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1년...임신 중지를 원하는 여성의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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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원하셔서 원장님이 초음파로 직접 보신 후에 가격을 말씀드릴 수 있어요."
지난해 4월 11일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 처벌조항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온 지 1년이 지났다.
형법 및 모자보건법 개선 입법시한은 2020년 12월 31일까지다. 이때까지 개선 입법이 이뤄지지 않으면 처벌 조항의 효력은 상실된다.
이 때문에 여성계 일각에서는 법을 개정하지 말고 내버려두자는 의견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처벌 조항이 사라지더라도 낙태를 재정의하고, 임공임신중절 기간과 사유 등을 개정하는 작업은 여전히 필요하다.
임신 중지를 원하는 여성의 현실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제도적인 개선이 없어 임신중지는 아직도 음성적인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헌재 결정 이후에도 인터넷에는 유산유도약을 판다는 광고가 하루에도 수십 개씩 올라온다. 법이 개정되기 전까지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은 여전히 임신중지가 가능한 병원을 '몰래' 찾아다녀야 하며, 보험도 없이 병원에서 부르는 값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다.
임신 중지를 원하는 여성들이 계속해서 위험에 내몰리고 있는 현실을 짚어봤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1년, 무엇이 바뀌었나
헌재 결정 이후인 지난해 5월, 검찰은 임신 기간 12주 이내 임신중지에 대해 기소유예 처분을 내리기로 했다.
기소유예란 혐의가 인정되지만, 여러 정황을 고려해 검사가 피의자를 재판에 넘기지 않는 불기소 처분이다.
이러한 대검찰청의 해당 결정에 따라 지난해 6월 광주지검은 임신 12주 이내 임신 중지를 선택한 미성년자에 대해 기소유예 처분을 내린 바 있다.
임신 12~22주 이내 임신중지의 경우, 입법 전까지 시한부 처벌을 유보하는 기소중지 처리를 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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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헌재의 결정 이후 1년 동안 국회는 조용했다.
지금껏 발의돼 계류 중인 낙태죄 관련 법안은 지난해 4월 이정미 정의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임신 14주 이내 제한 없는 임신중지' 개정안뿐이다. 이 역시 20대 국회 임기가 끝나면 자동 폐기된다.
당장 올해 말까지 형법 및 모자보건법 개선안이 마련돼야 한다. 하지만 21대 총선 주요 5개 정당의 공약을 살펴본 결과, 여성 건강권 보장과 안전한 인공임신중절을 언급한 당은 정의당뿐이다.
시민단체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의 나영 공동집행위원장은 10일 라이브스트리밍한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1년 맞이 기자회견에서 법과 정책에 있어 "사회의 모습은 변한 것이 없다"라고 규탄했다.
그는 아직도 "여성들이 폭력을 감내하고 블랙마켓을 이용해 임신 중지를 하고 있다"며 "법과 정책 개정을 21대 국회가 활발히 이어나가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차인순 수석전문위원은 21대 국회가 열리면 여러 법안이 제안될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임신중지 관련 입법과 개정 과정에서 정치적 입장이나 교리적 사고가 개입하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그는 헌재가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의 핵심으로 "국가가 여성의 자기결정권, 건강권, 그리고 평등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점"을 꼽았다며 "인권보장의 측면에서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사고가 필요하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임신중지 접근 제한은 그대로
BBC 코리아가 서울의 산부인과 7곳을 무작위로 골라 임신중지 수술 가능 여부를 물었다. 온라인 비밀 상담으로 시작한 경우, 전화 상담으로 안내할 수 있다고 답이 왔다. 전화 상담의 경우에는 "일단 내원하셔서"라며 방문 상담을 유도했다.
병원 직원은 보통 임신 테스트기 사용 여부와 마지막 생리 시작일을 물었다. 하지만 초음파 검사 등 기본적인 검사 가격이나 시술에 대한 가격을 물었을 때는 일단 검진을 받아봐야 알 수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전화 상담 중 임신 중지 사유를 묻거나 결혼 여부를 물은 곳은 없었다. 하지만 병원에 여성 건강에 대해 안전하고 명확한 상담이나 답을 제공한 병원도 없었다.
제도적인 개선이 이뤄지지 않아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은 여전히 낙태가 가능한 병원을 은밀히 찾아다녀야 한다.
인도주의의사협회 이보라 공동대표는 앞으로 개정안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인공유산은 기본적으로 의료행위"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신중지에 대한 모든 의료 서비스가 공식적인 의료 체계 안에서 이뤄져야 여성의 건강권과 재생산권이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언제 임신하고 언제 출산할지 여성이 결정할 수 있어야 하며, 의료인은 이에 조력자가 돼야 합니다."
낙태약 '블랙마켓' 여전히 성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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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프진이라는 낙태약을 오픈 채팅에서 팔던데… 그 약 믿고 사도 되는 건가요?"
온라인에는 낙태약 관련 안전성과 부작용에 관한 다양한 문의와 상담 요청이 즐비하다.
SNS에 "낙태약"을 치면 하루에도 수십 건씩 "정품 미프진 판매", "한국 직배송 정품", "수술보다 안전한 낙태약" 등의 광고 글이 올라온다.
임신중지 방법에는 약물을 이용한 방법과 외과적 수술을 통한 방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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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미프진'으로 불리는 유산유도제는 현재 전 세계 67개국에서 공식적으로 승인돼 사용하고 있고, WHO 또한 2005년 미페프리스톤을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한 바 있다.
하지만 현행 모자보건법은 임신중지 수술만 규정하고 있고, 약물에 대한 규정은 없다. 또한 국내에선 판매허가가 나지 않아 공식 수입이 불가해 합법적으로 유통이나 판매도 할 수 없다.
식약처에 따르면 유산유도제 적발 건수는 2016년 193건에 불과했으나, 2018년 2197건으로 크게 늘었다.
불법으로 유통되는 미프진은 정품 여부를 확인할 수 없고, 전문가의 안내 없이 약을 먹기 때문에 여성들의 건강이 우려되고 있다.
이에 여성계에서는 안전한 임신중지가 가능하도록 유산유도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헌재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이 사회에서 실제로 적용되려면 처벌 규정 개정 이외에도 보건의료정책, 교육정책, 노동정책 등 사회 전 영역에서의 제도 개선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차인순 수석전문위원은 임신중지 과정에서 국가와 의료진의 상담서비스 제공을 의무화하는 것이 중요성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결정을 내리는 "당사자인 여성이 단지 의료적 정보뿐 아니라 자기결정에 필요한 임신·임신중단·출산 그리고 양육과 관련된 종합적인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최근 임신 20주 안에 임신부가 임신중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뉴질랜드는 임신중지 전후로 심리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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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정책 측면에서도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셰어)는 모두가 평등한 자원과 정확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으려면 포괄적인 성교육이 시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처럼 피해를 예방하는 내용만 전달하는 성교육은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청소년 페미니스트 단체 위티의 양지혜 공동대표는 헌재의 결정 이후에도 학교 내 성교육은 변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낙태를 부정적으로 보는 성교육은 바뀌지 않았다"라면서 "청소년도 성과 재생산권에 대해 충분히 안내받을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의료인 교육, 유산유도약 도입 여부, 미성년자와 심신미약자에 대한 임신중지 관련 규정, 노동정책의 보완, 임신중단에 대한 의료보험 등 합의를 이뤄내야 할 부분이 다수 있다.
헌재가 제공한 입법시한까지 약 8개월이 남았다. 앞으로 보완입법이 어떻게 이뤄질지, 또 정부와 국회가 전문가 및 관련 단체 등과 어떻게 이견을 조율해나갈지 주목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