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라이프: 고급 아파트로 탈바꿈 중인 사무실들

사진 출처, Kip Dawkins
재택근무로 인해 많은 사무 공간이 제 역할을 잃었다. 그러자 부동산 개발자들은 빈 사무실을 주거용으로 바꿔, 쇠락해가는 상업 지구를 되살리려 하고 있다.
2021년 5월 워싱턴 DC 포기 바텀 인근에 '더 레이'가 문을 열었다. 그해 이 지역에서 진행된 가장 큰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로 많은 이목이 집중됐다. 8층짜리 아파트 단지인 이 곳은 웅장한 로비에는 과감한 아르 데코(1920~30년대에 유행한 장식 미술의 한 양식. 기하학적 무늬와 강렬한 색채가 특징)가 설치됐고, DC의 스카이라인을 조망할 수 있는 옥상 테라스에는 화덕 및 그릴은 물론 라운지와 개별 미팅 공간을 갖춘 펜트하우스 클럽룸이 들어섰다.
이곳은 2차 세계대전 무렵에 지어졌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외교 문서 분석 및 관리로 쓰였다. 그러다 이번에 158채의 고급 아파트로 개조된 것이다.
워싱턴DC에서 주거 공간으로 개조된 업무용 건물 사례는 더 레이만이 아니다. 부동산 임대 사이트 '렌트카페'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DC에선 팬데믹 이후 사무실 단지 1091곳이 주거단지로 바뀌었다. 미국 내 최대 규모로, 이웃 도시인 알렉산드리아가 995 단지를 전환하며 뒤를 이었다.
10년 전만 해도, 재생 건축 대상은 주로 공장과 호텔이었다. 그런데 렌트카페에 따르면, 지난 2년간 미국에서 개조를 마친 아파트의 41%는 이전에 사무 공간으로 쓰이던 곳이다. 현재 미국에서 재생 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가장 인기가 많은 것은 사무 공간이다. 올해 미국에서 나올 5만2700여 주거 단지(2012년은 6960개 단지에서 증가)의 약 4분의 1이 과거엔 사무 공간으로 쓰였던 곳이라고 한다.
재택근무 및 혼합형 근무 방식(재택과 사무실 근무 혼합)의 확산으로 기업의 사무 공간 수요가 줄고 있다. 반면 주택 시장은 과열되어, 부동산 개발자들은 노후된 부동산을 고급형 주거 부동산으로 개조하고 있다.
이러한 재생 건축은 팬데믹으로 인해 황폐해진 도심(central business districts, CBCs)에 활기를 다시 불어넣고 기존의 도시 설계 관행을 바꿀 수 있다. 물론 세율과 토지 용도 제한 같은 장애물도 많아서, 마냥 쉬운 일은 아니다. 주거용 공간을 사무실로 개조할 때도 많은 변화가 필요한 것처럼, 사무 공간을 주거 공간으로 바꿀 때도 많은 것을 바꿔야 한다.

사진 출처, Kip Dawkins
북미의 쇠락하는 시내 중심가
노후된 사무실을 주거용 건물로 바꾸는 추세는 미국만의 일은 아니다. 파리 투자청은 사무실을 주택으로 전환하는 디자인 경연을 열었고, 런던 시티 공사는 팬데믹으로 인해 공실이 된 사무실의 용도를 변경해 2030년까지 최소한 1500개의 새로운 주택 단지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러한 전환이 더 절실한 것은 북미 지역이다. 아시아에선 재택근무가 서양보다 덜 보편화돼, 아직은 재생 건축에 사용할 사무실이 충분하지 않다. 유럽이나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상업 지구가 보통 도심 외곽에 만들어져서, 재택근무가 자리잡아도 도시 중심부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 (예를 들어 카나리아 워크가 텅텅 비더라도, 런던 중심부는 여전히 활기를 띤다.) 반면 북미에서는 낡은 기반시설과 기술을 가진 업무용 빌딩이 도시 중심부에 집중되어 있다.
워싱턴 소재 '브루킹스 연구소'의 상업용 부동산 연구원 트레이시 해든 로는 미국 사무실 시장 톱10을 살펴보면, 약 90%의 사무실이 도심 안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직장인들이 재택근무를 시작하면서, 이 도심이 금을 다 캐낸 서부 금광 마을처럼 텅 비게 됐죠."
사실 팬데믹 이전부터 사무 공간 공실률은 올라가고 있었다. 고용주들이 1980년대 건축 붐 때 지어진 노후된 건물을 기피하고, 직원 1인당 면적을 줄였기 때문이다. 도시 계획 당국은 이러한 추세가 도시 중심부를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진작부터 예상하고 있었다.
렌트카페 보고서를 작성한 부동산 데이터 기업 '야디 매트릭스'의 시장 정보 관리자인 더그 레슬러는 "이 (사무실에서 주거 공간으로의 전환) 경향은 사실 2019년부터 나타났고, 팬데믹 때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고 말했다. "전환 대부분은 주택에 대한 수요가 크고 전환 능력을 가진 도심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죠."

사진 출처, Robert Deitchler/Gensler
캘거리에서는 나쁜 사무실이 좋은 주거지를 만든다
캐나다 캘거리는 오래된 사무실을 주택 단지로 바꾸는 데 있어서 가장 적극적인 도시 중 하나다.
건축 디자인 기업 '젠슬러'의 토론토 지사장인 스티븐 페인터는 "캘거리는 어쩌면 좋지 않은 면에서 트렌드를 앞서가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2020년 여름 약 32%에 달하는 캘거리의 사무실 공실률 해결을 '캘거리 경제 개발 그룹'과 협력했다. 당시의 32%는 2013년 디트로이트가 파산을 선언하던 당시 공실률의 두 배에 달하는 수준이었다.
페인터는 "팬데믹은 매우 근본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 한 회복될 수 없다는 깨달음을 줬다"고 말했다. "이 도시에는 임대 개시를 앞둔 사무실 약 600만제곱피트를 포함해 총 1200만 제곱 피트가 공실 상태였습니다."
젠슬러는 캘거리와 함께 사무실을 주거지로 전환하는 스코어카드를 만들었다. 카드에선 위치(중심부에 있고 접근성이 높은가?)와 형태(건물 중심부터 창문까지 동선이 짧은 건물들이 전환이 더 용이하다) 등을 살펴봤다. 젠슬러는 이러한 측정 기준을 사용해 공실의 35%를 재정을 투자해 전환했을 때 예상 효과 최상급으로 구분했다.
캘거리는 전환율 목표를 50%로 세웠다. 이를 위해 평방 피트당 58달러의 현금 인센티브를 만들었다. 개발자들이 전환에 참여할 경제적 유인이 되기 위해, 인센티브는 부동산당 최대 1000만 캐나다 달러까지 제공했다. 캘거리시는 구역 재조정과 관련된 불필요한 요식도 제거해, 전체 과정에 드는 기간을 18개월이나 줄였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현재 개발중인 부동산 프로젝트가 캘거리 시내 중심가의 인구를 약 24%정도 늘릴 것으로 추정된다.
페인터는 "이러한 시도는 기존 시내 중심부에 보다 현대적인 도시를 세울 수 있다"고 말했다. 젠슬러는 현재 캘거리에서 개발한 방법을 사용해 몇 개의 미국 도시를 공략하고 있고, 중국의 부동산 개발자들과도 협력하고 있다.

사진 출처, Robert Deitchler/Gensler
도심 인구를 다시 증대시키는 효과
캘거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과 같은 변화는 팬데믹 이후 불모지가 되어가는 도시 중심부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필요하다. '마스터카드 이코노믹스 인스티튜트' 보고서에 따르면, 도시 중심부에서 커피숍, 세탁소, 소형 상점 등 중소규모 산업들의 매출은 2019년 대비 2021년에 33% 감소했다. 반면 주거 지역에서는 8% 늘었다.
팬데믹은 다양성이 도심의 복원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라는 것을 충분히 보여줬다. 로는 "도시 계획도 투자 포트폴리오와 같다"고 말했다. "중심 비즈니스 지역은 미래의 노동 방식 변화에 따른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각화가 필요합니다."
도시 중심부에 주택 공급을 늘리는 것은 대중 교통 시스템을 되살리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로는 거의 모든 북미 도시의 대중교통 시스템은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이 교외에서 시내로 출퇴근할 수 있도록 과도설계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시스템은 재택 및 혼합형 근무 확산으로 매출에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사무실을 주거 공간으로 전환할 때는 보통 고급 주택단지(프로젝트를 실행 가능하게 만드는 데 수반되는 큰 비용 때문에)를 만든다. 하지만 저가형 주택에도 이를 적용하려는 노력들이 있다. 예를 들어 메이어 빌딩은 로스앤젤레스 시내에 있는 아르 데코의 랜드마크인데, 현재 저소득층을 위한 저가형 주택 79채로 전환중이다.
로는 "저가형 주택이 필요한 사람들은 일자리 때문에 교통이 편리하고 접근성이 높은 장소에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재생 건축과 저가 주택 공급은 형평성과 위치 효율성을 잘 계산해서 진행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어요."
비영리 단체 '아키텍처 2030'에 따르면, 사무실 건물의 용도를 변경하려는 이유에는 재생 건축으로 건설에서 나오는 탄소 배출량을 80%까지 줄일 수 있다는 것도 포함된다. 현재 건설은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약 11%를 차지하고 있다.
업무 공간을 주거 공간으로 전환하는 것은 환경과 재정, 형평성 등이 얽힌 복잡한 문제다. 하지만 전세계 도시들이 팬데믹에서 벗어나면서 도시 중심부가 건강한 활기를 되찾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때문에 사무 공간의 주거 공간 전환 추세는 보다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