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지상낙원' 선전에 속은 재일동포, 김정은 상대로 첫 재판

1959년부터 1984년까지 약 9만3000명의 재일 조선인이 북한으로 건너갔다

사진 출처, ICRC ARCHIVES

사진 설명, 1959년부터 1984년까지 약 9만3000명의 재일 조선인이 북한으로 건너갔다

'지상낙원'이라는 선전에 속아 북한에 갔다가 탈북한 재일교포 5명이 북한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의 첫 재판이 14일 도쿄에서 열렸다.

일본에서 북한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청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당시 북한과 일본이 체결한 '재일교포 북송에 관한 협정'에 따라 지난 1959년 12월부터 1984년까지 9만3340명의 재일 조선인이 북한으로 건너갔다. 여기에는 일본인 배우자와 자녀 등 일본 국적자 약 6800명도 포함돼 있었다.

이들은 북한에서 '너무나도 가혹한 삶을 살았다'며 지난 2018년 8월 북한을 상대로 1인당 1억엔(약 10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했다. 그리고 14일 첫 재판이 열린 것.

소장에 명시된 피고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표자 국무위원장 김정은', 그러나 북한 정부는 이날 재판에 출석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비영리인권단체 '전환기정의워킹그룹' 이영환 대표는 BBC 코리아에 "승소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승소할 경우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건물과 조선신보 등 일본 내 북한 자산의 압류로 손해배상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북송사업이 사실 과거 일본 우익정부와 일본 적십자사, 북한 적십자회,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조총련 등 6개 기관이 얽혀 있다"며 "인도적 사업이라며 북송 사업을 선전한 6군데 모두가 가해자인 셈"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만약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면 불리했을 것이며 김정은 위원장과 북한 당국을 피고 대표로 지정하면서 반한 정서가 전혀 작용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과거 오토 웜비어 재판이 프레임을 형성해줬고 최근 한국에서의 국군포로 재판 승소 역시 상승효과를 가져왔다"면서 "판례가 형성되고 약 200명의 탈북 재일교포와 그 가족의 줄소송이 이어질 경우 북한과 조총련은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재판 결과는 내년 3월 23일에 나온다.

'억울한 마음 풀기 위해 소송'

원고 5명 중 한 명인 가와사키 에이코 씨(79세)는 43년을 북한에서 살다 지난 2003년 탈북해 2004년 일본으로 돌아왔다.

그는 BBC 코리아와의 전화통화에서 "일본 조총련이 재일교포들에게 북한이 지상낙원이라는 당시로써는 엄청 희한한 그림을 그려 보였다"고 말했다.

무상치료에 공부도 돈 1전도 안들이고 할 수 있고 세금도 없고 주택은 공짜와 다름없이 다 준비돼 있고 인권과 자유 역시 보장된다고 선전했다는 것.

가와사키 씨는 "당시 북송선을 탄 재일교포의 상당수는 남한 출신이었다. 그 사람들이 뭘 믿고 갔겠나. 조총련이 대대적으로 거짓선전을 벌였기 때문에 점차 그걸 믿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본 니가타항에서 출발한 배를 타고 일본 청진항에 들어서는 순간 모두가 속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그러면서 "북한에서 3번째로 꼽힌다는 국제항구라는데 시커멓고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일본 소규모 항구에 불과한 니가타항보다 훨씬 더 열악했다"고 언급했다.

북송선을 환영하기 위해 모인 인파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고도 말했다. 누가 봐도 영양실조인 새까만 사람들이 모두 똑같은 옷을 입고 계속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는 것.

그는 "일본에서는 작업복으로도 안 쓰는 천으로 옷을 해 입고 있는 모습에 배에 있는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면서 "북한에 간 사람들 모두가 어렵게 살았다"며 "북송된 사람들의 억울한 마음을 풀기 위해 재판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사회 제일 아래층에서 온갖 차별과 멸시를 당해온 세월을 보상 받고 싶다는 것.

가와사키 씨는 "북에 남은 이들이 몇 명 되지 않는다. 하지만 희망을 가지고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처럼 목숨 걸고 탈북하는 게 아니라 당당하게 북한에서 일본으로 올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제 나이가 들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죽기 전에 북한에 남아있는 자녀들과 손자들을 만날 수 있게 해달라, 김정은 당신도 재일교포 귀국자의 아들이니 그 처지에서 모든 것을 생각하고 사죄하라"며 "김정은 당신도 탈북하라"고 촉구했다.

그렇다면 탈북 국군포로 재판은?

한국에서는 이미 탈북 국군포로 2명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에서 승소 판결이 나왔다.

당시 서울중앙법원은 북한 자산을 관리하는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경문협)에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지만 경문협을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공탁하고 있는 저작권 사용료는 김정은 위원장의 몫이 아니라 조선중앙TV와 원저작자들의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탈북 국군포로를 지원하는 사단법인 물망초의 박선영 이사장은 "관련 추심재판이 다음달 19일로 예정돼 있다"며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11월에 판결이 나면 탈북 국군포로 어르신들이 바로 배상금을 받을 수 있다"며 "경문협 측에서 시간을 끌고 있지만 판사가 이번엔 사건을 종결하겠다고 밝힌 만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일본 재판과 관련해 아주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는데 조총련 자산이 있는 만큼 한국보다는 쉬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도 지난해 제기한 2차 재판과 납북자 가족들이 제기한 소송도 예정된 만큼 연쇄파동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탈북 국군포로 2명은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에 포로로 잡혀 강제 노역을 했다며 북한과 김정은 위원장을 상대로 소송을 냈고 이에 한국 법원은 "피고들은 이들에게 각각 2100만원씩 지급하라"는 승소 판결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