 "감정을 억누르는 건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며 정신적 고통을 해로운 긍정주의의 벽 뒤에 숨겨 버리면, 이는 각종 피부 질환부터 과민성 대장 증후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당신의 몸을 통해 다시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고 경고했다.
베이커는 "부정적 감정을 무시하면 우리 몸은 이 문제에 대한 경고음을 더 크게 울릴 것"이라며 "감정을 억압하는 일은 정신뿐 아니라 신체까지 탈진시키는 일이기 때문에 건강하지도,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고 덧붙였다.
로델러에 따르면 긍정적 감정에만 초점을 두는 태도의 두 번째 문제는 "인생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상황들에 대해 더 순진하고 철없는 태도를 취하게 한다는 것"이다.
로델러는 "이런 태도가 힘든 상황들 앞에서 우리를 더 나약하게 만든다"고 했다.

사진 출처, Getty Images
학습 심리 및 신경 심리 전문가 테레사 구티에레스는 "해로운 긍정주의가 우울증보다도 더 심각한 심리적, 정신적 영향을 끼친다"고 주장했다.
구티에레스는 "감정적 세계가 현실화되고 이는 정신 건강을 리는 가짜 인생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지나친 긍정은 누구에게도 긍정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좌절과 실패 없이는 인생에서 발전을 배울 수 없다"고 조언했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베이커는 해로운 긍정주의가 일종의 유행이라고 봤다. 그는 이 유행의 배경으로 소셜 미디어를 지목하며 "인터넷에서 보는 타인의 완벽한 인생과 자신의 인생을 비교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베이커는 "사람들은 소셜 미디어에서 가장 완벽한 모습만 보여주려 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는 진 빠지는 일이고 사실과도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가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에 대해 좀 더 솔직해진다면, 모든 종류의 감정을 느끼는데 있어서 더 자유로워질 것"이라며 "우리는 인간이기에 다양한 감정들을 모두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 늘 긍정적일 수는 없다"는 조언을 덧붙였다.
구티에레스는 해로운 긍정주의가 널리 퍼진 건 최근 몇 년 사이의 일이지만, 특히 코로나 팬데믹 시기 이 경향이 더 심해졌다고 주장했다.
구티에레스는 "이례적이고 낯선 시간을 보내며 많은 사람들이 불안, 불확실성, 좌절감, 공포를 느끼고 있다"면서 "모두 흔한 감정임에도 불구하고 해로운 긍정주의가 도를 넘어 위험 수준에 도달했다"고 경고했다.

사진 출처, Getty Images
로델러는 "사람들이 마치 타고난 권리인 듯 단기간에 기분을 전환할 방법, 행복으로 향하는 지름길을 찾는다"고 지적했다.
로델러는 "'다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좋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이 반드시 즐거워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차라리 힘든 시기를 겪을 때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게 더 현실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로델러는 감정을 파도에 비유하며 "처음엔 격정적이지만 점차 사그라들고 결국엔 거품이 되어 사라져 간다"고 했다.
그는 이어 "감정을 느끼려고 하지 않으면 다음 몰려올 파도에 대한 저항력을 잃게 된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무시' 대신 '인정'
BBC가 만난 심리학자들은 가장 이상적인 방법에 대해 '우리 기분을 상하게 하는 감정들을 억압하지 말고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사진 출처, Getty Images
이 과정의 핵심은 긍정적인 자세의 여부가 아니라 우리가 매 순간 느끼는 감정을 인정하는지 여부다. 우리가 기분이 좋지 않을 때마저도 말이다.
베이커는 "스스로에게 더 솔직하고 진실해지라"며 "슬프거나 우울하거나 불안하다고 말하길 두려워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나쁜 감정이 들 때 이를 인지하고, 이런 감정은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은 중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베이커는 그러면서 "감정들을 경험하고 그로부터 배우면 더 단단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다만 이 조언들은 임상적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에겐 해당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국 미시건 대학 심리학과 스테파니 프레스턴 교수는 감정들을 인정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저 귀 기울이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는 "누군가 당신과 부정적인 감정들을 나누고자 한다면 그 사람의 기분을 전환시키거나 '모든 것이 괜찮을 것'이라는 말로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끔 유도하는 대신 잠시 시간을 두고 그들의 불편한 감정 또는 두려움을 돌아보게 하고 그 감정들에 대해 들으려 노력하라"고 조언했다.
프레스턴 교수는 "감정적 소용돌이 속에 있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외로운 일"이라며 "이런 감정들을 다른 사람, 특히 친구나 가족이 묵살하려고 하는 것은 큰 상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런 상처를 받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에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조언했다.
잘 듣는 것은 상대 뿐 아니라 본인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프레스턴은 이타주의가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들이 있다고 말했다.

사진 출처, Getty Images
이 글을 읽는 당신이 현재 기분 저하를 느끼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로델러는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라며 "상황과 그에 따른 감정을 인지하고 뭔가 잘못된 것이 있을 때는 부인하거나 피하지 않는 동시에 부정적인 감정에 과도하게 몰입하지도 말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감정이란 우리가 읽고 이해해야 할 정보이며, 우리는 이를 통해 상황을 보는 관점을 기르고 가르침을 얻으며 미래를 위해 어떤 변화들을 만들 수 있는지 배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럼 이 모든 조언들을 실생활에서 활용하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해로운 긍정주의를 유용한 것으로 바꾸는 방법의 예시를 살펴보자.

- "그렇게 생각하지 마, 긍정적 사고를 가져." -> "들을 준비가 되어있으니 네가 느끼는 감정들에 대해 얘기해 줘."
- "걱정 마, 잘 될 거야." -> "스트레스 받고 있구나, 내가 도울 수 있는 게 있니?"
- "실패는 절대 안 돼." -> "실패는 성공의 일부야."
- "분위기가 왜 이래?" -> "네가 필요한 게 무엇이든 내가 도와줄게."
- "더 안 좋을 수도 있었어!" -> "이런 일을 겪게 돼서 정말 힘들겠다."
- (출처: 더 사이콜로지 그룹)

로델러는 "우리는 건설적인 심리에서 오는 자신의 행복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며 "'컵에 물이 반이 차 있다고 보는 것은 괜찮지만, 컵이 반이나 빈 상황도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런 상황에서도 인생에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베이커도 이에 동의하며 "모든 우리 감정들은 진짜이며 모두가 유효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