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 웅덩이에 고인 빗물을 마시는 마리우폴의 아이들

동영상 설명, 나탈리아 로버츠는 우크라이나에 남은 친한 친구를 돕기 위해 노력 중이다
    • 기자, 제인 모건
    • 기자, BBC 웨일스 조사팀

영국 북웨일스에 사는 우크라이나 출신 나탈리아 로버츠(32)는 친한 친구 율리아의 아이들이 전쟁통에 웅덩이에 고인 물을 마시며 견디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의 가족을 영국으로 데려오기 위해 애쓰고 있다.

율리아와 세 딸은 비가 오는 날이면 타는듯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대피소 밖으로 뛰쳐나오곤 했다. 현재 러시아군이 포위한 우크라이나 남동부의 마리우폴 지하에 마련된 대피소이다.

대피소에는 물과 식량만 부족한 게 아니었다. 화장실도, 샤워 시설도 전기도 없었다.

로버츠는 자신이 사는 안전한 웨일스로 율리아 가족을 데려오고 싶다고 했다.

율리아는 "작은 수프 한 그릇을 하루에 한 번 세 아이에게 나눠 먹였다"라면서 "세 아이가 씻을 물은 한 컵 정도 양밖에 없었다"라고 덧붙였다.

러시아군의 포격으로 집이 파괴되자 율리아는 각각 11살, 6살, 3살 난 딸들을 데리고 공동 지하실로 몸을 숨겼다. 이곳은 포격으로부터는 안전했지만, 아이들을 먹일 음식은 턱없이 부족했다.

로버츠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아이들이 계속 먹을 것을 달라고 하는 바람에 율리아는 아이들이 잠들기 직전 먹을 것을 줬다고 했다. 적어도 배가 고픈 상태로 잠들지 않게 하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율리아의 두 딸은 엄마의 휴대전화 속 영상을 보며 이따금 힘든 현실을 잊곤 한다

사진 출처, Yuliia

사진 설명, 율리아의 두 딸은 엄마의 휴대전화 속 영상을 보며 이따금 힘든 현실을 잊곤 한다

"비가 내리자 이들 모녀는 웅덩이에 고인 물을 마실 수 있었습니다. 물이 정말 달았고 하더군요. 그리고 냄비를 찾아 빗물을 받았다고 합니다."

결국 율리아는 신선한 물을 구하러 가기 위해 아이들을 숨긴 채 뒤로해야만 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행복하게 살던 율리아 가족

사진 출처, Yuliia

사진 설명,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행복하게 살던 율리아 가족

율리아는 BBC 웨일즈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3km 정도 떨어진 곳에 우물이 있었다. 총성과 폭탄이 가득했지만, 우물가로 달려갔다"라고 회상했다.

한편 둘째 딸이 아팠지만, 딸에게 줄 약은 어디에도 없었다.

3월 초부터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남동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을 포위한 상태다
사진 설명, 3월 초부터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남동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을 포위한 상태다
마리우폴 주민인 율리아는 러시아군의 포격으로 집이 파괴되자 지하 벙커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다

사진 출처, Yuliia

사진 설명, 마리우폴 주민인 율리아는 러시아군의 포격으로 집이 파괴되자 지하 벙커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다

율리아는 "수중에 돈은 있었지만 약을 살 곳이 없었다. 주변엔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것이 부서지고 약탈당하고 파괴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5년 전 남편 듀이와 함께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에서 웨일스로 이주한 로버츠는 율리아와 학창 시절부터 단짝 친구였다. 지난 2월 우크라이나에 전쟁이 발발할 때까지도 항상 연락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로버츠는 2000마일 떨어진 우크라이나에 있는 친구 율리아를 응원하기 위해 가능한 한 자주 통화한다
사진 설명, 로버츠는 2000마일 떨어진 우크라이나에 있는 친구 율리아를 응원하기 위해 가능한 한 자주 통화한다

그러나 며칠 때로는 몇 주 동안, 율리아가 로버츠에게 문자를 보내거나 전화하는 일은 위험했다.

로버츠는 딸들과 함께 지하 벙커에 머무는 율리아가 간간이 올리는 영상 일기를 통해 소식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율리아의 남편은 최전선에서 러시아군에 맞서 싸우고 있다고 했다.

율리아와 세 딸은 몇 주 동안 지하 대피소에서 지냈다

사진 출처, Yuliia

사진 설명, 율리아와 세 딸은 몇 주 동안 지하 대피소에서 지냈다

회계사인 로버츠는 상황이 악화하자 우크라이나 동부에 살고 있던 어머니 류드밀라와 의붓아버지 사샤를 웨일스로 불렀다. 이들은 로버츠와 남편 듀이, 네 살 난 딸 줄리아, 한 살배기 제이콥 가족과 함께 웨일스의 카나번에서 지내고 있다.

이제 로버츠는 친구 율리아 또한 그냥 두고만 보고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해 이들 모녀를 웨일스로 데려오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했다. 친구가 웨일스에서 우크라이나 난민 자격을 얻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율리아 모녀 또한 북웨일스에 있는 로버츠에게 가고 싶어 한다

사진 출처, Yuliia

사진 설명, 율리아 모녀 또한 북웨일스에 있는 로버츠에게 가고 싶어 한다

사실 율리아 모녀뿐만이 아니다. 전략적 요충지인 마리우폴 내 주민 1100만 명은 도시가 완전히 화염에 휩싸이기 전에 살던 집에서 나와야만 했다. 그 후 몇 주간 지나서야 유엔(UN)의 주도로 마리우폴 내 민간인 철수 작전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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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남동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은 지난 3월 초부터 러시아군에게 포위된 상태이며, 도시 대부분이 러시아군 손에 들어갔다. 이제 우크라이나군 수백 명만이 도시 남쪽의 아조우스탈 제철소에 남아 최후의 항전을 이어 나가고 있다.

러시아군이 드넓은 아조우스탈 제철소 지역을 봉쇄하고 공습을 이어 나가고 있지만, 제철소 지하 터널 망에 있는 우크라이나군을 완전히 제거하려는 시도는 아직 포착되지 않았다.

러시아는 마리우폴을 집중적으로 포격한 것에 대해 전쟁 범죄 혐의를 받고 있다. 마리우폴 현지 시장은 적어도 민간인 2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아직도 주민 10만 명 이상이 마리우폴에 갇혀있다.

율리아 모녀는 기차와 미니버스 등을 타고 이웃 국가인 폴란드로 향했다. 이들은 언제 남편 혹은 아빠를 다시 볼 수 있을지, 아니면 영국에 사는 로버츠를 정말 만날 수 있긴 한지 모른다고 했다.

한편 율리아는 전쟁이 남긴 뚜렷한 상흔을 눈에 담았다.

웨일스 카나번의 집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 로버츠 모녀
사진 설명, 웨일스 카나번의 집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 로버츠 모녀

로버츠는 "율리아가 마리우폴에서 죽은 사람들을 봤다고 했다. 로켓포로 사망한 시신에는 손도, 다리도 없었으며 시신의 형태도 온전치 않다고 했다"라고 전했다.

"이곳 웨일스에 율리아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집 거실에서 율리아와 함께 차를 마시는 꿈을 꿉니다. 이곳에서 함께 행복하게 사는 꿈이요. 정말 그렇게 됐으면 좋겠습니다."

한편 현재까지 우크라이나 난민 86000명이 비자 승인을 받았으며, 이중 약 27000명이 영국으로 건너왔다고 한다.

웨일스 당국은 고국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공포로부터 탈출하는 난민들을 위한 "피난처 국가"가 되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웨일스 내 약 1만 가구가 우크라이나 난민에게 집을 제공했으나, 영국 내무부에 따르면 지난달 말까지 웨일스로 오기를 희망해 비자를 발급받은 사람은 2300여 명이다.

우크라이나 난민 약 530만명이 폴란드, 루마니아, 러시아, 헝가리, 몰도바, 슬로바키아, 벨라루스 등 인근 국가로 향했다
사진 설명, 우크라이나 난민 약 530만명이 폴란드, 루마니아, 러시아, 헝가리, 몰도바, 슬로바키아, 벨라루스 등 인근 국가로 향했다

웨일스 당국은 지금까지 비자 700여 건을 지원했으나, BBC 웨일스 조사팀은 정확히 웨일스에 도착한 난민 수를 정확히 알아낼 수 없었다. 영국 정부에 관련 자료를 요청했지만,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에 대해 영국 내무부는 정보 제공을 위해 "가능한 한 빨리" 업무를 처리하고 있으며, 여러 제도를 통해 86000명 이상의 비자를 추가로 허가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더 빠른 행정 절차를 위해 신청 양식을 간소화하고 직원을 확충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