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대 할머니와 소도시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예술적 재앙' 사건

19세기 스페인 화가 엘리아스 가르시아 마르티네스가 그린 프레스코화 원래 모습(왼쪽)과 복원 후 모습

사진 출처, Centro de Estudios Borjanos

사진 설명, 19세기 스페인 화가 엘리아스 가르시아 마르티네스가 그린 프레스코화 원래 모습(왼쪽)과 복원 후 모습

이 모든 이야기는 2012년 8월 7일 스페인 북동부 인구 5000여 명의 작은 도시 보르하에 대한 어느 블로그 게시물에서 비롯한다.

이 게시물은 19세기 스페인 화가 엘리아스 가르시아 마르티네스가 보르하 내 미제리코르디아 성지 성당 벽에 그린 '에케 호모(라틴어로 '이 사람을 봐라'라는 뜻)'가 어떤 신비로운 '복원'을 겪었는지 설명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내 보존상태가 좋지 않았던, 예수 그리스도의 초상을 그린 이 프레스코화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됐다.

당시 81세였던 신도 세실리아 히메네스가 엉터리로 '에케 호모'화를 복원한 것이다. 복원 전문가가 전혀 아니었지만 '선의'로 이 프레스코화를 보수하고자 했다.

'조롱의 쓰나미'

그 이후 이야긴 모두가 아는 내용이다.

SNS를 통해 조롱이 쓰나미처럼 쏟아졌으며, 뉴스 보도가 이어지고 몇 주간 전 세계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이를 다뤘다.

히메네스는 '도나 세실리아' ('도나'는 스페인어에서 나이 든 여성에게 쓰는 경칭)이라는 별명을, 히메네스가 엉터리로 복원한 예수는 '감자 예수'라고 불리며 지금까지도 인터넷 밈으로 떠돌고 있다.

당시 "반달리즘 행위"로 법적 기소될 수도 있는 상황에 히메네스는 우울증에 시달렸다.

세실리아 히메네스
사진 설명, 히메네스는 '도나 세실리아' ('도나'는 스페인어에서 나이 든 여성에게 쓰는 경칭)이라는 별명을, 히메네스가 엉터리로 복원한 예수는 '감자 예수'라고 불리며 지금까지도 인터넷 밈으로 떠돌고 있다

그러나 곧 히메네스는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그림이 "소문을 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조금씩 조롱보단 호의적인 목소리가 커졌다.

도나 세실리아의 그림은 이제 열쇠고리, 티셔츠, 냉장고 자석과 같은 기념품으로도 제작되며, 심지어 2015년엔 미국의 오페라 대본 작가 앤드류 플랙이 이에 영감을 받아 대본을 쓰기도 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보르하에선 여전히 이 사건을 기념하고 있으며, 91세가 된 도나 세실리아는 현재 양로원에서 살고 있다.

에두아르도 아릴라 파블로 보르하 시장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도나 세실리아의 건강 상태가 악화했지만, 여전히 이 상황을 인지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오는 9월 10일 도나 세실리아와 엘리아스 가르시아 마르티네스를 기념하는 행사를 개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어찌 됐든 도나 세실리아 덕에 수도 마드리드에서 300km 떨어진 소도시 보르하는 스페인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으며, 원래 재앙이라고 여겼던 사건을 통해 이익을 창출하고 있으니 말이다.

파블로 시장은 "보르하는 세계적인 관광지가 됐다. 110개국에서 찾아온다"고 덧붙였다.

관광 명소화

도나 세실리아의 복원 이후 보르하를 찾는 관광객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첫해에만 4만 명이 찾아왔다.

파블로 시장은 "현재는 1만~1만1000명 정도가 매년 찾아온다"면서 "온라인에서 유명해진 작품을 실제로 보기 위해 온다"고 설명했다.

도나 세실리아의 복원 이후 보르하를 찾는 관광객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사진 출처, Getty Images

사진 설명, 도나 세실리아의 복원 이후 보르하를 찾는 관광객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도나 세실리아가 한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한편 파블로 시장은 "정부 기관으로서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허용할 수 없다. 위대하고 기념비적인 스페인의 문화유산을 복원하기 위해 전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화가 마르티네스에겐 외람된 말이지만, 이젠 도나 세실리아가 자신만의 방법으로 그의 '에케 호모'화를 정의했습니다."

마르티네스(1858-1934)의 이 프레스코화는 또 다른 '에케 호모'화를 재현한 것으로, 15~17세기 유럽 미술에서 흔히 다룬 주제이다. 작품의 제목은 폰티우스 필라투스 총독이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에 가시관을 씌운 뒤 예루살렘 군중들에게 그를 보라고 말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북동부 아라곤 지방의 사라고사 미술 학교의 교수였던 마르티네스는 마찬가지로 예술가였던 가족들과 함께 여름 휴가차 보르하를 방문하곤 했다. 그러다 1930년 마르티네스가 보르하 성당에서 이 프레스코화를 그렸다.

스페인의 권위 있는 일간지 '엘 파이스'는 원작 그림을 '예술적 가치가 거의 없다'고 평한 바 있으며, 해당 작품은 아라곤 지역 내 예술품 목록에도 포함되지 않았었다.

A close-up of the "restored" Ecce Homo

사진 출처, Getty Images

사진 설명, There has even been a debate about how Dona Cecilia's intervention could be considered art

도나 세실리아의 그림은 예술작품인가?

디지털 문화 연구원인 나탈리아 라빈은 도나 세실리아가 "원작 그림보다 훨씬 더 영향력 있는, 완전히 다른 것"을 창조했다며 높이 평가했다.

라빈 연구원은 "도나 세실리아의 그림은 현대 시각 문화를 관통하는 작품"이라면서 "캐쥬얼하면서도 아마추어적이며 약간의 무정부적인 느낌이 있다. 현대 밈의 모든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도나 세실리아가 의도하진 않았지만 말이다"고 설명했다.

라빈은 "리메이크된" '에케 호모'화 사례를 통해 예술에 대한 현대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현대 사회는 예술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묻지 않고 예술이 어디 있는지만 묻는다는 것"이다.

"도나 세실리아가 복원 작업을 하게 된 맥락을 보면 분명 예술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를 통해 어떤 사물의 생명력에서 중요한, '얼마나 오래 알려지고 언급되는가'라는 점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한편 도나 세실리아가 우울증에서 벗어나고 있을 무렵 예상치 못한 팬이 나타났다.

영화 '더 바(2017)', '야수의 날(1995)' 등을 제작한 스페인의 영화 감독 알렉스 데 라 이글레시아가 도나 세실리아의 그림은 "세상을 바라보는 현재 방식의 아이콘"이라면서 "그 의미가 크다"면서 옹호에 나선 것이다.

도나 세실리아가 복원한 '에케 호모'화를 패러디한 수많은 인터넷 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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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미술평론가 벤 데이비스 또한 "의도치 않은 초현실주의로 사랑받는 걸작"이라면서 2010년대를 정의한 작품 100선에 선정하기도 했다.

인터넷 기술과 문화에 관한 온라인 잡지인 '리얼 라이프'의 롭 호닝 편집자는 '에케 호모'의 밈이 실제로 "종교의 경건함과 예술의 사이비 종교성을 동시에 풍자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고 평가했다.

호닝 편집자는 또한 보르하를 찾는 관광객이 증가했다는 사실이 오프라인 세계와 온라인 세계 간의 흥미로운 관계를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마치 도나 세실리아의 '에케 호모'화가 그려진 현실의 벽이 "인터넷이 여기 있다"고 관광객들에게 말하는 느낌이라는 것이다.

호닝 편집자는 "그 센세이션이 엄청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도나 세실리아는 자신이 복원한 '에케 호모'화로 창출된 이익의 49%를 인정받았으며, 세상을 먼저 떠난 아들이 앓았던 근육 퇴행성 질환 환자들을 위해 정기적으로 기부하고 있다고 전해졌다.

또한 2016년 보르하에서 열린 행사에서 도나 세실리아는 자신의 '복원'을 좋아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제 가끔은 너무 많이 본 탓에 그림을 보고 '아들아, 처음에 느꼈던 것처럼 못생기진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