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고르노-카라바흐: '인종 청소' 우려에 아르메니아계 대탈출…갈등 이유는?

폭격 당한 자동차들

사진 출처, EPA

사진 설명,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아르메니아계 주민들은 최근 전투에서 대규모 포격을 당했다고 보고했다

9월 20일 분리독립을 요구하던 아르메니아계 자치 세력이 아제르바이잔에 항복한 이후 주민들이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에서 대규모 탈출을 감행했다.

카라바흐 현지 군대는 아제르바이잔의 군사 공세에 맞서 하루 동안 격렬한 전투를 벌인 뒤 무장 해제 및 해산에 동의했다.

이 지역은 국제적으로 아제르바이잔의 영토로 인정받고 있지만, 대부분의 지역은 지난 30년 동안 아르메니아 민족이 사실상 지배해 왔다.

이곳은 세계에서 분쟁이 가장 오래 지속되는 지역 중 하나다.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위치는?

나고르노-카라바흐는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 산악지대 남캅카스 지역에 위치한다.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는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에 나고르노-카라바흐에서 유혈 분쟁을 벌였고, 이 분쟁들이 이후 더 많은 폭력 사태로 이어졌다.

분쟁이 마지막으로 크게 확대된 것은 2020년이다. 당시 6주간의 치열한 전투로 수천 명이 사망한 것으로 보고됐다.

러시아 평화유지군이 배치되면서 전투가 중단됐지만, 이번 군사 작전을 앞두고 몇 달 동안 긴장이 고조됐다.

최근 전투의 원인은?

2022년 12월 아제르바이잔이 해당 지역으로 진입하는 주요 통로를 사실상 봉쇄하면서 새로운 폭력 사태에 대한 공포가 부상했다.

‘라친 회랑’은 나고르노-카라바흐에 거주하는 아르메니아인 약 12만 명과 아르메니아 공화국 본토를 연결하는 유일한 도로다.

이 도로는 물자 공급의 핵심 동맥이다. 나고르노-카라바흐 주민들은 최근 몇 달 동안 기본적인 식품·의약품이 심각하게 부족한 상황이라고 보고했다.

아제르바이잔은 아르메니아가 이 도로를 사용해 군수품을 반입했다고 비난했지만, 아르메니아는 이를 부인했다. 또한 아제르바이잔은 다른 도로를 통해 식량과 원조를 여러 번 제공했지만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아르메니아계 주민들이 이를 거부했다고 말했다.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지도

2020년부터 해당 지역에 배치된 러시아 평화유지군은 라친 회랑과 ‘아그담 도로’(아제르바이잔에서 시작되는 또 다른 경로)를 통한 접근성 유지에서 큰 몫을 맡아 왔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러시아의 관심과 군사 자원이 다른 곳으로 쏠리고 있다. 아르메니아 총리는 러시아가 "자발적으로 이 지역을 떠났다"고 비난했다.

전쟁의 원인은?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은 1920년대에 소련의 일부가 됐다.

나고르노-카라바흐는 아르메니아계 주민이 다수인 지역이었지만 아제르바이잔이 지배권을 갖고 있었다.

1980년대 후반 소련이 붕괴되기 시작하자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 의회는 아르메니아의 일부가 되기로 투표했다.

아제르바이잔은 분리독립 운동을 진압하려 했고, 아르메니아는 이를 지원했다.

이렇게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이 러시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후 민족 간 충돌이 발생했고 전면전으로 이어졌다.

오랜 기간 유혈 사태와 고통이 계속됐다.

BBC 아제르바이잔어 서비스 에디터 코눌 칼릴로바는 아제르바이잔 민족 수십만 명이 아르메니아에서 쫓겨나 아제르바이잔에서 난민이 된 과정을 기억한다.

1992년 2월,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에 위치한 아제르바이잔 마을 호잘리 주민들은 러시아의 지원을 받은 아르메니아군에 의해 살해당했다. 아제르바이잔에 따르면 사망자는 600명 이상에 달한다. 아르메니아는 해당 주장과 사망자 수에 동의하지 않는다.

오랜 세월 양측이 저지른 인종 청소와 학살이 보고됐다. 수만 명이 사망하고 백만 명 이상이 난민이 됐다.

경계 태세에 있는 군인

사진 출처, AFP

사진 설명, 아르메니아군은 1990년대 나고르노-카라바흐에서 아제르바이잔군을 몰아냈다

칼릴로바는 때때로 양국 젊은이들이 잔학 행위의 역사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어 놀라곤 한다고 말한다.

아무도 아르메니아인들에게 살해당한 아제르바이잔인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아제르바이잔 젊은이들도 1980년대 말 아제르바이잔 도시 숨가이트 및 바쿠 등지에서 벌어진 아르메니아인 학살에 대해 모른다는 것이 칼릴로바의 설명이다.

아제르바이잔은 집단 학살에 대한 상대측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첫 번째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에서는 아르메니아군이 나고르노-카라바흐와 인근 지역을 장악했고 1994년 러시아가 휴전을 중재했다.

당시 합의에 따라 나고르노-카라바흐는 아제르바이잔 영토로 남았지만, 그 이후에도 아르메니아계 주민이 대부분 지역을 사실상 지배하고 아르메니아 정부의 지원을 받아 ‘자칭’ 분리주의 공화국이 됐다.

2020년 상황은?

그 이후로 상황은 항상 불안정했다. 비교적 평온한 시기가 찾아와도 분쟁이 이를 계속 방해했다.

1990년대 초반 이후 가장 큰 군사적 대립은 3년 전 6주에 걸쳐 벌어진 전투였다.

이때 아제르바이잔이 영토를 되찾았다. 특히 2020년 11월 양측이 러시아가 중재한 평화협정에 서명하기로 합의하면서 1994년 이후 아르메니아가 점령했던 나고르노-카라바흐 주변의 모든 영토를 탈환했다.

이 합의에 따라 아르메니아 군대는 해당 지역에서 철수하고 일부 지역에만 주둔하게 됐다.

사망한 군인을 추모하는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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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으로 수천 명이 사망했다

러시아와 튀르키예의 입장은?

인근 주요국들은 수년 동안 이 분쟁에 깊이 관여해 왔다.

튀르키예는 아제르바이잔과 문화적·역사적으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 튀르키예에서 만든 바이락타르 드론은 2020년 전투에서 아제르바이잔의 영토 수복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알려졌다.

한편, 아르메니아는 전통적으로 러시아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다. 아르메니아에는 러시아 군사기지가 있으며, 두 나라 모두 구소련 6개국으로 구성된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군사동맹 회원국이다.

그러나 2018년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주도한 니콜 파시니안이 아르메니아 총리가 되자 아르메니아와 러시아의 관계가 악화됐다.

최근 니콜 파시니안 총리는 아르메니아가 안보 지원을 러시아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전략적 오류"라고 말했다. 아르메니아는 이달 초 미군과 합동훈련을 진행했다.

나고르노-카라바흐 전투 이후 파시니안 총리는 러시아 평화유지군의 역할 수행을 비판하고 CSTO 회원국 지위가 아르메니아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 공개적으로 의문을 제기했다.

러시아는 총리의 해당 발언이 "거부 반응만 일으킬 뿐이며, 러시아를 향한 용납할 수 없는 감정 분출"이라고 일축했다.

러시아 외무부는 "아르메니아 지도부가 수 세기에 걸쳐 쌓아온 아르메니아와 러시아의 다면적 관계를 의도적으로 파괴하고 서방의 지정학적 게임에 아르메니아를 인질로 만들면서 큰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고 말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달 초 아르메니아가 나고르노-카라바흐에 대한 아제르바이잔의 주권을 "본질적으로 인정"했다고 선언했다.

푸틴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경제 포럼에서 "아르메니아가 카라바흐를 아제르바이잔 영토라고 인정하는데, 우리가 뭘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말했다.

주민 대탈출의 이유

아제르바이잔과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아르메니아계 사람들은 9월 20일 러시아의 중재로 휴전을 선언했고 그 결과 24시간에 걸친 전투가 끝났다.

해당 합의에 따르면, 현지 아르메니아 군대는 무장을 완전히 해제하고 해산해야 한다.

이후 아제르바이잔과 카라바흐 당국은 해당 영토를 아제르바이잔에 통합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를 시작했다.

그러나 해당 지역에 거주하던 12만 명에 달하는 아르메니아인 대부분은 나고르노-카라바흐에서 본인들의 미래가 없을 것이라고 두려워하고 있다. 아르메니아 총리는 이 지역에서 인종 청소가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아르메니아 민족 지도자들은 많은 사람들이 음식이나 거처도 없이 지하실, 학교 건물, 야외에서 잠을 청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천 명이 라친 회랑을 통해 아르메니아에 도착했다. 현재 이 회랑은 카라바흐 지역을 떠나려는 수백 대의 버스와 자동차로 가득 차 있다. 얼마나 많은 아르메니아계 주민이 나고르노-카라바흐에 머물 계획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아제르바이잔은 이 지역 주민들을 "동등한 시민"으로 통합할 것이라며 인종 청소 의혹을 일축했다.

일함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은 과거 카라바흐 주민들이 "아제르바이잔의 다른 시민들과 동등한 권리를 누릴 것"이라고 반복해서 말한 바 있다. 2020년 BBC 인터뷰에서는 카라바흐 주민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자치권"을 약속하기도 했다.

또한, 수십 년에 걸친 분쟁으로 이 지역에서 쫓겨났던 아제르바이잔 사람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선택권을 가져야 한다고도 말했다.

양국은 아직 평화협정에 서명한 적이 없다. 수년간의 협상에도 불구하고 외교 관계는 공식화되지 않은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