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잭슨하이츠, 160여 개 문화를 만날 수 있는 곳

사진 출처, Richard Levine/Alamy
- 기자, 서배스천 모닥
- 기자, BBC 트래블
뉴욕을 방문하는 여행자들은 보통 '센트럴파크'나 '타임스퀘어'를 찾는다. 하지만 뉴욕의 기원을 이해하고 이 도시의 DNA를 느끼기에 최적인 장소는 따로 있다.
내가 뉴욕시로 이사 온 지 몇 달쯤 지났을 때였다. 퀸스(뉴욕시의 자치구 중 하나)에 사는 한 여성과 대화를 나누게 됐고, 그녀는 내게 "어디 출신이냐?"고 물었다. 나는 "좀 복잡한 설명"이라며 나의 다양한 가계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려 했다.
"저희 부모님은 콜롬비아계와 인도계입니다."
그러자 그녀는 내 말을 자르고, "그럼 잭슨하이츠에 사는 것이냐?"고 물었다.
나는 잭슨하이츠에 살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가 그렇게 생각한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퀸스 북서쪽에 있는 잭슨하이츠는 지구상에서 가장 다양성이 넘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퀸스에는 '리틀 콜롬비아'라는 지역이 '리틀 인디아'라는 지역과 맞닿아 있다. 내 말을 듣던 그녀가 내가 잭슨하이츠에 산다고 추측할 만했던 것이다.
하지만 잭슨하이츠 인구 구성과 문화의 다양함은 이뿐만이 아니다. 정확한 숫자를 파악할 수는 없지만, 약 18만 명의 주민이 거주하는 잭슨하이츠에선 160가지 이상의 언어가 쓰인다고 알려져 있다.

사진 출처, Sebastian Modak
퀸스를 등뼈처럼 가로지르는 잭슨하이츠의 남쪽 가장자리에는 '루스벨트 애비뉴'가 있다. 이곳에선 '트레인 7(지하철 이름)'이 머리 위를 요란하게 덜컹거리며 지나간다. 푹신한 알모하바나(콜롬비아식 치즈 빵)와 바삭바삭한 엠빠나다(아르헨티나의 전통 만두)를 파는 중남미 빵집들은 아이폰 케이스 사이에 조그마한 사당까지 전시해 놓은 티베트인들의 휴대전화 수리점들과 어우러져 있다.
최근에 갔을 때는 한 여성이 수증기 기둥을 뿜어내는 조리기를 두고 타말레(멕시코와 페루의 전통 음식)를 팔면서 주변의 끊이지 않는 소음에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근처에선 한 남자가 가짜 전자제품을 팔다가, 경찰이 나타나자 순식간에 노점을 접고 자리를 떠났다.
사실 처음에는 매우 많은 언어와 상인들에 덜컥 겁을 먹기도 했다. 하지만 이곳의 열광적 리듬에 한 번 갇히자, 최면에 걸린 듯했다.
뉴욕 시내와 마찬가지로, 루스벨트 애비뉴에서도 활발한 문화 교류와 상거래가 이곳을 찾아온 사람들을 매혹시킨다. 지저분하기도 하고 항상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지만, 이곳을 조금 파악하고 나면 마술 같은 일이 벌어진다. 사실 이곳은 뉴욕시의 전형이라 할 만하다. 떠들썩한 자본주의적 풍경이 자신과 아이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세계 곳곳에서 미국으로 온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보통 뉴욕을 방문한 여행객들은 센트럴파크나 자유의 여신상을 보러 간다. 하지만 뉴욕의 출발과 미래를 이해하고 도시의 DNA를 느끼려면, 잭슨하이츠만한 곳이 없다.
이스라엘에서 7년 전 이곳으로 이사 온 에스티 지포리는 "잭슨하이츠는 뉴욕시의 이상적인 버전"이라며 "뉴욕이 될 수 있는 모습 그 자체"라고 말했다. 그녀는 대학에서 도시 설계를 가르친다. 강의가 없을 때는 남편의 식당 일을 돕는다. 그녀의 남편은 "이 지역에서 영감을 받은 이스라엘-조지아 음식" 식당 '샌드위치 테라피'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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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포리는 뉴욕의 다른 지역에서도 살아봤다. 하지만 잭슨하이츠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그녀는 "여기는 매우 친밀한 이민자들의 공동체가 있다"며 "여기에서 소속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만나는 관광객들은 대개 이전에 뉴욕시에 와본 적이 있고 관광 상품을 이용해 본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진정한 뉴욕을 찾아서 이곳에 온 거죠."
잭슨하이츠의 다양한 문화에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은 그녀만이 아니다. 멕시코와 잭슨하이츠에서 자란 퀸스 칼리지 대학원생 오스카 카모라 플로레스는 "내가 좋아하는 잭슨하이츠의 면모는 모든 길이 저마다의 개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건축물이 아름다우면서 정말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는 거리들이 있어요. 어느 지역에서든 몇 블록만 가면 루스벨트 애비뉴에 닿는데요. 그곳은 정말 엄청나면서 압도적인 곳이죠. 때로는 걷지도 못할 정도로 흥미로운 요소가 꽉 들어차죠."
나는 콜롬비아식 식당과 빵집들이 즐비한 거리에서 자모라 플로레스를 만났다. 그는 "어렸을 때 이곳에 살면서 맨해튼에 갔던 게 손에 꼽을 만큼 적다"고 말했다.
"갈 이유가 없었어요. 필요한 게 전부 다 여기에 있었으니까요."
잭슨 하이츠-루스벨트 애비뉴 지하철 입구 근처의 보행자 구역인 '다이버시티 플라자'에서 동쪽으로 가면 '리틀 인디아(티베트인, 네팔인, 방글라데시인, 파키스탄인 등 이곳에 비슷한 비중으로 거주하는 다른 민족을 고려할 때는 다소 잘못된 이름)'를 거쳐 '리틀 콜롬비아(이후 리틀 에콰도르, 페루,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등이 이어진다)'에 닿게 된다.
그리고 차례로 퀸스에서 가장 오래된 게이 바인 '프렌즈 터번'을 중심에 둔 퀸스의 활기찬 LGBTQ 커뮤니티를 만나게 된다. 자모라 플로레스는 "뉴욕시 다른 곳에 있는 게이 바들과 달리 이곳은 매일 밤 '라틴의 밤'이 펼쳐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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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의 보고, 잭슨하이츠의 역사에는 일종의 인과응보 격인 이야기가 있다. 퀸스 역사 협회 이사인 제이슨 앤토스에 따르면, 1차 세계대전 이전에 이 지역은 '트레인스 메도우'라 불리는 습지로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는 지역이었다. 가끔 이곳을 찾아오는 이들의 목적은 주로 여우나 거위 사냥이었다.
그러다 1914년 에드워드 A 맥두걸의 '퀸스보로 코포레이션'이 이 지역을 매입했다. 맨해튼에 가까우면서 영국 스타일 정원을 가진 아파트를 이곳에 만들어 중산층과 상류층 백인들을 공략하려 했던 것이다. 당시 이곳은 유색인과 유대인, 다른 소수 인종 집단은 부동산 구매를 할 수 없었던 이른바 "제한된 공동체"이기도 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던 달에 IRT 지하철 노선(현재 트레인 7)이 잭슨하이츠의 중심까지 확장됐다. 바로 이때 백인들이 잭슨하이츠로 많이 이주했다.
하지만 맥두걸의 바람은 이어지지 않았다. 뉴욕 주민들은 당대의 차별적인 인종차별 법안을 두고 수년간 저항했다. 2차 세계대전 후 이 지역에서 인종차별적인 제도가 폐지됐고, 오늘날의 잭슨하이츠가 탄생하게 됐다.
요즘 잭슨하이츠를 방문하는 이들은 일부러 끼니를 거르고 찾아온다. 이곳이 요리의 성지이기 때문이다. 이곳 주민들은 맨해튼 미드타운에 있는 스포츠펍과 각종 레스토랑 체인점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다양한 음식 노점과 레스토랑을 자랑으로 여긴다.
구술사학자인 브리짓 바르톨리니는 퀸스의 다른 지역에 살다가 2016년 잭슨하이츠로 이사했다. 그녀는 이곳에서 스토리텔링 이벤트를 통해 커뮤니티 연결을 강화하고 있는 '파이브 보로 스토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나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오픈 스트리트" 보행자 구역으로 바뀐 '34 애비뉴'를 산책하면서 그녀에게 이 지역의 다양성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그녀는 "이곳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매우 특별한 이곳의 다양성"이라고 말했다. "오늘 아침 저는 브런치를 먹으러 레바논식 식당에 갔습니다. 길모퉁이에는 방글라데시 음식을 파는 노점이 있었고, 몇 걸음 떨어진 곳에 티베트 모모를 파는 곳이 있었죠. 다양한 국가에서 온 사람들이 같은 고향 사람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고 있는 거죠. 정말 멋지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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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이면서 음식 도보 여행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 에스나이더 아레발로에게 잭슨하이츠는 자신의 여행 프로그램을 위한 최고의 장소다. 그는 34년 전 콜롬비아에서 잭슨하이츠로 왔다. 처음에 그의 어머니는 이곳에서 무허가 음식 노점을 운영했다. 그는 어머니와 함께 음식점 사업을 '아레파 레이디'라는 유명한 레스토랑으로 키워냈다.
아레발로는 "이 도보 여행의 목표는 음식을 통해 언어와 문화, 종교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걷다 보면 일종의 게임처럼 하루에 얼마나 많은 국가를 만나게 되는지 세어보게 됩니다."
루스벨트 애비뉴를 걸으면서, 나는 12개국의 상징적 요소들을 만났다. 어느 방향으로든 조금만 더 걸으면, 더 많은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여기다. 아레발로는 "사람들이 뉴욕을 세계의 수도라고 말할 때, 바로 뉴욕의 이러한 점을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잭슨하이츠에 사는 주민 3명에게 음식을 추천해 달라고 하면 3가지 다른 음식을 추천받게 된다. 이러한 사실은 이 거리에 얼마나 많은 게 있는지를 방증한다.
멕시코 음식만 해도, 자모라 플로레스는 83번가의 '쥬킬리아'를 추천했다. 하지만 아레발로는 코로나 근처에 있는 '라 에스피가'를 가야 한다고 말했다. 바르톨리니는 남인도 음식 식당 '사무드라'가 좋다고 했고, 아레발로는 노점에서 파는 방글라데시 간식을 파는 '푸스카 하우스'를 최고로 꼽았다.

사진 출처, Richard Levine/Alamy
콜롬비아 음식에 관해서라면, 아레발로는 자신의 식당과 별도로 '미스터 칸그레조'에서 파는 태평양 연안 특산물을 극찬했다.
요리와 문화적 다양성을 본다면, 잭슨하이츠는 뉴욕의 축소판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이곳은 빠르게 변화하는 뉴욕을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뉴욕은 역사적으로 세계 곳곳에서 온 사람들을 위한 '글로벌 터전'이었다. 하지만 치솟는 임대료는 이러한 뉴욕 고유의 특징을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2022년 12월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은 뉴욕을 세계에서 가장 비싼 도시로 선정했다. 만연한 젠트리피케이션과 인구 구성의 변화로 인해 이제는 뉴욕이 "세계에서 가장 큰 '게이티드 커뮤니티(출입이 통제되는 커뮤니티)'"가 됐다는 우려도 나온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잭슨하이츠도 고유의 특징을 잃기 쉬운 상황이다.
바르톨리니는 "문밖을 나설 때마다 믿기 힘들 정도의 다양성을 경험하지만, 가장 걱정되는 것도 사라져갈 위기가 점점 커져가는 이 다양성"이라고 말했다. 그는 "저렴한"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대폭 확장해가며, 이곳에서 추진 중인 "저렴한" 주택 개발 정책을 꼬집었다.
처음 이곳을 개발했던 맥두걸의 목표는 돈이었다. 그는 자신이 구상한 잭슨하이츠가 가장 완벽한 공동체라고 믿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발전한 공동체는 훨씬 더 유토피아적이었다. 요란한 콘크리트와 금속, 벽돌이 모여 하나의 하나의 집을 이루듯, 이질적인 부분들이 모여 살아 숨쉬는 '글로벌 소우주'를 만들어낸 것이다. 아레발로는 이러한 잭슨하이츠의 모습을 "인류의 미래 중 하나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출처, Sebastian Modak
루스벨트 애비뉴를 자주 갈 때마다 나는 어떻게 읽는지 알 수 없는 표지판들을 지나친다. 이곳을 방문할 때마다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나 자신의 위치에 대해 조금씩 깨닫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이곳의 공기에는 친숙한 것과 낯선 것이 공존한다. 분명 나는 이 동네 출신이 아닌데, 뉴욕을 고향이라 부르기로 결심했다. 이곳에 올 때마다 나는 그 이유를 자문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