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감옥서 '실종된' 우크라인들

    • 기자, 올가 프로스피로바, 잔나 베즈피아추크
    • 기자, BBC 월드서비스

이 기사에는 고문 등 보기 다소 불편한 장면 묘사가 포함돼 있습니다.

미카이타 부지노프

사진 출처, Getty Images

사진 설명, 미카이타 부지노프의 가족들은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은 미카이타가 러시아 군인들에 의해 구금된 후 실종됐다고 말한다

볼로디미르 부지노프는 거의 2년 동안 실종된 미카이타 부즈노프(24)를 찾고 있다. 미카이타는 러시아 점령지에서 전쟁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러시아 내 구금 시설에 수감된 우크라이나 민간인 수천 명 중 하나다.

그러나 이들에 대해선 공식적인 기소도, 조사도, 제판도, 석방 날짜도 없으며, 소재 또한 불분명하다. 게다가 전쟁 포로와 달리 민간인이기에 석방을 보장할 공식적인 방법도 없다.

지난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당시, 부지노프 형제들과 어머니, 미카이타의 여자친구는 화를 피하고자 우크라이나 북부 체르니히우의 집을 떠나 피난길에 올랐다.

이들은 미하일로-코치빈스크 지역으로 몸을 피했으나, 3월 말이 되자 이곳에도 러시아 군인들이 들이닥쳤다.

러시아 군인들은 "우리는 너희들을 우크라이나 정부로부터 해방시켜주고자 왔다. 푸틴은 멋지다"고 소리쳤다.

볼로디미르에 따르면 러시아 군인들은 온 마을을 수색하고, 주민들의 휴대전화를 압수했다. 또한 부지노프 일가가 러시아 군대의 위치 정보를 누설했다고 추궁했다.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음에도 군인들은 이들을 위협하며. 마치 실제 처형당하는 듯한 공포를 느끼게 하는 ‘모의 처형’을 연출하기도 했다.

"러시아 군인들은 미카이타와 몇몇 사람들을 나무 뒤로 끌고 가더니 벽 뒤에 일렬로 서게 했습니다. 그러더니 ‘준비! 조준!’이라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미카이타의 여자친구인 카타리나도 끌고 가 미카이타 옆에 무릎 꿇게 했습니다. 카타리나의 머리에 총구를 들이밀며 미카이타에게 ‘자백하지 않으면 이 여자를 쏠 것’이라고 협박했습니다."

볼로디미르가 미카이타를 본 건 이때가 마지막이었다고 한다.

"아마 미카이타는 여자친구를 살리고자 (거짓으로) 자백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만약 모든 걸 자백한다면 최대 징역 15년 형을 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정부에 따르면 2023년 11월 기준 러시아에 포로로 잡혀 있는 우크라이나인은 4337명이다. 대부분은 군인이지만, 763명은 민간인이었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공식적인 명단은 없으며, 우크라이나 당국 또한 적십자사의 데이터에 의존하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적십자사가 호텔 지하, 버려진 건물 등이 임시 구금 장소로 쓰이고 있는 러시아 점령지는 물론 러시아에 억류된 우크라이나인들에 언제나 접근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우크라이나 의회의 ‘인권 위원회’ 소속 드미트로 루비네츠 의원은 실종된 민간인은 이보다 훨씬 더 많으며, 총 2만5000명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한다.

BBC는 러시아 국방부에 구금 중인 우크라이나 민간인 규모와 구금 장소를 공개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

러시아에선 법률상 법원의 명령이 없다면 최대 48시간밖에 구금할 수 없으며, 반드시 그와 관련된 기록을 보관해야 한다.

지난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내 점령 지역에서 중대한 범죄를 저지르거나 전시 규정을 위반한 경우엔 최장 30일까지 구금할 수 있다며 법을 바꿨다.

그러나 BBC가 검토한 법원 문서에 따르면, 구금 시간, 장소, 근거가 누락돼 있으며, 구금 이후 형사 또는 행정 소송이 이뤄지지 않았고, 조사조차 없던 경우도 많았다.

‘인권을 위한 미디어 이니셔티브(MIHR)’ 아나스타샤 판텔레예바는 러시아가 ‘특수 군사 작전에 대한 저항’이라는 광범위한 죄명을 내세우며 우크라이나 민간인 구금을 정당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판텔레예바는 “자기 집 창문에서 러시아 군에 중요한 지역이 내다보인다는 이유만으로도 체포될 수 있다. 그리고 러시아 군인이 총에 맞으면 그 주변에 살고 있던 사람들을 추궁한다”고 설명했다.

머리에 총이 겨눠진 포로의 모습을 표현한 일러스트
사진 설명, 러시아에 붙잡혔던 우크라이나인들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억류 중 ‘모의 처형’을 당했다고 털어놨다

러시아 국방부는 붙잡은 우크라이니인들을 “전쟁 포로 대우에 관한 제네바 협약의 요건에 따라 구금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제네바 협약은 군인 포로에 대해서만 언급할 뿐 민간인에 대해선 따로 언급되지 않았다. 다만 비 전투원의 경우 “억류국의 측의 법과 규칙에 따라야” 하며, 정당한 사법 절차가 보장돼야 한다고만 나와 있다.

‘에브리 휴먼 비잉’ 프로젝트를 통해 억류된 이들을 돕는 변호사 폴리나 무르기나는 “(붙잡힌 이들을) 시스템에서 구출하는 건 물론 이들의 소재를 알아내는 것조차 매우 어렵다”면서 “차라리 범죄자일 때가 더 나을 정도로 법에 모순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식으로 기소됐다면 시스템에 등록돼 권리를 지니며, 전쟁 포로의 경우 이후 교환될 수도 있다. 그러나 민간인으로서 체포되면 변호사, 기소, 재판 없이 구금되기 때문이다.

미카이타를 찾아서

미카이타의 행방을 알겠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그의 가족들과 친구들은 교도소 서신 서비스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교도소, 수사 격리 시설 등에 편지를 보낸 끝에 미카이타가 국경 너머 러시아 본토 벨고로드의 ‘SIZO-3’라는 미결 구금 시설에 수감돼 있다는 답장을 받았다.

그러나 정작 변호인이 방문했을 때, 구금 시설 측은 이런 이름을 지닌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변호사 레오니드 솔로비요프 또한 이러한 일이 흔하다고 말했다.

"제가 막상 구금 시설에 가서 이름을 말하면 그런 이름을 지닌 수감자는 없다고 하는 경우가 꽤 자주 일어납니다. 절 들여보내 주지 않으려고 그러는 것일 수도 있고, 정말로 그 사람이 다른 곳으로 이송된 것일 수도 있죠. 직접 갔다고 해서 교도소 감방을 하나하나 돌아다니며 확인해볼 수 있길 바랄 수 없습니다. 그저 문 앞에서 대답을 기다려야만 하죠. 가장 좋은 건 교도소장의 사무실에서 직접 이야기를 듣는 경우입니다."

BBC 또한 미카이타의 행방을 추적하고자 노력했다. BBC는 SIZO-3뿐만 아니라 마찬가지로 벨고로드 소재 ‘제4 교도소’ 및 인권 운동가들이 우크라이나 수감자들이 억류된 곳으로 추정하는 여러 기관에 서신을 보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관에서 그러한 이름의 수감자는 없다는 답을 보내왔다. 그러나 SIZO-3은 “검열을 통과해 수취인에게 전달됐다”고 답해 마치 미카이타가 그곳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줬다. 그러나 하루 뒤 제4 교도소에서도 같은 답변이 왔다.

미카이타를 찾기 위해 번번이 좌절하는 긴 여정이 계속된 가운데 BBC는 러시아 측에 억류된 적 있던 이들과 접촉할 수 있었다. 이들이 들려준 이야기는 참혹했다. 심지어 어떤 이는 러시아 교도소 내 우크라이나인들은 "마치 인간 이하의 존재의" 취급을 받는다고 했다.

안톤 로마킨
사진 설명, 안톤 로마킨은 러시아에 잡혀 있는 동안 구타 및 ‘모의 처형’을 당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에서 경찰관이었던 안톤 로마킨은 러시아 침공이 시작됐을 당시 도망칠 수 없어 그저 숨어 지냈다. 그러다 2022년 여름 실종됐다. 로마킨의 가족들은 그의 행방을 알 수 없었다.

로마킨의 경우 정보를 수집해 우크라이나군에 넘겼다는 혐의였다. 그는 물품을 가져다주던 동료가 자신을 배신하는 바람에 러시아군에 체포됐으며, 이후 헤르손 내 임시 구금 시설로 끌려갔다고 한다.

"그들은 제 다리 등 신체 부위에 전기충격기를 사용했습니다. 또한 모의 처형을 연출하며 위협하는 한편 땅에 파놓은 구멍에 들어가 무릎 꿇게 한 뒤 기도하라 했습니다."

"총을 장전하더니 제 왼쪽 귀 바로 옆에서 쐈습니다. 3~4발의 짧은 총성이 울렸습니다. 그러다 휴대전화가 울렸는데, 스피커폰을 통해 누군가가 그들에게 절 쏘지 말라고 했습니다."

또한 구금 시설에 도착했을 때 심문도 당하고, 구타도 당하고, 협박도 당했으며, 심지어 찬물을 끼얹어 거의 질식사할뻔하기도 했다고 한다. 로마킨의 이러한 증언은 러시아가 헤르손을 점령했을 당시 이 시설에 수감됐던 다른 이들의 이야기와도 일치했다.

"한번은 저보고 뒤꿈치를 올려보라고 하더군요. 거절했더니 제 성기에 총을 겨누고 선택지를 준다 했습니다. 그래서 발을 들을 수밖에 없었죠."

로마킨은 "경찰봉 2개를 들고 오더니 내 발뒤꿈치를 정말 오랫동안 때렸다. 내릴 때마다 다시 들어 올려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머리나 등을 구타했다"고 회상했다.

BBC는 러시아 국방부에 로마킨 사건에 대해 문의했으며, 현재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러시아 당국은 민간인 포로 억류를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이전에도 이미 민간인에 대한 강압 행위 및 범죄 혐의는 없다고 부인한 바 있다.

로마킨은 자신까지 포함해 총 8명이 같은 감방을 썼다고 말했다. 그중 1명은 우크라이나 전직 경찰관이었으며, 다른 한 명은 러시아 군대가 주둔한 헤르손 중심부 근처 건물에 살다 끌려왔다고 했다.

이 둘 모두 우크라이나 측의 정보요원이라는 혐의를 받고 있었다. 또 다른 감방 동료들은 왜 자신이 끌려왔는지 이유조차 짐작하지 못했다.

로마킨은 이후 2번이나 이송됐으며, 가족들은 러시아 국적이 있는 어떤 친구의 도움으로 겨우 그의 소재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렇게 104일 만에 로마킨은 무일푼으로, 그 어떠한 서류도 없이 풀려났다.

교도소 감방

사진 출처, Suspilne/Taras Ibragimov/BBC

사진 설명, 안톤 로마킨은 이 사진이 자신이 억류됐던 감방의 상태를 보여준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경찰과 검찰청은 민간인 억류를 전쟁범죄로 간주하는 한편, 실종자나 납치된 이들을 찾고 있다.

검찰청의 이리나 디덴코는 “억류된 이들의 90%가 고문 받았다”고 주장했다.

한편 국제법엔 억류된 민간인을 풀어줄 특별한 매커니즘을 명시하지 않고 있다. 제네바 협약에도 전투원은 오직 군인은 군인과 교환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을 뿐이다. 즉 민간인을 풀어줄 수 있지만, 군인인 자와 교환해서 풀어줄 순 없는 것이다.

디덴코는 “현재로선 민간인 인질들을 석방하고 귀국시킬 최고의 방법은 제3국을 통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이번 전쟁에선 전쟁 포로 교환, 아동 및 민간인의 송환, 외국인 석방 등에 중동 국가들이 중재자로 나서고 있다.

인권운동가들은 UN 문서는 이러한 종류의 “억류자”들을 다루지 않다면서 UN의 매커니즘이 너무 구식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미카이타를 다시 한번만 더 만날 수 있길 바라는 볼로디미르와 같은 이들에게 희망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볼로디미르는 “우리가 문의하지 않은 곳이 없다”고 말했다.

“처음엔 국제기구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환상을 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로부터 얻은 답변은 ‘사건 접수했습니다. 등록했습니다’라는 말뿐이었습니다. 이 이후 달라진 게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