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떠다니는 섬' 리시리...일본서 가장 외딴 스키 관광지

사진 출처, Francesco Bassetti
일본 북부 홋카이도 서북부 해상에 떠 있는 리시리섬은 겨우내 부는 거친 바람과 가루처럼 내리는 눈 덕에 스키를 꿈꾸는 사람들에겐 천국과 같은 곳이다.
저녁 식사 후 게스트하우스의 주인 토시야 와타나베는 "리시리섬엔 거의 항상 바람이 분다"고 설명했다. 게스트하우스 현관에는 각종 스키와 서핑보드, 낚시 장비 등이 정갈하게 쌓여 있었다.
여전히 입술 끝에 맴도는 현지 해산물 국물 요리와 사케 맛을 곱씹으며 거실의 커다란 창문 밖을 내다봤다. 여전히 눈이 날리고 있는 리시리산의 실루엣이 달빛에 어렴풋이 보였다.
일본 열도를 이루는 4개 주요 섬 중 가장 북단인 홋카이도에서도 가장 북서쪽에 있는 리시리섬의 토박이인 와타나베는 아내 마키와 함께 이 게스트하우스 '레라 모시르'를 운영한다. 리시리섬에 원래 살던 민족인 아이누족의 언어로 "바람의 영토"라는 뜻이다.
리시리섬 중앙에는 휴화산인 리시리산이 웅장하게 우뚝 솟아 있다. 와타나베는 지도, 사진, 스크랩해둔 잡지 등을 꺼내더니 두꺼운 손가락으로 스키를 탈 수 있는 여러 구간을 가리켰다. 지난 20여 년간 와타나베가 직접 섬 구석구석을 탐험하며 실제로 스키를 탔던 곳이라고 한다.
"리시리산의 진짜 아름다움은 후지산처럼 완벽한 원뿔형이 아니라는 데 있다"는 와타나베는 "바람이 그냥 주위를 단순히 감쌀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설명했다.
"정말 많은 산이 하나로 싸여 있고, 지리를 잘 안다면 항상 쉼터를 찾을 수 있는 곳이 바로 리시리산입니다. 그리고 물론 이곳에 내리는 (스키 타는데 좋은) 가루눈도 세계 최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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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곳까지 오는 길은 쉽지 않았다. 올해 3월 초 이곳에 왔을 땐 일본 최북단 도시 왓카나이시에서 20km 정도 배를 타고 들어와야만 했다. 그런데 그것도 폭풍우 때문에 24시간 지연됐다.
폭풍우가 마침내 그치고 몇몇 열성적인 승객들과 함께 이 바다를 건널 수 있게 됐을 때도 우리가 탄 배는 2시간이나 잔물결로 인해 출렁거렸다. 500명은 거뜬히 태울 수 있던 배는 섬뜩할 정도로 텅 빈 상태로 우리를 실어 날랐다.
마침내 배가 리시리섬의 들쭉날쭉한 실루엣 너머에 정박하기 전 나는 용기를 내 손에 쌍안경을 들고 얼음이 낀 갑판으로 나갔다. 쌍안경 너머로 리시리섬과 홀로 우뚝 서 있는 리시리산을 처음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아이누어로 '리시리'는 "높은 섬"을 뜻하며, 현지인들은 '우키시마' 즉 "떠다니는 섬"이라고도 부른다. 그리고 리시리섬을 직접 바라보며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표고 1721m의 리시리섬은 언뜻 보기에 산 하나가 바다 한가운데에 둥둥 떠 있는 듯한 느낌을 풍기기 때문이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니 원뿔 모양의 리시리섬은 가파른 능선과 눈부시게 흰 눈으로 덮인 협곡으로 이뤄져 있었다. 리시리섬 해안가에 부딪히는 검푸른 바다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색이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갑판으로 나오자 아야미 사가는 "아이누어로 된 이름을 이해한다면 그 장소와 그 장소에 대한 아이누족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가는 이번 리시리섬 여행 계획을 도와준 왓카나이시 주민이다.
"왓카나이시도 "차가운 물의 강"을 뜻하는 아이누어 '얌-와카-나이'에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우리가 탄 배가 조용한 리시리섬의 항구에 천천히 다가가자 다가올 봄과 함께 찾아올 잔잔한 바다의 시기를 기다리는 어선 수십 척이 부두에 묶여있는 모습이 보였다.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한, 짙은 회색의 콘크리트로 된 호텔 건물 2채는 높게 쌓인 눈으로 인해 덧문을 내려둔 상태였다.
눈앞의 풍경만 보면 이곳이 여름철 인기 관광지라는 걸 쉽게 믿기 힘들었다. 그러나 매 여름 귀한 우니(성게) 및 전 세계에서 별미로 손꼽히는 콤부(다시마)를 찾으러 12만 명 이상이 리시리섬으로 몰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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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이상 리시리섬의 경제는 어업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와타나베 가족 또한 1940년대 당시 번창하던 다시마 사업을 따라 할아버지가 일본 본토에서 리시리섬으로 이사 오면서 이곳에 자리 잡았다.
당시 리시리섬의 인구는 절정에 달해 주민 수가 2만 명에 가까웠다. 이들 주민 대부분이 이 주변에서 쉽게 잡히던 청어 낚시로 생계를 이어 나갔다.
그러나 오늘날 줄어든 어류 자원과 노령화된 인구, 겨울철에 취약한 경제 구조 등이 겹치며 많은 청년들이 삿포로(홋카이도청 소재지)나 도쿄와 같은 대도시로 떠나야만 했다. 이에 대부분 섬 주민은 노인들로, 그 수도 5000명을 조금 넘을 뿐이다.
와타나베도 어렸을 때 홋카이도로 건너가 산악 가이드로 일했다. 그러다 2003년 가족의 호텔 사업을 돕기 위해 다시 리시리섬으로 들어왔다.
와타나베는 "그땐 여름철 3개월간은 예약이 꽉 차 있다가도 그 외 기간엔 할 일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실제로 겨울이 찾아온 리시리섬은 마치 겨울잠을 자는 어촌처럼 느껴진다. 이곳은 홋카이도 니세코나 도쿄에서 차로 4시간 거리인 하쿠바 등 사람들로 붐비는 일본의 유명 스키 관광지와는 거리가 먼 모습이다.
이곳엔 대형 호텔도, 스키 리프트도 산을 오르기 위해 줄을 선 밝은 옷차림의 관광객들도 없다.
리시리섬에서 스키를 타고 싶은 사람이라면 먼저 스키판 바닥에 등반용 스킨을 붙인 뒤 인내하며 자력으로 산을 올라야 한다.

사진 출처, Francesco Bassetti
눈 외에 별다른 것이 없는 겨울철에 섬을 찾은 관광객들을 걱정스러운 듯 쳐다보는 리시리섬 주민들도 많지만, 와타나베와 관광객들에겐 리시리섬만의 깨끗한 자연과 정제되지 않은 모험길은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다.
리시리섬엔 리프트 등 스키 관련 시설물이 거의 없지만, 손대지 않은 하얀 도화지 같은 산에서 자신만의 스키 트랙을 칠해나갈 수 있는 자유로움이 바로 이 섬이 특별한 이유다.
와타나베는 이 섬에서 일 년 내내 머무는 유일한 가이드로, 2004년부터 여름과 겨울을 가리지 않고 투어를 이끌고 있다.
그런데 리시리에서 처음으로 스키 가이드 일도 하게 된 첫해만 해도 겨울철에 찾아오는 손님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다음 해에도 사정은 비슷했다.
그러다 이 섬에서 끝도 없이 펼쳐진 가루눈, 폭풍우가 치는 바다에 둘러싸인 산, 얼음장 같은 바람 등 마법과 같은 경험을 하고 돌아간 이들이 소문을 내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편리한 스키장, 쉬운 모험, 자연의 상품화 등에 지쳐 색다른 것을 찾는 이들이 늘어난 것이다.
그 결과 코로나19 팬데믹 직전인 2019년 기준 와타나베가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는 겨울철에도 25개 실이 전부 예약될 정도였다.
2020년 와타나베와 결혼하며 리시리섬으로 건너온 아내 마키는 "이젠 가이드도 2명 더 고용해서 전문 스키어 등 고객들을 산으로 데려가는 일과 게스트하우스 관리 일도 도움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감상하며 리시리 산등성이를 따라 내려가는 게 얼마나 멋진지 이야기를 들으니 나 또한 리시리섬에서 스키를 타고 싶어졌다. 내 평생의 스키 목표 중 하나인 '바다까지 스키 타고 가기'를 이룰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그렇게 스키를 타러 온 첫날 게스트하우스 아래층으로 내려가니 와타나베가 "오늘은 바람이 서쪽에서 부니 동쪽 산등성이에서 스키를 탈 것"이라고 알려줬다.
해가 막 떠오르던 시간이라 햇빛이 점점 강렬해지고 있었다. 거실 창문 밖을 바라보니 밤새 새로 내린 눈이 쌓여있었고, 청명한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하얀 리시리산이 우뚝 솟아 있었다.
숨 막히는 광경이었다.

사진 출처, Oscar Boyd
생선구이와 집에서 만든 피클, 전통 밥그릇에 담긴 밥으로 아침 식사를 마친 우리는 재빨리 게스트하우스를 나와 해안가를 따라 15분 정도 차를 타고 이동했다.
그리고 우리는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내 시선은 와타나베의 뒷모습에 고정됐다. 와타나베의 부츠는 느리고 규칙적인 리듬에 맞춰 올라갔다가 내려오길 반복했다.
그렇게 우리는 새로 내린 눈 속 깊이 자국을 남기며 능선을 따라 올라갔다.
몇 시간 동안 열심히 산을 오른 뒤 잠시 나는 생각에 잠겨 숨을 골랐다. 차갑고 매서운 공기가 폐를 채웠다.
고개를 들어 뒤를 돌아보니 생전 처음 보는 경치가 눈에 들어왔다. 산과 계곡 대신 밝은 햇살에 반짝이는, 가장 푸른빛으로 빛나는 바다가 눈앞 가득 펼쳐져 있었다.
동쪽으로는 홋카이도의 하얀 해안이 또렷이 눈에 보였으며, 북쪽으로는 100km 이상 떨어진 러시아 모네론섬과 사할린섬이 보였다.
와타나베는 모네론과 사할린을 가리키며 "올겨울 나도 저 섬들은 처음 본다"고 했다. 와타나베의 얼굴을 보며 그도 화창한 날 어디까지 보이는지 새삼 감명받고 있음을 느꼈다.
몇 시간 후 우리는 이따금 머리 위로 구름을 실어 나르기 바빴던 바람을 막아줬던 산등성이 꼭대기 지점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나는 간절하게 정상을 바라봤다. 600m 정도는 더 올라가야 만날 수 있는 정상 지점이지만, 감질나게 가깝게 느껴졌다.
와타나베는 "올겨울 정상엔 아무도 오르지 못했다"고 했다. 이날도 강풍으로 정상 출입은 통제됐다.

사진 출처, Oscar Boyd
초콜릿을 한입 베어 문 뒤 따뜻한 차 한 모금을 마신 우리는 스키판 바닥에 붙인 등반용 스킨을 제거했다.
드디어 하강 시점이 눈앞에 다가오자 짜릿짜릿한 흥분감이 느껴졌다.
와타나베가 선두로 내려가며 고운 가루눈으로 된 구름을 흩날렸다. 와타나베의 스키는 흐를 때마다 산의 깨끗한 도화지에 정확한 붓놀림으로 남았다.
와타나베가 바로 내 눈앞에서 멈춰 섰고, 나는 내가 만든 스키 선 끝으로 이어질 듯한, 바로 아래에 반짝이는 푸른 바다를 탐하듯 쳐다보았다.
진실로 그곳으로 가고 싶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